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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화 〉뒷세계 파티 (90/98)



〈 90화 〉뒷세계 파티

90화 뒷세계 파티

밤의 광장에 다녀온 후부터 한 소문이 은밀히 돌았다.
조교 실력이 대단한 괴물급 조교사가 나타났다는 소문과 덧붙여서, 밤의 여왕이 처음으로 흥분하여 하드조교를 시도했다는 내용도 끼워져 있었다.
흘러나온 소문을 제일 먼저 듣는 이는 정보상이다.

“손님 재밌게 노셨나보네요~ 광장에 나가자마자 소문이 쫙 퍼졌어요~”
“조교사처럼 연기한 것 뿐이다.”
“아항~ 근데  조교 실력이 꽤 좋았나봐요? 괴물급 조교사라는 말 이 바닥에서 듣기 어려울 텐데~”

발텐은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샅샅이 훑어본다.
그녀는 부길드장의 무릎에 베개처럼 얼굴을 눕혔다.
고양이처럼 노곤한 콧소리를 내며 턱을 올리자, 부길드장은 익숙하게 쓰다듬는다.

“다프넬에게 제대로 눈도장 찍히셨네요~”
“귀찮게 몇 번 갈 필요도 없겠지.”
“하항, 엄청 서두르시네~”

발텐은 슬금 일어나더니 쭈욱 기지개를 켰다.
상의를 입고 있지 않는 덕분에 뽀얀 겨드랑이가 드러나면서 가슴밑살이 출렁거린다.
녹색 머리칼이 길어 유두 가리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여~ 다프넬과 제대로 교류를 해야, 목걸이를 얻을 수 있어요. 손님~”

어깨를 늘어뜨려 흐아암, 하품을 하고는 손바닥을 펼친다.
부길드장은 불이 붙은 파이프 담배를 건넸고. 발텐은 담배를 피면서, 입술을 모아 연기 덩어리를 뻐금뻐금 냈다.

“대뜸 조교사로 변장하고 광장에 나가라는 이유가 있었겠지. 생각없이 네 말에 순순히 응해준 게 아니다. 정보상.”

거만하고 오만한 태도에 이카루트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분위기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부길드장은 본능적으로 기세를 뿜어, 마스터를 지키고자 하였고.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발텐은 파이프 끝을 문 채로 큭큭 웃는다.

“손님, 궁금한 게 있는데여~ 그렇게까지 이번 대의 용사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뭐예요?”

발텐은 그의 뒤에 가만히 있는 레실리아를 흘깃 보다가, 시선을 맞춘다.
뭉게진 형태로 올라가는 담배 연기 사이로 기묘한 호기심이 두 눈에 자리잡았다.

“개인적인 용무인만큼, 대답할 의무는 없다.”
“하항~ 이번 손님은 역대급으로 깐깐한 분이시네여~ 그럴 줄 알았지만!”

발텐은 연기를 위로 뱉으며, 파이프 담배를 톡톡 두드린다.
담뱃재가 낙엽잎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담배 특유의 매캐하고 싸한 냄새가 곳곳이 퍼지자 레실리아의 잔기침이 옅게 터진다.

“다프넬의 동태가 조금 달라졌다는 말이 나왔어요~”
“……첩자를 심어두었군.”
“빙고~ 저는 여왕님의 눈에서 제발 벗어나고 싶거든요~”

발텐은 담배를 빙글 돌리고는 턱가에 가져다댄다.
내리깐 눈동자는 무수한 신경이 날카롭게 서있었지만 눈깜박임으로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프넬과 용사간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네요.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담배를 한모금 빨아마시며 확신이 가득찬 어조로 말한다.
이카루트는 턱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발텐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머리를 덮여쓴 망토 모자에 그림자가 지면서 붉은 술식이 명료하게 빛났다.

‘용사가 정보를 의뢰했군.’

