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왈왈! 왈왈! 컹! 컹!
개들이 크게 울부짖는 가운데 마을의 곳곳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 아주 조용해지고 첫눈이 내려 완전히 겨울이 된 밤은 어둠이 깊어졌다.
우렁차게 ‘어흐응! 어흐응!’ 하는 호랑이 울음소리는 이곳저곳에서 들였다. 한두 마리가 우는 것이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서도 들리지만 아주 멀리서 은은하게 울리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우우웅! 크우우웅!
너무 멀리서 울어 정확하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지금 들리는 소리는 호랑이가 아주 먼 곳에 짝을 찾으며 우는 소리로 알아들었다. 홀로 사는 호랑이가 의외로 짝을 이루고 다니는 장면을 나무하러 다니다 우연히 목격했었다. 몰골이 송연해지는 울음이라 다들 두려워 떨었다.
조용하던 마을은 이런 호랑이 여러 마리가 동시에 우는 소리 때문에 다소 부산해졌다. 허름하고 작은 초가에서 문이 지그시 열리며 으슥한 헛간을 향해 아낙네가 크게 외쳤다.
“삼식아! 그만 싸고 빨리 들어와!”
이웃 동네의 환갑 잔칫집에 가서 하루 종일 일했다. 그 집에서 얻어온 기름진 돼지고기를 아들놈에게 먹였더니 배탈이 나서 뒷간을 갔다.
아무리 불러도 아들이 대답도 안하고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미는 문뜩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더구나 그리 멀지 않은 다른 마을에서 어린송아지를 물어가고 사람을 물고 간 호랑이가 울고 있으니 두려웠다.
“이봐요! 일어나 봐요.”
술에 취해 잠든 남편을 흔들어 보지만 깨어날 생각을 전혀 안 한다. 아낙네는 속으로 한숨을 토해냈다.
‘참으로 야속한 사람, 호랑이가 돌아다니는데 뒷간에 간 자식 걱정도 안 되나?’
아낙네는 호랑이 울음소리가 계속 들리자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아들이 너무 걱정되어 급하게 등잔을 들고 뒷간으로 갔다. 뒷간은 후비진 곳이라 너무 어두웠다. 아낙네는 두 손으로 등잔을 감싸 불이 꺼지지 않게 하며 조심스럽게 갔다.
거적을 들추고 헛간 안을 들여다보자 삼식이 녀석이 쪼그리고 앉은 그대로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아낙네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에구머니나! 똥 싸다 말고 잠자고 있네.”
너무 어처구니없다. 하지만 아낙네는 조상님께 감사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아들이 호랑이에게 물려갔는지 몰라 가슴을 너무 졸였기 때문에 그저 두루두루 감사할 뿐이다. 아이들이 있거나 없거나 마을사람들은 다들 요강을 보물처럼 챙기느라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유는 호랑이 울음소리에 으슥한 뒷간을 갈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은 혹시라도 지금 멀리서 울고 있는 호랑이가 여기로 올까 겁이 났다. 몇 몇 초가에서는 부산하게 마당에 모닥불을 밝히며 등잔불을 켰다.
어흐응! 어흐응!
산 쪽에서 호랑이가 크게 울었다.
아이들은 너무 두려워 모두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애써 잠을 청했다. 그러나 어떤 초가에서는 화롯불에 밤을 구어 먹으면서 호랑이 이야기를 오순도순 나누며 즐거워했다.
한 아이는 곶감을 실로 매달아 문고리에 걸며 호기롭게 말했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이 걸렸으니 여기는 못 와.”
그런 어린 손자를 보며 할아버지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수염이 허연 노인은 곶감과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가 저절로 떠올랐다.
‘녀석! 나도 어려서 저랬지.’
이런 평화로운 마을 뒤에서는 아주 무섭고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졌다.
다음날 새벽. 곤하게 자고 있던 최인범은 처절한 울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이게 무슨 소리지 꼭두새벽부터?’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귀를 기울였다.
이때 바로 근처에 있는 초가에서 처절한 아낙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는 너무 처절해 더 듣고 있다가는 같이 따라 울게 생길 정도다.
“아이고오! 이 못난 애미가 죽인 거여. 이놈아!”
누군가 죽었다는 소리에 순간 호랑이가 떠올랐다. 호환이라는 생각이 들자 부스스 일어나 우선 두루마기를 입었다. 윗목에서 새끼줄을 꼬고 있는 먹쇠에게 궁금한 표정으로 조용히 물었다.
“먹쇠야! 도대체 무슨 일이냐?”
먹쇠는 꼬던 새끼줄을 옆으로 밀치며 답했다.
“진사님, 말도 마세요. 동네 아이들이 둘씩이나 호랑이에게 물려죽었어요. 어제 저녁에 사라졌는데 산속에서 죽은 상태로 발견됐어요.”
“누가 발견하고?”
“그야 아비들이 너무 걱정되어 새벽부터 찾아다녀서 바로 뒷산 개울에서 찾았죠.”
“밤사이 안녕이라고 하더니 밤에 그런 끔찍한 사건이 있었구나.”
“진사님, 그런데 죽은 아이 중에 한아이의 어미도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동네가 줄초상이 났어요.”
“뭐라? 그럼 세 명이나 죽었어?”
“예, 동네가 발칵 뒤집혔어요.”
이런 소리에 어제 아이와 같이 산으로 들어가던 아낙네가 떠올랐다. 짐작이지만 아마도 아이를 찾아 뒷산으로 올라갔다가 호랑이에게 어미까지 죽은 것 같았다.
