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와글와글. 웅성웅성.
담장 밖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크게 ‘아기씨! 아기씨!’하며 애타게 외쳤다. 그들은 부지런히 이리 저리 달려 다니며 찾았다.
최인범은 일단 자신에게 다가왔던 호환이야 이미 피한 셈이다. 그래서 다소 여유를 가지고 뒷마당에서 서성였다.
자신의 옆에서 서있는 월녀의 머리를 다정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추은데 들어가서 더 자라.”
“예, 오라버니.”
대답하는 월녀의 마음은 뜨거운 감동의 불길로 일렁였다.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이나 행동이 감동으로 변해 마음을 강하게 울렸다.
월녀는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났다.
팔리게 된 월녀는 새로 만난 오라버니가 좋은 사람이길 빌고 또 빌었었다. 그래서 꿈속에서 산신령을 만나서도 간절하게 빌었다. 그런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다.
‘신령님, 정말 고마워요. 불쌍한 저에게 좋은 오라버니를 보내줘서.’
살며시 아래골방으로 들어온 월녀는 무릎을 마주해 쪼그리고 앉았다. 월녀는 두 눈에서 마구 흐르는 굵은 눈물을 앙증맞게 주먹 진 두 손으로 비비며 다짐했다.
‘앞으로 평생 오라버니와 같이 살 거야.’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약하기 때문에 강한 것을 막연하게 좋아했다. 또한 넓은 세상천지에 아무도 없는 천애고아로 떠돌아서 정이 너무 그리웠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자기를 진짜 걱정해주는 강하고 믿음직한 오라버니가 생겼으니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찾아온 이런 행복한 기쁨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마음속 깊이 생각했다.
‘그래! 오빠가 계속 좋아하게 나도 노력해야해.’
또랑또랑한 눈으로 생각에 잠기던 월녀는 바쁘게 움직였다.
오라버니와 같이 살려면 부지런해야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에야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 정말 싫고 힘들기만 했다. 하지만 방의 이불을 개서 치우는 월녀는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응응응 응응!”
무슨 가락을 흥얼거리는 지도 스스로 모른다.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콧소리를 품어냈다. 월녀는 빠르게 방바닥을 걸레질했다.
엎어져서 바삐 움직이는 월녀의 엉덩이는 자신도 모르게 묘하게 씰룩거렸다. 전에는 하지 않던 요상한 동작이 저절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생각이 떠오른지 월녀의 고운 얼굴에도 화사한 봄꽃인 진달래꽃 같은 연분홍색이 살며시 피워 올랐다.
‘내가 삽살이 보다는 뭐든 크긴 크지.’
삽살이는 주막에서 키우는 작은 암놈 개로 재롱덩이다. 어린 월녀의 가슴속에도 어느새 한겨울에 봄꽃이 활짝 피었다.
이때 밖에서 월녀를 아래골방으로 들여보낸 뒤 최인범은 검을 내려다봤다.
분명 자신이 호랑이를 배었다고 생각했으나 검에는 피나 터럭이나 그 무엇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라! 검 날에 핏자국이 없어.”
어쩌면 자신의 생각보다 더 좋은 검이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자신이 검을 들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급하게 검의 날을 하얀 눈으로 닦았다. 그리고 옷자락에 검의 날을 한번 문지르고 땅에 뒹굴던 검집인 대나무를 들었다. 들고 있던 검을 대나무로 만든 지팡이 속으로 재빠르게 넣었다.
철컥!
검을 챙기고 나자 슬며시 호랑이가 튀어나온 헛간을 바라봤다. 하필이면 헛간에 호랑이가 숨어 있다가 나왔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혹시 저기에 사람이 있나?’
누가 야밤에 헛간으로 와서 용변을 보다가 호랑이의 공격을 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고 많은 장소를 놔두고 헛간으로 호랑이가 숨어들 이유는 없었다.
이렇게 판단하고 헛간으로 슬며시 다가갔다. 그러자 그의 눈에는 헛간의 거적 데기 아래로 하얀 천이 보였다.
후다닥!
하얀 천이 옷이라고 직감해 빠르게 달려갔다. 급하게 헛간을 막은 거적을 들추고 안을 들여다봤다.
“어! 여자!”
헛간에는 놀랍게도 속옷 차림인 댕기머리 처녀가 쓰러져 있었다. 처녀는 속치마가 너무 짧아 무릎 위가 모두 드러나 보였다. 그리고 젖가슴도 반은 드러나 있어 상체는 벗었다고 볼 정도다.
“이 보시오!”
급하게 쓰러진 처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흔들어 봤다. 그러나 젊은 처녀는 기절한 상태로 입에서는 허연 거품을 물고 있었다. 호랑에 물려서 그런지 어깨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상처를 들추어 살폈다.
어깨부터 가슴 위까지 이빨자국이 있으나 상처는 의외로 깊지 않았다. 그러나 붉은 피가 계속해서 조금씩 품어져 나왔다.
순간 상처를 소독해야 된다는 생각이 스쳤다. 소독하기 위해 소주를 떠올리고 헛간에서 튀어나와 급하게 부엌으로 달려갔다.
우당탕
요란스럽게 부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밥을 지으려고 부엌바닥에 쪼그리고 않아 아궁이 속으로 솔가지를 밀어 넣어 때고 있는 주모를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소주 어디 있소?”
