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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40화 (40/519)

40화

임여녀는 요란하던 건넌방에서 소리가 전혀 나지 않자 은근히 불안해졌다. 딸은 그 못된 버릇이 나오면 요구 조건을 들어 줄 때가지 옷이나 이불까지 마구 찢었다.

‘어라! 이년이 갑자기 조용하네.’

이제 커서 그런지 야로를 부리며 천을 찢는 행동이 조금 짧아졌다고 판단했다. 건넌방으로 넘어가서 딸을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임여녀는 그대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애써 잠을 청했다. 그저 모른 척 하는 이유는 자신이 말리면 더욱 심하게 지랄 발광하기 때문이다.

크르릉! 크르릉!

이때 아주 멀리서 들이던 호랑이 울음소리가 바로 옆의 왕대나무 밭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곳은 왕대나무가 빼곡해 호랑이가 숨어있어도 모를 정도로 음산한 곳이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각종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괴물이 우는 소리와 같거나 또는 여자 귀신이 흐느끼는 소리와 같이 들렸다.

휘리릭! 휘리릭!

바람소리도 같고 귀신이 움직이는 소리와 같은 괴이한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란 임여녀는 겁이 나서 이불을 돌돌 말아 뒤집어쓰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게 한동안 떨던 임여녀는 따듯한 온돌의 열기로 몸이 나른해서 스르르 눈이 감겼다.

이불 위에서 뒹굴며 딸과 심하게 육탄전을 벌이다 보니 이상하게 늙은 남편과 한판 흐드러지게 뒹군 것처럼 몸이 나른해진 것이다.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기 전에 임여녀는 문뜩 아주 오래전 해어진 머슴 녀석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살아 있을까?’

임여녀는 가슴의 깊은 곳에 소싯적의 쓰린 아픔이 담겨져 있었다.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환하던 머슴의 얼굴이 흐릿하게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하얀 눈이 내리는 깊고 어두웠던 밤은 거의 지나갔다. 그러나 아직 날이 완전히 밝아지기 전의 이른 새벽.

“으아아악!”

윤 진사 댁에서 크게 외치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고함소리가 생생하게 귀를 후볐다.

“으악! 호랑이다!”

“사람 살려!”

죽죽이 주막의 아래골방에서 편하게 잠자던 최인범은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뭐야!’

본능적으로 재빨리 일어나 앉으며 대나무지팡이를 손에 들고 귀를 기울였다. 전보다 좋아진 그의 귀에는 윤 진사 댁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생생했다.

아랫목에서 잠든 월녀는 아직 아무 것도 모르고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웅성이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가끔 누군가 크게 호통 치는 외침도 들렸다. 때로는 처절한 여자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아이고오. 이제 쫄딱 망했네. 아이고오!”

여자가 악을 쓰며 크게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상당히 어수선한 발자국 소리가 요란했다.

‘무슨 일이지? 도둑이 들었나?’

그냥 비명소리로만 듣고 깨어난 터라 ‘호랑이다!’라고 외친 소리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많은 재물이 있는 윤 진사 댁이니 산적들이 떼로 침입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전에 죽령에서 만났던 ‘산적 놈들이 떼로 몰려왔나?’ 하는 생각만 저절로 떠올랐다.

쨍! 째쟁! 둥! 둥둥둥!

“와! 와!”

윤 진사 댁에서는 북이나 또는 징들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너무 요란한 소리가 들리자 급하게 검을 뽑았다. 자신들이 묵고 있는 골방으로 다가오는 뭔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사각 사각

아주 조심스럽게 눈 위를 걸어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최인범의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졌다. 누군가 자신을 해하려고 접근한다고 판단했다. 머리털이 바짝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발자국 소리는 아주 조심스럽게 이동하며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자신과 만났던 산적인 애꾸가 떠올랐다.

은밀하게 접근하는 소리에 어느새 그의 두 눈은 싸늘한 살기를 품어 냈다.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자 부르르 떨렸다.

풀썩!

이때 밖에서 뭔가 눈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문 앞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더구나 하나가 아니고 둘이나 움직였다.

휘이익! 휘이익!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던 검은 그림자들이 바람소리를 내며 빠르게 사라졌다. 재빠른 움직임이라 문뜩 사람이 아니고 들짐승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살며시 밀쳤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하얀 눈 위에는 붉은 피가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문을 활짝 열고 바라보자 뭔가가 보였다.

“뭐야!”

장독대 옆에는 중개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뒷마당에는 붉은 피가 사방에 널려 마치 하얀 도화지에 꽃을 그려 놓은 것 같았다.

순간 몰골이 송연해졌다.

이내 골방에서 뒷마당으로 나왔다. 담장 주변으로 마을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어 안심했다. 마을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며 뭔가를 열심히 찾는 것 같았다. 그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담장 주변에서 조금 멀어졌다.

