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큰 내기바둑은 마을사람들에게도 좋은 이야깃거리다. 그들은 윤 진사가 많은 재물을 얻었다고 하는 사실은 매우 불만이다. 그러나 소작인들인 마을사람들은 함부로 윤 진사를 혹평하기는 곤란했다. 속이야 너무 아프도록 쓰렸지만 그래도 좋게 평했다.
“어떤 사람은 면포가 저절로 굴러오고. 윤 진사 어르신은 재복은 타고난 분이야.”
“암! 우리에 비하면 하늘에서 재복을 주신 것이 틀림없어. 아기씨와 선비님이 인연이 맺어 지려나?”
“그야 누가 알겠어. 부부인연은 하늘에서 점지하는 것인데.”
동네 사랑방에서는 마을사람들이 잡담을 나누며 다들 윤 진사를 부러워했다. 잡담을 나누며 새끼줄을 꼬는 그들은 아주 평화로웠다.
그러나 죽령에서 일어난 괴사로 생긴 파장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창락골의 첫눈이 내리는 밤은 조용한 가운데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깊어졌다. 멀리서 호랑이의 ‘어흐응 어흐응!’ 하며 우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추운 겨울밤이 점점 깊어지는 가운데····.
윤 진사 댁 안채의 건넌방에서 지내는 윤봉화는 살며시 마루를 넘어 안방으로 들어왔다. 윤봉화는 안방에서 자는 어미의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오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니, 호랑이가 나 잡아먹으러 오려나 봐요. 무서워 죽겠어요.”
“무서우냐?”
“진짜 무서워 죽겠어요.”
임여녀는 겁에 질려 베개를 들고 품으로 파고드는 딸을 꼭 껴안아주며 등을 도닥도닥 다독였다.
마을에 호랑이가 나타나 어린송아지를 물어 갔으니 임여녀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무섭다며 딸이 품에 안기니 그나마 다행이고 조금은 든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폭포로 목욕하러 갔다가 호랑이를 만났던 딸이라 겁이 더 날 것이라. 그때 조금의 차이로 귀한 딸이 무사했으니 그저 부처님께 감사하고 신령님께 감사할 뿐이다.
이런 때는 늙은 남편이라도 옆 자리에 같이 누워 있으면 좋으련만, 늙은 남편인 윤 진사는 내기바둑에 정신이 팔려 하루 종일 바둑을 두고 녹초가 되어 사랑방에서 자고 있었다.
아무리 보약을 해먹여도 이제는 밤에 별 볼일 없는 사내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늙은이.’
왈왈! 왈왈!
동네의 개들이 마구 울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런 울음소리는 조금 시간이 지나자 잠잠해졌다. 혹시 호랑이 때문에 개들이 짖는지 몰라 두려웠다.
그래서 임여녀는 딸을 더 꼭 껴안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어미 품에 안겨 있던 윤봉화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어머니, 나도 시집 보내줘요.”
“너 갑자기 시집을 간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자다가 봉창 뜯는 다고 갑작스러운 딸의 요구에 약간 놀랐다. 갑자기 딸이 시집을 간다고 하자‘이게 무슨 헛소리인가?’하며 멍하니 바라봤다.
이제 꽃다운 16세 나이인 윤봉화는 며칠 전 부터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자신보다 신분도 낮고 얼굴도 못 생긴 또래친구이던 양민인 처녀가 먼저 시집간다니 질투심이 뜨거운 불길처럼 활활 타올랐다.
동네아낙네들의 속삭임을 들어보니 시집만 가게 되면 진짜 좋단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롭고, 놀랍고, 짜릿하고, 또한 황홀한 좋은 일만 생긴다.’고 하니 약이 바짝 올랐다.
‘그렇게 좋은 것은 내가 먼저 해야 되는데.’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처녀 귀신은 하루라도 빨리 면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판단하고 몸이 후끈 달아오른 윤봉화는 마음에 꼭 드는 사랑방의 손님인 최인범 진사를 떠올렸다.
