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높은 고갯길인 죽령(竹嶺)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죽령은 멀리 삼국시대(三國時代)부터 각국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심하게 다투던 군사적인 요충지다. 심산유곡인 이 지역은 전설도 많았다.
충청도와 경상도 그리고 강원도를 이어주는 아주 중요한 교통의 중심인 높은 고개. 그러나 한양으로 올라가는 과거(科擧) 길로 죽령은 환영받지 못했다.
죽령(竹嶺)으로 넘어가면 과거에서 대나무처럼 미끄러져서 죽을 쑤고, 추풍령(秋風嶺)으로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했다. 그런 속설들 때문에 경상도 지역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려면 대부분 문경(聞慶) 새재를 넘어가기를 원했다.
문경을 지나서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시험을 보게 되면 ‘새처럼 하는 높이 오르게 되는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다.’고 굳게 믿었다.
번쩍! 번쩍 과과광! 과광!
갑자기 희고 긴 새털구름만 보이는 청명한 높은 하늘에서 번쩍이며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두 번이나 연달아 들리는 천둥소리에 백성들은 매우 놀랐다.
“어! 비가 오려나?”
“천둥이 요란하니 비가 많이 오겠어.”
이런 현상이 벌어지자 나이 많은 농부는 늦가을에 많은 비가 내릴 아주 좋은 징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런 기이한 현상은 깊은 산중에서 벌어져서 그런지 그리 많은 백성들이 알지는 못했다.
이무렵 자연현상에 아주 예민한 야생동물의 경우 빠르게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기거나 급격하게 다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쿠엑! 어흥! 찍찍!
죽령지역의 깊은 숲에서 살던 놀란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요동쳤다. 괴성을 지르며 이리 저리 날뛰고 천지사방으로 도망쳤다. 백수들의 왕인 호랑이 역시 너무 놀라 빠르게 움직였다.
특히 벼락이 땅으로 내려친 죽령을 중심으로 두 곳에서는 이상한 사건들이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발생했다.
아름드리나무들의 잎들이 누렇게 변한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깊은 산중의 골짜기. 주위는 온통 크고 작은 수많은 바위로 이루어진 좁은 계곡.
졸졸졸.
커다란 바위 틈사이로 굽이굽이 흐르는 맑은 물이 빠르게 흐르다가 작은 웅덩이를 이루는 곳.
웅덩이 옆에 쌓여 있는 굵은 모래더미 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청년이 쓰러져 아주 가늘게 몸을 꿈틀거렸다.
“으으음 으으음.”
스러져 있는 청년은 계속해서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간간히 토해냈다. 하지만 아직은 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주변은 새나 벌레 그리고 산짐승들이 내는 소음들도 전혀 없이 고요하기만 하고.
이윽고 시간이 한참을 흐른 뒤·······.
고요하기만 하던 숲속에서 작은 소음들이 들렸다.
천둥번개에 놀라 주변에서 멀어졌던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작은 새들이 ‘찍! 찍! 찌리릭!’하며 울부짖었다.
스르륵.
한동안 기절한 상태이던 벌거숭이 청년은 의식을 찾은 듯이 힘들게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청년은 흐릿해진 시선으로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봤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자 검게 타버린 굵은 나무와 긴 풀들이 보였다. 청년의 주변 10여 미터는 마치 벼락을 맞아 작은 산불이라도 났던 모습과 같이 검게 변해 있었다.
청년은 인적이 전혀 없는 곳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살펴보곤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찌릭찌릭!
작은 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청년은 아직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숲속에서는 이름 모를 산새들이 ‘찌르륵 찌르륵’하며 지저귀고, 간간히 멀리서‘그르렁 그르렁! 쿠웅! 쿠웅!’하는 야생동물의 거친 울음소리가 들렸다.
‘꿈인가?’
청년은 살며시 든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흐트러졌던 정신을 온전히 차린 뒤, 꿈이 아니라는 사실에 ‘허걱!’하며 깜짝 놀랐다.
이곳은 지금까지 살면서 와본 기억이 전혀 없는 곳이다. 더구나 사극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봄직한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 붉어진 단풍나무가 가득한 심산유곡.
자신의 주변만 검게 탄 다소 괴이해 보이는 너무도 이질적인 모습. 이상한 장소에 자신이 혼자 쓰러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청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청년은 다시 ‘여기가 꿈속인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곤 바짝 마른 입술을 혀를 내밀어 빨며 중얼거렸다.
“쩝! 살다보니 요상한 꿈도 다 꾸네!”
꿈속이라고 생각하면서 타는 목마름으로 청년은 서서히 몸을 일으켜 개울물에 손을 담갔다.
“앗! 차가워!”
늦가을의 개울물이라지만 손이 시리다 할 정도로 너무 차갑다.
“흐르륵 쩝!”
차가운 개울물을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떠서 천천히 목을 축이던 청년은 물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또 다시 놀라고 말았다.
“헉! 이게 누구야?”
