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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23화 (23/519)

23화

너무 기이하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한숨을 토했다.

‘어이구. 아직은 써먹지도 못하는데.’

자신은 외양만 성인 남자의 덩치다. 그러나 다리사이의 하초는 아직 채 여물지가 않은 풋고추에 불과하니 해보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일 년은 지나야 그럭저럭 사내구실을 하게 생겼다.

주모는 빠른 걸음으로 갔다. 안채의 한쪽에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작은 방은 안채의 옆인 골방이었다. 둘이 지내기는 아주 적당한 방이다.

“삼수! 여기서 자!”

“알았어!”

두 사람을 골방으로 안내한 주모는 빠르게 부엌으로 들어갔다.

주모가 백삼수에게 묘한 웃음을 흘리고 사라지자 백삼수와 최인범은 짚신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아래골방의 온돌은 무척 뜨거웠다.

“앗! 뜨거!”

온돌의 뜨거움이 엉덩이로 느껴지자 몸이 갑자기 척 늘어졌다. 나른하니 세상만사가 다 귀찮고 그저 한 숨 푹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최인범은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봇짐을 머리에 베고 길게 누워 버렸다.

바깥채에서 머무는 사람들이 내는 소음이 요란했다.

와글와글. 우당탕 우당탕.

최인범은 바로 옆의 부엌에서 ‘달그락 달그락’하는 그릇을 만지는 소리를 들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잠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동안 너무 긴장해서 지내고 험한 고갯길을 걸어서 넘어오다가 보니 너무 피곤했던 것이다. 더구나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내다 보니 정신은 매우 피곤해진 상태다.

잠이 서서히 밀려오는 순간.

최인범은 뭔가 생각나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는 주모에게 밥값이며 숙박비를 계산해야 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난감하군. 물어볼 수도 없고.’

잠시 고민하다가 옆에서 여자처럼 쪼그리고 앉아있는 백삼수를 바라봤다. 그러자 곱상하게 생긴 얼굴이 갑자기 홍조까지 피워 오르고 있었다. 참으로 황당했다.

여자 같기도 하고 사내 같기도 하니 참으로 알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벌어진 지금의 사태가 진짜 알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하지만 옆에 있는 사내의 모습도 너무나 기이하다. 머리를 오래 쓰면 골머리가 당기니 잡념을 털고 숙박비 계산 방법을 구상했다.

‘그래 그 방법이 좋아.’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신에게 매우 호의를 보내는 백삼수를 보자 결심했다.

새벽에 무당에게 써먹던 방법을 다시 사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손으로 들고 왔던 면포 두 필을 슬며시 백삼수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형씨! 당분간 같이 다니니 이 면포로 형씨가 여비를 계산하시오.”

“어머!”

그래도 사내라고 판단하던 백삼수가 여자 목소리로 ‘어머!’라고 토하자 기절하듯이 놀랐다. 너무 황당해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무심결이지만 가슴이나 사타구니 쪽으로 눈길이 위아래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게도 가슴은 납작하고 하초는 불룩했다.

‘여자인데 저런 식으로 위장술을 쓰나?’

별 이상한 남자도 다 있다. 손가락도 가냘파서 자세하게 보면 볼수록 여자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사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런 생각이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여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도저도 아니네.’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계속해서 자세하게 살폈다. 한번 이상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오리무중이다.

이때 면포를 받아든 백삼수가 약간 굵은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주모! 닭 잡고 소주도 가져와!”

“알았어!”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백삼수는 때로는 여자처럼 때로는 남자처럼 요상한 동작을 보이며 최인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백삼수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최인범의 시선이 의식된 것인지 자꾸만 눈길을 슬며시 피했다. 더구나 그런 동작을 보일 때는 영락없는 여자의 수줍어하는 모습이다.

아무튼 너무 괴이한 사내다.

일단 숙박비나 식대 정산은 백삼수에게 떠넘긴 처지라 따뜻한 엉덩이의 느낌 때문에 다시 벌러덩 누웠다.

그러자 백삼수가 슬며시 일어나 옆에 쌓아놓은 이불을 들어 최인범의 몸에 덮어줬다. 아주 조심스럽게 이불을 덮어주는 모습은 여자의 행동이 분명했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지만 그것보다 잠이 밀려왔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드르릉 드르릉

깊이 잠든 그의 코에서는 커다란 소리가 토해졌다. 우렁차게 코고는 소리를 듣던 백삼수가 매우 만족한 미소를 살포시 짓고 있었다. 커다란 눈은 점점 뭔가 간절하게 원하는 야릇한 빛으로 변해갔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백삼수는 때로는 사내의 목소리로 때로는 여자의 목소리로 작은 한숨을 연신 토해냈다.

그의 두 눈은 어느새 슬픈 빛으로 변했다.

뭔가 슬픈 감정이 치미는 듯이 어느새 커다란 눈에서는 구슬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코고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리는 골방의 시간은 소리 없이 잔잔하게 흘렀다.

이윽고 문밖에서 인기척이 나며 젊은 댕기머리 소녀가 조심스럽게 외쳤다.

