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그야 잘 모르지 다른 놈들이 먼저 도망 쳤는지 아니면 산 위에서 망보고 있었는지.”
“말세로군. 나졸하던 놈이 산적 두목 질을 해도 그냥 놔두고.”
“조정에서 잡으려고 노력도 안하지만 애꾸눈 패거리가 워낙 이리 저리 이동해서 추포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야. 전에는 문경새재에서 애꾸눈이 있었다고 해.”
일행들은 이런 말을 들으며 사람들은 다들‘말세야 말세.’라며 혀를 차고 있었다.
최인범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오늘 참으로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산적들이 자신의 허세에 속지 않고 모조리 달려들었다면 여기서 죽을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마의 상처 정도가 아닌 진짜 큰일을 당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위기에 처하면 자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겠지만 아무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객기를 함부로 부리면 안 되겠어.’
이때 호리병을 흔들며 다가온 봇짐장수가 이상하다는 듯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총각, 왜 성이 둘이지? 아까는 조씨라고 하더니 노인에게는 최씨라고 하고 너무 이상해·······. 아비가 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자 최인범은 인상을 험하게 쓰며 봇짐장수를 매섭게 노려봤다.
봇짐장수는 너무 궁금하고 이상해 물었다. 하지만 너무 예민한 문제를 거론한다고 느꼈는지 슬며시 다소 떨어져 걸어갔다. 자길 노려보는 날카로운 눈빛에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인상을 보니 한 대 패겠어.’
곱상하게 생긴 봇짐장수의 질문에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내가 미쳐, 그런 중대한 실수를 하다니.’
자신에게는 생사가 걸린 실수를 너무 크게 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봇짐장수의 입을 막던가 아니면 처치해 버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꼬여서 산속으로 데리고 가서 파묻어버려?’
뭐라고 답해야 위기를 모면할지 막막해 우선 생각나는 것이 살인멸구다. 접근하는 봇짐장수는 생긴 것이 꼭 여자가 남장한 것처럼 보이는 놈이다. 목소리도 가끔 여자처럼 토해내고 아무튼 너무 괴이해 보였다.
‘별 요상한 놈이 진드기 붙네.’
이런 생각을 하며 봇짐장수를 자세하게 살폈다. 혹시 여자가 변장했는지 몰라 가슴이나 다리 사이를 살폈다. 그러자 그런 시선이 의식한 봇짐장수는 몸을 묘하게 배배꼬았다.
‘진짜로 여잔가?’
이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 틈으로 몰래 숨어들어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은근히 짜증이 났다. 이것저것 신경 써지는 일들이 많아지자 참으로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방금 만난 산적을 찾아서 산속에서 같이 살자고 할 상황도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같은 산적 패거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들처럼 산적 두목으로 산다면 그런대로 한세상 잘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그러나 그건 그저 각본대로 연기하는 멋진 배우들의 연출된 모습이다. 실제로는 산적들의 삶은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드네.’
이곳으로 떨어져 살게 된지 불과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자꾸 일이 꼬이기만 하니 정말 짜증이 만발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길을 걸으며 아비가 둘이냐는 물음이 영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싸가지 없는 놈, 아비가 둘이라니.’
덩치도 적고 여자 같이 곱상하게 생겨 먹었다. 촐싹대고 주둥이로 토하는 말도 매우 경박해 사람의 염장을 후비고 있었다. 자꾸만 자신의 어미가 바람둥이라며 비난했다고 해석되어 기분이 별로다.
기분이 좋지 않다고 보니 최인범의 인상은 점점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러자 다소 떨어진 곳에서 걸어가던 봇짐장수가 그런 최인범의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랬다.
‘공연히 남의 아픈 곳을 찌른 것 같아.’
공연히 말실수했다고 판단한 봇짐장수는 눈치를 슬슬 봤다.
봇짐장수는 고향이 수원으로 주로 여자들이 사용하는 연지 곤지나, 바늘과 색실 그리고 은장도나 노리개 같은 패물을 파는 사람이다.