물 위에 비친 영영 돌아갈 수 없는 아주 어렸을 때의 얼굴.
너무 놀란 청년은 보고 또 보아도 아주 오래전에 자신의 얼굴이 틀림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하며 골몰하게 생각하는 순간 머리가 띵하며 심한 현기증이 생겼다.
청년은 이내 자신의 어려진 얼굴을 보자 모든 일들이 꿈속에서 벌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저 뇌리로만 스치는 생각이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늦가을의 계곡에서 부는 찬바람. 간간이 들리는 괴이한 산짐승들의 소름 돋는 울음소리, 그리고 양손과 입으로 느껴지는 싸늘한 계곡물.
‘이상하네.’
모든 것들이 꿈속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했다.
너무 어려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청년은‘꿈치고는 희한한 꿈이야!’라고 생각하며 그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헉! 미쳐!”
황당하게도 아래에는 굵고 긴 물건이 하늘을 향해 곧추서서 덜렁거렸다. 벌거벗은 몸은 약간 벌게져 있고, 마치 여자와 진하게 정사를 벌이고 나서 막 사워하기 위해 서있는 모습과 같았다.
자신이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외진 숲속에 있다는 사실을 두고 청년은 다시 꿈속이라고 생각해 중얼거렸다.
“살다보니 별 개꿈도 다 꾸고, 내가 그동안 너무 굶주려서 이러나?”
꿈속치고는 너무 괴이했다.
청년은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며 아주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괴이한 일이다.
자신이 벌거벗은 모습이라 누가 볼까 매우 두려웠다.
인적이 전혀 없는 외진 곳이라지만 자신이 완전히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남에게 들키면 정말 큰일이다. 이런 모습을 남들이 보면 미친놈 취급당하기가 십상이다.
‘미치고 환장하겠네.’
청년은 아래에서 덜렁거리는 흉측한 물건이라도 가릴 것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어! 저게 뭐지?”
청년은 20미터 정도 떨어진 풀숲에 있는 허연 물체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다가갔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후들거렸다.
머리도 띵하니 술에 만취해서 몽롱해진 것처럼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내가 왜이래?’
청년은 마치 며칠이라도 굶은 것처럼 너무 허기졌다. 배가 너무 고파 먹을 것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몸을 가리는 것이 최우선이다.
풀숲에 허옇게 보인 물체는 자신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옷이다.
‘뭐야! 옷이 한복?’
청년이 풀 위에서 집어든 옷은 무명으로 만든 바지저고리와 속적삼과 속고의, 버선, 대님, 가죽신들이다. 두루마기와 흑립인 갓도 있었다. 옷 아래에는 무명인 괴나리봇짐도 보였다.
사극에서나 보던 조선 시대의 옷들이라 너무 괴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극은 아주 좋아하던 청년은 그래서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여기서 사극을 찍나?’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전통한복들이라 잠시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청년은 우선 급한 마음에 옷들을 주섬주섬 걸쳤다. 평소에 별로 입지 않는 전통한복이라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충 두루마기까지 입고 나서 갓을 쓰려다 보니 머리카락을 만지게 됐다.
“어라? 상투가 달렸어.”
황당하게도 자신의 머리카락이 상투를 튼 형태다.
청년은 놀랍기도 하며 동시에 더욱 괴이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너무 황당하고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흐릿해진 정신으로 일단 검은 갓을 머리에 대충 비틀어 썼다. 약간은 묵직한 느낌이 드는 괴나리못짐을 등에 짊어지고 주변을 돌아봤다.
두리번두리번.
청년의 이런 행동은 거의 습관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 산을 내려가려던 청년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몸을 슬쩍 비틀면서“뭘 빠트렸지?”하며 두리번거려 옷이 놓였던 풀숲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청년은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해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약간 신경을 쓰자 머릿속이 아주 심하게 윙윙거리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두통이 느껴졌다. 두통과 더불어 정신은 점점 몽롱한 상태로 변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뭔지는 전혀 모르나 마구 뒤엉키는 괴이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마치 두 정신이 마구 충돌하는 고통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정신을 잃을 것 같이 머릿속이 너무 아팠다. 두통과 함께 심한 현기증까지 생기니 정말 미칠 노릇이다.
청년은 너무 머릿속이 너무 아파오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뭔가 찾던 동작을 멈추고 머리통을 두 손으로 감싸서 누르며 신음을 토했다.
‘아이고! 머리야!’
술에 만취했다가 깨어날 때보다 더 심한 형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느껴졌다.
찌리릿! 찌릿!
“아고고! 머리가 빠개지네.”
전에 심했던 치통은 그저 고통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머리가 터져 버리는 것과 같은 통증이 느껴지고 그때마다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청년은 머리가 너무 아파 ‘머리통이 터져 죽은 것이 아닌가?’하며 은근히 겁이 났다. 한참을 심한 두통으로 시달리다 고통이 약간 멈추자 다시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어! 이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