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급하게 마을로 향하는 먹쇠의 모습을 보자 한때 착호갑사를 따라 호랑이 사냥하러 다녔던 임영팔은 빙그레 웃으며 크게 외쳤다.
“먹쇠야! 그러다 불알 떨어진다.”
“호! 호! 아저씨도 참!”
“점순아! 아기씨도 빨리 모셔!”
옆에서 소리 내어 웃고 있던 점박이인 젊은 아낙네는 임영팔의 호통에 바쁘게 움직였다. 거품 품으며 혼절해버린 아기씨를 업고 빠르게 마을로 향했다.
주변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니 두려움이 생긴 점박이 아낙네의 발걸음도 무척 빨랐다.
마을사람들은 송아지를 물고 사라진 호랑이보다는 아기씨의 안전을 위해 몰려왔다. 목적은 달성한 셈이라 모조리 마을로 향했다. 마을사람들은 호랑이가 뒤에서 나타날까 너무 두려워 그런지 계속 징이나 괭가리를 요란하게 두들겼다. 남의 목숨도 중하지만 내 목숨도 중하니 정신없이 두드리며 내달리고 있었다.
째재재쟁. 째쟁. 쾡! 쾡!
긴 논두렁을 빠르게 달려가는 마을사람들의 뒤로 우렁찬 소리가 났다. 아주 멀리 보이는 높은 산속에서 외치는 호랑이의 커다란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크아아앙! 크아아앙!
창락골로 불리는 산골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솟을대문이 있는 큰 기와집.
솟을대문 밖의 넓은 바깥마당에는 많은 마을사람들이 보였다.
웅성웅성.
바깥마당의 구석구석에는 장작을 태우는 모닥불이 여러 개 보였다. 모닥불 주변에는 남녀노소로 구성된 마을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그들은 마을 주변에 나타났다 사라진 호랑이에 대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아까운 송아지를 물어갔어.”
“아이를 물고가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높은 산과 연결된 깊은 산골마을이다. 아주 오래전에 호환이 있었고 한동안 무척 조용하던 곳이다. 그런 곳에 난대 없이 무서운 호랑이가 나타나 어린송아지를 물고 사라지자 마을사람들은 겁에 질려 수군거렸다.
“빨리 풍기관아로 알려야 돼.”
“알리면 조정에서 착호갑사를 여기까지 보내려나?”
착호갑사(捉虎甲士)란 호환을 대비하기 위해 배치된 무반(武班)인 갑사를 칭한다.
마을사람들은 풍기관아로 알려 호환을 대비하자는 의견을 나누며 긴긴 밤을 지새웠다. 모두 3인들로 조를 이루어 바깥마당을 중심으로 횃불을 들고 기와집의 높은 담장 주변을 맴돌았다.
이곳 산골마을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전답(田畓)은 기와집 주인인 윤인병 진사의 소유다. 그러니 소작인들은 자신의 가족들에 안전보다 윤진사댁이 최우선이다.
“진사 어르신께서 고을 사또께 득달 같이 알릴 거야.”
“그렇겠군. 사또와 아주 친하다니 빠르게 조치를 취해주겠어.”
“아무렴.”
풍기군에서 서쪽으로 20여리 떨어진 창락골의 큰 기와집은 윤진사댁으로 불렸다. 하지만 현재 집주인이 진사는 아니고 윤인병의 조부가 진사출신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윤인병이나 그에 선친은 진사시의 향시인 초시에도 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물론 고을의 수령이나 혹은 지역의 양반들은 윤인병을 진사로 칭했다. 그 이유는 윤인병이 많은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이기 때문이다.
또한 요즈음 윤진사는 중전마마인 윤씨의 친척이라며 허세를 부렸다.
양반이자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란 윤인병은 젊어서 너무 호색하며 방종한 생활을 했다. 그런 탓인지 모르나 자식을 아주 늦게 보게 됐다. 자식이 없던 본처는 너무 속을 끓여서 그런지 일찍 병이 들어 죽었다.
그에게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 맞이한 젊은 후처에게서 어렵게 얻은 아들인 윤태길과 딸인 윤봉화가 있었다.
