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구경꾼들은 무술 고수가 의외로 너무 나이가 어려 보이자 또다시 놀랐다. 구경꾼들은 웅성웅성 거리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젊고 미남으로 생긴 무술 고수라 더욱 멋지게 보였다.
“와! 멋지네.”
“싸움은 저렇게 하는 거야.”
순간의 공격으로 패거리 두 놈이 나가 떨어져버렸다. 혼자 남은 왈짜 놈이 도망칠까 말까 눈치를 보며 주춤거렸다.
움찔 움찔
비호처럼 움직이는 무술 동작으로 보아 자신의 싸움 실력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진짜 고수다. 머릿속에서는 도망쳐야 한다고 떠오르지만 겁에 질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망가야 해.’
너무 겁이 나서 도망칠 기회를 노리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나 언제 다가왔는지 모르게 전광석화 다가온 최인범의 정권지르기로 복부를 강타 당하자 그 자리에 폭 고꾸라졌다.
퍽!“크억!”
강한 타격에 녀석은 옆으로 쓰러지지도 못했다. 그대로 쪼그리는 자세로 배를 움켜쥐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턱 꿇었다. 녀석의 입에서는 허연 거품이 품어져 나왔다. 그리고 입으로 겨우 겨우 창자가 끊어지는 것과 같은 처량한 신음을 토했다.
“으으으윽!”
숨통이 막혀버려 그런지 크게 비명소리도 토해내지 못했다. 물론 발길질에 차여 모래밭에 나가떨어진 다른 왈짜들도 입에서 거품을 품었다. 다들 모래판에 쓰려져 꼼짝 못하고 있었다.
최인범이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왈짜 패거리를 모조리 처치하고 나자 땅에 떨어진 삿갓을 슬며시 집어 들어 머리에 썼다.
이때 구경꾼 틈에 화사한 장옷을 둘러쓴 여자가 감탄사를 토해냈다.
“어머머, 정말 멋진 분이야. 얼굴도 너무 잘 생기고.”
얼굴에 화사하게 화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기생인 것 같았다. 강한 남자를 보게 되자 음심이 발동한 것인지 몸을 묘하게 비틀었다. 가냘픈 얼굴에서는 요사하고 진득한 향기를 마구 품어냈다.
화려하게 장식한 다래머리의 여자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옆에서 있는 댕기머리 처녀에게 물었다.
“저 분이 백두상단의 우두머리냐?”
“예. 재물도 많은 분인가 봐요.”
“자세하게 알아 봐.”
너무도 매력적인 사내로 뛰어난 무력을 지녔다. 더구나 재물도 많은 사내라면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저 사내가 떠나기 전에 은밀하게 만나 볼 야심을 품었다. 저런 잘난 사내라면 자신이 재물을 주고라도 품에 꼭 안아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일어났다.
‘다른 년들이 알기 전에········.’
이렇게 판단한 여자는 마음이 너무 급해 서둘렀다.
“가자!”
기생과 종년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빠르게 구경꾼 틈을 헤집고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주변의 구경꾼들도 슬금슬금 움직였다.
신나게 서로 피를 토하며 ‘쌍방 간에 주먹질이 한참 오가려나?’하고 생각했더니 의외로 빨리 승부가 났다. 너무 빠른 승부라 구경꾼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에이, 너무 싱겁게 끝났어.”
“싱겁다니, 내가 보기에는 너무 멋지구먼.”
구경꾼 틈에 끼어서 구경하던 포졸 세 명도 다들 얼이 빠졌다. 자신들도 함부로 대하기 힘든 왈짜 패거리 여섯 명이 일방적으로 패했다. 자신들의 삶에서 저런 무술 고수는 처음 봤다.
“무과 급제자인가?”
“그래서 저런가? 대단한 무술고수네.”
누가 이기고 지던 싸움은 싸움이라 최인범과 왈짜 패거리를 관아로 끌고 가야 한다. 하지만 겁이 나서 그렇게 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런 때는 소리 없이 현장에서 사라지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야 나중에 사또가 알아서 문제가 되도 현장에 없었다고 변명할 구실이 생긴다.
“이보게 우리는 할 일도 많은데 저리 가세.”
“그러지.”
“너무 일방적이라 싸움도 아니구먼.”
고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포졸이지만 왈짜들하고는 형님 동생으로 부르는 너무 절친한 사이다. 무술이 뛰어난 최인범을 잡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많은 패거리를 몰고 온 왈짜패를 관아로 끌고 갈 분위기도 아니라 슬며시 피한 것이다.
포졸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남아 있던 구경꾼들도 서서히 발길을 돌렸다. 구경꾼들은 이제 다시 장꾼으로 변해 장터로 돌아갔다. 다들 오래 난투극이 벌어질 줄 알았다가 다소 빨리 끝난 싸움이라 싱겁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백두상단의 패거리들에 대해서는 아주 강한 인상이 남았다.
‘다들 독종들이야. 그 상단사람은 건들면 절대 안 돼.’
최인범은 접장은 왈짜들과 싸움은 끝났다고 판단해 월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나무랬다.
“왜 여길 왔어 위험한데. 빨리 돌아가서 장사나 해.”
“예, 오라버니.”
