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힌 왕자님-10화 (10/24)

10장 아스터의 마음

“마리안.”

마리안은 뜨거운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다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아스터가 마리가 아니라 마리안이라고 불렀기 때문이었다. 언제나처럼 다정하지만 어딘가 평소와 울림이 다르게 느껴졌다.

“네.”

그래서 마리안은 작게 대답했다. 아스터를 여전히 뒤에서부터 끌어안고 있는 채였다.

아스터는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어깨에 닿아있는 마리안의 한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우리 여기서 나가자.”

마리안은 작게 숨을 삼켰다. 오늘 그녀가 종일 생각했던 문제였다.

칼멘의 마차에 숨어들기 전까지, 그리고 숨어든 이후로 내내 생각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스터와 함께 이 망할 성채와 탑에서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었다.

아스터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마리안이 조용히 듣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천천히 말했다.

“물론 당장은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제는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오늘 그 생각을 했어요.”

마리안은 아스터의 등을 감싸 안은 팔을 풀고 그의 정면으로 다가가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똑같은 생각을 한 거네.”

아스터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리안은 그 미소를 보며 따라 웃으려다가 문득 생각난 것을 물었다. 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아스터, 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뭐든지 물어봐.”

아스터는 여전히 다정하게 마리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전에는 한 번도 탑에서 나갈 생각을 해보지 않았나요?”

“응.”

“어째서요? 몇 년이나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벗어나서 뭘 해야 할지 알지 못했으니까. 갈 곳도 없고 찾아갈 사람도 없는데 내가 홀로 어디서 뭘 할 수 있었겠어.”

아스터의 대답에 마리안은 잠시 어떤 얼굴을 해야 좋을지 몰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은 생각이 바뀐 거죠?”

“그래, 너와 함께 이곳을 떠나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어.”

마리안은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말에 잠시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터와 함께 떠난다면 멀리 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녀는 르샤베 왕국을 떠나야 할 것이다. 왕국의 어디에도 아스터와 함께 살 수 있는 곳은 없을 터였다.

아스터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마리안의 얼굴을 바라보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한 올 뒤로 넘겨주었다.

“마리가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떠나지 않아도 괜찮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무조건 여기서 떠나야죠. 그리고 안전하려면 가능한 한 먼 곳으로 가는 게 좋겠어요. 어디든 먼 곳에 있는 다른 나라로 나가도 좋을 거고요.”

“난 그렇게까지 멀리 떠날 생각을 한 건 아니야.”

마리안이 그 말에 의아한 표정을 하는 것을 보고 아스터는 단호하게 말했다.

“마리, 난 본래의 내 자리를 되찾고 싶어.”

“…….”

이번에야말로 마리안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본래의 자리…….”

“그래, 이 나라 왕세자의 자리.”

아스터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마리안은 갑자기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왕이 되고 싶으세요?”

자신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려서 마리안은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스터는 왕자님이었고, 왕세자에게 없는 신성력을 지니고 있었다. 왕좌에 오를 능력을 갖춘 아스터가 자신의 자리를 되찾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게 마리안에게는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였다.

“그것까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난 처음에는 클로타르가 마리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면서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여기를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봤지. 처음에는 마리의 말처럼 먼 곳, 어쩌면 외국으로 도망치는 것도 생각해 봤어. 하지만 내가 어째서 그래야 하지?”

마리안은 그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왜 도망쳐야 하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다들 어떻게 해서든 날 이곳에 가둬두려 하겠지. 그렇다면 내 자리를 찾는 방법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멀리 떠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될 거예요.”

마리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스터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매우 어려운 일이 되겠지. 하지만 내가 본래의 자리를 되찾는다면 마리가 나 때문에 평생 도망 다니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 말에 마리안은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아스터, 설마 저를 위해서 당신의 자리를 찾겠다고 생각한 건가요?”

“당연하잖아.”

마리안은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손을 쥐어뜯었다. 정말로 그녀는 아스터의 말에 당장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마리안을 보며 아스터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마리를 좋아해. 아니, 분명히 사랑하고 있어. 그러니 클로타르나 칼멘 후작 같은 이들이 마리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마리가 우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아.”

그는 마리안의 눈가에 아직 맺혀있는 눈물을 가리키며, 살며시 그녀의 눈꼬리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아스터…….”

