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전생에서 익혔던 검술 자세를 떠올리면서 수련에 매진했다.
“홋! 호옷!”
격투기나 무술이라면 유달리 관심이 많아 그런대로 지루한 생각 없이 몰두했다. 오래전 수련한 검법이라 약간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수련이 지속될수록 저절로 몸에서 펼쳐졌다.
‘그래. 억지로 생각하기보다 무의식중에 익히다 보면 저절로 펼쳐지는군.’
몸에 익었던 검법이라 그런 것 같았다. 조금씩 빠른 동작으로 공격이나 방어 자세 그리고 검식이라는 형식을 펼쳐냈다. 설사 그렇더라도 몸에 완전히 익으려면 아직은 멀었다.
다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제법 검법을 익힌 사람이라고 보일 정도다.
‘후우! 조금 쉬고 격투기를 해봐야 되겠어.’
그가 익힌 특공무술은 대부분 적을 사살해 버리는 그런 필살기들이다.
잠시 쉬고 나서 맨손으로 적을 무력화시키는 특공무술을 펼쳐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주특기를 이용해 살아갈 결심으로 강도 높은 수련에 매진했다.
“톳! 토돗! 핫! 하앗!”
짧은 호흡을 연신 토해내며 전신을 이용해 수련했다.
그의 이마에서는 어느새 땀방울이 송송 배어나왔다. 특공무술을 펼치다 보니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 여기가 조선시대라는 것도 완전히 망각했다. 무술 연마에 집중하고 있었다.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 모르는 거의 무념인 상태에서 무술을 수련하다가 멈추었다.
이때 부엌에서 나와 호기심을 표하며 구경하던 주모가 다가와서 슬며시 말을 걸었다.
“총각! 삼수가 아까 꼭두 형님이라고 하던데 무슨 꼭두쇠야? 내가 보기에 총각은 광대패는 아닌 것 같은데.”
주모의 물음에 능숙하게 답했다.
“아하! 그거요. 삼수가 그냥 부르는 거예요.”
“이상하네. 삼수 성질에 남의 졸병을 안 할 것인데. 더구나 나이도 어린 사람에게.”
“그냥 그런 것이 있어요.”
“궁금하네, 무슨 일을 하려고 그런지 내가 알면 안 되나?”
주모는 매우 강한 호기심을 표하며 최인범의 주변을 빙빙 돌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모가 보기에 허세만 많은 애꾸와는 질적으로 다른 강한 무력을 지닌 사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라! 무술을 정식으로 수련한 사내야. 애꾸눈 패거리가 당할 만하겠어.’
그래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총각! 무술은 어디서 배웠어?”
대답하기 진짜 어렵기도 하고 더 이상 주모의 수작에 응수하기가 싫어 침묵했다. 그러자 흥이 깨진 것인지 주모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슬며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게 되자 이번에는 격투기 대신 검법을 다시 수련했다. 특공무술인 격투기는 틈틈이 조금씩만 수련하면 몸에서 저절로 펼쳐질 것 같았다. 그에 비해 검법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판단됐다.
최인범이 주막에서 무술 수련에 매진하는 동안·····.
한편 담장 너머의 윤 진사 댁의 사랑채에서는 진사인 최인범이 윤 진사를 내기바둑으로 요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윤 진사댁 사랑채에서 잠자던 최인범은 밖에서 누가 크게 외치는 소리에 부스스 깨어났다. 혹시 행랑아범인 최복동이 찾아와 자신을 찾나 해서 슬며시 사랑방의 문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봤다.
‘아니네.’
자신을 찾는 소리가 아니고 행랑아범이 윤 진사를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침 일찍 찾아온 남자는 자신을 백삼수라고 하며 윤 진사의 사노비를 사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사노비 거래라.’
이것저것 배울 것이 많은 처지라 호기심을 가지고 윤 진사와 백삼수가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여 엿들었다.