‘그 사람들 같군.’
어찌 보면 자신은 살아 있었던 모자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이다. 더구나 죽어가던 모자를 바라보며 웃었다고 생각하니 영 찜찜했다.
‘에이! 영 기분이 별로네.’
마치 못할 짓이라도 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다소 허망하고 어째 가슴이 서늘했다. 호랑이가 자기를 따라 계속해서 추적해 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호환을 당해 줄 초상난 마을에서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저 단순한 느낌이지만 빨리 이 마을을 떠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마음이 매우 불안하고 마치 누군가가 빨리 떠나라고 자신을 재촉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때로는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아무튼 이 마을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새끼줄을 꼬고 있는 먹쇠를 보며 지시했다.
“먹쇠야! 우리 빨리 여기서 떠나자. 별로 기분 좋은 동네가 아니야.”
“예.”
최인범이 아침식사도 안하고 일찍 떠난다고 하자 최복동이나 먹쇠와 돌쇠는 바쁘게 움직였다.
묵고 있는 마을에서 초상이 나자 즉시 지시했다.
“최서방, 초상난 집으로 면포 한 필씩 보내지.”
“예이.”
최복동은 면포를 들고 빠르게 달려 나갔다.
갑자기 급하게 떠나기로 하자 소와 말도 데리고 가야하니 먹쇠와 돌쇠는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와 말의 등에 여물을 실었다.
젊은 주인에게 부탁해 가마솥에 있는 밥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챙기고 서둘러 떠날 준비를 했다.
조금 지나자 최복동이 와서 보고했다.
“진사님, 떠날 준비가 모두 끝났사옵니다.”
“바로 떠나지.”
“예이.”
최인범이 급하게 떠나려고 하자 젊은 주인이 무척 죄송한 표정으로 만류했다.
“진사님, 마을에 호환이 있지만 아침식사라도 하시고 천천히 떠나시지요.”
“아닙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젊은 주인은 밥이나 먹고 떠나라고 계속해서 권했다. 하지만 무엇에 쫒기는 기분이라 바쁘다며 사양하고 마을에서 급하게 떠났다.
다소 비정상적으로 떠나는 그들을 젊은 주인은 조금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이상하네. 호랑이가 나타나서 겁이 났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최인범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연달아 호환이 발생하자 느낌이 너무 좋지 않은 것이다.
벌써 호랑이가 자신의 근처에 나타난 것이 세 번째이기 때문이다.
마을을 떠나며 마음이 계속 뒤숭숭했다. 마지막으로 본 모자의 모습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애가타서 아들을 따라가던 아낙네 모습도 생생했다. 환하게 웃으며 도망치던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참으로 인생이 허망하군. 그렇게 죽다니.’
애써 머리를 흔들어 머리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지우고 앞서가는 먹쇠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밤을 새워서 새끼줄을 꼬았는지 모르지만 먹쇠는 새끼줄 뭉치를 한 아름 등에 짊어졌다. 그런 우직한 모습에 한심하다는 기분이라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놈은 내가 자린고비처럼 집신도 안 사주는 주인으로 보나?’
완전히 마을에서 벗어나 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중.
뒤에서 자신들을 급하게 따라오는 떠꺼머리 청년을 발견했다. 이른 아침에 길을 가는 청년은 빠른 발걸음으로 최인범 일행에게 다가왔다.
자신들도 급하지만 청년의 발걸음 역시 상당히 빠르다. 그러나 최인범 일행과 가까워지자 속도를 다소 늦추어 같이 갔다.
마치 뒤에 떨어져 있던 사람이 일행과 같이 가기위해 발걸음을 재촉한 것 같이 행동했다. 그런 청년을 바라보며 ‘아마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니 같이 가려나 보지.’하며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제 천자문을 외우라고 지시 받은 기억이 났다는 듯이 먹쇠가 천자문을 외웠다.
“하늘천 따지 검을현·········.”
그러자 마치 후렴이라도 넣는 것처럼 돌쇠도 같이 천자문을 외우고 최복동도 외웠다. 구성진 노랫가락과 같이 외우자 뒤에서 따라오던 청년도 작은 소리로 따라했다.
자신의 일행이야 이미 지시했기 때문에 외우고 있다.
하지만 동행한다는 이유만으로 천자문을 외우니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가락 자체가 노래와 같아 아마도 그 때문에 따라서 외우는 것 같았다.
어제에 이어서 천자문을 수없이 들어 보니 이제 자신도 노래처럼 외울 수 있었다. 이미 귀에 익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맨 처음 시작부분부터 먹쇠가 새로 시작하자 자신도 따라서 외우기 시작했다.
“하늘천 따지 검을현·········.”
가까이에서 이들의 모습을 보면 다들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다. 여러 사람이 길을 가면서 천자문을 외운다는 것은 아주 특이한 행동이다.
일행이 걷다가 쉬기를 반복해도 청년도 똑 같이 행동했다.
점점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최복동을 다소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슬며시 물었다.
“최 서방, 저 녀석 조금 이상하지?”
“진사님, 그렇사옵니다. 아무래도 저 놈은 지금 도망 중인 것 같사옵니다.”
“뭐? 도망 중?”
“예, 저 녀석은 마을에서 나온 녀석이 아니옵니다. 분명 산속에서 나와서 우리와 합류한 것이옵니다.”
어떻게 산속에서 내려 왔다는 것을 아는지 물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갑자기 자신들에게 다가온 녀석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