“마리가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클로타르를 보는 모습 따위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클로타르가 영원히 나를 놔주려 하지 않겠지. 그리고 나를 괴롭히려고 마리를 괴롭힐 거고.”

아스터의 눈은 거짓 한 점 없이 맑고 진실했다. 그가 자신을 위해 이런 결심을 했다는 말에 마리안은 들을수록 놀랍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해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내가 마리를 지켜줄 수 없잖아. 분하지만 나는 아무런 힘도 없으니까.”

마리안이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당신의 자리를 빼앗은 사람들에게 되갚아 주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요?”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 거라면…….”

아스터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아. 내가 굳이 나서서 복수해야 할 정도로 그들은 내게 가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하지만 딱 한 가지는 클로타르에게 해줘야 할 게 있어.”

“그게 뭔가요?”

“마리안을 때린 클로타르의 뺨을 열 배로 후려쳐 줄 거야. 마리안에게 함부로 군 죗값은 제대로 받아야지. 앞으로 그 누구도 널 함부로 할 수 없게 할 거야.”

마리안은 그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아스터가 정말로 화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그토록 자신을 생각해 준다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따스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마리안의 얼굴은 곧 다시 진지해졌다.

아스터가 지금까지 겪은 고통과 학대, 무관심과 방치의 나날들은 말로 형용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마리안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클로타르의 뺨을 후려쳐 주고 나면 아스터는 그를 용서할 수 있나요? 클로타르가 당신에게 했던 일들은 제 뺨을 한 대 때린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끔찍하잖아요.”

아스터는 이번에는 마리안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마리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난 용서라는 단어를 알긴 하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어, 마리.”

마리안은 주저하다 다시 물었다.

“복수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면서요. 그럼 당신은 클로타르가 지금까지 저질렀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나요?”

아스터는 고개를 한 번 젓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난 그런 생각 같은 것은 해보지 않았어. 내가 굳이 복수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해서, 클로타르나 나를 여기에 가둔 사람들이 한 일을 없던 일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대체 왜 그래야 하지?”

그 질문에 마리안은 아무 말도 대답하지 못했다.

“난 단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너와 함께 있고 싶을 뿐이야. 물론 네가 나와 함께 있어줄 마음이 있어야겠지만.”

아스터는 마리안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그러니 내 곁에 있어주겠어?”

마리안은 눈앞에 내민 아스터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의 의향을 물으며 내밀어 준 손이 마리안에게는 무척이나 특별하고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마리안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스터의 손을 잡아 그의 손가락 사이에 자신의 손을 깍지 끼워 넣었다.

“전 이미 말한걸요. 당신 곁에 있겠다고.”

그 말에 아스터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스터는 마리안이 자신을 마주 보도록 끌어안았다. 다른 한 손으로 허리를 감싸 안으며 가까이 끌어당기는 바람에 마리안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스터의 눈이 선명하게 보였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그러나 놀랍도록 순수하고 맑은 금색의 눈동자를 보자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너에게 키스하고 싶어, 마리.”

마리는 그 말에 몸을 앞으로 좀 더 내밀었다. 눈을 꼭 감고 입술을 내밀자 아스터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한층 더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마리안은 가만히 기다렸다.

곧 부드러운 입술이 마리안의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그 느낌에 마리안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눈을 떴다. 여전히 맑은 금안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리안은 그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정말로 이제는 아프지 않은 거죠?”

“그래. 봤잖아. 이미 거의 다 나았어.”

마리안은 그 말에 두 팔로 아스터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번에 클로타르 때문에 하지 못했던 걸 마저 해요.”

아스터가 놀란 눈으로 그녀의 푸른 눈을 한동안 말없이 응시했다. 그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자 마리안은 어쩐지 민망해졌다.

“그렇게 제 얼굴만 바라볼 건가요?”

“그게…….”

아스터가 갑자기 말하다 말고 시선을 돌렸다.

마리안은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고 웃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금 아스터가 그녀의 눈을 응시했을 때 마리안은 자신의 뺨도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까까지는 무척 맑게 느껴졌던 금빛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처럼 그녀를 뜨거운 눈길로 보고 있었다. 그런 뜨거운 눈으로 보는데 얼굴이 달아오르지 않을 리가 없었다.

더욱이 마리안은 아스터를 끌어안으면서 맞닿아 있던 허벅지에서 불쑥 존재감을 드러내는 어떤 기척을 느꼈다.

“내가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지 모를 거야.”