사랑채 마루에서 서있는 윤 진사는 다소 거만한 자세로 백삼수를 내려다보며 빈정거리는 투로 물었다.
“내 노비를 사겠다니, 계집을 원 하냐?”
백삼수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사 어르신 그게 아니오라 주막에서 심부름하는 칠복이를 사고 싶사옵니다.”
의외의 노비를 산다는 소리에 윤 진사는 매우 놀랐다.
“칠복이를? 아직 어린놈인데? 그런 놈을 뭐에 써먹으려고?”
“진사 어르신 제가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시킬까 해서요.”
이렇게 말하자 윤 진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제 아침부터 시작한 내기바둑으로 양쪽에서 걸었던 면포 80필이 모조리 최인범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모두 자신의 곡간에서 나온 소중한 재물이다. 그게 살살 빠져 나가니 아까워 미칠 지경이다.
이재에 밝은 윤 진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백삼수를 내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놈이 웬 일이야. 노비를 사서 데리고 다니라고 권할 때는 죽어도 싫다고 거절하던 짠돌이 녀석이····. 갑자기 노비를 산다고 하니. 아마 어제 산적과 만나자 혼자 다니기가 너무 겁이 난 모양이군.’
이렇게 판단해 보지만 칠복이 녀석은 덩치가 다소 크기는 하나 이제 13살에 불과한 소년이다. 아직은 더 시간이 지나야 써먹을 만한 녀석이다.
그래서 달리 생각했다.
‘저 녀석이 혹시 데리고 다니며 남색을 즐기려고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아도 칠복이 녀석의 곰보인 얼굴을 떠올리니 그건 영 아니다.
백삼수란 놈이 남색을 즐긴다는 정황도 전혀 없다. 설사 그래도 그런 요상한 놈들은 대부분 미소년을 데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튼 표정으로 보아 꼭 사고 싶어 하는 눈치다.
윤 진사는 요즈음 사노비(私奴婢) 시세 즉 성인 남자는 면포 200필, 소년은 면포 150필이라는 시세가 떠올라 속으로 계산했다.
전에는 더 시세가 높았지만 노비가 너무 많아져서 그런지 점점 시세가 떨어졌다.
‘오라, 아침에 까치가 요란하게 울더니 저 놈이 내게서 사라진 면포를 벌충하라고 찾아 왔어.’
윤 진사는 이렇게 판단하고 즉시 노비가격을 말했다.
“나도 주막에서 꼭 필요한 녀석이야. 칠복이 놈을 데리고 가려면 면포 200필을 내라. 그 아래로는 절대 내어줄 수 없어.”
“예? 200필요? 그건 너무 비싼 시세인데요.”
“싫으면 말고.”
흥정에서 상대방이 꼭 사고 싶다는 의사를 먼저 표하면 결국 칼자루를 넘기는 것이다. 그런 기본이야 상인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에 속한다.
윤 진사가 가격을 높이 부르자 백삼수는 즉시 그에 대해 반박했다.
“진사 어르신, 이제 겨울도 다가오고 죽령을 넘는 행인들이 줄면 주막은 매우 한산할 겁니다. 더구나 농사철도 아니라 노비 시세는 뚝 떨어질 것이니 소인에게 조금만 가격을 내려 주세요. 진사 어르신! 높으신 아량으로 선처를 부탁드리옵니다.”
백삼수가 다시 읍소하며 사정해 보지만 윤 진사는 크게 호통 쳤다.
“허어! 감히 나와 흥정하자는 건가? 사기가 싫은 모양이니 그만 나가 봐.”
“진사 어르신, 그간 저와 거래한 정리를 생각해서.”
윤 진사는 매몰차게 외쳤다.
“일 없다!”
“진사 어르신, 가격을 조금만 내려서. 그러면 제가 칠복이 형제를 모두 사겠사옵니다.”
“한 번에 두 놈을 산다고?”
“예, 진사어르신 두 놈을 사겠사옵니다. 그러니 가격을 조금만 내려 주시면.”
