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8화 (8/519)

8화

<살아남으려면 알아야 해>

벌써 닷새 동안이나 깊은 산속을 헤매며 개울물과 풀만 먹으며 지냈다.

또는 개울에서 가제나 도마뱀을 잡아먹는 것 이외에는 그동안 어떤 알곡이고 뱃속에 전혀 넣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미 딱 달라붙어버린 뱃속에 너무 빨리 거친 보리밥을 넣으면 배탈 나기가 십상이다.

‘침착하자고. 여기서 병나면 끝장이야.’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굳게굳게 다짐했다.

살아남으려면 독해야 한다. 그리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행동해야 되며 조금만 실수하면 인생은 바로 끝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필요한 물건을 도둑질한 마을에서 아주 멀리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소년은 보리밥을 먹으면서 수시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군.’

소년은 보리밥을 조금씩 입에 넣어 먹으며 재빠른 동작으로 바지저고리를 챙겨 입었다. 분명 얼굴은 소년이지만 덩치가 어른과 거의 비슷해 그런지 옷은 아주 잘 맞았다. 더구나 한복의 특성이 약간의 크기야 조절된다.

소년은 바지저고리를 입고 나서 그래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 사이에 판단해 빠른 동작으로 입었던 바지를 다시 벗었다. 그는 치마폭으로 싸가지고 온 여자의 속옷인 고쟁이를 챙겨 입었다. 끈으로 허리에 여며야 하니 불편하나 그래도 입기에 그리 거북하지는 않았다.

“밑이 터져서 볼일 보기가 편하겠어.”

소년은 고쟁이를 입고 나서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지 확인했다. 별 이상이 없자 그제야 다시 바지를 입었다.

무명바지를 입고 난 소년은 집신을 신으려다 발을 보호할 버선이 생각났다. 그러자 망설임 없이 여자의 저고리의 옷고름과 소매를 부엌칼로 분리해 발을 샀다. 무명바지 아래에 대님처럼 단단히 동여맸다. 누가 자세하게 살피지 않으면 버선을 신은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소년은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우선 아쉬운 대로 됐어.”

소년은 자신에게 벌어진 괴이하고 황당한 사실을 처음에는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지금은 소년인 그는 중앙선 기차를 타고 영주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계속 대화를 나누던 앞자리의 남자가 피곤한 듯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코를 골고 있는 순간.

번쩍하는 강한 빛과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과 함께 산속에 혼자 떨어져 있었다.

팔목에 차고 있던 전자시계며 입고 있던 등산복 그리고 휴대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그저 벌거벗은 알몸으로 이상한 곳에 홀로 떨어졌다.

소년은 처음에는 타고 가던 기차가 탈선사고를 내서 자신만 홀로 멀리 튕겨 나왔다고 생각했다. 또는 북한에서 핵무기를 발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힘들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살펴본 결과 전혀 그게 아니었다.

가끔은 조우될 위기에 처했던 심마니나 땅꾼 그리고 나무꾼의 행색으로 쉽게 결론을 내렸다. 자신은 아주 이상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황당하게도 자신이 어린소년으로 변해 있었다.

‘이런 황당한 일이 나에게 벌어지다니.’

괴사에 놀라던 소년은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편하게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외국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외계인의 농간으로 어려지는 변신과 동시에 괴이한 곳으로 보내졌다고 이해하게 됐다.

물론 쉽게 내린 결론은 아니다. 너무도 황당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미치도록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외계인의 농간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그리 확정해 버렸다.

소년은 자신이 이곳에서 보낸 며칠간의 시간을 뒤돌아보며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판단했다.

‘과거인지 미래인지 지구인지 다른 행성인지 모르나 여기는 조선시대와 똑 같아 보여.’

소년은 적진으로 침투해 살아남기 위한 군사훈련을 오래 받았다. 군인으로 오래 보낸 그는 매사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 아주 단순 명료하게 사는 것이 익숙했다.

그래서 자기에게 처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시대가 다르다 뿐이지 적진으로 침투한 것은 똑 같아.’

소년이 그나마 천만다행이라는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은 이 지역의 산악 지형에 대해 아주 잘 안다는 점 때문이다.

특수부대에서 수없이 반복된 강훈련을 통해 산세나 오래된 지명들을 숙지했다. 더구나 여기는 여러 번이나 찾아와서 등산을 해보았던 곳이다.

이곳 죽령지역 남쪽 경상북도 북부지역으로 침투하는 적을 소탕하는 임무를 부여 받았었다. 그리고 유사시 북한으로 들어가 철도나 교량을 파괴하라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각종 게릴라 훈련을 반복적으로 해왔었다.

산악게릴라란 적진으로 침투해 사람들과 조우되지 않도록 은밀하게 활동한다. 그래서 대부분 산의 능선을 타고 필요한 곳으로 이동해 비밀스럽게 작전을 수행한다.

그런 특수부대원 생활을 오래해 그는 며칠을 걸쳐 이동하면서도 남의 눈에 뜨이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러니 비록 시대가 너무 달라져 지형지물이 다르지만 변하지 않는 산간지역은 잘 알 수 있었다.

‘충청도에서 보급했으니 북쪽으로 가다가 죽령을 통해 경상도로 넘어가야 되겠어.’

이렇게 생각한 소년은 이곳 지형보다 더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는 경상도 풍기 지역으로 이동할 방법을 생각했다. 여차하면 그쪽을 통해 강원도로 가서 산적 질을 하거나 또는 화전민으로 살아갈 계획이다.

적진에 침투해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중 부득이 민가로 들어가 보급품을 챙길 경우가 있다. 그때는 반드시 최대한 멀리 벗어나야 안전이 보장된다.

