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여자들은 무척 호감이 가는 젊은 선비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쪽진 머리로 검은 치마에 흰색 저고리의 무명옷을 입은 점박이 아낙네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아기씨! 저분 조금 이상하네요.”
“뭐가?”
“죄를 지은 사람처럼 우릴 피하는 것 같아요.”
이런 돌연한 점박이 아낙네의 말에 비단으로 만든 치마저고리를 입은 아기씨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퉁명스럽게 응수했다.
“죄라니? 내가 보기에는 타지 분이라 길을 잘 몰라 저러시는 것 같은데.”
자신의 눈에서 강한 빛을 발할 정도로 호감이 가는 너무도 잘 생긴 젊은 선비다. 그런데 점박이 아낙네가 약간 요상하게 혹평했다.
아기씨는 다소 짜증나서 나무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기씨의 매우 불쾌한 표정에 점박이 아낙네는 속으로 기겁했다. 가끔은 매우 까칠한 성깔을 보이는 아가씨의 비위를 상하게 하면 후환이 너무 두렵다.
‘찍히면 큰일이야.’
그런 사태를 모면하고자 점박이 아낙네는 순간적으로 잔머리를 굴렸다. 그래서 자신들과 멀어져 길도 없는 깊은 산속으로 향하는 선비를 보며 크게 외쳤다.
“선비님! 그쪽으로 가시면 길이 없어요. 마을로 가시려면 이쪽으로 가야해요.”
그러자 아기씨는 만족한 것인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기씨는 어떻게 해서라도 마음에 드는 선비와 좋은 인연이 생기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몰래 숨어서 알몸을 보았던 여자들과 마주치는 것이 조금은 민망했다.
젊은 아낙네의 커다란 외침에 발걸음을 더욱 빨리 산속으로 옮겼다. 그러나 불과 몇 발자국을 가지 못하고 말았다.
‘에이, 더 못가겠네.’
높은 바위가 가로막고 길이라는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뒤로 돌아섰다. 자신의 폭포에서 했던 치졸한 행동을 여자들이 안다면 길을 알려줄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이 전혀 모르는 것 같아.’
모르면 죄가 아니듯이 방금 전에 벌인 일은 자신만이 아는 사실이다. 더구나 지금은 꿈속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니 안심이다.
다소 안심이 되자 천천히 여자들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여자들이 향하는 곳은 분명 자신이 가고자 했던 꿈속의 세트장으로 생각되는 산골마을이 분명했다.
‘뒤만 따라가면 되겠어.’
20미터 정도 앞서 가는 여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여유롭게 걸었다. 여자들의 뒤를 따라가던 그는 불연 듯 아까 보았던 홀라당 벗은 알몸들이 떠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엉덩이에 커다란 점이 있던 여자가 소리쳤어. 얼굴에 애교점도 있고 야하게 생긴 모습과 달리 친절해.’
폭포에서 젊은 여자들의 벌거벗은 알몸을 너무 자세하게 봤다. 그래서 그런지 무명옷으로 가려진 두 아낙네들의 엉덩이가 유달리 씰룩거려 보였다. 걸음걸이의 평소 습관인지 아니면 뒤에서 따라오는 남정네가 의식되어 그런지 모르지만.
묘하게 사내의 마음을 흔드는 요상한 걸음걸이다. 문뜩 늘씬한 모델들이 엉덩이만 흔들며 걷는 광경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엉덩이에 큰 점이 있던 아낙네는 특히 허리를 미묘하고 요란하게 비틀며 걸었다. 그런 자극적인 뒷모습을 보자 아래에서 다시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너무 건강해도 탈이야.’하며 불끈거리는 느낌을 애써 억눌렀다.
앞서가는 점박이 아낙네는 가끔 얼굴을 뒤를 돌려 미묘하며 야릇한 미소를 엷게 지었다.
‘혹시 저 여자가 뭘 아나?’
폭포에서 들키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했지만 어쩜 여자들이 자신을 봤을 수도 있었다. 또는 폭포 주변이 아주 조용했으니 최소한 발자국을 들었을 것이다.
불현듯‘잘못하면 호랑이굴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지 조금 불안했다.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며 세 명의 여자들을 따라 산골마을로 향했다. 허우적거리는 걸음으로 여자들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가끔 두통이 찾아오면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강하게 문질러봤다.
아름드리나무가 빼곡한 산길을 막 벗어날 무렵·······.
여자들을 따라가다가 문뜩 몰골이 송연해지는 무섬증이 생겼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생기자 조심스럽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신경을 곤두 세워서 그런지 진한 피비린내가 코를 강하게 자극했다. 그래서 산골마을로 향하던 발길을 멈추고 서성였다.
그러는 사이 젊은 여자들은 점점 멀어졌다.
스르륵 스르륵. 사사삭. 사사삭.
어둠이 가득해지는 깊은 숲속에서 뭔가 커다란 것이 은밀하게 움직이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뭐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숲길에서 일어난 이런 괴이한 현상.
머리카락이 바짝 곤두서고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전신을 휘감자 그 자리에서 바짝 얼어붙어 버렸다. 아래가 바짝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후덜덜덜.
그렇지 않아도 기력이 모두 고갈되어 휘청거리던 몸이다. 어느새 알 수 없는 심한 무서움까지 합쳐져 더욱 요란하게 떨렸다.
