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이때 바로 옆의 짚더미 속에 은신해 잠을 자던 최인범은 이상한 소음이 들리자 귀를 기울였다. 아주 진득한 소리가 천둥과 같이 크게 들렸다.
“헉! 헉!”
“하윽! 하윽!”
분명 남녀가 뜨겁게 방사를 치루며 토해내는 감창소리가 분명했다. 그는 귀를 열고 잠을 자고 있다고 판단했으나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사람이 다가와도 전혀 몰랐다.
‘아차! 내가 너무 깊이 잠들었어.’
남녀가 토해내는 야릇한 신음소리를 들으며 숨을 죽였다. 정사를 벌이며 간간히 나누는 대화로 보아 불륜관계가 분명했다. 더구나 사내는 어리고 아낙네는 나이가 제법 많은 것 같았다.
빨리 볼일들을 보고 여기서 조용히 떠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남녀가 토해내는 가쁜 숨소리는 한없이 지속됐다.
은근히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었다.
‘어휴! 썩을 것들 오래도 하네. 그냥 죽여 버려?’
조금 안전한 상태에서 듣는 요상한 소리라면 호기심이라도 생기련만·····.
지금은 그런 호사를 누릴 정황이 전혀 아니다. 마을사람과 조우되면 자신은 포졸이나 관군에게 쫒기는 신세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의 위기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위기는 한 번에 몰려온다는 것인지 더욱 난감한 상황으로 처했다.
이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어! 이게 뭐야?’
뭔가 시커먼 물체가 부스럭거리며 안으로 기어들어 왔다.
킁! 킁!
갑자기 똥개 한 마리가 자기가 숨어 있는 짚더미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강아지를 겨우 면해 중개라고 부를 수 있는 크기다.
최인범이 졸지에 나타난 중개를 똥개로 판단하는 이유는 그저 꼬리를 흔들고 끙끙 거렸기 때문이다. 집을 지키는 개라면 당연히 이상한 사람을 발견했으니 크게 짖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내가 미쳐!’
설사 그렇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똥개의 출현으로 큰 위기라고 판단했다. 아무리 똥개라도 언제 소리쳐 크게 짖어댈지 모르니 매우 난감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은 이런 때 쓰인다.
참으로 곤란한 지경에 처하자 당황했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이마에 땀방울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지?’
바로 옆에서는 남녀가 신나게 정사를 벌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몸 앞에는 똥개가 킁킁거리니 진짜로 처치 곤란한 위기다.
진짜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이다.
성질대로라면 똥개도 죽여 버리고 연놈들도 사그리 죽여 버리고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개나 사람을 죽이는 방법들이 연이어 머릿속에서 스쳤다.
‘목을 졸라서? 아님 비틀어서?’
빨리 결정을 내려야할 처지다. 사람보다는 똥개 처치가 우선이라는 판단했다.
불륜관계인 남녀는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도 함부로 소리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나중에도 동네사람에게 자신을 이런 곳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발설할 염려가 적었다.
스르르. 스르르
결정을 내리자 아주 느린 동작으로 허리춤에서 새끼줄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손으로 꼬아진 엷은 새끼줄이지만 잘 꼬아서 아주 질겼다. 눈에서 강한 살기가 품어져 나오며 번득였다. 개를 죽이려는 방법은 적의 목을 잘라 버리는 행동과 똑 같아 진한 살기가 풍기는 것이다.
이미 결심했으니 망설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품으로 달려들어 꼬리를 살살 흔드는 개를 죽이려니 마음이 약간 흔들렸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인정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고 판단해 결단을 내렸다.
꼬리치는 개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어 주면서 살며시 개의 목에 새끼줄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허리춤에서 부엌칼을 꺼내들었다.
오른 손으로 밧줄과 부엌칼을 든 그는 잠시 속으로 심호흡을 토했다.
‘후우! 후우!’
