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7화 (7/519)

7화

잠시 집안으로 들어갔던 먹쇠가 바깥마당으로 나와 마을사람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해 줬다.

“젊은 선비님이 깨어났다가 다시 정신을 잃었어요.”

“뭐? 또 기절해?”

“깨어나서 진사 어르신과 이런저런 말씀을 잘 나누시더니 선비님께서 갑자기 머리가 너무 어지러운지 픽하고 쓰러지더라고요.”

이런 전갈에 박 초시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탄식을 토했다.

“허어! 선비님이 머리를 심하게 다치신 것 같군.”

“진사 어르신께서 선비님은 봉화현에서 사시는 분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냐? 다른 말씀은 없고?”

“진사 어르신께서 저보고 내일까지 선비님께서 정신이 들지 않으시면 봉화로 가서 연락하랍니다.”

이런 말에 박 초시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뜬금없이 한마디를 던졌다.

“좋은 뜻인지 아니면 상여 값이 아깝다는 뜻인지 잘 모르겠네.”

박 초시의 말에는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고 보이지 않는 뼈가 들어 있었다.

박초시는 아무래도 평소에 윤진사와 개인적으로 뭔가 쌓인 것이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자신보다 부족한 지식을 가진 윤진사에게 굽실거리려니 그게 편치 않아 서리라.

박초시의 말에 먹쇠는 먼 봉화까지 갈 생각이 아득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초시 어르신. 선비님은 금방 정신이 들겠죠?”

“그래야 되는데 큰일이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젊은 선비에 대해 관심을 표했다.

쏴아아 쏴아아.

아침이 되자 검은 비구름이 몰려오며 늦가을인데 폭우가 내렸다. 평소보다 많은 비가 내리게 되자 천먹쇠는 은근히 신이 났다.

“봉화에 안가겠어.”

한편 호랑이와 조우해 머리를 다치게 된 최인범은 윤 진사 댁의 사랑채에서 누워있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말도 도란도란 잘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사랑채에서 머물게 된 최인범은 간간히 정신이 들었다.

그때마다 노비인 오점순이 먹여주는 미음을 조금 먹고 또다시 정신을 잃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나 천먹쇠는 먼 봉화현까지 가지 않아도 됐다.

그 대신 봉화현으로 가는 길손을 수소문해 그를 통해 최인범의 집으로 연락했다. 그런 가운데 추운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늦가을의 산골마을은 조용하게 시간이 흘렀다.

한편 충청도 단양에서 죽령을 넘어 오는 길손들이 알려주는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충청도에서 넘어온 길손들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 나타났던 호랑이가 사라진 먼 산 넘어 단양의 산골에서 호환이 발생했다.

연달아 죽령 일대의 여러 고을들에서 호환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윽고 풍기 관아에서 관원들이 윤 진사 댁으로 찾아왔다. 관원들의 말에 의하면 이곳 죽령 지역은 물론 조선 천지에서 심하게 호환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조선팔도에서 호환요?”

“그렇소. 도둑들도 엄청나게 많아졌소.”

민심이 매우 흉흉해지고 있고 조선팔도에서 도적들이 극성 한다고 전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착호갑사들을 조선팔도로 보내 호랑이도 잡고 산적들도 소탕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했다.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기려고 하나 왜 이렇지?”

“설마 무슨 일이 있으려고.”

관원들은 이곳 풍기군에서 벌어진 호환 때문에 금명간 착호갑사가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한편 죽령의 서남쪽에 다른 기이한 사건이 소리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동쪽으로 높은 봉우리인 도솔봉과 흰봉산이 있는 골짜기. 경상도와 죽령을 두고 접하고 있는 충청도 단양군의 성금골에서 처절한 곡소리가 크게 들렸다.

“애고오! 애고오!”

허름한 무명옷을 입은 젊은 아낙네가 땅을 치며 처절하게 통곡했다. 가마니로 덮어 놓은 시신 앞의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너무도 구슬프게 울었다.

산발된 쑥대머리로 땅바닥을 두들기며 울고 있는 아낙네. 옆에는 이제 겨우 걸음을 걷는 사내아이가 동그래진 눈을 멀뚱거린다.

사내아이는 울고 있는 어미의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부여잡고 있었다. 아이는 너무 어려서 죽음이 뭔지 아비 잃은 슬픔과 고통이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훌쩍 훌쩍”

아이는 그저 어미가 너무 슬피 울자 따라서 울먹이고 있는 정도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마을사람들이 혀를 차고 있었다.

“쯧쯧! 저 어린 것이 어찌 살게 될지.”

“불쌍해서 어째!”

이곳 성심골은 깊은 산중에 다쓰러져 가는 허름한 초가집 몇 채가 모여 있는 두메산골이다. 그러다 보니 변변한 상여나 목관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더구나 울고 있는 아낙네의 집은 너무 가난해 죽은 남편의 초상 치를 음식이나 그 무엇도 없었다.

별 수 없이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다른 마을사람들처럼 급하게 장사를 지내야 한다. 시신을 대충 가마니에 싸서 그저 양지바른 언덕에 묻는 수밖에 없었다.

죽은 사람은 아주 가난한 평민이다. 생업으로 손바닥만 하다고 볼 수 있는 밭을 일구고 산에서 나무를 해 멀리 단양의 5일장까지 지고 가 팔고 있었다.

깊은 산속으로 나무하러 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피투성이인 시신은 너덜너덜해져 너무 처참했다.