“삼수아저씨! 문 좀 열어 주세요.”

그 소리에 백삼수는 골방 문을 밖으로 밀쳤다.

문 앞에는 소녀가 작은 소반을 들고 서있었다. 소반에는 주둥이가 잘록한 하얀 술병과 작은 잔 그리고 삶은 닭, 소금과 산나물무침이 푸짐하게 놓여 있었다.

소녀는 문이 열리자 조심스럽게 소반을 방안으로 들여놓았다. 이어서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우며 공손하게 말했다.

“맛있게 드세요.”

“오냐!”

소반을 방안으로 들여놓은 소녀는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급하게 부엌으로 달려갔다. 그런 소녀를 바라보며 백삼수가 기묘한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오라! 저애도 다 컸군.”

말을 토해내는 그의 눈빛은 조금 전과 달리 완전히 탐욕스럽게 변했다. 더구나 입맛까지 다시는 모습은 완전히 욕정이 치민다는 행태를 보였다.

최인범은 깊이 잠들었다가 문이 열리고 소녀의 목소리도 들리자 부스스 깨어났다. 여자 같이 보이던 백삼수의 욕정어린 모습을 바라보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저 자식이 전설에서나 나오는 음양인인가? 왜 저래?’

최인범은 전혀 모르지만 사실 백삼수는 오늘 산적들에게 죽을 운명을 타고 났다. 그러나 기이한 현상으로 최인범이 나타나서 공교롭게 조그만 시간의 차이로 살아남았다.

역사의 큰 줄기는 여기서 벌어진 아주 작은 괴사를 시작으로 이미 변화가 생겼다. 그만큼 백삼수는 괴이한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다.

최인범은 지금까지 접한 사람들이 앞으로 자신의 행보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미 이곳 죽령을 기점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늦은 가을의 초저녁은 빠르게 어둠속으로 빠져들었다. 죽죽이 주막은 많은 상인들이나 과객들로 북적였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몰려오자 주모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오늘 오랜만에 찾아온 백삼수와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에 서둘렀다.

하지만 주막에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 손길이 딸려 계속해서 짜증을 냈다.

주모는 옆에서 일손을 돕고 있는 소녀에게 나무라는 듯이 물었다.

“아니, 삼월이와 점순이 년은 왜 안 오는 거야? 빨리 가서 오라고 해.”

“금방 온다고 했어요.”

“다시 가서 데리고 와!”

“예! 아주머니.”

소녀가 막 부엌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두 명의 쪽진 머리인 젊은 여자들이 부엌으로 다가왔다. 부엌으로 들어온 여자들은 자신들을 매섭게 노려보는 주모를 보며 굽실거렸다.

“아줌마! 사랑채에 계신 선비님 때문에 조금 늦었어요.”

“바쁜 것 안보여. 빨리 일해.”

두 여자는 그 소리에 다소 급한 손길로 작은 소반에 음식들을 차렸다.

커다란 항아리에 들어 있는 용수에서 농주를 푸고 있던 주모는 한창 커다란 가마솥에서 보리밥을 푸고 있는 점순이를 노려보며 외쳤다.

“이년아! 너 선비님께 무슨 수작을 벌였는지 모르지만 면포 두필이나 밑구멍으로 처먹었다며?”

“수작은 무슨······. 제가 예쁘니까 준거죠.”

점순이의 응수에 주모는 코웃음을 치며 호통 쳤다.

“내가 네 년의 수작을 모르냐? 너는 아마 젖퉁이로 선비님의 혼을 빼 놓은 것이 분명해.”

“아줌마는 공연히 나만 나무라시고.”

이런 야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세 여자는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작은 소반에 국밥이나 술상이 봐지면 소녀는 빠르게 밖으로 날랐다.

주모는 보아 놓은 술상을 바라보며 신경질적으로 지시했다.

“오늘은 삼월이가 술상을 날라.”

“알았어요.”

“손님이 잡는다고 꾸물거리지 말고 술 한 잔씩 따라주고 빨리 와! 바빠 죽겠어!”

“예.”

주모는 속으로 이래 저래 열불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곳 죽죽이 주막은 윤 진사가 운영하는 곳이라 자신이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돈벌이가 안 된다. 정상적으로 받게 되는 음식 값이나 숙박비는 모두 윤 진사가 차지하고 술을 파는 것은 자신의 차지가 된다.

술은 모두 윤 진사가 공급하니 장사가 잘 되도 쉽게 재물을 모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청상과부인 점순이 년은 사랑채에서 머무는 선비님의 시중을 며칠 들어주고 면포를 두필이나 날름 챙겼다. 그러니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세 여자가 바쁘게 움직이자 주막의 부엌 일이 조금은 한가해졌다.

그제야 주모는 소주가 담긴 작은 항아리에서 호리병에 술을 담고 그것을 들고 부엌 뒷문으로 나갔다.

그러자 점순이가 소녀에게 눈짓하며 물었다.

“누구야?”

“삼수 아저씨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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