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55화 (55/519)

55화

최인범은 갖바치노인에게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산속을 다니며 사냥하는 용도로 사용하려고요. 만드는 재료는 소가죽이면 되고 품삯은 넉넉하게 드리겠어요. 잘 만드시면 여러 벌을 추가로 만들려고요. 재료와 삯으로 면포 5필을 드리겠어요.”

재료와 품삯을 적게 준다면 안 된다고 거절할까봐 아주 후하게 제안했다.

많은 품삯을 준다는 최인범의 제안에 갖바치 노인은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너무 많은 면포를 준다니 조금 믿어지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러나 어제도 찾아왔다는 것을 아니 실없이 하는 주문 같지 않고 믿음이 갔다.

갖바치 노인은 물끄러미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여긴 어떻게?”

“여러 겹의 가죽으로 만들어야죠.”

갖바치노인은 다른 곳은 모두 쉽게 만들 수 있는지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신발의 밑창에 대해서만 몇 번을 반복해 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밑을 가죽으로 대기만 해서는 얼마 지탱하지 못하겠소.”

“그래요? 그럼 달리 만드는 방법이 있나요?”

“내 생각에는 가죽을 양쪽에 대고 안에는 나무 조각을 여러 개 연결해야 신기에도 편하고 튼튼할 것이오. 그리고 제일 밑에는 말의 편자를 조각으로 잘라서 대면 오래 신을 수 있겠소.”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렇게 만들어 주세요.”

갖바치노인은 그림을 슬며시 한쪽으로 밀치고 나서 말했다.

“품삯을 많이 준다니 다른 일거리를 제치고 먼저 만들어 주겠소. 내일 모래에 찾으러 오시오.”

“제가 급하게 오느라 면포를 가지고 오지 못했으니 우선 제가 가지고 있는 노리개를 담보물처럼 가지고 계시죠.”

최인범이 이렇게 말하자 갖바치노인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그럴 필요는 없소. 꼭 필요해서 일부러 두 번이나 여기를 찾아와 주문했으니 반드시 찾으러 올 것 아니요. 약속한 면포만 가지고 와서 찾아가시오.”

일단 가죽신을 주문하게 되어 여유가 생기자 갖바치노인에게 가죽 혁대, 멜빵 등 추가로 주문했다.

“이런 식으로 만들면 돼요.”

“알겠소. 별로 어렵지 않소.”

그림을 보여주고 설명하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별로 어렵지 않다고 했다.

갖바치노인은 추가 주문에 대한 재료와 품삯을 요구했다.

“이건 별로 만들기 어려운 물건들이 아니니 면포 1필만 추가하면 될 거요.”

“알겠습니다. 그럼 찾으러 올 때 면포 6필을 가져오죠.”

최인범이 갖바치노인에게 주문한 것들은 모두 등산용품으로 항상 몸에 걸치고 다닐 수 있는 종류다. 당장 필요치 않지만 유사시 필요한 물건들이다.

갖바치노인은 물건들에 달려야 할 장식인 많은 고리가 문제라고 했다. 그것은 다른 곳에서 주문해 만들어야 된다고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이렇게 정교한 물건은 장롱제작에 필요한 장식을 만드는 세공사를 만나보는 것이 좋을 거요. 생각보다 쉽게 만들어 줄 거요.”

“그렇군요.”

“풍기에도 구리로 그런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장인이 있으니 그리로 찾아가보시오. 관아 바로 옆의 뒷골목에 있소. 내가 소개해서 왔다면 그리 비싸게 받지는 않을 거요.”

“잘 알았어요.”

일단 필요한 물품을 주문하고 나자 다시 안을 살피고 나서 천천히 너와집을 떠나게 됐다. 예쁜 당혜를 보자 월녀에게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아직 너무 이르다. 월녀는 아직도 천한 노비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고심했던 한 가지를 해결해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렇게 하나하나 준비하는 거야.’

빨리 풍기 장으로 돌아가 대장장이를 만나 봐야 한다. 대장장이에게는 이미 풍기에 도착함과 동시 자신에게 꼭 필요한 대검을 주문했었다.

‘주문한 대검을 잘 만들었는지 모르겠군.’

장인 마을을 떠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내려오는 도중. 몰골이 송연해지는 괴이한 울부짖음을 들었다.

크르르릉 크르르릉.

무서운 울음소리는 전혀 힘이 전혀 실리지 않았다. 마치 숨이 넘어가는 짐승이 마지막으로 토해내는 신음소리 같았다. 심상치는 않은 울음소리라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소리지?’

약간 두려움이 생겼지만 확인하고 싶다는 충동이 아주 강하게 치밀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자신이 내려온 장인 마을 근처의 산속에서 들리는 것이 틀림없었다. 내려왔던 산길을 다시 올라가야 하니 잠시 망설였다. 귀찮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확인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울음소리는 전에 들었던 소리와 비슷했다.

‘어디서 들었지?’

보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울음소리가 아닌 어떤 감각적인 그런 살기다.

살기를 느끼고 슬며시 대나무지팡이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산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가까워지자 점점 또릿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느낌이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신음소리를 마지막으로 토해냈다.

크르릉 크르릉

힘이 없는 울음이다. 울음소리를 듣자 신경을 곤두 세워 긴장한 상태로 발걸음을 옮겼다. 긴장해서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뒤에서 작은 소음이 들렸다.

사사삭, 사사삭.