사내라 남의 집으로 들어가 소매장사를 하지는 못하고 방물장사를 하는 여자들에게 넘기는 중간 도매상이다.
왜소한 체구에 간덩이도 적었으나 잔머리가 좋아서 장사를 아주 잘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때문에 장사에 한계가 있었다. 가지고 다니는 짐의 부피에 비해 고가의 물건들이라 수시로 도적들이 주변에 꼬였다.
너무 허약하다 보니 각 고을의 왈짜들이 노리는 대상이다.
수입의 반은 그들 수중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봇짐장수는 힘이 좋아 보이는 최인범과 같이 장사를 다녔으면 해서 접근한 것이다.
내밀한 속에는 남모를 여러 가지의 비밀스럽고 은밀한 이유가 포함됐다.
‘에이! 입이 방정이지. 잘 되는 판인데.’
주된 고객이 말 많은 방물장사들인 여자들이다가 보니 다소 입이 가볍고 경박스럽다.
산적까지 쉽게 처치하는 것을 보니 자신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기 힘든 진짜 마음에 드는 사내다. 성질을 내니 겁은 나지만 포기하기는 이르다.
‘어떻게 해서라도 같이 다녀야 해.’
더구나 왈짜들에게 당한 일들도 너무 많으니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에 봇짐장수는 다시 최인범의 옆으로 아장거리며 다가왔다.
이때 봇짐장수가 말한 아비가 둘이냐는 말을 두고 고심해 이미 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 낸 상태다.
그는 옆으로 다가온 봇짐장수에게 슬며시 입을 열었다.
“형씨! 말조심해요.”
“미안하네.”
먼저 함부로 놀리는 말에 대해서 추궁했다. 잠시 뒤에 성이 둘인 사연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나는 본래 경상도에 살던 최씨인데 어려서 조실부모해 멀리 충청도에 있는 남의 집으로 양자를 가게 됐소. 그래서 내 성이 둘이요. 다리 밑에서 주어온 거지인 양자라고 해서 마을사람들이 홀대해 자주 다투게 되었고······. 그때마다 내가 힘이 좋아 마을사람들을 패서 잘 지내지 못해 결국 이렇게 떠돌게 됐소.”
“그래서 장사 길로 나섰군.”
최인범은 고심 끝에 이렇게 적당히 자신의 실수를 얼버무리고 있었다. 그러자 봇짐장수는 자신에 대해서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나는 수원이 고향이지만 주로 장사하면서 떠돌며 살다가 안동에 거점을 잡고 있네.”
“거점이라니? 그게 무슨?”
“안동에 있는 주막집이 내 집이야.”
봇짐장수의 말에 가볍게 응수했다.
“그럼 아내는 안동에서 사는 거요?”
“그건 아니고. 그냥 그렇고 그런 사이인 주모와 동업하고 있다고 봐야지. 내가 재물을 대고 그 주모가 주막을 운영해 이득금을 반으로 나누고 있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의 말을 어느 정도 믿어야 될지 모른다. 더구나 생긴 것 자체가 요상했다.
여자 같다는 느낌이 드니 더욱 의심스럽다. 그러나 자신도 거짓을 말하는 처지라 봇짐장수의 말을 그저 묵묵히 들어 줬다. 자신의 말을 믿어주고 응수해주자 봇짐장수는 자신에 대해 계속 해서 설명했다.
봇짐장수는 나이가 22살인데 수원백씨로 이름은 삼수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장사를 하고 이득금이 얼마나 많이 남는 장사인지 열나게 자랑했다.
“이번에는 죽령고개 바로 아래인 창락골의 윤 진사댁으로 물건을 팔러 간다네.”
“그래요? 아까는 남에게 넘기기만 한다더니.”
“그곳도 물건을 도매로 넘기는 곳이야. 창락골의 윤 진사는 이재에 밝아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중간 도매로 장사하는 사람이야.”
진사라면 양반인데 장사를 한다니 조금 이상했다. 그러나 진지한 표정으로 윤 진사에 대해 설명하니 어느 정도는 믿음이 갔다. 어차피 적당한 곳에서 헤어질 요양이라 그저 흘려들으며 대충 응수를 해주면서 길을 갔다.