‘또 송아지를 물어갔나?’

백삼수에게 이야기를 들어 여기에서도 어린송아지를 물고 가는 호환이 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때 위골방 문이 살며시 열리며 백삼수가 얼굴을 삐쭉 내밀고 두리번거렸다.

“헉!”

그는 뒷마당에 널려 있는 붉은 피를 보더니 짧은 호흡을 토하며 겁에 질려 황급하게 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위골방의 문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겁에 질려 문고리를 잡고 바들바들 떠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러나 그런 의문은 쉽게 해결됐다.

“아기씨! 아기씨!”

많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큰 소리로 아기씨를 외치고 있었다. 아기씨를 찾는 것으로 보아 윤 진사 댁 딸이 사라진 것 같았다.

‘뭐야? 바람나서 머슴하고 도망 간 거야?’

단양에서 처음으로 근접했던 바람난 여자가 떠올라 이렇게 판단한 것이다.

왼손에 들린 검집인 대나무를 땅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날이 시퍼런 검을 양손으로 들고 뒷마당에서 서성이며 주변을 살폈다.

두리번두리번.

보이는 것은 전혀 없는데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느낌은 강한 살기를 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도대체 뭐지?’

고개를 천천히 돌려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뭔가가 숨을 곳은 장독대 쪽이나 헛간뿐이다. 살금살금 장독대로 다가가 힐끗 힐끗 살펴보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이상해.’

이어서 발걸음을 헛간으로 향하며 더욱 긴장했다. 그저 느낌이지만 뭔가가 헛간에 숨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자세를 낮추고 검을 앞으로 내밀고 ‘사각 사각’하는 발소리를 내며 조금씩 가깝게 다가갔다. 잔뜩 긴장한 그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송송 배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강한 호승심이 뭉실 뭉실 피워 올랐다. 뭔지는 모르지만 상대가 강하다고 느끼면 더욱 강한 승부욕이 생겼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약간 오싹한 느낌이 전신을 감쌌다.

점점 헛간으로 다가가며 검을 비스듬히 치켜들었다. 뭐든지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단 칼에 과감하게 베어버릴 공격적인 자세다.

크아앙! 크아앙!

거의 동시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헛간에서 튀어나와 최인범 쪽으로 달려들었다. 호랑이인지 뭔지 구분을 못하고 기겁했다.

시커먼 물체가 달려드는 느낌에 양손으로 들고 있던 검을 사선으로 힘차게 베었다.

“타!”

쉭!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비켜서 내려벴다.

순간 뭔가 ‘사각’하며 깊이 베어졌다는 느낌이 손바닥을 통해 강하게 전달됐다. 그러자 자신에게 달려들던 검은 물체는 이내 방향을 바꾸어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갔다.

한 마리는 바로 왕대나무 숲으로 달아나고 한 마리는 장독대쪽을 향해 도망쳤다.

“헉!”

번개 같이 담장을 넘어가는 검은 물체 둘은 눈꽃의 하얀 빛으로 얼룩덜룩한 모습이 보였다.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물체는 호랑이가 분명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가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최인범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서 정지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의 몸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다리가 약간 후들거리는 느낌이 왔다.

도망친 호랑이들은 이내 왕대나무 밭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쪽에서 심한 소란스러움이 생생하게 들렸다.

휘리릭! 휘리릭! 푸다닥! 푸다닥!

왕대나무 밭에서 잠자던 작은 새들이 요란하게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때 아래골방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 도망갔다.”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며 이어서 아래골방에서 튀어나온 월녀가 신이 나서 외쳤다.

“오라버니, 호랑이가 오라버니의 무서운 칼에 베어지자 도망쳤어요.”

월녀는 아래골방 문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봤다. 너무 무서워 떨리기는 했지만 오라버니가 너무 걱정되어 처다 봤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자세하게 목격했던 것이다.

최인범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전하게 자각하지 못했다.

멍한 상태이던 최인범은 월녀가 토하는 말을 듣자 그제야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월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나무랐다.

“왜 밖으로 나와? 위험한데.”

“오라버니, 호랑이는 멀리 도망갔잖아요.”

자신이 호랑이 두 마리를 상대로 어찌 되었건 검을 휘두르고 그 중에 한 마리를 베었다. 손으로 전해진 감각을 떠올리자 분명 호랑이는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이 틀림없었다.

오랜 경험으로 보아서 저절로 느끼는 것이다. 그는 강하고 빠르게 검을 사선으로 베면 왕대나무 두 개 정도는 한 번에 자르는 능력을 지녔다.

‘후! 놀래라.’

방금 사라진 것이 호랑이라는 것을 알고도 조금은 담담하게 느끼고 있었다. 몸의 상태가 좋아지더니 그는 담력이 전보다 더욱 두둑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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