아스터가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이 순간을 갈망해 왔다. 자신을 바라보는 마리안의 따뜻한 눈빛을 깨닫고 그녀의 존재에 신경을 쓰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를 좀 더 가깝게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함부로 가까이 다가가면 그녀가 도망갈 것 같아서, 그저 바라만 봤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자신을 걱정해 주고 아껴주는 그녀의 존재가 너무 행복해서 아스터 역시 웃었다.

마리안의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좀 더 힘이 들어갔다. 품 안에 가득 들어오는 그녀의 몸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받친 채 웃고 있는 입술에 다시 한번 입을 맞췄다. 아랫입술을 혀끝으로 살살 핥자 살짝 벌어진 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간 혀가 마리안의 혀를 얽어맸다.

마리안은 눈을 감은 채 아스터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이번에도 입맞춤은 달았고, 그리고 뜨거웠다.

단번에 숨이 달아올랐다. 탑 아래층에서부터 빠르게 꼭대기 층으로 올라왔을 때처럼 마리안은 가슴을 들썩이고 있었다.

마치 빨아먹을 듯이 마리안의 혀를 얽어매고 맛을 보던 남자의 혀가 아랫입술을 다시 집요하게 문질렀다.

아스터와는 몇 번이나 입맞춤을 나눴지만 오늘은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허리를 감싸던 아스터의 손이 어느덧 그녀의 턱을 쥐고 있었다. 마리안은 그가 깊숙이 혀를 밀어 넣으며 단 한 방울의 타액이라도 주지 않겠다는 듯 게걸스럽게 그녀의 입술을 빨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스터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자신의 팔에서 스르륵 힘이 빠져나갔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 그녀는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터의 손이 가슴을 움켜쥐는 감각에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뜨자 아스터가 침대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전히 타오르는 것 같은 금빛 눈동자로 그는 말없이 마리안을 바라보았다.

깊고 진한 키스로 그의 입술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모습에 마리안은 다시금 뺨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마 그녀의 입술도 저렇게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아스터의 입술은 마리안이 종종 동생을 위해 들르곤 하던 사탕 가게의 빨간 체리 맛 사탕을 떠올리게 했다. 마리안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입 안에 침이 감도는 것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러자 아스터가 달려들어 삼킬 듯이 그녀의 아랫입술을 진득하게 빨았다.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마리안은 숨이 턱 끝에 닿는 것 같아 입을 벌리고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그녀의 입술을 물고 놓아주지 않던 아스터의 입술이 마리안의 아랫입술에서 턱을 따라 오른쪽 귓불에 닿았다. 그의 숨결이 닿자 마리안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마리안이 귀엽다는 듯 아스터가 작게 웃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아스터의 손이 다시금 조심스럽게 마리안의 가슴에 닿았다.

치맛자락 사이로 잘 정돈해서 밀어 넣은 블라우스의 끝단을 살살 빼내며 부드러운 아랫배를 쓰다듬은 손길이 가슴 위로 거슬러 올라갔다.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고 풍만하고 육감적인 가슴을 그러모아 쥔 손은 매우 뜨거웠다.

피부 위에 아스터의 손길이 닿은 것만으로도 마리안은 불에 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스터가 손을 댄 곳마다 화끈거리는 감각과 함께 얼굴로 피가 쏠렸다.

아스터는 점점 붉게 상기되는 마리안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는 마리안의 입술에 한 번 더 입을 맞춘 뒤, 긴장과 흥분으로 더욱 크게 들썩이는 가슴을 어루만지고 그녀가 걸치고 있던 옷을 마저 벗기기 시작했다. 가녀린 팔에 간신히 걸쳐져 있던 블라우스를 시작으로 가슴을 가린 얇은 속옷들이 줄지어 바닥에 떨어졌다.

마리안은 이제 아스터의 앞에서 헐벗은 맨 가슴을 드러낸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잔뜩 몸을 굳히고 있었다.

그녀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으로 얼굴이 점점 더 달아올라서 고뇌하고 있었다. 지금 아스터를 도와 그가 자신의 옷을 벗기는 것을 도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거의 다 했으니까 가만히 있어.”

마리안의 고민을 눈치챈 듯 아스터가 웃으며 속삭였다.

마리안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새삼 아스터에게서는 벗겨낼 상의가 없어서 어쩐지 아쉬웠다.