급하게 외쳤지만 주모는 그저 시커먼 부지깽이로 솔가지만 아궁이 속으로 조금씩 밀어 넣으며 싱겁게 답했다.
“소주는 왜? 먹지도 않으며.”
“헛간에 사람이 쓰러져 있소. 아무래도 호랑이에게 물려서 여기까지 끌려온 것 같소.”
최인범의 말에 주모는 순간 눈이 동그래졌다. 몸이 경직되는 것 같더니 입을 크게 벌리면서 목이 터져라 크게 비명을 토했다.
“으아아악!”
달라는 소주는 주지 않고 비명을 토한 주모는 번개 같은 동작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부엌에서 후다닥 튀어서 바깥채 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아까 호랑이가 뒷마당에 나타났을 때 알았을 건데 이제냐 놀라 도망친다고 판단했다.
“어휴! 생긴 것 하고는 때늦게 호들갑은·······.”
사실 그때 주모는 바깥채에 있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덜컹! 덜컹! 우당탕!
주모가 사라지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엌을 뒤졌다.
우선 사람을 구하는 것이 급했다.
상처를 소독할 소주가 담겼을 만한 항아리를 찾았다. 다행이 소주항아리는 금방 찾았다. 독한 소주 냄새가 매우 강하게 풍겨 코를 자극했다. 표주박으로 만든 작은 바가지에 소주를 푹 퍼서 급하게 튀어나갔다.
후다다닥.
빠르게 헛간으로 달려가 댕기머리 처녀의 어깨에 소주를 붙고 두리번거렸다.
급한 대로 독한소주로 상처를 소독했다. 하지만 어깨를 감쌀 천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처녀의 속치마를 잡고 강하게 힘을 주었다.
속치마를 걷는 바람에 하얀 허벅지가 환하게 보였다.
찌지직! 찌지직!
강하게 힘을 주자 엷은 속치마가 길게 찢어졌다. 은근히 보이는 허벅지 안이 다소 검어 보였다. 저절로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중요한 순간 자신의 아래가 다소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부실해 보이던 하초의 반응에 약간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이곳이 재를 넣어두는 헛간을 겸한 뒷간이라 너무 어이가 없었다.
‘에이, 주책없이 하필이면 똥통에서.’
잠깐 사이에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새로운 반응을 가볍게 흘려버렸다. 지금은 사람의 목숨을 구해야하는 긴급한 상황이다.
맹수에게 물렸으니 응급처치야 기본이다.
길게 붕대처럼 찢은 천으로 처녀의 상처 난 어깨를 정성스럽게 감쌌다. 그러나 붕대 역할인 천이 모자라 또다시 속치마를 찢어 상처부위를 여몄다.
‘상체라도 가려줘야 하겠어.’
우선 응급처치를 했다고 판단해 자신의 저고리를 벗어 완전히 드러난 처녀의 상체에 입혀 주었다.
추운 날씨도 문제지만 그래도 이 시절은 벗은 여자의 몸을 남에게 보여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거의 벗은 것이나 진배없는 하체야 달리 가릴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기절한 처녀를 안고 뒷마당으로 나왔다.
헛간에서 밖으로 나와 보자 여전히 마을사람들이 부산하게 누굴 찾고 있었다.
“여기에 있소!”
다친 처녀의 정체를 정확하게 모르니 그저 크게 사람들에게 외쳤다. 그래도 사람들이 오지 않자 약간 신경질적으로 다시 크게 소리쳤다.
“여기에 처녀가 있소! 빨리 와 보시오.”
두 번이나 크게 소리치자 그제야 마을사람들이 까치발로 담장을 넘어보고 비명처럼 토했다.
“아기씨!”
담장을 뛰어넘어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는 빠르게 달려 바깥채 쪽의 출입문 쪽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과 같이 주모가 달려와 또 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아기씨! 정신 차려요!”
“아기씨!”
여러 사람이 외마디처럼 처녀가 깨어나길 바라며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기절한 처녀가 깨어날리 없지만 마구 흔들고 있었다.
그러다 주모는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주모는 때늦게 공이라도 세워볼 요량인지 급하게 최인범에게서 처녀를 넘겨받아 등에 업고 부엌을 통해 뛰어갔다.
우르르. 와글와글.
그녀를 따라 뒷마당에 밀물처럼 몰려왔던 사람들이 마치 썰물처럼 급하게 빠져나갔다. 그들로는 처녀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 제일 급했겠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뭐든 물어볼 줄 알았더니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우르르 몰려왔던 사람들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자 뒷마당이 다소 썰렁해졌다.
최인범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허! 사람들 하고는.”
무슨 보답이나 인사를 받자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이런 행동에 약간 실망감이 생겼다.
이때 갑자기 몸이 나른해졌다. 호랑이를 마주하게 되자 너무 긴장해 있었던 것 같았다.
사람들이 모조리 사라지자 호랑이가 있었던 헛간으로 가서 자세하게 살폈다. 하필이면 호랑이가 ‘왜 헛간으로 숨어들었나?’하는 의문이 생겨서다.
호랑이에게 물려왔던 윤 진사 댁의 아기씨는 헛간 문 옆에 쓰러져 있었고 상처가 그리 깊지 않았었다. 붉은 피가 나고는 있었지만 과도한 출혈은 없었다. 그러나 헛간에는 많은 붉은 피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