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백두상단의 상점 앞에서 건들거리던 왈짜들은 너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빈정거렸다.
“쪼그만 것이 겁도 없이 어른께 하는 말투를 보게.”
“오호홍! 고것 참 예쁘게 생겼어.”
그러자 월녀가 다시 크게 외쳤다.
“호랑이도 잡는 접장 오라버니가 오시면 혼나니 저리들 가세요.”
“뭐, 호랑이를 잡아?”
“황소만한 호랑이를 두 마리나 물리친 오라버니예요.”
당차게 대꾸하는 월녀를 바라보던 왈짜 한 놈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은 커다란 머리통을 월녀 앞으로 바짝 들이밀고 느물거렸다.
“꼬마야, 우리 저쪽으로 가서 놀까? 이 오라버니가 아주 재미있는 놀이를 알려주고 싶은데. 우리 저리 가서 신나게 방아 찢는 놀이나 하자.”
그러자 월녀가 다시 외쳤다.
“저리 가세요. 못생긴 얼굴로 별소리 다하네.”
“오호! 조그만 것이 벌써 사내 맛을 아나봐. 내 말귀를 잘 알아듣는 것으로 보아 언놈이 익지도 않은 풋콩을 홀라당 개시한 모양이야.”
옆에 있는 백삼수는 그저 얼굴이 벌게져 오돌 오돌 떨고 있었다. 그는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타고난 겁쟁이다.
주변의 다른 상인 5명은 언제고 왈짜들과 한 판할 태세로 슬며시 면포 사이에서 뭔가 집어 들었다. 그들이 몰래 집고 있는 것은 다듬이질을 하는 방망이다.
이때 왈짜들에게 다가간 최인범 접장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형씨들, 나 좀 봅시다. 거기서 그러지 말고 나하고 좋게 말합시다.”
“오호! 네 놈이 이년을 풋콩을 날름 처먹은 오라버니냐?”
왈짜의 이런 응수에 최인범의 눈에서는 싸늘한 살기가 번득였다. 말하는 폼이나 함부로 튀어나오는 소리가 그의 비위를 매우 상하게 했다.
‘저것들을 죽여?’
은근히 살심이 생기고 당장에 떡이 되도록 패고 싶지만 여기서는 곤란했다. 참는 이유는 보는 눈들도 많지만 여기서 싸움이 나면 당장 면포장사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오라는 뜻으로 슬며시 손가락으로 까딱이며 손짓하고 뒤로 돌아 걸어갔다. 그러자 왈짜들도 슬며시 그의 뒤를 어슬렁거리며 따라갔다.
그들이 가는 곳은 시장과 붙어있는 내성천의 넓은 모래밭이다. 단오 무렵에는 이곳 내성천 변에서 황소나 송아지를 걸고 씨름판이 벌어지는 곳이다.
이때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내성패거리가 한 판 붙는다!”
“뭐? 그럼 구경 가야지.”
누군가 크게 여러 번을 외치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내성천 변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왈짜패가 내성천 주변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왈짜들과 상단의 호위무사 사이에 싸움판이 벌어지게 생겼다.
신이난 장꾼들이 우르르 몰려서 냇가로 달려갔다. 구경 중에는 불구경과 물구경도 좋지만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가 있다.
특히 집단으로 벌인 난투극인 패싸움이 더욱 재미있다. 더구나 근동에서는 누구고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왈짜 3명과 혼자서 대적한다니 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싸움판이라면 가봐야지.”
“암! 장사도 안 되는데 구경이라도 해야지.”
상인들도 일부는 물건을 팽개치고 구경하기 위해 내달렸다. 어차피 없는 파리만 날리는 장사 때려치우고 구경이나 신나게 해볼 요량이다.
와글와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들 구경하기 위해 내성천 모래밭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는 5일 장을 돌며 구걸하는 거지나 또는 앉은뱅이 등 여러 종류의 장애인들도 모여들었다.
개중에는 앞을 보지도 못하는 눈먼 봉사도 귀를 쫑긋거리며 관심을 표했다. 치켜뜬 눈이 하얀 봉사는 지팡이를 더듬적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소 낮은 곳에 위치한 넓은 모래밭에 세 명의 왈짜와 최인범이 마주하고 서있었다.
왈짜들과 마주한 최인범은 대오리 삿갓을 쓰고 긴대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어 범상치 않아 보였다. 확실하게 뭔가 있어 보이는 자세다.
모여든 구경꾼들은 최인범의 범상치 않은 자세를 보며 수군거렸다.
“호위무사의 자세가 보통이 아니라 쉬운 싸움은 아니겠어.”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세 명을 어찌 당해.”
최인범 접장이 품어내는 기운은 강력했다. 그러자 건들거리던 녀석들이 약간 긴장한 자세로 흩어져서 최인범을 중앙에 놓고 포위했다.
스윽스윽
왈패들은 발을 질질 끌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천천히 주변을 맴도는 왈패들의 행동에 따라 최인범 접장의 자세도 조금씩 변했다. 손에 드릴 지팡이를 약간 앞으로 내밀고 낮은 자세를 취하며 놈들을 하나씩 노려봤다.
주위는 긴장감으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자 구경꾼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다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판단했다. 구경꾼들은 대부분 숨소리마저 죽이고 네 사람을 바라봤다.
잠시 모든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 들었다.
세 명의 왈짜 중에서 한 놈이 막 주먹질을 내지르려고 하는 순간.
