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이상하네.’
헛간을 자세하게 살피자 뒤에 커다란 구멍이 있고 그쪽은 울창한 왕대나무 밭이 연결됐다.
검은 잿더미 위에는 호랑이 털도 보이고 많은 피가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자 상처 입은 호랑이가 처녀를 물고 구멍을 통해 이곳으로 숨어들어 왔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조금의 의문은 남았다. 자신이 목격한 호랑이는 둘이지만 헛간의 흔적으로 보아서는 세 마리의 흔적이라고 판단됐다.
“이상한 일이야. 호랑이가 떼로 몰려다니다니.”
상처 입은 맹수는 대단히 위험한 존재다. 보통 야생상태의 맹수는 사람을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공격하지 않는다. 야생동물도 떼 지어 달려드는 사람들이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호랑이가 사람을 공격할 때는 노루나 기타 야생 상태의 먹이를 잡기 어려울 때다.
헛간을 자세하게 살피다 보니 땅바닥에 떨어진 작은 노리개가 보였다. 허리를 숙여 손으로 집어 들고 보니 여자가 차는 은장도가 달린 노리개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노리개라 이렇게 판단했다.
‘아까 그 처녀 것인가?’
처녀가 노리개의 주인이라면 나중에 만나 돌려줄 요량으로 바지춤에 찔러 넣었다. 노리개의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월녀에게 선물로 주면 된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고 다시 뒷마당으로 나왔다. 아까 장독대에 있었던 죽은 개는 보이지 않았다. 뒷마당으로 몰려왔던 사람들이 가지고 간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죽은 개는 잽싸게 가지고 갔네.”
그러나 조금 전에 개를 가져가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느끼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한 마리가 장독대 쪽을 통해 도망쳤다는 것이 떠올랐다. 분명 호랑이가 도망치며 물고 사라진 것이다.
“허! 그 짧은 순간에 개를 물고 도망 쳤어.”
사라진 호랑이는 그만큼 먹이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분명 호랑이는 자신의 공격이 아니더라도 벌써부터 큰 부상을 입고 있었다고 추측했다.
휘리릭. 쉬리릭.
호랑이가 도망친 왕대나무 숲은 여전히 괴이한 바람소리와 함께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뒷마당의 하얀 눈 위에는 어지럽게 붉은 피가 보이고 담장 너머까지 점점이 이어졌다.
최인범은 뒷마당을 어슬렁거리며 살폈다. 그가 밟는 눈에서는 부드득 부드득 소리가 났다.
호랑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혼자 다닌다는 습성이 떠올라 속으로 중얼거렸다.
‘호랑이가 이렇게 암수가 쌍으로 같이 다니나?’
윤 진사 댁으로 침입한 호랑이는 두 마리가 분명했다.
각기 처녀와 개를 물고 높은 담장을 그대로 뛰어넘어 주막의 뒷마당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한 마리는 미리 구멍을 통해 헛간으로 숨어들었다는 것이다. 골목에서 찾던 많은 사람들이 골목길 바닥에서 핏자국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뒷마당을 천천히 돌며 살피다 슬며시 아래골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사라진 뒷마당에는 싸늘한 찬바람이 불어왔다. 바로 옆의 왕대나무 밭에서는 괴이한 소리가 들렸다.
휘이이! 후리이잉!
마치 귀신이 우는 소리와 같아 마을사람들은 두려움으로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최인범은 아래골방으로 들어와 깔끔하게 치워진 방을 보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월녀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왜? 아직 이른데 더 자지 않고.”
“오라버니, 오늘 멀리 떠난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준비할 것이 많아요.”
“무슨 준비?”
최인범의 물음에 월녀는 다부지게 답했다.
“오라버니의 아침밥도 해야 하고, 호리병에 꿀물도 담고 소주도 담아야 하고. 또 혹시 모르니 물도 담아 가야죠. 칠복이 형제도 있으니 주먹밥도 여러 개 싸야하고요.”
월녀의 이런 응수에 최인범은 묵묵히 듣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직 어리지만 그런 정도야 스스로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능력이야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월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저 나가서 아침밥 준비할게요.”
“알았어. 나가 봐.”
허락을 받자 월녀는 빠르게 골방에서 나갔다. 이어서 부엌에서 작은 콧노래와 함께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새벽이 지나고 날은 이미 환하게 밝아졌다. 하얀 눈꽃으로 대지는 더욱 환하게 빛났다. 죽죽이 주막에서 머무는 행인들은 뒷마당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다들 겁에 질려 서둘러 길을 떠났다.
웅성웅성.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죽죽이 주막 옆의 윤 진사 댁에서는 계속해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이고오. 이를 어쩌나.”
여전히 윤 진사 댁에서는 부산한 움직임이 계속해서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귀한 딸이 호랑이에게 물려갔다가 살아서 돌아왔다. 너무 기쁘기도 하고 겁도 나서 울음소리는 긴 시간동안 이어졌다. 더구나 어께에 흉터가 생겼으니 그것도 서러워서 울고 있었다.
“아이고오. 내가 얼마나 금이야 옥이야 키웠는데.”
죽죽이 주막의 아래골방에서 지내는 최인범은 팔베개를 하고 벌러덩 누워 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조용히 방문이 열리며 백삼수가 슬그머니 들어왔다.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접장님, 다치지 않았어요?”
