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20화 (20/519)

20화

두 개의 참나무 가지를 잘라 대충 곁가지를 치고 나니 지팡이가 만들어졌다.

사삭 사각.

개울가로 돌아와 바위에 앉아 익숙한 솜씨로 지팡이를 다듬었다. 아무래도 미끈하게 생긴 것이 좋아 보이고 굵기가 조금 굵어 손에 딱 잡히지 않아서다.

‘무기로 사용하려면 손에 잡혀야해.’

자신의 가슴 언저리까지 올라오는 크기로 잘라냈다. 이윽고 자르기가 끝나고 나자 봇짐을 다시 등에 메고 앞장을 서고 있었다.

높고 험한 고개를 오를수록 다른 사람과 이동 속도에서 많은 차이가 났다.

지고 있는 짐이 가볍기도 하지만 체력적으로 남보다 우수했다. 이런 산행은 그로써는 늘 반복하던 행동이라 익숙해서 그렇다.

그런 그를 따라 이동하는 상인들은 다들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힘이 장사야. 아주 가볍게 고개를 넘어가네.”

“갈수록 힘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아.”

앞장서서 가는 최인범은 자신이 또 다시 사람들과 멀어지자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일행을 기다렸다. 호랑이가 출몰할 수도 있고 산적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같이 가는 것이 안전을 위해 유리했다.

그는 앉아서 다시 지팡이를 낫으로 다듬었다. 껍질을 벗기는 동작은 아주 익숙했다.

사각! 사각!

익숙한 솜씨로 나무껍질을 벗겼다. 손잡이 부분에 무당에게서 습득한 아주 굵은 색실로 칭칭 감았다. 미끈거리는 손잡이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다.

‘여기는 검이나 활 그리고 몽둥이가 주된 무기야. 그러니 목검 대신으로 이거라도 들고 다니자고.’

무술이란 하루아침에 익혀지는 것이 아니다. 우선 자신의 손에 맞는 무기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며 수시로 수련해야 위기에 처하면 사용이 가능하다.

이제 사람들과 더불어 살게 되겠지만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니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조금 지나 사람들이 가까이로 다가오자 다시 고갯길을 올랐다.

따각 따각.

이때 말을 탄 두 명이 내리막길의 고개를 요란하게 소리 내며 달려왔다.

한명은 패랭이를 쓰고 등에 깃발을 꽂고 있다. 차림새로 보아 역졸이다. 다른 한 명은 폭이 좁은 흑립인 갓을 쓰고 있어 평민으로 보였다.

그들이 달려오자 빠르게 길옆으로 벗어나 비켜줬다. 아무리 역졸이지만 관원이라 피해줘야 하고 막아설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획! 획!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평민은 윤 진사가 한양으로 심부름을 보내는 임영팔이다. 그는 마침 단양으로 가는 역졸과 같이 이동했다.

호환도 있고 산적도 가끔 나타나기 때문에 혼자보다는 둘이 유리해 같이 이동하는 중이다. 역졸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니 동행했다.

두필의 말이 빠르게 지나가고 나자 다시 길로 나와 호기심을 표하며 중얼거렸다.

“어지간히 급하게 가네. 산길을 저렇게 빨리 달리는 것을 보면.”

이윽고 가파르게 오르는 고갯길을 올라 정상 부분에 도착했다.

단풍으로 빨갛게 물든 산들을 바라보며 길 옆 바위에 앉아 기다렸다. 여전히 뒤쳐져 따라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에 색실을 칭칭 감았다. 드디어 두 개의 지팡이를 모두 색실로 감게 되자 지팡이가 아닌 긴 몽둥이처럼 변했다.

‘나중에 조금만 더 잘 다듬으면 목검으로 사용해도 되겠어.’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자 사람들이 모두 올라왔다.

그들과 같이 주먹밥으로 요기를 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라 이동하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비탈이고 굴곡이 있으니 여전히 힘든 곳이다.

이때 덩치가 작은 곱상하게 생긴 봇짐장수 한명이 최인범에게 슬며시 다가와 호리병을 내밀면서 권했다.

“한잔하게.”

그가 건넨 호리병은 허리가 잘록한 호리병박으로 만든 병이었다.

휴대하기 좋아 흔히 술이나 물 그리고 약을 담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유난히 잘록한 허리를 지닌 여자를 호리병 몸매라고 했다.

그저 물을 건넨다고 생각해 호리병을 받아 들입다 들이켰다.

“컥! 욱!”

목구멍에서 강한 열기가 화끈했다.

호리병에는 막걸리인 농주도 아니고 아주 독한 소주가 담겨 있었다.

강한 술기운이 아랫배에서 후끈거리며 치밀었다. 본래 술을 잘 먹기는 하지만 아주 오랜 기간 먹지 않았다. 전역한 이후 혹시라도 술을 먹고 말실수나 행동에 실수가 있을까 염려해서다.

그러다 독한 소주를 물인 줄 알고 들입다 마시자 뱃속이 요동치며 난리가 났다. 소주의 강한 기운이 급격히 퍼지면서 이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너무 오랜만에 마신 소주다 보니 몸으로 흡수가 빨랐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봇짐장수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약간 간드러지게 혀를 차며 비웃었다.

“쯧쯧! 사람하고는········. 독한 소주를 그리 마시다니.”

“물인 줄 알고.”

“아하! 그랬군. 미안하이.”

너무 독한 소주를 한 홉 이상을 단숨에 마신 것 같았다.

최인범이 벌떡 일어나 걸어가자 여자 목소리를 간간히 내는 봇짐장수는 옆에서 따라가며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총각! 내 고향은 경기도 수원인데 자네는 고향이 어디지?”

“단양요.”