드디어 산길이 끝나고 개울가에 나있는 길로 접어들었다.
개울 옆으로는 한쪽은 산이고 다른 쪽은 작은 들판이 이어졌다. 그런 들판의 긴 논두렁을 지나 북쪽으로 작은 마을이 보였다.
백삼수가 손가락으로 커다란 기와집을 지목하며 권했다.
“저기가 창락골 윤 진사 댁이야. 자네도 나와 같이 가지. 아까 목숨을 구해준 박 초시라는 사람이 윤 진사 댁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나?”
“이미 면포도 받았는데.”
“그래도 같이 가세. 풍기로 가서 주막에서 잘 바에는 여기서 자는 것도 좋으니까.”
대로라고 보이는 길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나오자 백삼수는 먼저 발길을 창락골 쪽인 논두렁길로 돌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접근 할 때는 아장 거리더니 이제는 걸음걸이가 급변해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참 이상한 놈이야.’
이렇게 생각하며 최인범도 따라서 발길을 논두렁길을 따라 옮겼다. 그런데 이상하게 많은 장사꾼들이 같은 쪽으로 따라왔다.
다소 이상해 보였지만 자신과 무관하다고 판단해 걸어가면서 말했다.
“여기에도 주막이 있소?”
“그렇다네. 윤 진사가 직접 운영하는 죽죽이 주막이 있는데 그곳의 음식 값이 근동의 다른 주막들보다 싸고 물건도 사고팔기 때문에 상인들이 많이 이용해. 자네가 가진 면포를 거기서 거래해도 된다네.”
“아하!”
백삼수와 같이 창락골 마을로 들어서게 됐다.
산골마을 중앙에는 커다란 기와집이 보이고 바로 옆에 큰 초가집이 있었다. 초가집의 규모로는 상당히 커서 기와만 올리면 양반집 형태와 같았다.
서쪽을 향하는 죽죽이 주막은 동쪽에는 윤 진사댁이고 북쪽의 산 쪽으로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다. 왕대라고 부르는 통이 아주 굵은 대나무 밭이 상당한 크기로 펼쳐 있었다.
상당한 규모의 왕대나무 밭을 보더니 속으로 생각했다.
‘호랑이가 살아도 모르겠어. 왕대나무가 많아서 죽죽이 주막이라고 부르나.’
휘리릭! 사삭 사삭! 휘리릭!
늦가을의 찬바람이 불자 대나무 밭이 다소 음산한 소리를 냈다.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늦은 오후라 그런지 죽죽이 주막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두 사람이 초가집으로 들어서자 주모로 보이는 30대의 아낙네가 호들갑스럽게 반겼다.
“어머, 삼수! 너무 오랜 만이야. 오늘은 뭐를 가져왔어? 마침 내가 줄 것도 있고 살 것이 많은데.”
“이따 봐! 우선 둘이 잘 방이나 줘.”
주모는 서둘러 안채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요사하게 생긴 주모는 앞서가며 엉덩이를 묘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누가 보아도 일부러 하는 행동으로 보일 정도다. 그녀는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백삼수에게 묘한 웃음을 흘렸다.
미묘한 웃음 속에는 남정네를 후리겠다는 유혹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최인범은 주모의 다소 탱탱해 보이는 엉덩이를 요사하게 흔드는 주모를 바라보며 속으로 욕을 토했다.
‘저년이 발정이 났나? 왜 저 지랄이지?’
엉덩이를 요란하게 흔드는 것으로 보아 둘 사이가 보통은 아니다. 호리호리하고 작은 체구인 백삼수는 생긴 것이 곱상하니 여자들이 좋아하게 생겼다.
최인범은 문뜩 자신의 주변으로 오나가나 발정 난 암컷들만 꼬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죽인 똥개도 암놈이었다. 무당도 저런 비슷한 요사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직접 면상을 보지 못한 바람난 여자도 그렇고 참으로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