아들인 윤태길은 아비와 비슷한 행동을 보이며 성장했다. 머리가 아둔해서 그런지 공부하기가 너무 어렵고 서책 보길 싫어했다.
윤태길은 어려운 문과 대신에 무과를 택한다며 많은 재물을 가지고 한양으로 올라갔다. 젊은 본처를 고향에 두고 다른 여자와 딴살림을 거창하게 차려 살고 있었다. 그는 무과를 보기위한 무예 수련도 허접하게 해 뒷구멍으로 돈을 처발라 무반 벼슬을 해볼 요량이란다.
윤인병은 아들의 행동을 나무라기보다는 아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는 자신이나 아들이 미관말직이라도 해보기를 간절하게 원했다.
창락골의 마을사람들은 솟을대문 밖에서 교대로 번을 서고 있었다. 모닥불 주변에서 오늘 일어난 사건을 두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대로 별 풍파가 없이 지내던 산골마을에서 벌어진 호환은 많은 이야기를 파생시켰다.
“이제 먼 산으로 올라가 나무하기도 힘들겠어.”
“죽으려고 환장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감히 먼 산으로 가서 나무를 하다니. 어림도 없지.”
이런 말에 먹쇠는 입을 씰룩거리며 투덜거렸다.
“에이 씨! 이제 칡뿌리 캐먹기도 힘들게 됐어.”
말은 이렇게 하지만 호랑이보다 배고픔이 더 무서운 먹쇠다.
그는 날이 밝으면 호랑이가 사라진 먼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갈 생각이다. 힘들게 나무를 해 먼 길을 지게로 지고 와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산에서 칡뿌리를 캐 항상 허기진 배를 채우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는 폭포 주변에서 여자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몰래 숨어 바라보는 즐거움 또한 있었다. 그곳은 조금 따뜻한 물이 지하에서 품어져 나오는 곳이다.
아주 뜨거운 온천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미지근한 따뜻함이다.
이제 겨울이 얼마 남지 않은 늦은 가을이라 너무 추워져서 그곳으로 목욕하러 가는 여자들이 거의 없었다. 그곳은 이곳 창락골 사람들이 자주 찾는 노천 욕탕이다. 윤진사댁 사노비인 먹쇠의 유일한 잔재미는 날씨가 풀리는 내년 춘삼월이나 되어야 다시 즐길 수 있는 여흥거리다.
윤진사댁 바깥마당에 모여 있는 창락골의 마을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대부분 윤진사댁의 사랑채로 옮겨진 젊은 선비를 두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 중에 수염이 허연 노인은 매우 궁금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윤진사댁의 사노비인 천먹쇠에게 물었다.
“먹쇠야! 선비님은 깨어났냐?”
“아뇨.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큰일이야. 아까운 분이 머리를 다치면 안 되는데. 젊은 선비님은 벌써 진사시에 합격되신 분이야.”
진사란 조성에서 봉록을 받는 벼슬아치가 아니다. 하지만 진사는 지방에서는 양반으로 그런대로 위세를 부리고 살 정도는 됐다.
이제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 젊은 선비가 진사라고 하자 그 소리를 토한 노인 옆으로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의 눈에는 하늘 같이 높아 보이는 진사 나리다.
마을사람들은 대부분 강한 호기심을 표했다.
“이야아! 얼굴도 잘 생기고 어리신 분이 벌써 진사라니 대단해.”
“그럼, 나중에 우리 고을 사또로 오실 수도 있겠어.”
“당연하지. 어린 나이에 진사이시니 반드시 과거에서 장원급제 할 거야.”
진사(進仕)란 진사시를 합격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다.
진사시는 생원시와 마찬가지로 향시(鄕試)와 복시(覆試)로 구분된다.
향시는 각 지방의 관아에서 보며 복시는 한양의 예조(禮曹)에서 실시했다. 향시에 합격한 사람은 한양에서 보게 되는 복시인 회시(會試)에 응시하여 100명의 진사가 선발된다.
윤인병 진사는 풍기군에서 알아주는 대지주로 엄청난 부를 이루었다. 그러나 남에게 내세울만한 벼슬이 없었다. 말이 진사지 초시도 못된다.