아스터가 움직일 때마다 모양이 좋은 근육의 움직임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아스터는 클로타르의 오랜 학대 탓에 갈비뼈의 윤곽이 슬쩍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말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 볼품없지는 않았다.

마리안은 손을 뻗어 그의 탄탄한 가슴을 슬며시 만져보았다. 마리안이 가슴을 만지자 아스터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손이 엄청 뜨거워졌어. 알고 있어?”

마리안은 깜짝 놀라서 화들짝 아스터의 가슴을 만져보던 손을 떼어냈다. 몸이 화끈거릴 정도로 달아오른 탓에 손이 그렇게 뜨겁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자 아스터가 얼른 마리안의 손을 잡아끌었다.

“손을 떼라는 소리가 아니었는데…….”

아스터는 마리안의 귓가에 속삭였다.

“마리가 나 때문에 흥분한 거 같아서 좋아서 한 말이었어.”

“아…….”

별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인데 귓가에 속삭인 탓일까.

마리안은 아스터가 방금 한 말에 얼굴이 좀 더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 마리안이 귀엽다는 듯 아스터가 마리안의 가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읏!”

크게 가슴을 베어 무는 그의 행동에 마리안은 저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녀의 손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스터의 손도 뜨겁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왼쪽 가슴을 쥔 채 오른쪽 가슴을 베어 물어서 마리안은 크게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눈을 깜빡였다.

“전부터 말했지만 넌 어쩜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있지. 내 손에 네가 녹아버릴까 봐 겁이 나.”

손안에서 감기는 여체를 손끝으로 쓰다듬은 아스터는 황홀하다는 얼굴로 마리안의 가슴에 다시 한번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마치 화인을 찍듯 마리안의 가슴골로, 그리고 복부를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앗!”

뜨거운 입술이 배꼽에 닿은 순간 마리안은 깜짝 놀라서 몸을 떨었다.

아스터는 그런 마리안을 굽어보면서 손을 움직여 그녀의 치맛자락을 만졌다.

그는 잠시 마리안의 치마를 벗겨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보다 쉽지 않자 생각을 바꿨는지 치마를 그대로 들쳤다.

마리안은 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인근의 평민 아이들을 돌보며 공부를 가르쳤을 때, 서너 명의 소년들이 몇 번이나 그녀의 치마를 들치며 장난을 친 적이 있었다. 고작해야 여덟아홉 살짜리라 차마 크게 화를 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마리안은 소년들에게 꽤 따끔하게 야단을 쳤었다.

그런데 지금 다소 장난스러운 표정을 하며 그녀의 치마를 들쳐 올리는 아스터를 보자 갑자기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스터가 하려는 일은 어린 소년들의 철없는 장난과는 전혀 달랐다. 치맛자락을 끝까지 걷어 올린 아스터는 치맛단 아래 드러난 마리안의 아랫배에 다시 한번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길고 유려한 손가락이 한꺼번에 그녀의 속옷을 끌어 내렸다.

마리안은 몸을 잠시 경직시켰다. 순식간에 벗겨진 속옷이 무릎께에 걸려있었지만, 거기에는 신경을 쓸 정신이 없었다.

아스터가 바로 그녀의 밀부 위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젖어있었네…….”

그가 작게 속삭이는 말에 이미 홍조를 띠고 있던 마리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한참 키스를 하고 가슴을 애무받으면서 안 그래도 속옷이 젖어감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말로 지적받자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단전을 따라 허벅지 안쪽으로 쑥 들어온 아스터의 손은 몇 번이나 나긋나긋하게 마리안의 밀부를 더듬었다.

길고 유려한 손가락이 계곡을 더듬고 이미 젖어있는 꽃잎을 몇 번이나 문지르자 마리안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전에 한 번 경험해 본 일이었지만, 그 낯선 행위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리안이 다리를 오므리려고 하자 아스터는 그녀의 양쪽 허벅지를 단단히 붙잡아 벌렸다.

“가만히 있어, 마리.”

다리를 오므리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오히려 아스터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재빨리 자신의 두 무릎을 끼워 넣어 그녀가 더는 다리를 오므릴 수 없도록 막아버렸다.

마리안이 당황해서 상반신을 일으키려고 하자 그가 웃음을 잔뜩 머금은 얼굴로 마리안의 상반신을 지그시 내리눌러 몸을 일으키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마리안이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을 때였다.

“아스… 아앗!”

마리안의 부르짖음은 작은 비명으로 바뀌었다.