다소 요상하게 생긴 봇짐장수는 뭔가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이름이며 또는 장사는 뭐를 하는지 등에 대해 자세하게 물었다. 그래서 자신이 지닌 호패의 내용을 참고로 건성건성 답했다. 남들이 하는 말이야 정보 수집을 하기위해 들을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남이 자신의 행적을 캐는 질문은 아주 위험했다.

‘어휴! 찰거머리처럼.’

최인범은 남보다 체력이 우수해 지금까지 계속 선두에서 혼자서 이동했다. 봇짐장수는 계속해서 옆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가려고 했더니 의외의 복병을 만난 것이다. 필요한 정보 수집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허점이 드러나면 안 되는 처지다.

‘사내자식이 꼭 계집애처럼 생겨 가지고.’

하는 행동도 그렇고 생긴 것도 조금 요상한 놈이라 가까이하기가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접근하는 봇짐장수의 물음을 피하려고 다시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해 앞장서서 걷게 됐다.

“어! 총각 왜 그래? 같이 다니자고.”

봇짐장수가 뭐라고 뒤에서 하든 말든 최인범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그런 발걸음으로 일행들과 상당한 거리까지 벌어졌다.

평지의 거리라면 별로 멀지 떨어진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산속의 구불구불한 길이라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일행과 어느 정도를 떨어져가고 있던 그는 조금 발걸음은 늦추었다.

이때 바로 앞 모퉁이에서 큰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아악! 살려 주시오!”

“살려 주세요!”

호랑이를 만나면 그저 ‘사람 살려!’가 기본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살려 달라고 사정했다. 이건 분명 행인을 산적들이 위협해 사정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순간 ‘산적!’하는 감각이 뇌리에 스쳤다.

최인범을 빠르게 소리가 들리는 앞으로 내달렸다. 불타는 의협심으로 남의 위험을 구하자는 것은 아니다. 확 올라버린 독한 소주기운도 있었다. 또한 자신도 공격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르게 이동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다다다다.

급하게 구부러진 길모퉁이를 돌자 노인 한명과 네 명의 청년들이 무릎을 꿇고 산적들에게 애원했다. 양손을 모아 싹싹 비비며 빌고 있었다. 젊은 청년들과 노인이 모두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떨고 있는 주위에 모여 있는 산적들은 검과 몽둥이 그리고 대나무 창들을 들고 있는 10명 정도다.

최인범은 산적들을 발견하자 크게 외쳤다.

“이놈들! 잘 걸렸다!”

갑자기 나타난 건장한 청년이 몽둥이 두 개를 들고 달려들며 크게 소리치자 산적들은 화들짝 놀랬다.

적과 조우되면 이런 경우 기선 제압이 제일 관건이다. 입에서 소주 냄새를 확 풍기며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쳤다.

“게 섯거라!”

어느 놈 하나 도망치지도 않는데 마치 도망치는 놈이 있는 것처럼 크게 외친 것이다.

후다다닥.

산적들 중에 일부가 마치 다른 산적들이 도망가는 것으로 인식된 듯 뒤로 돌아 산속으로 급하게 도망치고 있었다. 참으로 허접한 산적 놈들이 아닐 수 없었다.

‘저런 산적도 있나?’

드라마에서 보던 산적들 보다 더 허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무기만 들었지 대부분 살기 힘들어 산으로 도망친 가난한 민초들이 산적이다.

최인범은 기세가 올라 앞으로 달려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뒤를 돌아보며 크게 외쳤다.

“나리들! 여깁니다!”

기선제압에 이어 화려한 기만술을 펼쳤다. 최인범의 커다란 외침에 산적들은 화들짝 놀라 산속으로 더욱 멀리 달아났다.

나리는 보통 당하관인 관인을 칭하는 소리다. 그런 외침에 산적들은 관군들이 몰려왔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여러 사람이 우르르 몰려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헉! 관군이다!”

후다다닥

기만술에 속은 10명의 산적 중에 동작 빠른 녀석들은 ‘관군이다!’라고 외치며 더욱 빠르게 도망쳤다. 도망치는 산적들은 때로는 산비탈에서 넘어지고 하며 급하게 내달리고 있었다.

겨우 두 명만 남아 있었다. 덩치가 큰 털북숭이 산적 놈은 투박한 몽둥이를 들었다. 다른 놈은 한쪽 눈을 검은 천으로 가린 애꾸눈이다. 그래서 아주 흉악해 보였다. 몽둥이와 시퍼런 검을 든 놈들이지만 두 명에 불과하니 전혀 겁나지 않았다. 빠르게 산적들에게 다가와 우람한 산적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휘이익! 퍽!

약간 얼떨떨한 상태로 서있던 몽둥이를 든 산적의 머리통을 바수었다. 몽둥이로 머리를 맞은 산적은 ‘어이쿠!’하며 비명을 토하며 땅에 쓰러졌다. 몽둥이에 맞고 땅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산적의 얼굴을 ‘죽어’ 하며 발로 힘차게 걷어찼다. 강한 타격으로 발등이 지끈했다.

입이 터진 것인지 코가 터진 것인지 모르지만 산적의 입에서 붉은 피가 툭 튀어 나왔다. 이어서 다른 산적에게 몽둥이를 겨누었다. 날이 시퍼런 장검을 든 산적은 애꾸눈으로 흉측하게 생겨 붉어진 눈에서 살기가 풀풀 풍겼다. 애꾸눈은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이놈!”

애꾸눈이 요란스럽게 장검을 휘둘렀다. 검법의 절제된 공격이 아니고 마구잡이의 휘두름이다.

최인범은 이미 승부는 결정 났다는 듯이 여유롭게 자세를 잡았다. 재빠르게 애꾸눈이 휘두르는 시퍼런 장검을 피하면서 몽둥이를 비켜서 겨누었다.

스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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