“왜? 호랑이에게 다치길 기다려다가 송장 치우려고 했냐?”
이런 뼈있는 최인범의 응수에 백삼수는 기겁하며 엄살을 떨었다.
“저는 접장님이 너무 걱정돼서·······.”
백삼수의 변명에 혀를 차며 나무랬다.
“쯧쯧! 주둥이 달렸다고 말은 잘하네.”
“제가 뭘요?”
반박하려는 태도에 너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호통 쳤다.
“내가 그렇게 걱정되는 놈이 방문을 그렇게 번개 같이 닫고 내다보지도 못하냐?”
“······.”
꾸지람을 듣자 백삼수는 아무 대답 없이 침묵했다.
그러자 더욱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무랬다.
“백 집사, 너는 호랑이가 나타나자 숨소리도 못 내면서 문고리 잡고 달달 떨었냐?”
“······.”
“너는 어린 월녀보다 더 못나고 겁이 더 많은 놈이야. 이렇게 겁이 많은 너란 놈을 믿고 같이 다니려니 앞일이 진짜 아득해 보인다.”
이런 나무람에 백삼수는 반박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백삼수는 사실 붉은 피를 보자 호랑이라는 느낌이 들어 후다닥 문을 닫았다. 문고리를 잡고 떠는 거야 호랑이가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으로 몸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너무 무서워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발발 떨었다. 겁에 질려 자신도 모르게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사실 호랑이를 보게 되면 대부분 사람들은 백삼수와 똑 같이 행동하는 것이 정상이다.
백삼수는 참담한 심정이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오줌만 안 쌌어도.’
너무 놀라서 오줌을 지렸으니 너무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다. 그래서 얼굴이 벌게져 두 손을 모아 손톱만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최인범은 백삼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곱상한 백삼수가 이렇게 하는 행동으로 보아 여자로 보였다. 부끄러워 얼굴까지 곱게 홍조를 띠우니 더욱 그렇다.
‘도대체 이놈은 여자야 남자야?’
죽령에서 처음 만나 동행한 이후로 끈이질 않고 있는 의문이다. 전에야 그저 잠시 스쳐가는 사람이라 그냥 의문으로 지나칠 수 있었다.
이제는 항상 같이 다녀야 하기 때문에 이런 의문은 신경이 써졌다. 찜찜한 상태로 같이 다니다 보면 너무 어색할 것 같았다.
‘차라리 지금 물어 보는 것이 좋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백삼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백집사, 너는 도대체 여자냐 남자냐?”
이렇게 묻는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백삼수가 고개를 바짝 쳐들고 마치 반항이라도 하듯이 버럭 소리쳤다.
“접장님! 직접 보고 듣고도 그걸 몰라요?”
“뭐? 듣다니? 뭘?”
“참말로 미치겠네. 이런 소리를 접장님께 다 듣고.”
물음에 그저 간단하게 답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백삼수는 자신의 아픈 곳을 후벼 파는 물음이 진짜 싫었다. 이런 물음은 아주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들어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진솔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최인범의 눈빛을 마주하자 화가 나기보다 어이없었다.
‘아니, 접장님은 보기보다 너무 둔하시네. 옆방에서 다 듣고도 아직도 모르다니.’
바로 옆방에서 주모와 같이 그렇게 요란하게 방사를 벌였는데 이런 물음을 하니 기가 막혔다. 그래서 물끄러미 바라봤다.
‘괴상한 놈.’
최인범은 여전히 의문에 가득 찬 시선으로 마주바라보고 있었다.
백삼수가 보기에 접장은 분명히 자신의 정체를 알 것이라고 생각했더니 전혀 그게 아닌 눈빛이다. 그저 다소 이상하다는 호기심만 가득한 눈빛으로 자길 바라봤다.
그러자 백삼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벌떡 일어나 바지를 훌러덩 내려 버렸다.
“봐요. 제가 여자인지.”
“헙!”
숨을 급하게 들이 마시는 이유는 실로 놀라운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왜소한 체구인 백삼수의 하초가 드러나자 숨을 멈추며 기겁했다.
하마터면 너무 놀라 뒤로 벌러덩 넘어질 뻔했다. 실로 창대하다고 해야 할지. 하초에 달린 물건은 뭐라 칭하기 어려운 크기고 굵기다. 세상에는 기이한 사실들이 너무 많지만 울퉁불퉁한 몽둥이는 우람하고 흉측했다. 크기도 크지만 기형이라고 볼 수 있는 물건이다.
그래서 동그래진 눈으로 감탄했다.
“허! 우람하군.”
그런 감탄사에 백삼수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초의 위풍이야 남보다 월등하게 우월하니 유일한 자신감의 상징이다.
그러자 최인범은 자신의 부실한 하초와 비교되어 다소 불쾌한 표정으로 나무랬다.
“물건 큰 것이 자랑도 아니고, 바지 빨리 입어!”
백삼수는 막상 하초에 달린 우람한 물건을 보여주고 나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슬며시 바지춤을 올리고 있었다. 조금 전에는 여자 같이 행동하더니 이제는 건장한 남자처럼 위풍당당하게 서있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아무튼 괴상한 놈이야.’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때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