“이얏!”
퍽!
“어이쿠!”
구경꾼들을 비집고 튀어나온 곰보인 칠복이가 동생인 팔복이와 같이 참나무로 만든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힘차게 주먹을 앞으로 내지려는 왈짜 녀석의 머리와 어깨를 동시에 내리친 것이다. 형제는 이제 겨우 13살이라지만 덩치야 체구가 작은 어른 정도는 족히 된다.
이틀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칠복이 형제는 단단한 참나무 몽둥이를 들고 검법을 수시로 익혔다. 그래서 그런지 제법 검술 자세로 아주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자 왈짜 한 놈이 머리통을 양손으로 감싸고 땅에 둥글고 말았다.
“아구구! 머리!”
머리가 터진 것인지 두 손으로 머리통을 부여잡고 대굴대굴 모래판에서 마구 굴렀다.
한 놈을 쓰러트리고 나서 칠복이 형제는 빠르게 최인범 접장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옆에 서서 긴 참나무 몽둥이를 비켜들고 낮은 자세를 취하며 크게 외쳤다.
“덤벼! 다 죽여 버릴 거야!”
이를 악물고 왈짜와 대치하는 두 녀석의 눈은 시퍼런 독기가 서렸다.
칠복이 형제는 노비로 살면서 보고 느낀 것은 많았다. 여기서 왈짜패거리에 밀리면 안 된다는 절박감으로 쌍둥이 형제는 용감히 나선 것이다.
칠복이 형제는 짧은 순간 최인범에게 충성하는 마음이 강하게 주입됐다.
전 주인인 윤 진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비 신세인 자신들에게 너무 잘 대해주기 때문에 충성심이 저절로 생긴 것이다.
어린 두 녀석의 당돌하고 과감한 행동에 구경꾼들이 다들 혀를 차고 말았다.
“저런! 독하네.”
“허! 어린놈들이 독종이야.”
구경꾼들은 놀라운 광경에 대부분 감탄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태가 벌어졌다.
퍽!
“크악!”
비명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구경꾼들 틈에서 소녀에 불과한 월녀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약간 얼이 빠져 있던 왈짜의 머리통을 다듬이 방망이로 강하게 내려치며 외쳤다.
“오라버니!”
월녀는 재빠르게 최인범 옆으로 달려와 옆에 서며 이제 혼자 남은 왈짜를 마주해 매섭게 노려봤다.
월녀는 손에 들린 방망이를 야무지게 꽉 쥐고 있었다. 곱게 생긴 월녀의 커다란 눈은 붉게 핏발이서며 살기가 번득였다. 어린 여자애가 방망이로 머리통을 기습적으로 내리치고 싸움판에 끼어들자 다들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허! 저런! 어린 애인데 진짜 독하네.’
졸지에 1대 3의 싸움 구경이라고 달려왔더니 왈짜패거리가 일방적으로 어린 애들에게 당하는 모습이다.
모래판 주변으로 모여든 구경꾼들은 다들 웅성거리고 있었다.
벌써 두 놈이나 머리통이 터져 땅에서 쓰러져 뒹굴었다. 괴로운 신음소리를 마구 토해냈다. 이제 남은 왈짜가 한 명에 불과했다.
“에이, 싱겁게 끝났어.”
그러나 싸움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르르
덩치가 우람하고 얼굴이 검은 30대 남자가 다른 두 녀석들과 싸움판으로 뛰어 들었다.
이때 공격자세만 잡고 있던 왈짜 놈이 먼저 움직였다. 번개 같이 최인범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힘차게 내질렀다. 녀석의 공격과 동시에 강한 기합소리가 들렸다.
“타!”
강하고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왈짜가 내지르는 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으며 동시에 잡아챘다. 몸을 비스듬히 움직여 왈짜가 내지른 손목을 비틀어 돌리며 바깥다리를 걸어 힘차게 옆으로 밀쳤다.
휘익! 퍽!
“으아아악!”
모래판에 강하게 나가 떨어져 비명을 토하는 녀석은 얼굴이 이내 사색으로 변했다. 한쪽 팔이 부러진 것인지 너덜거렸다. 쓰러진 녀석은 팔을 잡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처절한 비명을 터트렸다.
“으아아악! 내 팔!”
고통으로 토하는 비명소리는 너무 처절했다. 그러나 누구하나 도와줄 생각을 안했다. 다들 고소하게 생각했다.
‘어지간히 설치더니 기어이 오늘 임자를 만났군.’
우르르.
이때 늦게 싸움판에 끼어든 왈짜 세 명이 모조리 최인범에게 떼로 달려들었다. 최인범은 공격하는 자세를 잡고 있다가 먼저 앞차기로 앞에서 달려드는 놈의 턱을 걷어찼다.
쑥! 퍽!
“컥!”
발로 차는 동시. 대나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비호처럼 붕하며 뛰어 올렸다. 몸을 옆으로 돌면서 다른 놈의 얼굴을 발등으로 강하게 후려 찼다.
휘리릭 퍽!
“컥!”
연결된 무술 동작은 아주 날렵하고 매끄러웠다. 누가 봐도 고수가 취하는 고난도의 격투기가 분명했다. 그런 동작으로 머리에 쓰고 있던 삿갓이 벗겨지고 어리게 보이는 얼굴이 눈부시게 드러났다. 그러자 모여 있는 구경꾼들이 탄성을 토했다.
“와! 젊다!”
“저렇게 어리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