이후 조금 더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 거래는 성사 됐다.
“좋아, 한 번에 두 놈을 사가면 싸게 팔지.”
“알겠나이다.”
두당 면포 170필로 계산해 칠복이와 그에 동생인 팔복이까지 같이 팔기로 결정했다. 칠복이와 팔복이는 모두 같은 나이로 쌍둥이 형제다.
덩치나 행동들은 모두 똑 같으나 얼굴은 형인 칠복이가 살짝 곰보라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윤 진사는 결국 사노비인 어린 소년 둘을 팔아 면포 340필에 해당하는 재물을 받게 됐다. 비싼 가격에 팔게 되는 터라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됐어, 쉽게 채웠어.’
윤 진사는 백삼수가 가지고 있는 은비녀나 기타 물품 그리고 면포 200필의 어음을 손에 넣었다. 어음이지만 이것은 완전히 현품을 보관하고 발행되는 증서다.
흥정이 모두 끝나자 집사(執事)인 중년 사내가 사랑방으로 들어왔다. 그가 노비거래 문서를 작성하자 윤 진사가 마지막으로 붓을 들어 수결했다. 이 문서를 가지고 풍기관아로 가서 신고하면 노비거래는 완벽하게 끝난다.
갑자기 벌어진 노비거래로 윤 진사 댁의 구석에서는 소리죽여 우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칠복이와 팔복이의 아비가 이제 겨울이 되는 시기에 객지로 팔려가는 아들들을 붙잡고 목이 잠겨 울었다.
“어이구! 이놈들아! 크헉! 크헉!”
“아버지! 흑! 흑!”
가족들이 생이별을 하게 되니 피를 토하는 심정이다. 더구나 아내도 없는 처지에 늙은 몸으로 이제는 외롭게 혼자 살아야 한다. 이것이 자신들의 운명이라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대대로 사노비로 사는 처지라 쉽게 수긍하고 그나마 아들들의 안전을 바래 당부했다.
“새 주인님의 말씀 잘 들어·····. 그저 주인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새 주인께서 장사를 다니니 배는 고프지 않을 것이야.”
“알았어요.”
늙은 아비는 그저 노비 신세인 자신만을 탓하고 있었다. 대대로 노비로 사는 신세가 원망스럽고 그저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서럽게 울고 있는 그들의 옆에 서있는 백삼수가 늙은 아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나중에 근처를 지나면 꼭 들러 만나도록 할 것이니 너무 걱정 마시오.”
“감사합니다. 제 아들을 잘 부탁하옵니다.”
이런 대화를 끝으로 형제는 어깨가 축 처진 모습으로 윤 진사가 서있는 사랑채로 다가와서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로 인사했다. 그들의 작별 인사를 받고 나자 윤 진사는 휭 하니 뒤로돌아 이내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돌아서는 그의 등에서는 싸늘한 찬바람이 불었다.
한편 최인범은 사랑방에서 문을 살짝 열고 이런 노비거래의 모습을 모조리 지켜봤다. 어린 형제가 어디론가 팔려가자 불현듯 어린 사노비들이 너무 불쌍했다.
‘노비신세가 너무 비참해.’
조선시대로 떨어진 이후 다른 것은 대부분 순순히 받아들이는 편이다. 하지만 사람을 팔고 사는 행위를 직접 보게 되자 참으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너무 무겁고 여간 찜찜하지 않았다.
‘노예제도라니.’
더구나 늦가을이라 날씨는 점점 급격하게 떨어졌다. 옷도 변변히 입지 못한 칠복이 형제를 바라보니 너무 안쓰러웠다.
“쯧쯧! 추운 겨울이 되어 가는데 팔려가다니······. 너무 불쌍하군.”
막상 불쌍하다며 입으로 토하고 보니 뭔가 미안하고 어색했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 사랑방 한쪽에 쌓여 있는 면포 80필을 봤다. 어린 형제에게 자신이 뭔가 해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