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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9화 (9/519)

9화

포졸들이 기찰하던 죽령을 넘어 남쪽으로 가는 길목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

마을의 변두리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높이 쌓은 짚더미로 숨어들어 볏짚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토굴 같이 깊이 파고 들어가 몸을 감춘 뒤 편하게 쉬고 있었다.

“후우! 푹신하니 너무 좋다.”

이동 중에 비어있는 초가로 들어가 찬 보리밥을 챙겨 먹었다. 제일 급한 식량은 조금 확보한 상태다. 안전을 위해서는 산속에서 비트를 파고 지내야 한다. 하지만 장비가 너무 부실하니 그것도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조금 위험해도 민가로 접근했다. 볏짚더미가 인가와 약간 떨어져 있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생각이다. 그동안 계속 산속에서 지내다 보니 푹신한 볏짚 위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더구나 갑자기 호랑이가 출몰하니 산속으로 들어가 지내기도 영 꺼림직 했다.

‘설마 별일이야 없겠지.’

볏짚더미 옆으로 작은 소나무나 잡목들이 많았다. 여차하면 그쪽을 통해 깊은 산속으로 도망칠 탈출로가 확보된 곳이다.

일찍 잠을 자야 사람들이 거동하지 않는 이른 새벽에 다시 산속으로 들어 갈 수 있다. 경상도로 간다고 다짐했지만 뚜렷한 목표가 없으니 급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여기가 안전하면 여기 충청도에서 눌러 살아도 돼.’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경상도로 가야할 이유 하나를 떠올렸다.

‘그래, 기차 안에서 나와 같이 마주 앉아 이야기하던 최인범이란 사람도 같이 사라졌을 거야. 잘하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몰라.’

이상한 이곳은 천지사방에 온통 적들로 가득했다. 그나마 같은 형태로 이곳에 떨어졌을지도 모르는 남자를 꼭 만나고 싶었다.

같은 30대지만 자신보다 3살이나 연장자인 그와 통성명했던 기억을 떠올려 봤다.

그 사람은 영주시에서 사는 최인범이라고 했었다. 세상에는 같은 이름이 많지만 자신과 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자 호의적으로 대했다.

그는 바둑을 아주 잘 두어 영주나 경북지역의 아마추어 바둑계에서는 최고수준이라고 큰소리를 쳤었다.

충북 제천역에서 만나 같이 여행하다보니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저 생각나는 것은 별로 없고 같은 이름인 최인범이 고작이었다. 어려운 가정과 다소 힘들게 살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남자다.

최영 장군의 후손이라며 조상의 업적을 유달리 자랑하던 그가 떠오르자 이렇게 생각했다.

‘그 사람은 혹시 고려시대나 조선초기로 넘어 갔나?’

조금은 편안해지자 오만가지 잡념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과거의 삶이 순탄치 않아서 그런지 지금도 참으로 열악한 환경을 적응해야 하는 신세가 너무 억울하기만 했다.

‘내 인생은 항상 왜 이러냐?’

너구나 내일은 호패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을 쉽게 죽이는 기술이야 많지만 아직 살인을 직접해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필요하면 언제고 결행할 마음 자세는 팽배했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은 보리밥 때문에 식곤증이 생겼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스르르 잠이 들었다.

긴장의 연속이라 정신적으로 무척 피곤했다. 몸도 나른했지만 마냥 편하게 잘 수 없었다. 언제고 자신의 주변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거나 인기척이 들리면 깨어날 수 있는 상태로의 선잠이다. 그래도 이런 식의 선잠은 늘 자 보던 처지라 귀는 크게 열린 상태다. 그것은 그의 생각일 뿐이지 지친 몸은 전혀 달랐다.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는 늦가을의 깊은 밤.

검은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밝은 빛을 품어내며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작은 숲과 연결되어 있고 마을에서 다소 떨어진 외딴 곳.

사삭. 사삭.

볏짚을 높이 쌓은 짚더미 주변으로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이동하는 사내.