아까까지 그녀의 단전에 화인을 찍던 남자의 입술이 곧바로 밀부에 입을 맞췄다. 미처 상상도 못 했던 행동에 마리안은 눈을 크게 떴다.

이어서 남자의 혀가 꽃잎 위를 진득하게 핥는 순간 마리안은 숨을 삼켰다.

사탕을 녹여 먹듯이 아스터가 느릿하게 몇 번이고 핥아오는 바람에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있었다.

“아아!”

마리안은 자신의 입에서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작고 하얀 손가락이 침대 시트를 그러모아 쥐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허리를 비틀며 피하려고 했지만, 아스터의 두 팔이 마리안의 허벅지를 여전히 단단히 붙잡고 있어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리안은 온몸을 떨며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도리질 쳤다. 하반신에서부터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뜨겁게 달아올랐던 몸이 한층 더 뜨거워지면서 머리까지 말랑말랑해지고 있었다.

“흐읏!”

꽃잎의 핵을 핥던 아스터의 혀가 작게 벌어진 구멍 속으로 파고들었을 때 마리안은 그대로 숨을 들이마셨다. 부끄러움과 수치심과 더불어 찾아온 낯선 쾌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몸 안쪽에서 끊임없이 물이 흐르는 듯한 감각에 몸서리치는데 허리 아래쪽에서 츱츱 하고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의 혀가 끊임없이 부드러운 여체의 계곡을 넘어 깊숙한 동굴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스터는 은밀한 동굴 안쪽을 끊임없이 파고들며 감미로운 물을 찾았다.

아주 작게 벌어져 있던 구멍이 그가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조금씩 안쪽의 속살을 보여주고 있었다. 혀가 아플 정도로 작은 구멍을 헤집자 조금씩 애액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했다. 아스터는 갈증을 느끼며 손가락을 하나 밀어 넣어 깊고 은밀한 수원(水源)을 찾아 헤맸다.

마리안이 헉헉하고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손가락을 쉬지 않고 움직이며 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녀가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상기된 두 뺨은 저녁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스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꽃잎으로 가려져 있는 동굴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작게 벌어진 구멍 사이로 드러난 속살도 마리안의 뺨처럼 좀 더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처음에 혀를 밀어 넣을 때만 해도 단단하게 침입을 가로막던 내벽이 뭉근하게 풀어지면서 샘물이 솟듯 애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스터는 입맛을 다시며 갈증이 나는 사람처럼 입술을 댄 채 그 샘물을 마셨다. 하지만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풀어지지 않았다.

마치 클로타르에게 고문을 당하고 온 날 밤새 부르튼 입술로 물을 찾았을 때와 비슷한 갈증이었다. 그는 좀 더 많은 물을 마셔야 했다.

“마리, 마리.”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그는 손가락으로 좀 더 안쪽을 깊이 헤집으며 조급하게 마리안의 이름을 불렀다. 이런 미칠 듯한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마리안뿐이었다.

손가락 한 개를 간신히 삼켰던 동굴의 내벽이 한 개를 더 밀어 넣자 그의 손가락을 꽉 물어왔다. 하지만 손가락이 두 개가 되자 흘러나오는 물의 양이 좀 더 많아졌다.

“읏!”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마리안의 입에서는 자꾸만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아스터가 손과 혀를 사용해서 그녀의 동굴을 헤집을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들어 올려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갈증이 나서 애가 타는 아스터와는 달리 마리안은 몸 안 깊숙한 곳에 불이 붙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 불길은 마치 마리안이 동편 탑 꼭대기 방에서 난로에 처음 불을 피웠을 때처럼 연약하고 제대로 타오르지 못해서 그녀를 애타게 하고 있었다.

허리 아래쪽과 머릿속은 뜨거운데 상반신은 차가운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마리안을 괴롭게 했다. 불씨를 좀 더 피울 수만 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불씨가 잘 피어오르지 않고 있었다.

“아, 아스터.”

결국 견딜 수 없어진 마리안이 아스터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마리안은 전부 처음 겪는 것들이라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아스터에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입술을 깨문 채 이불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따금 흘러나오던 신음이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어지는데, 몸은 타는 듯이 뜨거우면서도 여전히 차가웠다.

아스터는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심해지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마리안이 너무나 달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뺨에 닿는 그녀의 부드러운 살갗과 따뜻한 체온, 그리고 달콤한 향에 취해 그는 애액으로 잔뜩 젖은 입술을 핥았다.