호랑이는 백성들에게 신령스러운 산신령으로 알려져 있었다. 무서운 맹수이지만 호랑이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병들거나 혹은 늙은 호랑이가 야생동물을 잡아먹기 힘들 경우 가끔 사람이나 가축을 공격하기도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 사람이 죽자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그들은 서둘러 장사를 지내기로 정했다.

“서두르자고.”

“예.”

마을사람들은 그나마 정갈해 보이는 무명 바지저고리를 입히고 이불 호청으로 싸서 염했다. 목관이 없으니 시신을 거적으로 둘둘 말아 지게에 지고 마을 인근의 언덕으로 향했다.

마을사람들은 모조리 매장지로 정해진 언덕을 향해 허우적거리는 걸음으로 이동했다.

참으로 살기가 힘든 인생살이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꼭 자신의 미래 모습으로 느껴졌다. 삶의 자체가 너무 허망하고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대부분 낙담한 표정들로 한마디씩을 중얼거렸다.

“산다는 게 뭔지?”

“가난이 죄야.”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마을사람들 모두가 장지인 인근의 언덕으로 가자 마을은 일시에 텅비어버렸다.

이때 마을에서 가장 바깥쪽에 있는 초가집과 접한 풀숲에서 미세한 기척이 들렸다.

부스럭 부스럭

풀숲에는 몰래 숨어서 마을사람들의 거동을 유심히 살피는 벌거벗은 소년이 보였다. 머리카락은 아주 짧았다. 소년은 마을사람들이 모조리 인근의 언덕으로 가자 눈빛을 반짝였다.

‘침투 기회다!’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너무 좋은 기회다.

침투하기로 결심한 소년은 아주 익숙한 솜씨로 낮게 포복했다. 포복하는 동작이 아주 능숙해 빠르게 이동했다. 풀숲을 통과해 목표로 삼은 초가집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초가집 안으로 살그머니 들어선 소년은 싸릿대로 엮어 만든 담장 너머로 주변을 재빨리 살폈다. 아무도 자신을 주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바쁘게 움직였다.

벌거숭이 소년은 허겁지겁 좁은 마루에 널려 있는 허름한 무명옷들을 급하게 챙겼다.

남자의 바지저고리는 물론 여자가 입는 치마저고리까지 모조리 챙겼다. 그것들을 치마를 펼쳐 담고 재빠르게 동여매 등에 지고 나자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남자바지의 끝을 동여매고 그 안에 물건들을 급하게 넣었다. 옷을 입기 보다는 필요한 것을 챙기는 것이 더욱 급했다.

사사삭. 사사삭

아까부터 계속 살펴서 미리 챙길 것을 정해 놓았다. 그래서 소년의 행동은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도둑질을 많이 해본 솜씨인지 모든 동작에는 군더더기 없이 매우 익숙했다.

먹을 것이 있을 만한 투박하게 생긴 작은 항아리를 열어보고 안에 들어 있는 보리를 챙겼다.

너무 가난한 살림살이라 도둑질해갈 변변한 물건들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벌거숭이 소년은 챙겨야 할 물건이 많은 듯 이것저것을 계속해서 주워들었다.

소년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발견하고 짧게 토해냈다.

“칼과 밥!”

소년은 부엌의 가마솥에서는 깡 보리밥 뭉치를 챙겼다. 부엌칼을 챙기고 허름한 헛간에선 다소 투박한 낫을 챙겼다. 또한 흙벽에 걸린 집신 두 짝도 집어 들었다.

그것들을 모조리 챙기고 나자 소년은 다시 볏짚으로 꼬아 만든 새끼줄 뭉치까지 갈무리했다. 마지막으로는 지게와 작대기를 챙겨 한쪽 어깨에 걸쳤다.

“됐어!”

목적한 바를 모두 이루었다고 판단한 소년은 빠르게 초가에서 나왔다. 그는 아주 낮은 자세로 내달려 자신이 숨어 있던 풀숲으로 들어갔다.

도둑질을 끝낸 벌거숭이 소년은 풀숲을 통과해 산골마을에서 멀리 달아났다. 그의 뒤로 계속해서 아낙네의 슬픈 곡소리가 구슬푸게 들렸다.

“에고고고! 애고오! 나는 어찌 살라고~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이런 곡소리는 다른 아낙네의 입에서도 토해 지리라.

산비탈을 달려 빠르게 마을에서 멀리 벗어나는 소년은 비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악착 같이 살아야 해.”

호환으로 마을사람이 죽어 필요한 것을 도둑질할 좋은 기회가 생겨 천만다행이다. 소년은 마을을 떠나 아주 먼 거리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헉! 헉!”

숨이 차서 가쁜 호흡을 계속해서 토해내면서도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얼굴은 소년이나 몸은 아주 건장한 사내와 같이 큰 덩치다.

이윽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개울가에 도착했다. 주변에는 인적이 전혀 없고 산골마을에서 완전히 벗어난 먼 곳이다.

숨을 헐떡이던 소년은 그제야 지고 있는 지게를 벗으며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살기위한 짓이지만 어려운 백성의 물건을 도적질해 별로 기분 좋지 않았다.

“후유! 도적질부터 시작하다니.”

소년은 챙겨온 보리밥 뭉치를 조금씩 떼서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텅 비어 있던 뱃속에서는 빨리 가득 채워 달라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소년은 보리밥을 꼭꼭 씹어서 목구멍으로 천천히 넘겼다. 보리밥을 먹다가 조심스럽게 한손으로 개울물을 떠서마셨다.

흐르릅 흐르릅

약간 소리 내며 개울물을 마시고 또다시 보리밥을 꼭꼭 씹어 먹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