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본능적으로 두 개의 몽둥이를 들고 쌍검술의 자세를 취했다. 특수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수원의 화성으로 파견을 나가 전통무예를 수련했다. 그는 익숙하지는 않지만 검법, 창술. 궁술. 기마술 등을 조금씩 익혔었다. 마구잡이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절제된 검법 자세다.

휘익! 휙!

시퍼런 장검을 휘두르는 애꾸눈의 파상적인 공격을 피했다. 피하면서도 계속해서 적의 허점을 노리고 있었다. 아무리 산적이 허접해도 칼에는 눈이 없으니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최인범의 부릅뜬 눈도 점점 살기로 번득였다. 단 한 번의 공격과 방어로 생사가 갈린다. 그러니 그는 오직 애꾸눈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살기등등한 애꾸눈이“죽어!”

하며 검을 높이 들어 아래로 내려벴다.

휘이익!

칼날이 번득이며 최인범의 머리 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위기의 순간.

“타!”

기합을 토하며 머리 쪽을 향해 날아오는 장검을 왼손에 들린 몽둥이를 높이 들어 비켜 막았다. 동시에 오른 손에 들린 몽둥이를 가로로 베듯이 강하게 휘둘렀다. 연결동작의 공격으로 애꾸눈인 산적의 옆구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쉬익! 퍽!

손에 둔탁한 타격 감각이 느껴졌다. 그러자 애꾸눈은 크게 비명을 질렀다.

“컥!”

애꾸눈의 자세가 약간 흐트러지자 최인범의 양손에 들린 몽둥이가 화려하게 춤을 추었다. 기선을 잡자 애꾸눈의 몸통을 마구 난타했다. 절의 돌중이 대북을 두들기듯이 두 개의 몽둥이로 내리 쳤다.

퍼벅! 퍼벅! 퍼버벅!

누구 말처럼 복날의 개를 패듯이 마구 두들겨 팼다. 이런 때는 검법이고 뭐고 없었다.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고 있었다.

“돼져!”

산적의 장검을 든 손목이며 옆구리 그리고 머리통과 어깨 등에 몽둥이찜을 가했다. 그러자 애꾸눈은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이 처절하게 비명을 토했다.

“악! 아고고! 으악!”

애꾸눈은 기세등등하던 조금 전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시퍼렇게 날선 장검은 이미 땅에 떨어트렸다. 이제 잡히면 죽는다는 느낌이 들자 애꾸눈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나서 급하게 뒤돌아섰다.

후다닥!

애꾸눈은 번개 같이 산비탈 위로 내달려 도망쳤다. 잡히면 죽는 다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내달렸다. 산적들은 모두 정말 허접한 놈들이었다.

이때 몽둥이를 들고 대항하다 쓰러진 덩치 큰 산적이 재빠르게 일어났다. 손에 들린 돌멩이를 최인범에게 던지고 산속으로 허겁지겁 도망쳤다.

퍽!

“어이쿠!”

가까운 곳에서 던진 돌멩이는 아주 정확하게 최인범의 이마를 강타했다. 이마에서 붉은 피가 품어져 나왔다.

“저 자식이!”

화가 치밀어 산적을 따라가려다 멈췄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눈으로 들어와 앞을 잘 볼 수 없었다. 머리가 띵하며 어지럽다. 달려가려던 동작을 멈추고 주저앉았다.

“쌍! 미치겠네.”

붉은 피가 나오는 이마를 손으로 막고 신경질을 부렸다.

화풀이 대상인 산적들은 이미 멀리 달아나 보이지 않았다. 남을 때리고는 살아도 맞고는 못사는 성미라 열불이 났다.

산적들이 모조리 도망쳐 상황은 완전히 종료되었다.

비탈진 산속으로 달아난 산적들은 이미 한 놈도 보이지 않았다. 약초를 캐는 심마니들이 산을 타는 것보다 더 산을 잘 타는 것 같았다. 하긴 목숨이 결렸으니 빠르게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땅에 엎드려 떨고 있던 노인은 그제야 최인범에게 다가와 면으로 된 긴 하얀 천을 들이밀며 권했다.

“장사님, 이것으로 이마의 상처를 싸시오.”

“고마워요.”

노인이 넘겨준 천으로 이마를 감싸며 머리통에 질끈 동여맸다.

우르르르

뒤에서 따라오던 상인이나 기타 일행들이 발걸음을 재촉해 급하게 다가왔다. 그들은 조금 늦게야 도착해 애꾸눈이 산속으로 도망치는 광경만 겨우 발견했다. 다들 산적들이 패해 도망치자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최인범을 바라보았다.

최인범은 소주를 지닌 봇짐장수를 보자 손을 내밀며 요구했다.

“소주 좀 줘!”

봇짐장수는 재빠르게 호리병을 넘겨줬다. 그러자 최인범은 이마에 감긴 무명천을 풀고 두 눈을 감고 상처부위에 소주를 들입다 부어버렸다.

“으으윽!”

상처 안으로 소주가 들어가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마가 터져버린 상처를 소독하고 나자 다시 무명천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맸다. 여기서는 이런 방법이 최선이다.

‘어휴! 머리야.’

자신들을 구하려다 상처를 입자 노인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서 걱정했다.

“상처가 덧나면 큰일인데. 어쩌지?”

“소독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최인범의 이런 응수에 노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재 너머의 창낙골에 사는 박 초시라네. 내가 급한 일로 한양을 가는 중이니 내려가면 창락골로 가서 윤 진사댁으로 가서 상처를 치료하게.”