아스터의 머릿속에 마리안이 만들어줬던 누가 사탕이 생각났다. 마치 쉬지 않고 그 누가 사탕을 핥아먹는 기분이었다. 달콤해서 머리까지 녹는 것 같은데 갈증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그는 한참 전부터 묵직해진 하반신으로 인해 이제는 통증마저 느꼈다. 그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빳빳하게 일어선 성기에 마리안의 피부가 스칠 때마다 그는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마리안을 굽어보니 그녀가 두 손으로 침대 시트를 움켜쥔 채 허리를 비틀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여전히 붉게 달아오른 두 뺨과 전에 없이 새빨갛게 보이는 입술을 보며 아스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입술만큼이나 이제는 빨갛게 달아오른 밀부의 속살이 물을 잔뜩 머금은 만개한 꽃잎처럼 보였다. 그 속살의 안쪽이 얼마나 따뜻한지, 손가락에 들러붙던 감각이 얼마나 짜릿한지 깨달은 아스터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

그는 마리안의 입술에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뜨겁게 달아오른 붉은 입술을 파고들어 말랑거리는 귀여운 혀를 가볍게 빨았다. 그녀의 몸 어디에도 달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마리안을 전부 녹여서 삼키고 싶어질 정도였다.

키스가 깊어지자 마리안의 가슴이 전보다 훨씬 격하게 들썩거렸다. 아스터는 그런 그녀의 가슴을 한 번 쥐었다 놓으며 마리안과 시선을 맞췄다.

“지금부터 네 안에 넣을 거야.”

마리안이 침을 꼴깍 삼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아스터는 그녀의 입술에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허락해 줄 거지?”

마리안의 푸른 눈이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는 아스터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네.”

짧은 단 한마디였지만 그 말에 아스터는 갑자기 심장이 전에 없이 크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손을 뻗어 마리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바닥을 자신의 왼쪽 가슴에 올렸다.

“마리, 너 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마리안은 그런 아스터를 보며 미소 지었다. 정말로 손바닥이 닿은 곳의 심장이 거세게 쿵쿵 뛰고 있었다.

그 거센 박동이 너무나 기뻤다. 아스터가 그녀를 이렇게까지 원하고 있었다. 마리안은 아스터의 손을 잡아 그의 손등에 입술을 댔다. 그러고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대주며 말했다.

“저도 그런걸요.”

순간 상기되어 있던 아스터의 얼굴이 눈에 띄게 달아올랐다. 그는 숨을 크게 내쉬고는 말했다.

“방금 전엔 정말로 심장이 멎을 뻔했어.”

마리안은 소리 내어 웃었다.

아스터 역시 웃으며 마리안의 입술과 손과 그녀의 가슴에 차례로 다시 입을 맞췄다. 그의 입맞춤은 마리안의 가슴에서 복부로, 단전을 따라 다시 한번 밀부로 이어졌다. 뜨거운 입술이 한 번 더 밀부의 꽃잎을 진득하게 핥아 올리자 마리안은 숨을 삼켰다.

아스터는 한 번 더 입을 맞춘 뒤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조금 괴로운 듯한 얼굴로 한껏 발기한 성기를 자신의 손으로 훑어 내렸다.

이미 선액이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을 마리안은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로 바라보았다. 긴장과 기대와 두려움이 한데 뒤섞여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스터는 깊은 계곡으로 통하는 동굴 입구에 자신의 성기를 가져다 댔다. 이미 느껴본 적이 있는 뜨겁고 단단한 감촉에 마리안은 눈을 감았다 떴다.

“들어갈게. 몸에서 힘을 빼, 마리.”

대답 대신 마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의사를 표시했다.

아스터는 마리안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아주 느리게 들어왔다. 그는 마리안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마리안은 그런 아스터의 얼굴을 마주 보려고 노력했다. 황금빛 눈동자가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은 클로타르를 상대로 분노로 활활 타오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색을 띠고 있었다.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마리안은 눈을 감았다.

입구를 억지로 벌리고 들어오는 생경한 느낌에 자꾸만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의식적으로 막으며 마리안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워낙 오랜 시간에 걸쳐 아스터가 입으로 애무한 덕분인지 억지로 입구를 벌린 느낌만 아니라면 초반의 삽입은 생각했던 것만큼 아프다거나 힘겹지는 않았다.