그는 미천한 가문이라고 평하는 수군거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돈을 써서 어떤 미관말직이라도 한 번 해보려고 한다. 그는 벼슬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했다.
그런 윤진사의 집요한 성품과 연결되어 마을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민출신으로 아주 오래전 생진과의 향시인 초시에 열 번 이상이나 도전해 겨우 합격한 경력이 있는 노인은 뭔가 생각에 잠기더니 중얼거렸다.
“진사 어르신께서 선비님과 아기씨를 맺어보려고 하겠어.”
이런 소리에 옆에서 듣고 있던 먹쇠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에이! 진사 어르신께서 설마 아기씨를 첩으로 보내시려고요?”
“첩?”
“초시 어르신, 선비님은 상투를 틀었으니 이미 장가갔을 것이 아닙니까?”
먹쇠의 이런 응수에 노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답했다.
“이놈아! 너 같은 종놈이나 그렇지, 양반들은 장가를 가지 않았어도 출입하기 위해 그냥 상투를 트는 경우가 있어.”
“예? 그런 일도 있사옵니까?”
“그래 이놈아! 내가 보기에 선비님은 약관이 되려면 먼 어린 나이에 진사가 되었으니 그동안 죽어라 공부만 했을 것이고. 짐작이지만 분명 혼인은 아직 안했을 것 같아. 더구나 입고 있는 허름한 무명옷을 보아 부자는 아닌 분 같고. 그러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말도 있듯이 잘하면 가난한 그분과 돈 많은 아기씨는 좋은 인연을 맺어질 수 있을지 몰라.”
“그렇군요.”
노인의 자세한 설명에 주변에서 서성이는 마을사람들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마을사람이 구해온 젊은 선비의 옆구리에 차고 있던 호패를 확인했었다.
길손들이 전혀 다니지 않는 산길에서 만났다니 혹시 산적이 위장할 수 있다고 판단해 신분 확인이 우선이다.
노인은 양민출신으로 향시인 초시에 여러 번 도전해 중년이 넘어서야 겨우 합격한 경력이 있다. 학문이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아니 젊은 선비를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
이 마을에서 윤 진사를 제일 높은 분으로 평가하고 노인이 다음으로 대접 받고 있었다. 물론 학식으로야 초시도 못한 윤 진사가 노인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노인은 박중식이다. 마을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그냥 초시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외부로 나가면 박 초시라고 통했다.
초시를 했다지만 노인은 아주 어려운 살림살이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윤진사의 아들인 윤태길의 학업을 위해 서당의 훈장노릇을 했었다. 그 서당도 윤태길이 공부를 안 하고 서울로 올라가자 이제는 운영하지 않았다. 가난한 박 초시는 벌이가 없어 힘든 생활을 지속했다.
사람이란 그냥 나이를 허수로 먹는 것이 아닌가 보다. 자신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발견해 쉽게 진사라는 젊은 선비님을 판단하고 있자 더욱 궁금해서 물었다.
“초시어르신, 그래도 부자일 수 있지 않나요?”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호패에 경진생으로 적혀 있으니 이제 18살이고 옆에서 따르는 종놈도 없이 혼자서 험한 길을 가던 것으로 보아 가난한 양반으로 보여.”
“그렇군요.”
마을사람들은 박 초시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초시를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군. 역시 많이 배우신 분은 달라.’
마을사람들은 젊은 선비와 아기씨와 혼사를 맺어질 수 있다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기절한 아가씨의 안전이나 선비의 머리가 터진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마을사람들은 여전히 모닥불 주변에 모여서 서성였다. 그들은 가끔 횃불을 들고 윤진사댁의 높은 담장 주변을 돌고 있었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온 누리가 점점 밝아졌다. 집안이나 짚더미에서 잠자던 개들이 튀어나와 마당이나 들판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옥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제 마을의 아낙네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서 아침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항상 하는 일이다.
추운 곳에서 떨며 날을 새운 남정네들에게 따뜻한 깡 보리밥이라도 해먹이려고 조금 이르게 일어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