‘빨리 시집가야 해.’
결심을 단단히 하고 슬며시 자신의 속마음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어머니, 사랑방의 선비님과 혼사를 주선한다고 했잖아요.”
딸의 당돌한 말에 임여녀는 어느 정도 짐작했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즉각 토해냈다.
“뭐야? 너 그사이 그 놈하고 벌써 정분이라도 난거야? 난 죽어도 그런 못된 놈하고 혼사 맺을 생각이 전혀 없으니 마음에 담지 마.”
어미의 단호한 말에 윤봉화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놀라며 반박했다.
“어머니, 언제는 젊은 나이에 진사라고 좋다고 하시더니 왜 마음이 변해서 이러세요.”
“이년아! 벼슬이 밥 먹여 주고 옷을 주는 줄 아냐? 아무리 그 놈의 조상들이 벼슬을 했어도 그런 가난한 집으로 너를 보낼 수 없어.”
어미인 임여녀가 보기에 처음에는 최인범이 딸의 배필로 너무 좋아 보였다. 잘생기고 홀로 사니 시부모를 모시지도 않아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추가로 알려진 소식을 듣자 마음이 완전히 변했다.
그 놈의 조부가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 벼슬을 했다고 하나 청백리상(淸白吏賞)인가 뭐를 받았을 정도로 재물이 전혀 없는 가난뱅이라는 것을 알자 기겁했다.
또한 생사가 걸린 아들의 구명을 놓고 말 몇 마디하고 많은 면포를 챙기자 그만 ‘순 날강도 같은 도둑놈’이란 분노가 머릿속에 가득했다.
더구나 별로 불평한 말도 아닌데 싹수없는 그놈이 자신에게‘아들 목숨보다 재물이 더 중하냐?’하며 자신을 못된 어미처럼 비난하자 없었던 정도 십리 밖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런 애비도 없는 후레자식에게 귀한 내 딸을 줄 수야 없지.’
젊은 선비라는 놈이 잡기인 바둑을 너무 좋아하고 급기야 내기바둑을 두자 오만 정이 뚝 떨어졌다. 좋아 보이던 잘 생긴 얼굴도 험으로 변했다.
‘잘 생겨야 계집질만 해.’
내기바둑도 도박으로 인식하는 임여녀는 그런 잡놈에게 딸을 시집보내면 신세 망친다고 판단했다. 설사 자신들이 아무리 많은 재물을 딸에게 넘겨줘도 망해 먹을 녀석이다.
“싸가지 없는 놈,”
그러나 딸인 윤봉화는 이미 최인범에게 마음이 한껏 쏠려 있었다. 사랑방의 젊은 선비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모두 잘나고 멋지게만 보였다.
‘칫! 노름해 따서 나를 호강만 시켜주면 되는 거지. 아버님도 하시는 내기바둑인데.’
모녀간에 품고 있는 생각이 전혀 다르다. 그 때문에 안방에서는 밤이 깊도록 딸과 어미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때로는 육탄돌격의 육박전까지 벌어졌다.
“아고고! 이년아! 간지러워·····.”
“어머니! 시집보내줘요.”
“안돼!”
“다 큰 년이 왜 어미 젖가슴은 만지며 빨고 요도 방정이야. 만지고 싶으면 네년 젖퉁이나 만져.”
“어머니, 내 젖이 점순이 젖보다 크니까 시집 보내줘!”
육탄전에 돌입한 딸이 어디를 침범한 것인지 임여녀는 기겁하며 외쳤다.
“에구머니나! 이년이 진짜 미쳤나? 어디로 손을 디밀고 지랄이야. 이년아! 손 빼!”
그러자 다시 어미가슴을 향해 돌진한 윤봉화는 강한 목소리로 협박했다.
“어머니, 나 선비님에게 시집 안보내주면 혀 꽉 물고 죽어 버릴 거야.”