자신 옆에서 서성이는 칠복이 형제를 보며 엄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너희들은 앞으로 함부로 나서지마. 몽둥이로 머리통 후려치다가는 잘못하면 사람을 죽여. 그러니 앞으로는 꼭 어깨를 치도록 해.”
“넷! 접장님.”
아이들이 참나무 몽둥이를 들고 장터로 뛰어서 돌아가자 빙그레 웃었다. 어리지만 자신을 돕겠다고 나섰으니 마음이 흐뭇했다. 무술을 가르치자마자 써먹고 있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다듬이 방망이를 들고 멍청하게 서있는 다섯 명의 회원들이 보이자 인상을 쓰며 큰 목소리로 나무랬다.
“쯧쯧! 어린 애들보다 간덩이가 적군. 그러니 시골 장터에서 설치는 왈짜 패거리에게도 항상 당하지. 빨리 가서 장사들이나 하셔.”
“옛! 접장님.”
후다다닥
멋쩍은 다섯 명의 회원들은 번개 같이 내달려 장터로 돌아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접장이 너무 겁나는 사람으로 강하게 각인됐다. 상단 우두머리인 접장의 나이가 어리다고 조금 허수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불손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복종심과 충성심이 팍팍 늘어났다.
“싸움을 못하니 장사라도 잘해야지.”
“암! 잘못하면 접장님의 주먹 한대로 죽어나겠어.”
겁도 나지만 자신감은 어느새 팽배해졌다. 어린 애들도 과감하게 행동하니 자신들도 틈나면 무술을 지금부터라도 배워볼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우리도 칠복이 형제처럼 무술을 배우자고.”
“당연히 그래야지.”
뒤가 든든하니 투지나 용기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무술을 배워 그동안 당했던 왈짜 패거리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무술을 배워볼 결심을 하게 되자 마음이 급해져 빨리 장사를 끝내야 된다. 물론 접장에게 잘 보이려면 많은 면포를 부지런히 팔아야 한다.
아이들과 다섯 명의 백두상단 회원들이 장터를 향해 빠르게 사라졌다.
최인범 접장은 그제야 쓰려져 있는 왈짜 놈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기절한 상태인 왈짜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가 냇물 속에 처박아 버렸다.
풍덩!
“어푸! 어푸! 사람 살려!”
무릎까지도 빠지지 않는 낮은 냇물이다. 왈짜 놈은 깊은 물에 빠진 것으로 착각했다. 살려달라며 양팔로 냇물을 마구 튀기며 허우적거렸다. 발로 얼굴이 차여 기절한 놈도 다리를 잡아 질질 끌고 가 역시 냇물에 처박아 깨웠다.
처음 팔이 비틀려 나가떨어진 녀석에게 다가가서 팔을 만졌다.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고 접질렸다. 팔을 살살 어루만지다가 갑자기 확 잡아채며 새로 맞추었다.
“으아아악!”
“자식! 허우대는 멀쩡해서 엄살은.”
이어서 배를 움켜진 왈짜 녀석에게 다가가 등짝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퍽!
그러자 ‘우으욱’하며 진득한 위액을 한 모금 토하며 그제야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얼굴은 완전히 똥색으로 누렇게 떠버렸다.
최인범은 놈이 정신을 차리자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 쳤다.
“어느 놈이 두목이냐?”
“접니다.”
마지막에 달려들었던 놈이 두목이다. 무술 실력은 형편없고 그저 인상이 너무 더럽고 험악해 두목 노릇을 하는 놈 같았다. 녀석의 눈을 매섭게 노려보며 강한 어조로 물었다.
“이름은?”
“배도치요.”
다시 싸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배도치, 앞으로 백두상단을 건들면 그때는 진짜로 혼나는 줄 알아. 소리도 없이 산으로 끌고 가서 파묻어 버릴 것이니.”
“소인 잘 알겠사옵니다.”
왈짜 여섯 명은 모두 무서워서 덜덜 떨었다.
추운 냇물에 처박혀 있던 놈들을 겨우 기어 나와 더욱 심하게 와들와들 떨었다. 다들 죽었다가 겨우 살아난 기분이다. 그러니 얼굴이야 어리게 생겼건 뭐하건 접장이라고 불리는 사내는 왈짜들의 눈에는 무서운 야차나 저승사자로 보였다.
최인범의 눈에서는 여전히 진한 살기가 풀풀 풍겼다.
찌리릿!
무서운 눈빛을 마주한 왈짜들은 전신에서 소름이 돋았다.
무력을 과시하는 사람이란 본디 더 강한 무력 앞에는 아주 약한 모습을 보인다. 상대방의 무력이 자신들의 힘이 전혀 미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위력을 지녔으면 더욱 처참한 상태로 철저하게 굴종하는 법이다.
자신들은 상상하지도 못하는 엄청난 무력을 지닌 사내다. 겁에 질린 왈짜 패거리들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접장님, 감히 저희들이 몰라 뵙고.”
최인범은 인상을 험악하게 쓰며 아주 낮은 저음으로 엄중히 경고했다.
“앞으로 잘해.”
“접장님, 앞으로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겠사옵니다.”
설설 기고 있는 왈짜 패거리들에게 몇 마디 던지고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도 남아서 자길 주시하는 사람들이 보이자 슬며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모래밭에서 사라지자 왈짜패거리들도 꽁지가 빠지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최인범은 사라지는 왈짜들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저런 것들도 왈짜라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