그는 마치 어디론가 가서 도둑질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은밀하게 이동했다. 사내는 조금의 인기척만 들려도 이내 땅에 엎드려 숨을 죽였다.

인기척을 피해가며 조신스럽게 이동해 목적지인 볏짚더미에 도착한 사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휴우! 들키는 줄 알았어!”

사내는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양손을 입에 모아서 바람을 불어 소리를 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아서 그런지 바람 빠지는 소리만 새어나왔다.

“피이! 피익!”

사내는 다시 정성스럽게 모아진 양손 틈으로 바람을 불면서 양손을 벌렸다가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뻐꾸기 우는 것처럼 작은 소리가 났다.

“뻐꾹! 뻐꾹!”

사람이란 꼭 필요한 것을 간절하게 원해 부단히 노력하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여자에게 만나자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됐어, 이제는 쉽게 연락이 되겠어.’

드디어 그럴듯한 뻐꾸기 소리를 만들어 내자 사내는 너무 신이 났다. 자기가 내는 뻐꾸기 소리가 신기했다. 사내는 계속해서 손에 바람을 불어 뻐꾸기 소리를 냈다.

“뻐꾹! 뻐꾹!”

부스럭 부스럭.

이때 바로 근처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인기척이 들리며 급하게 사내 옆으로 다가오는 아낙네가 있었다. 아낙네의 얼굴은 미인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평범했다.

달빛을 받아서 그런지 아주 요염해 보였다.

더구나 한 밤중인데 이런 한적한 곳에 나타나는 모습으로 보아 평범치 않은 것은 분명했다.

가깝게 다가온 아낙네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갑중아! 그만 불어! 그러다 동네사람들 다 깨겠어.”

“왔어요?”

사내는 뻐꾸기 소리를 내는 재미로 정작 여기서 만나기로 한 여자가 다가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아낙네를 보자 사내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여자를 만난 지야 몇 번 되지 않았다. 여기서 자무 만나지 못한 이유는 가을에 추수가 끝나고 나야 이런 은밀한 장소가 생기기 때문이다.

남들의 눈을 피해야하는 이들이 꼭 필요로 하는 장소는 너무 많았다.

보리밭이나 콩밭, 목화밭, 뽕밭 그리고 마을에서 다소 떨어진 산자락의 으슥한 묘 마당에 깔린 푹신한 잔디 위에서 자주 만난 농밀한 사이다.

사내는 총각이고 10년 이상 연상인 아낙네는 과부다. 그러다 보니 마을사람들의 매서운 눈길을 피해 은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하는 조선은 과부들의 재혼을 엄하게 금지했다. 그러나 이미 사내의 강력한 맛에 단단히 길들어진 아낙네의 뜨거운 몸은 이렇게 밤에 찬이슬을 맞으며 돌아다녀야만 했다.

허둥지둥. 부스럭부스럭.

사내는 짚더미를 이용해 오목하게 만들어 놓았다. 둘만의 임시 보금자리를 만들고 나자 마음이 너무 급해졌다. 그래서 다짜고짜 여자의 치마폭 속으로 손을 불쑥 디밀었다.

“아이잉! 천천히! 이거 먹어!”

아낙네는 몸을 탐하려는 사내의 급한 손길을 살며시 뿌리쳤다.

부스럭부스럭.

그녀는 치마폭으로 몰래 감싸 가져온 작은 보퉁이를 끌렀다. 그녀가 가지고 온 것은 시루떡과 돼지고기다. 오늘은 시아버지의 제삿날이다.

물론 술과 노름에 쪄들어 살며 계집질도 자주 하던 못된 남편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세상인심이 그러하듯이 죽은 놈은 죽은 놈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더구나 남편이란 놈은 살아서 술만 퍼먹으면 주사를 아주 심하게 부렸다. 술만 취하면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기를 패 둥글리는 죽은 놈에게 어떤 미련이나 정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삼강오륜을 들먹이는 사람들을 보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너도 나처럼 살아봐! 내가 이해될 거니.”

인간의 자연스러운 섭리를 막는 조정의 높은 놈들은 참으로 어리석다는 사고력을 지닌 여자다.