양쪽다리는 사시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심하게 떨리듯이 부들부들 마구 흔들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간덩이가 크다는 소리를 듣고 살지 못했어도 소심한 겁쟁이는 절대로 아니다.
달달달.
뭔지 모르지만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입이 떨어지진 않았다. 한 번 생긴 몰골이 송연해지는 공포감은 짧은 순간에 점점 높아졌다. 도저히 발걸음을 옮길 수 없을 정도로 겁이 났다. 두 다리에 자동 마사지 기계라도 설치한 것처럼 마구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앞으로 이동하려고 해도 전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왜 이래?’
꿈속에서 가위에 눌리면 죽어라 뛰어가도 제자리에서 뛰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아마도 자신은 지금 꿈속에서 벌어지는 그런 상태리라.
이때 어두운 숲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던 커다란 무엇이 소리를 크게 냈다.
‘크르릉 크르릉’토해내는 포효에 기겁했다.
너무 무서워지자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뒷걸음을 쳤다.
아주 커다란 맹수가 ‘크아아앙!’하는 괴성과 함께 자신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정신이 흐릿해 여전히 꿈속이라고 생각해 엉겁결에 크게 외쳤다.
“저리 가!”
힘주어 크게 소리치면 꿈속에서 깨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악을 쓰듯이 크게 외친 것이다. 그러자 달려들려던 맹수는 거짓말처럼 뒤로 돌아 어슬렁어슬렁 숲속으로 사라졌다. 숲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맹수는 초저녁의 달빛으로 그 자태를 흐릿하게 나타냈다. 얼룩덜룩한 맹수는 뭔가 커다란 짐승을 입에 물고 있었다. 동물의 세계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보던 호랑이가 분명했다.
‘헉! 호랑이!’
비록 꿈속이지만 자신이 무서운 호랑이와 마주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겁에 질려 다시 주춤주춤 뒷걸음쳤다.
후들후들.
다리가 더욱 심하게 떨렸다. 아직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크게 놀라자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무서운 호랑이는 이미 멀리 사라졌다. 하지만 너무 겁에 질려 뒷걸음치다가 4-5미터 가량 높이인 절벽 아래로 뚝 떨어지고 말았다.
“어! 어어!”
쿵! 철퍼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떨어진 곳은 작은 자갈들이 가득한 개울이다. 강하게 떨어짐과 동시 큰 자갈에 머리를 찌어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뒷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철철 흘렀다.
기절하려는 마지막 순간.
이제 꿈속에서 완전히 빠져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꿈은 그렇게 끝나기 때문이다.
‘깨어나면 풍기나 영주역이겠어.’
와글와글.
최인범이 절벽에서 떨어져 쓰러진 직후 산골마을에서 많은 마을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손에는 횃불과 죽창 또는 둔탁한 몽둥이를 들었다. 일부는 요란한 소리가 나는 징이나 괭가리를 들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산자락을 막 벗어나 산골마을로 향하는 개울가의 긴 논두렁에 서있는 세 명의 여자들에게 급하게 다가왔다.
30여명의 마을사람들 중에 덩치가 우람하고 턱수염이 수북한 중년사내가 선두에 있었다. 그는 소작인들을 관리하는 큰 마름인 임영팔이다.
그는 아기씨를 향해 하리를 숙여 인사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기씨! 어디 다치지 않았어요?”
“다치다니? 무슨 일인데?”
“아기씨! 방금 호랑이가 나타나 어린 송아지를 물고 이쪽으로 달아났어요.”
“호랑이요?”
아기씨는 방금 들었던 포효소리가 호랑이 울음이라는 사실을 알자 너무 놀랐다.
“악!”
너무 놀란 그녀는 짧은 비명을 토했다. 눈이 커서 그런지 유난히 겁이 많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떡 벌리더니 스르르 옆으로 쓰러졌다. 그녀의 고운 입에서는 허연 거품이 흘러나왔다.
옆에 서있던 두 젊은 아낙네들도 호랑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와 동시에 귀하신 아기씨가 거품을 품으며 쓰러지자 비명처럼 크게 외쳤다.
“아기씨!”
쓰러지는 아기씨를 급하게 부축한 젊은 아낙네는 손가락으로 개울을 지목하며 임영팔에게 크게 외쳤다.
“마름아저씨! 저쪽에 선비님이 쓰러져 있어요.”
“뭐?”
놀란 임영팔은 개울을 향해 급하게 달려 다가갔다. 그는 허리를 굽혀 쓰러져 있는 최인범을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그러나 이미 완전히 기절한 상태다. 뒷머리에서 붉은 피가 흐르는 모습을 보자 너무 급했다.
임영팔은 다른 사람을 향해 큰 목소리로 지시했다.
“먹쇠야! 빨리 업고 가!”
“예!”
건장한 젊은 청년인 먹쇠가 개울로 급하게 다가갔다. 그는 땅에 쓰러져 기절해 있는 최인범을 업고 마을을 향해 내달렸다.
힘이 좋은 먹쇠는 가뿐하게 업고 ‘다다다’하며 빠르게 달렸다. 머리가 터져 붉은 피를 철철 흘리는 선비를 구해야 한다.
겁이 많은 먹쇠는 그보다 호랑이가 나타난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선비를 업고 뛰는 먹쇠의 발걸음은 무척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