56화
“늙고 큰 수놈 호랑이군요. 나도 이렇게 큰 호랑이는 처음 봅니다.”
사사삭, 사사삭.
아마도 전에 호랑이를 해체해본 경험이 많았는지 빠른 동작으로 움직였다.
백정은 호랑이의 사타구니에 달린 신을 싹둑 잘라냈다. 그것을 빠르게 잘게 썰어 최인범에게 불쑥 넘겨주며 권했다.
“이것을 먹으면 앞으로는 수놈 호랑이에게 공격당할지는 모르지만 암놈 호랑이에게는 보호를 받게 될 거요. 그러니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먹어요.”
“예. 이걸 날로 먹어요?”
“날로 먹어야 효험이 좋아요.”
백정의 말은 다소 황당했다. 하지만 일종에 주술과 같은 의미의 처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팔자에 없던 호랑이 신을 날로 먹게 됐다. 전에 먹어본 개의 신이나 맛은 비슷했다. 다만 비릿한 냄새가 다소 역겹기는 했지만 몸에 좋다니 참고 씹어 삼켰다.
해체된 호랑이의 위장에는 개의 뼈나 사람의 뼈로 짐작되는 이물질이 들어있었다. 그러자 백정은 그것들을 바로 옆 구덩이에 넣고 아들에게 지시했다.
“사람 뼈도 같이 있는 것 같으니 깊이 파묻어.”
“예.”
가죽을 모두 벗기고 살코기는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가져온 지게에 올려놓고 다들 산에서 내려왔다.
장인마을 사람들은 ‘호랑이고기가 사람의 몸에 아주 좋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매우 좋아 했다.
“와! 호랑이 고기다.”
갖바치인 노인은 뼈가 발라져 있는 것을 보며 슬며시 말했다.
“호랑이 뼈로 약을 만들면 상처가 빨리 아무는 효과가 있소.”
“그래요?”
전생에 중국에서 호랑이 뼈로 만든 약이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효과가 전혀 없는 가짜약이라는 언론보도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문뜩 중국인들은 지금도 가짜를 많이 만들어 파는지 생각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진짜 호랑이 뼈로 만든 약이라면 효과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면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어, 구급약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아.’
호랑이고기는 몇 등분으로 이미 나누어진 상태다.
일부는 장인 마을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됐다. 호랑이를 해체한 백정도 많은 고기나 내장을 차지했다. 또한 가죽신발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갖바치 노인에게도 주고 일부만 따로 싸서 가져가기로 결정 났다.
워낙 좋은 호랑이 뼈라니 뼈는 되도록 많이 챙겼다.
최인범은 지게를 빌려 호랑이 가죽과 살코기와 뼈를 담고 장인 마을에서 떠나게 됐다. 그러자 갖바치 노인은 신신당부했다.
“꼭 모래 오시오. 나는 그 다음 날에 아주 멀리 떠나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일확천금에 해당하는 호피가 생겨 너무 신이 났다.
‘좋았어! 큰 돈 벌었군.’
백두상단의 자본금에 자신이 면포를 투자하지 못해 매우 찜찜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호피를 팔아 자본금으로 투자하면 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야 명실상부하게 상단의 접장 자리를 확보한 셈이라는 자부심이 생겼다.
‘됐어, 삼수 녀석이 깜짝 놀라겠어.’
이때 등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오싹하는 찬바람이 등줄기를 시리게 한다.
“뭐지?”
뒤에서 누가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슬며시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돌아서서 발길을 바쁘게 옮겼다.
호피를 팔아 면포를 차지하게 되어 신이 났다. 이런 와중에 뒤에서 뭔가 자기를 노려보는 느낌이 들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걸어 드디어 풍기 장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풍기 장은 어느새 파장되고 마지막 물건을 떨이로 판다는 상인들의 외침만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떨이요, 떨이. 반토막!”
커다란 백두상단의 차일도 거두어진 상태라 천천히 숙소인 벼락주막으로 가게 됐다. 지게에 담긴 얼룩덜룩한 호랑이 가죽을 보자 사람들이 다들 놀랐다.
사람들이 최인범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호피를 보며 놀란 눈으로 감탄했다.
“와! 호피가 아주 크네.”
“가죽으로 보아 금방 잡은 호피인데. 살코기도 있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혼자서 잡았나?”
“에이, 설마.”
무서운 호랑이를 혼자 잡아서 호피를 지고 왔다고 짐작해서 그런지 사람들은 최인범의 주변에서 슬슬 피했다. 사람들은 낮에 내성천에서 싸우던 사람임을 알자 다들 혼자서 호랑이를 잡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무술 실력이 뛰어나니 혼자서 잡았어.”
“그럴 수 있겠어.”
최인범이 호랑이를 잡았다는 놀라운 사실은 풍기 장터 부근은 물론 고을 곳곳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소문이란 퍼지면서 더욱 눈덩이처럼 부풀려지게 된다.
내성천 옆의 풍기 장터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벼락주막.
바로 옆에는 풍기 장터까지 연결된 내성천이 흐르고 황토벽 담장 옆에는 커다란 고목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 고목나무는 벼락을 맞아서 몸통의 일부가 시커멓게 변했다. 땅을 향해 축 늘어진 긴 가지에는 많은 큰 솔방울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벼락주막의 유래는 주막을 처음 만든 사람은 주막을 운영해 재물벼락을 맞기를 원했다. 그러나 마른하늘에서 내려친 날벼락을 맞아서 아직까지 벼락주막이라는 이름이 전해졌다.