“아!”

하지만 마리안은 자신이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손가락에는 비할 바 없이 그의 것은 너무 굵고 길었다. 아무리 몸에 힘을 빼려고 해도, 계속해서 비집고 들어오는 아스터 때문에 마리안은 숨이 막혔다.

몸이 억지로 벌어지면서 꿰뚫리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가슴을 짓누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마리안의 손이 저도 모르게 힘껏 시트를 움켜쥐었다. 붉은 입술이 공기를 찾아 한껏 벌어졌지만, 원하는 만큼 공기를 들이마실 수가 없어서 그녀의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마리, 마리.”

그런 마리안의 귓가로 아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마치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 거의 다 들어왔어. 이제 거의 다 됐어. 그러니까 힘을 빼, 마리.”

마리안은 그의 말대로 힘을 빼려고 노력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흐읏!”

아까까지는 안달하며 신음을 흘렸는데, 이번에는 고통으로 저도 모르게 소리가 새어 나갔다. 고운 미간이 잔뜩 찌푸려지고, 눈가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아스터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아스터의 얼굴은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얼굴뿐만이 아니라 그의 목과 어깨, 가슴까지 마리안의 얼굴만큼이나 붉었다.

마리안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아스터도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내밀한 동굴은 너무 깊고 뜨거웠으며, 무엇보다 그를 당장에라도 잘라 먹을 듯이 비좁았다. 억지로 좁은 곳에 성기를 욱여넣자 역시 쾌감보다는 통증이 아스터를 덮쳐왔다.

더 밀어붙이는 대신에 아스터는 마리안의 입술에 다시 한번 입을 맞췄다. 도톰한 마리안의 아랫입술을 물고, 마리안이 그에게 약을 먹여주었던 것처럼 그녀의 혀를 부드럽게 빨았다.

통증 때문에 정신이 없던 마리안은 처음에는 아스터의 키스에도 별반 반응이 없었지만, 키스가 진하고 깊어지자 곧 그쪽으로 몰두하게 되었다. 마리안의 팔이 아스터의 목을 감쌌다. 마리안은 그를 좀 더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며 눈을 감았다.

달콤하고 진득한 키스에 살살 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억지로 벌려서 안을 꽉 채운 그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아스터와 정말로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기분에 마리안은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가슴과 가슴이 밀착된 사이로 그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손을 뻗어 아스터의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얼마 전까지 피와 진물이 가득했던 그 흔적 위로 조심스럽게 손을 대서 쓰다듬자 아스터가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활활 타올랐던 아까와는 달리 이제는 달콤한 꿀물이 떨어질 것처럼 보이는 금안을 보고 있으니 새삼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괜찮아?”

“참을 만…한 것 같아요.”

걱정이 담뿍 담겨있는 목소리에 마리안은 천천히 대답했다. 그러고는 흘러내린 아스터의 금빛 머리카락 한 올을 그의 귀 뒤로 넘겨주었다. 뚫어질 듯 자신을 응시하는 아스터의 시선을 받으며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리안이 미소 짓자 아스터도 눈가를 휘며 활짝 미소 지었다. 그 얼굴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너무 좋아서 마리안은 고개를 조금 더 들어 올려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다시금 농밀한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키스가 깊어질수록 마리안은 그가 더 깊숙이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끝까지 들어왔어.”

그때 아스터가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마리안의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빨고 말했다.

마리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보다는 통증과 한계까지 벌어졌다는 느낌은 확실히 덜했다.

오히려 아스터가 살살 움직이자, 마리안은 미묘한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아직은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한 마리안의 얼굴을 세심하게 살피며 아스터가 조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성기가 부드럽게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다시 천천히 안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같은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마리안이 숨을 쉬는 것도 잊고 눈을 크게 떴다.

“아, 아앗!”

열기가 식었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마리안?”

“아, 읏!”

마리안의 그 변화를 바로 알아챈 아스터가 얼른 그녀가 몸을 떨었던 곳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느릿하게 성기가 빠져나갔다가 도로 푹 박히는 순간 마리안은 눈앞에서 불꽃이 튀는 환상을 보았다.

“아스…터.”

그녀는 고개까지 저으며 숨을 삼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면서 몸이 훨씬 더 뜨거워졌다.

아스터는 그녀의 뺨에 연거푸 입을 맞췄다. 그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한계의 한계까지 몰린 상황이었지만 지금까지는 아파하는 마리안을 생각해서 어떻게든 참아내고 있던 아스터였다.