복합적인 이유로 소년은 다음 행동 수칙을 마음속으로 정했다. 일단 적진에 들어와 아주 기본적인 보급품을 확보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제일 큰 문제는 식량이다. 그게 확보되지 않고는 체력을 유지하지 못하니 움직이기가 곤란했다.

‘최대한 식량을 확보해야 해,’

이런 생각으로 소년은 사용하고 남은 여자 저고리를 펼쳐 가지런히 길게 접어 단단히 감쌌다. 제일 중요한 물건이라는 생각으로 그는 식량을 감싼 보퉁이를 저고리를 벗고 등에 질끈 동여맸다.

다음으로는 야지에서 노숙할 경우를 대비했다. 그래서 이슬이라도 피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무명치마를 차곡차곡 길게 접어 그것도 등에 동여맸다.

그는 이곳으로 떨어진 다음날 내린 강한 폭우로 산속의 바위틈에서 벌거벗고 지냈다.

‘비를 피해야 해.’

그때 죽다가 겨우 살아났다 싶을 정도로 심하게 고생했다. 그래서 무명치마라도 이용해 비를 피해보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년은 다시 저고리를 입고 나서 어색한지 슬쩍 살폈다.

“됐어!”

별로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제야 다시 지게를 지고 서서히 이동했다. 한손에는 낮을 들고 한 손에는 작대기를 들었다. 그렇게 해서 유사시 조우되는 적을 공격하기 쉽도록 대비했다.

지게는 한쪽 어깨에만 걸쳐 언제라도 쉽게 벗어버릴 수 있도록 하고 새끼줄은 허리에 칭칭 감았다.

‘잘한다고 했지만 약간 이상하긴 해.’

잠시 더 좋은 방법이 있나 생각해봐도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적진에서 보급투쟁을 마친 소년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사삭 사사삭

자신이 머물던 자리의 흔적을 빠르게 지웠다. 주변의 낙엽으로 발자국의 흔적을 은폐했다. 그는 산의 낮은 능선을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두리번 두리번

혹시 주변에 누가 있는지 수시로 정찰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 때문에 오랜 시간을 보내며 걸어도 그리 멀리 이동하지 못했다.

그래도 목표로 삼았던 죽령 고개를 넘어가는 길목의 산자락에 도착했다.

‘됐어, 여기가 적당해.’

주위는 긴 풀숲으로 되어 은폐하기가 아주 좋은 완벽한 곳이다. 소년은 들고 있던 낫으로 풀숲의 마른 가지를 배어 주변에 세워놓았다.

사삭! 사삭!

모든 동작들은 매우 능숙하고 은밀했다.

힘들게 이동한 소년은 죽령을 넘어가는 길이 보이는 야산에서 은신해 조심스럽게 전방을 살폈다.

벌써 오후라 죽령으로 오르는 사람은 없고 내려오는 사람들만 보였다.

멀리 보이는 고갯길의 길목에 세 명의 포졸들을 서성였다. 소년은 포졸들이 행인들을 검문 검색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흠! 저기서 포졸이 호패를 검사하는군.”

조선시대라고 검문검색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고갯길이나 또는 고을의 경계 그리고 나루터 등에는 어김없이 포졸들이 기찰했다.

경상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죽령은 교통의 요충지라 기찰이 아주 심했다. 관할 지역을 넘어가려는 범법자들이나 또는 도망친 노비를 잡기 위해 호패를 일일이 검사했다.

소년은 몸을 은신한 상태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대로는 넘기가 어려워.’

죽령고개를 통해 넘어가려면 아무래도 신분증인 호패가 필요했다. 체력이 거의 고갈되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높은 산을 통해 넘어가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소년은 자신이 아직 호패를 발급 받을 수 있는 16세가 되지 않은 어린 몸을 지녔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하초가 아직은 약간 부실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으로 판단해 자신의 현재 몸의 상태는 분명 14살이나 혹은 15살에 불과했다.

‘나는 덩치가 너무 커서 나이가 어리다고 주장해도 포졸들이 믿어주지 않겠어. 더구나 어린나이에 혼자 죽령을 넘는다면 누가 믿어.’

소년은 이제는 과거 자신의 존재를 깡그리 잊어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신분증인 호패의 필요성과 큰 키인 덩치가 새삼스럽게 인식되어 과거를 떠올렸다.

소년으로 변한 최인범(崔仁汎)은 본래의 나이가 35세다.

고교 졸업 후 지원 입대한 특수부대의 중사 출신이다. 군대에서 겁도 없이 부하가 함부로 욕하며 대들자 화가 치밀어 발로 한 대 찬 것이 크게 문제되어 전역했다.

‘인생 참 더럽네.’

사병을 가혹하게 폭행했다고 전역을 권고 받자 그대로 따랐다. 평생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으로 보람 있게 살아보려던 그로써는 참으로 허망한 사간이 벌어진 것이다. 전역하고 1년간 그동안 모은 돈으로 이리저리 관광여행이나 다니며 세월을 보냈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다 현실로 돌아오자 중얼거렸다.

“여기서는 잘 풀리려나?”

최인범은 이런 상태로 죽령을 넘긴 매우 어렵다고 판단했다. 뭔가 확실하게 안전이 보장된 이후에나 죽령을 넘을 생각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단양 쪽을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호패를 얻기 위해 누군가를 해칠 생각이 가득했다.

‘적당한 대상을 발견하면 과감하게 결행해야 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인도 불사할 태세다. 그는 위기에 처하자 자신도 모르게 특수 훈련받은 그대로 행동했다. 그의 눈빛은 매우 차갑게 변했다.

괴이한 사건으로 조선시대로 떨어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전혀 없으니 오직 자신의 힘으로 힘들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다시 굳게 다짐했다.

‘걸림돌은 무조건 제거해야 해.’

점점 냉혹하고 잔인한 성격으로 다져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