“죽어라! 겁이 많아 죽지도 못할 년이 어디서 누구에게 배워먹어 이런 허튼 수작을 부리고 지랄이야.”
양반집의 안방에서 나오는 소리로 보기에는 다소 경박스럽다. 다소 천해 보이는 모녀간의 대화다.
물론 모녀간에 정이 너무 좋아서 벌어진 사태지만 부모에게 별로 배운 것이 없다가 보니 더욱 그렇다. 상대하는 사람이 모두 평민들이나 종들이다가 보니 그들과 비슷한 언행을 하는 것이다.
“이년아! 손 빼! 어디를 만져.”
“나도 어머니처럼 머리카락이 수북하잖아요. 그러니 시집보내줘요.”
“이년이 진짜 미쳤나? 왜 안하던 짓을 다하고 그래.”
밤은 점점 깊어지는 가운데 모녀가 또다시 엎치락뒤치락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소 요상한 모녀간의 육탄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윤봉화는 사랑방에서 머무는 선비가 내일이면 떠날지 모른다는 조급함으로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한동안 어미와 말씨름과 육탄 공세를 펼치다가 슬며시 안방에서 나왔다.
“이년아! 무섭다며.”
“몰라! 내가 죽든지 살든지 어머니가 무슨 상관이셔!”
매몰차게 답하고 베개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가는 딸을 보며 임여녀는 한숨을 토했다.
“저년이 사내에게 단단히 홀렸어.”
임여녀는 갑자기 오래전에 돌아가신 자신의 어미가 떠올랐다. 어미에게 잘못하면 그대로 자식에게 되돌려 받는다던 옛말이 사실임을 절감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건넌방에서 뭔가를 발기발기 찢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쫘아악! 쫘아악!
귀엽게 오냐오냐 키워서 그런지 윤봉화는 괴팍한 성품을 지녔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옷이나 천을 찢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그런 괴이한 행동이 사라지더니 드디어 사내에 미쳐 그 못된 버릇이 또 나왔다.
“저년이 드디어 지랄병이 도졌군.”
여자가 사내에게 반해 정신이 쏠리면 부모나 형제 그리고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그 누구 보다 잘 안다. 그러니 임여녀는 걱정이 구만리다.
벼슬자리 산다며 많은 재물을 가지고 한양으로 올라간 아들놈은 노름하다 포도청으로 끌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다. 딸년은 사내에게 정신이 팔려 시집간다며 야로를 부리니 ‘자식이 원수여.’하며 한탄했다.
이때 동네의 개들이 또다시 일제히 짖었다.
왈왈! 컹컹! 월월!
많은 종류의 개들이 각자 특유의 소리로 낑낑거리며 울거나 우렁차게 짖어대고 있었다. 그런 개들 중에 윤 진사가 내년 복날에 잡아먹는다고 뒷마당에서 키우는 멍멍이도 요란하게 짖었다.
왈왈! 왈왈왈!
우당탕!
건넌방에서 ‘이놈의 똥개 새끼! 왜 짖고 지랄이야!”하는 딸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깨캥! 깨개갱!
건넌방에서 딸이 계속해서 야로를 부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보아하니 건넌방 옆에서 키우고 있는 멍멍이에게 심통을 부려 발로 걷어차는 것 같았다.
늙은 남편의 몸보신을 위해 내년 복날에 멍멍이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내년 복날은 그만 두고 딸의 화난 발길질에 해도 넘기지 못하고 죽게 생겼다. 딸은 심통이 시작되면 며칠간을 지속해 진을 쏙 빼놓은 경우가 많았다.
쾅! 우당탕!
“어휴! 신경질 나! 언년이는 시집을 가는데 나는 왜 안 보낸 다는 거야!”
이런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뭔가 부서지는 소리도 들리고 천을 찢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쾅!
문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건넌방에서는 계속해서 ‘짝! 쫘아악!’하는 창호지나 속치마를 요란하게 찢는 소리가 들이더니 갑자고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