“됐어요!”

공연한 객기로 산적과 싸우다 이마가 터지는 심한 상처가 났다. 머리가 터져 신경이 곤두서서 퉁명스럽게 응수하고 일어났다.

약간 불량스러운 말투에 더욱 미안해진 박 초시는 급하게 뒤에 서있는 총각에게 지시했다.

“막동아! 면포 두 필만 이리 가져와!”

그러자 막동이라고 불린 총각이 등에 지고 있던 짐에서 면포 두 필을 꺼내서 다가왔다. 그러자 박 초시는 면포를 받아 최인범에게 넘겨주며 권했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우선 이것이라도 받게.”

“주시면 좋죠!”

보수를 바라고 나선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마터진 덕분에 면포 두 필이 생기자 그런대로 화가 풀렸다. 여기서는 면포가 돈이다. 자리를 잡으려면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면포를 받고나자 애꾸눈이 떨어트리고 간 장검이 생각나 집어 들었다.

‘어라, 보기보다 좋은 검이야.’

산적이 소지하기에는 과하다 할 정도로 아주 좋아 보이는 장검이라 신이 났다. 그래서 얼른 봇짐에 장검을 질러 넣고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산적들이 떼 지어 2차로 공격할 수 있으니 빨리 이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다. 최인범은 자신을 사람들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주시하자 이내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박 초시는 작별 인사도 안하고 걸어가는 청년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쯧! 사람하고는 민망하게.”

중요한 사명을 지니고 한양으로 빨리 올라가야하는 박 초시는 멀어지는 최인범의 등에 대고 크게 외쳤다.

“총각! 이름은 알려 줘야지!”

“박 초시! 나는 최인범이요!”

박 초시의 물음에 엉겁결에 손에 들린 면포를 번쩍 들며 자신의 본명을 크게 외쳤다. 자신이 무슨 큰 실수를 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며 걸어갔다.

휘휘 하는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는 최인범을 바라보며 박 초시는 속으로 놀랐다.‘최인범이라·····. 최고의 무술로 인덕을 베풀기 위해 범선처럼 떠돈다는 뜻인가?’하며 이름을 되새겼다.

박 초시는 남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나름의 독특한 한문풀이 연상법을 사용해 외웠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 나중에 만나면 조금이라도 갚아 줄 생각이다. 방금 자신을 구하고 사라지는 최인범을 생각하자 문뜩 다른 인물이 저절로 떠오른다.

‘묘하게 분위가 너무 비슷해. 이름이 같은 사람을 여기서 만나다니.’

박 초시는 윤 진사댁에서 지내는 진사인 최인범과 방금 자길 구해주고 사라지는 최인범이라는 총각과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그들의 닮은 점을 찾았다.

‘아하! 다들 얼굴들이 어려 보이지만 말투나 행동은 너무 어른스러워서 그렇군.’

박 초시는 네 명의 총각들에게 지시했다.

“늦었다. 서두르자!”

“에이!”

일제히 답한 총각들은 등짐을 지고 급하게 박 초시를 따라 죽령을 넘어갔다. 산적에게 혼이 났던 터라 다들 발걸음이 아주 빨랐다. 그러나 이들은 산적들을 그렇게 두려워하는 표정들은 아니다.

‘죽령 통과세만 잘 내면 봐주는 산적인가?’

험한 죽령을 넘어 경상도 땅에 들어서자마자 산적을 만났다. 상인이나 행인들은 빠른 걸음으로 최인범의 옆에서 따라갔다. 다들 겁이 나서 앞서가는 그와 같이 가고 싶었다. 상인들은 산적을 만난 이후 걱정하는 눈빛을 보였다. 그래도 믿을 만한 사람이 일행이라 안심된 표정들을 지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호랑이가 나타나도 되겠어!”

“아무렴, 혼자서 산적을 물리치고.”

“무서운 애꾸눈을 쉽게 처치하다니 대단해.”

그러자 한 등짐장수가 나서며 조금 전에 나타난 애꾸눈인 산적에 대해 말했다.

“애꾸눈은 여기 산적 패거리 두목으로 듣기에 전에 안동도호부의 나졸출신이라던데.”

“뭐? 나졸?”

법을 집행하는 나졸이 산적이 되었다니 주변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등짐장수는 다시 애꾸눈에 대해 설명했다.

“나졸하다가 노름판에서 싸움이 나서 칼에 눈을 찔렸다고 하더군. 그 때문에 나졸 노릇도 못하게 되어 정분난 양반집 며느리와 야반도주해 여기서 산적 질을 한다는군.”

이런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개판인 세상이야.’

신분제도가 확실한 조선시대다. 그런데 강상의 법도까지 어긴 산적 놈을 관아에서 추포를 안 하고 있으니 너무 한심했다. 그러나 자신의 지금 처지를 생각해 이내 애꾸눈에 대한 생각을 떨쳤다. 자신도 남의 호패를 훔쳐서 다니는 처지니 그놈이나 자신이나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다른 등짐장수가 나서며 물었다.

“애꾸눈이 두목이라면 다른 패거리가 있지 않나?”

“당연히 있지! 아녀자들까지 대략 30명 정도 된다는 거야. 보통 10명이 나타나고. 어떤 때는 20명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하니 근동에서는 제일 큰 산적 무리지.”

산적을 둘만 발견했으니 이상해서 물었다.

“그런가? 아까는 두 놈만 보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