그는 마리안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스터 자신이 아픔에 익숙했기 때문에 일부러 마리안을 괴롭게 하면서 자기만족을 채우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면서 홀로만 만족하는 행동이야말로 클로타르가 늘 그에게 하던 일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방금 전 마리안의 숨이 넘어갈 것 같던 표정에는 저절로 온몸이 반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지금은 마리안을 몰아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아, 하아.”

마리안이 가쁘게 숨을 내뱉었다.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얼굴이 한층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마리안의 숨결은 늘 달콤했지만 지금은 더욱 달았다.

아스터는 그녀의 벌어진 입술에 입을 맞추면서 숨을 삼켰다. 그는 자신의 얼굴 또한 빨갛게 달아올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몸이 너무나 뜨거웠다.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그녀의 몸에 자신을 일부 파묻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쾌감과 들끓는 열기에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스터는 뜨겁게 달아오른 두 손으로 마리안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녀의 가슴에 자신의 가슴이 납작하게 눌릴 때까지 깊이 박았다가 빠져나왔다. 그 움직임이 조금씩 속도를 더하자 마리안의 호흡이 더욱 가빠졌다.

“아스터, 아스터!”

마리안이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스터가 치받을 때마다 그녀의 목소리가 우는 것처럼 떨렸다.

아스터는 마리안이 그렇게 계속해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열락에 사로잡힌 그녀가 유일하게 자신만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과 충만감을 느꼈다.

“마리.”

그래서 화답하듯 그녀의 이름을 애정을 듬뿍 담아 불러주었다.

“읏.”

아스터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치 짓눌러 죽일 듯이 압박해 오던 그녀의 내벽이 한순간에 뭉근하게 풀리면서 아스터에게도 참을 수 없는 쾌락을 전해주었다.

점점 아스터는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허리를 움직였다.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진퇴를 거듭했다.

마리안은 열에 들뜬 채 두 다리로 아스터의 허리를 감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아스터가 더욱 그녀에게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감각에 마리안은 새되고 짧은 교성을 지르며 숨을 헐떡였다. 몸이 너무 뜨거웠다. 전신에서 땀이 배어났지만 열을 주체할 수 없어 머릿속이 점차 몽롱해졌다.

쾌락으로 물기를 머금은 푸른 눈동자에 아스터의 금안이 들어왔다. 그의 눈동자는 전에 없이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것과도 다른, 마치 용광로에서 녹아내린 황금처럼 열기를 품고 출렁이는 금빛이었다.

마리안은 멍하니 자신의 열기가 아스터에게 전해져 그를 녹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부정했다. 녹아내리는 것은 아스터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리안은 갑자기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제정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쾌감이 파도처럼 몰려와서 그녀는 허우적거리며 팔다리를 휘저었다. 자신의 숨소리가 귓가에서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전신이 이대로 활활 타버리는 것 같았다.

아스터 역시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가슴이 너무나 빠르게 뛰었다. 심장이 마치 귓가에서 쿵쿵 울려대는 것 같았다.

눈앞이 깜빡깜빡 점멸하면서 점점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가 힘들어졌다. 필사적으로 마리안을 끌어안으며 그는 숨을 쉬려고 애썼다.

절정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한계의 한계까지 그는 정신없이 허리를 움직였다.

두 사람 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지 못했다. 마리안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아스터에게 바짝 끌어 안겨져 숨을 몰아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팔을 들어 올릴 힘 하나 없었지만 애써 그의 마른 등을 만졌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로 기분이 좋고 행복해서 터져 나온 웃음이었다.

“아스터…….”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던 그가 고개를 조금 들어 마리안을 마주 보았다.

마리안은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사랑해요.”

아스터의 금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한참이나 마리안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마리안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저한테는 말 안 해줄 거예요?”

아스터가 그제야 숨을 내뱉었다. 그녀가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부터 숨조차 쉬지 못하던 그가 깊은숨을 토해내는 것을 보며 마리안은 기다렸다.

“사랑해, 마리. 정말로 사랑해.”

그리고 마침내 터져 나온 그의 고백을 들으며 마리안은 손을 뻗었다.

아스터는 그 손을 붙잡고 마리안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마리안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입맞춤은 정열적인 키스로 변해갔고, 다시 한번 새로운 열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그렇게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또다시 사랑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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