먹음직하고 푸짐한 음식을 보자 사내는 여자의 몸을 탐하려던 손길을 돌렸다. 급하게 떡과 돼지고기를 투박한 손으로 집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우걱우걱.

양쪽 볼이 미어 터져라 떡과 고기를 밀어 넣고 먹는 사내는 게걸스럽기만 했다.

먹는데 급급한 사내를 보던 아낙네는 조금 전 자신이 토해낸 말과 달리 사내의 몸을 급하게 탐했다. 음식을 먹고 있는 사내의 중심으로 가냘픈 손을 들이밀면서 슬며시 볏짚위로 벌러덩 누어버렸다.

치마를 살짝 올리고 양쪽 다리를 쩍 벌리는 매우 도발적인 자세다.

달빛을 받은 허연 허벅지가 훤하게 드러났다. 그 안은 그림자 인지 아니면 거웃인지 모르나 검게 그늘진 모습이다.

아낙네의 적극적인 행동과 동시에 사내도 빠르게 반응했다.

“우걱! 헙!”

한손은 음식을 입안으로 마구 밀어 넣으며 다른 손은 불룩한 여자의 탐진 젖가슴으로 향했다. 위로 높이 솟아오른 하얀 젖무덤은 아주 탱탱했다.

누워서 사내의 중심을 손으로 잡은 여자는 바쁘게 조몰락거렸다. 손에 잡힌 작았던 물건이 굵고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낙네는 묘한 웃음을 흘리며 서둘러 치마를 슬며시 위로 올렸다. 검은 무명치마 안에는 속것이나 고쟁이 등 그 무엇도 입고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런 요상한 관계를 지속한지 오래된다.

남에게 불륜 광경을 직접 목격 당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동네 아낙네들이 조금은 낌새를 차린 것 같았다.

잘못하면 북을 지고 동네를 빙빙 도는 조리를 돌게 되거나 멍석말이를 당하게 생겼다. 뭔가 시급하게 대비해야 될 중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아낙네는 몸으로는 사내를 받아들일 동작을 취하며 입으로는 자신이 생각해둔 방법을 제시했다.

“갑중아! 우리 멀리 도망치자.”

“예? 도망요? 어디로요?”

“경상도로 도망가면 내가 아는 먼 친척이 있으니 그리로 가자.”

아낙네의 유혹에 사내는 별다른 응수가 없었다. 묵묵히 먹다 남은 떡을 마저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양손을 사용해 이미 저고리를 풀어헤쳐 불룩 튀어나와 부풀어 오른 여자의 양쪽가슴만 마구 주물렀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 아낙네의 손은 급하게 사내의 바지춤을 헤집었다.

사내는 아낙네의 풍만한 가슴에 달린 검은 돌기를 손가락으로 살짝 집었다. 그 순간 뜨겁게 달아오른 아낙네는 농염한 신음을 토하며 달덩이 같은 엉덩이를 힘차게 위로 튕겼다.

“아흑!”

더운 입김을 마구 토해내던 아낙네는 급하게 떡을 싸온 천을 입에 물었다. 아낙네는 흥분이 고조되면 크게 소리치는 버릇이 있었다.

좋다고 감창소리를 크게 토해내다 보면 마을사람들에게 들킬 수 있었다. 그러니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대비하는 것이다.

급하게 바지를 내린 사내는 이미 준비가 완료된 아낙네의 벌겋게 달아오른 몸으로 급하게 올랐다. 그리고 엉덩이에 강력한 힘을 주었다.

“끙!”

“하악!”

한가하게 즐길 시간의 여유가 많은 것도 아니다. 뒤엉킨 남녀는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듯이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내달렸다.

그러자 다소 조용하던 곳에서 ‘철퍽! 철퍽!’하는 진득한 소음이 들렸다. 마치 진흙탕을 지나는 소리라 할까? 아니면 뱃사공이 노를 다급하게 저어가는 소리라고 할 수 있는 야릇한 소음이 주변으로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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