옆에서는 이제 여자나 남자가 절정에 다다른 듯이 가픈 숨을 토했다. 최고 정점으로 다다른 것이 분명했다. 남녀가 절정으로 다다를 때는 주변의 일에 대해 전혀 모르게 된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침착하게 기다렸다.
드디어 옆에서 여자가 ‘으으으윽!’하며 소리죽여 비명을 토하고 사내도 마지막 힘을 쓰는 순간.
휘리릭! 푹!
새끼줄을 양쪽으로 강하게 잡아당겨 조이는 동시에 부엌칼로 개의 목덜미를 깊숙하게 찔러버렸다. 아주 정확하고 능숙한 동작이다.
끼이잉!
개의 목이 감긴 새끼줄이 양쪽으로 강하게 당겨지는 동시에 목덜미를 찔리자 똥개는 작은 비명을 지른 뒤 죽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확 풍겼다.
개를 단숨에 죽이고 완전히 호흡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눈치를 챘다면 연놈들도 즉각 죽여 버리고 여길 떠날 생각이다.
“하악! 학!”
“으아악! 나 죽어!”
옆에서 정사를 벌이는 남녀는 드디어 최고 절정으로 달한 신음을 마지막으로 토해냈다.
다행히 방사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는 남녀는 바로 옆에서 개가 죽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자신들 옆에 살기를 품고 노리는 소년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부스럭 부스럭.
볼일이 모두 끝나서 그런지 서둘러 옷을 입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이어서 아낙네가 약간 다부진 목소리로 사내에게 채근 질했다.
“갑중아! 나는 이대로 더는 못산다. 그러니 빨리 떠나자!”
“알았어요.”
“얼박이 할매가 눈치를 챈 것 같아 너무 불안하니 내일 떠나는 것이 좋아!”
그러자 사내는 화들짝 놀라 반문했다.
“내일요?”
“그래.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 돼. 갑중아! 너 지금 호패 가지고 있냐?”
“호패는 왜요?”
상냥한 아낙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는 칠칠맞아서 중요한 것을 항상 빠트리잖아. 전에 도망치려 할 때도 호패를 두고 나와서 별수 없이 포기했었잖아. 지금 죽령을 넘어가려면 포졸들의 기찰이 너무 심하니 호패는 꼭 차고 가야해. 그러니 호패를 지금 나에게 맡기고 너 먼저 집으로 돌아가!”
“그러죠.”
이런 대화를 끝으로 사내의 소리 죽인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이내 사라졌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혼자 남은 아낙네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놈이 멍청해도 늙은 나와 도망가서 살지 않으려고 내일 여기로 나오지 않을지 모르니 호패를 미리 챙겨두길 잘했어. 호패가 있으니 여차하면 칠뜩이 녀석을 데리고 떠나면 돼.”
아낙네의 중얼거림에 너무 기가 막혔다.
아낙네와 정분난 사내가 한 두 명이 아니다 싶었다. 남의 호패를 이용해 다른 놈과 도망치려는 수작도 고려하니 그놈은 아마 종놈 같았다. 보통 흉악한 아낙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패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아낙네도 죽여 버릴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그의 눈에서는 싸늘한 살기가 품어 나왔다.
‘저걸 죽여?’
그러나 아낙네를 죽이면 자칫 죽령으로 넘어가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었다. 그가 잠시 갈등하는 사이에 아낙네가 짚더미를 헤집으며 중얼거렸다.
“여기에 모아둔 면포와 같이 감추어 두면 떠날 준비는 다 끝났어.”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으로 보아 아낙네는 사내와 도망치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이곳에 뭔가 비축해 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부스럭 부스럭.
이윽고 아낙네가 짚더미를 만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조심스럽게 떠나는 발자국 소리가 작게 들리더니 사라졌다.
최인범은 여전히 숨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았다. 소리 나지 않게 개를 죽일 생각만 했지 옷에 개의 피가 묻는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난감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