초가인 벼락주막은 여섯 개의 방들이 길게 늘어선 행랑채가 있고 본채가 별도로 있었다. 그 사이의 안마당에는 평상들이 많았다. 본채에는 대청마루가 있어서 그곳에는 많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초가집이지만 대청마루를 두고 커다란 건넌방이 있어 일행은 그곳에서 머물고 있었다. 방이 부족해 최인범의 일행인 10명이 한 방에서 지냈다.
벼락주막은 장이 서는 날에는 마당에 차일을 치고 평상에서 손님들을 받았다. 오늘은 차일을 백두상단에서 빌려가 그대로 장사했었다.
최인범 접장이 주막으로 돌아 왔을 때는 마당에 큰 차일이 쳐져 있었다. 차일 아래의 모든 평상이 한곳으로 모아지고 그 위에는 많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모두 5일 장에서 면포와 바꾸게 된 종류가 다양한 물건들이다.
최인범이 호피가 담긴 지게를 지고 주막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의 평상에서 장부에 뭔가 기록하던 백삼수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접장님, 웬 호피입니까?”
“자본금으로 부족한 면포를 장만하려고 틈내서 호랑이 잡았다.”
최인범의 이런 태연한 대답에 백삼수는 입을 떡 벌리며 너무 놀라 반문했다.
“예? 접장님 혼자서 호랑이를 잡아요?”
“그래.”
진실이야 어찌 되었건 잡긴 혼자서 잡은 격이라 이렇게 답했다. 백삼수는 이런 대답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호랑이를 혼자 잡다니 넋이 나갈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넋이 나가 눈만 껌벅거리는 백삼수를 바라보며 최인범은 지게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나자 지시했다.
“백집사, 애들 모두 모이라고 해. 그리고 회원들도 모이고. 모두 모여서 호랑이 고기나 구워먹자.”
“알겠사옵니다. 바로 모이라고 하죠.”
주모가 나와 보다 놀라며 외마디를 토했다.
“애그머니나! 저 호랑이는 산신령님이 아니야?”
잠시 시간이 지나자 밖에 나들이를 나갔던 칠복이 형제와 월녀가 돌아왔다. 녀석들의 손에는 한 결 같이 커다란 갱엿이 들려있었다. 아마도 장터에서 사가지고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손에 들린 갱엿은 같이 윤 진사 댁에서 살던 먹쇠를 만나 그가 사준 것이다. 먹쇠가 갱엿을 사주며 그동안 지내던 이야기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 소상히 말해주고 오느라 늦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백두상단의 회원 다섯 명도 평상으로 모두 모여 들었다.
“호랑이가 엄청 크네요.”
“그러니까 주모가 산신령이라고 하지.”
회원들은 호피를 평상 위에 넓게 펼쳐 보며 감탄했다.
“와! 호피가 크다.”
더구나 최인범이 혼자서 호랑이를 잡았다니 너무 놀란 표정들이다. 모두들 멍한 상태로 변해 버렸다.
‘호랑이를 혼자 잡아?’
아무리 무력이 뛰어나도 그렇지 호랑이를 혼자서 잡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증거인 호피와 살코기가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호피 가죽에 난 칼자국을 보니 사실이 틀림없었다.
‘접장님은 정말 겁나는 분이야.’
왈패를 처치한 사건이나 호랑이를 잡았다는 말이나 모두 기도 안 차는 엄청난 사건이다. 상단회원들로는 정말 엄청난 사건들이 자신들의 주변에서 자주 벌어진다고 느꼈다.
이때 평상에 펼쳐진 호피를 만져보며 자세하게 살피던 월녀는 신이 나서 크게 외쳤다.
“와! 오라버니가 진짜로 호랑이를 잡았어!”
낮에 허세로 왈짜들을 향해 큰 소리를 쳤었다. 그런데 실제로 무섭고 커다란 호랑이를 잡아 왔으니 정말 대단한 오라버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잡지 못하는 호랑이를 혼자 잡았다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신이 난 월녀는 옆에서 서있는 칠복이 형제에게 버럭 외쳤다.
“칠복이와 팔복이! 너희들 앞으로 말조심해! 내가 그랬지! 접장 오라버니는 호랑이를 겁내는 분이 절대로 아니라고.”
“알았어! 앞으로 말조심할게.”
기가 팍 죽은 칠복이 형제는 주춤거렸다. 아마도 월녀와 칠복이 형제는 전에 창락골에서 있었던 일로 진짜다 거짓이라고 말다툼했던 것 같았다. 어찌 되었건 월녀는 거짓말쟁이가 안 되어 좋고 자신은 한 밑천 두둑하게 잡았으니 두루두루 좋았다.
흐뭇한 미소를 짓던 최인범은 왈짜들이 검을 들고 자기를 습격하려던 것이 떠올라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왜 밖에 돌아다녀? 왈짜들이 보복하겠다고 돌아다니던데.”
이런 물음에 월녀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답했다.
“오라버니, 장이 일찍 파해서 잠깐 동네를 구경하고 왔어요. 갱엿은 먹쇠 오라버니가 사줬고요.”
“누구? 오라버니?”
“저처럼 윤 진사 어르신 댁에서 노비로 살다가 젊은 선비님에게 팔려간 먹쇠 오라버니요.”
“아, 그렇구나.”
최인범은 월녀의 말을 듣자 최인범 진사가 여전히 자신의 주변에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를 피하려고 했더니 가는 방향이 같아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설마 나를 따라 온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