산의 풀숲이나 눈을 조심스럽게 밟는 소리다. 조심해서 자기를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틀림없었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사람이 내는 인기척은 다섯 명 정도다.

‘어라! 누가 날 따라오는데.’

산속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도 기이하고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인기척에도 신경이 써졌다.

자신이 멈추자 뒤에서 나는 인기척은 더욱 가까워졌다. 또릿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사람의 모습이고 가끔 번득이는 뭔가가 보였다. 그것들이 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칼을 가진 놈들이군.’

앞뒤로 협공 당하는 형세라 머리가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앞의 적이 우선이냐 아니면 뒤에서 자신을 따라오는 무리가 우선이냐를 고려했다.

크아아앙! 크아아앙!

이때 바로 코앞의 풀숲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아주 커다란 호랑이가 앞에서 나타났다.

‘헉! 호랑이!’

너무 가까운 거리라 무슨 대비를 하고 말고가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검만 꼭 잡고 몸을 바짝 움츠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황당한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호랑이가 우는 굉음이 울리자 뒤에서 따라오던 놈들이 혼비백산해 산 아래로 내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 살려! 호랑이다!”

“으아아악!”

후다다닥. 다다다.

얼마나 빨리 달려서 도망치는지 마치 날아가는 것 같았다. 산에서 소음을 내던 칼 든 놈들이 어느새 산길을 통해 아주 멀리 달아났다. 본능적으로 그놈들의 뒷모습을 살피니 모두 내성천 모래밭에서 자신에게 처참하게 당했던 왈짜패거리들이다.

‘허! 저런 겁쟁이들이 왈짜패거리라니. 어리석은 놈들.’

이 시대의 조직폭력배인 왈짜들이라지만 아무래도 시골 장터에서 기생하는 그저 그런 날건달인 것이다. 폭력조직은 사실 검을 가지고 설치는 검귀라는 무리가 진짜 조직폭력배인 것이다. 그들은 비밀스럽게 활동하는 살인청부업자들로 구성된 범죄조직이다.

앞에 커다란 호랑이가 나타났지만 최인범이 겁 없이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호랑이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이 크게 울고 나자 풀숲에서 기어 나왔다. 몸을 드러낸 커다란 호랑이는 자신의 앞에서 퍽 하니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하필이면 여기서 죽어?”

가까이에 다가가 살피자 아주 커다란 늙은 호랑이의 몸에는 깊은 칼자국이 보였다. 이것으로 보아 전에 창락골에서 자신이 검으로 베었던 호랑이가 틀림없었다. 더구나 엉덩이에도 화살 한 대가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부러진 화살인데 상처가 완전히 곪아 있지 않아 이렇게 추측했다.

“화살은 박힌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았어.”

상처는 아주 깊어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칼자국과 화살 이외에 다리에도 심한 상처가 있었다. 오래전 호랑이 덫에 결렸다가 풀려난 모습이다.

‘착호갑사에게 공격당해 도망치던 중이군.’

보아하니 호랑이가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는 창락골에서 활동하는 착호갑사들 때문이다. 최인범의 예측대로 호랑이 추포대는 호랑이 몰이를 죽령 쪽으로 시도했다.

그러나 호랑이는 반대쪽으로 달아나 여기까지 이동했던 것이다. 부상이 심한 호랑이가 결국 이곳으로 이동해 죽어버린 우연에 일치일 뿐이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기이한 사건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생긴 사건들 자체가 대부분 괴사이니 그저 속편하게 이렇게 단정 지었다.

‘어차피 죽는 몸이니 나에게 가죽이라도 챙기라고 따라 온 모양이야.’

머리를 싸매고 아무리 고심해 생각해 봐야 이런 괴사를 설명할 길이 달리 없었다.

호피가격은 면포가 수백필이나 되는 고가품이다. 물론 상처가 많은 호피라 품질이 약간 떨어지지만 엄청난 행운이 자신에게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이거야말로 하늘에서 돈 벼락이 저절로 떨어진 것이다.

오늘은 진짜 운수대통한 날이다. 자신도 모르게 기쁨으로 흥분되어 크게 외쳤다.

“좋았어! 나도 한 건 크게 챙겼어.”

너무 신이나 서둘러 장인마을로 뛰어갔다.

이미 거래 관계가 있는 갖바치노인에게 급하게 달려가 크게 외쳤다.

“호랑이를 잡았어요. 같이 날라 올 사람이 필요합니다.”

“호랑이요?”

믿어지지 않다는 표정이나 그래도 갖바치노인은 너와집에서 나와 바로 옆에서 사는 백정을 찾아 갔다. 그리고 백정에게 급하게 지시했다.

“호랑이를 잡았다니 자네가 빨리 가서 해체해 지게로 지고 오게.”

“알았어요.”

백정은 옆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막내아들에게 크게 외쳤다.

“막동아, 빨리 칼 준비하고 지게 지고 따라 와.”

“예. 아버님.”

장인 마을사람들이 빠르게 지게들을 가지고 백정과 같이 최인범이 인내하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실제로 커다란 호랑이가 죽어 있는 모습에 다들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이미 죽어 있는 호랑이는 그들에게는 그저 고기나 가죽에 불과했다.

백정은 아주 능숙한 솜씨로 호랑이 가죽을 벗겼다. 호랑이는 엄청난 크기라 황소만하다고 말할 정도다. 해체하며 백정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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