심연을 내려다보는 술식이 새겨진 눈동자는 상대방의 마음 한복판을 꿰뚫어본다.
이를 통해, 육체를 세뇌시키거나 정신 교란을 유발할 수 있었고.
부작용으로 인해 대상의 기억이 흘러들어오곤 한다.

‘세계수의 뿌리를 찾는 거겠지.’

일부러 부작용을 일으켜, 스쳐지나간 발텐의 기억 속에는 반가면을 쓴 레티나가 있었다.
레티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계수의 뿌리를 찾을 모양인 것 같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얼굴 치워라.”
“하항~ 농담~”

어느새 발텐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있었다. 담배를 옆으로 치운 발텐은 후, 하고 짧게 연기를 뱉었다.
눈쌀을 찌푸린 이카루트는 허공을 내저으며, 연기를 흐트려놓았고. 발텐은 실실 웃으며 부길드장의 무릎에 느른하게 눕는다.
젖가슴살이 탄탄한 무릎에 닿자, 보기좋게 뭉개졌고. 진득한 살결에 부길드장의 몸은 뻣뻣히 굳는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닌듯 한숨을 푹 쉰다.

발텐은 대기하던 시중에게 턱짓을 하였고. 시중은 손에 들고 있는 편지를 이카루트에게 공손히 건넨다.
처음 보는 인장이 찍힌 초대장. 뒷편을 보니, ‘티파티’라는 단촐한 글씨만 있었다.

“초대장이예요~ 뒷세계의 거물들만 초대받는다는 파티~”
“여기로 잠입하라는 말이군.”
“잠입? 에이~ 그러면 안 돼요. 거기 배치되어있는 도적단 실력이 얼마나 좋은데~ 잘못하면 순삭당해여~”

발텐은 담배 끝으로 목을 톡톡 치면서 실없는 미소를 짓는다.

“위험하니까 저랑 같이 가자구여~”
“마스터…! 위험합니다!”

부길드장은 화들짝 놀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카루트와 검을 잠깐이나마 맞댄 경험이 있는 자로써, 느낄 수 있었다.
저 남자는 위험하다.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자칫 수틀리기도 한다면 마스터의 목이 뎅강 잘릴 수 있었다.

“왜에~ 동행 파트너로 못가서 아쉬워서 그래?”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거 아닙니다…마스터, 저 남자는…”

부길드장은 말을 더 이상 못잇고, 꿀꺽 삼켰다.
발텐은 키득거리며 파이프 뒷편으로 부길드장의 턱을 꾹꾹 누른다.
태평한 마스터는 저를 걱정하는 마음도 모르고 장난을 친다.

“파티는 동행 파트너가 있어야, 입장 가능해여~ 다프넬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직접 만들어드릴 테니까, 잘 꼬드기셔야 해요 손님?”

발텐은 파이프 담배를 다시 물며, 이를 씨익 드러냈다.

***

밤 그림자가 길어지는 저녁.
차라타의 거리 끝에는 소수의 인파가 몰렸다.
어둑한 저택. 으슥한 시계 소리가 뎅뎅, 울리자 분위기가 더욱 음산해졌다.
귀신들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건물 앞에서 화려한 드레스와 파티복을 갖춘 이들이 모여 있었다.

전원 신분을 알 수 없는 가면과 복면을 쓰고 있었고.
마왕과 정보상 또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을 쓴다.
노예를 데려온 뒷세계 귀족들과 달리 여우 가면을 쓴 정보상은 스스로 목줄을 차고 있었다.

“흐응~ 손님 꽤나 인기가 많으신 것 같네요? 몇몇 귀족 나으리들이 주시하고 있어요~”

발텐은 손날로 입을 가리며, 그에게 속닥 상황을 전해준다.
감각이 뛰어난 이카루트는 파티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진즉 눈치채고 있었다.
광장에 조교사로 얼굴을 비췄을 뿐인데 빠르게 입소문이 탔다.

“다들 말을 걸고 싶어하는데~ 고귀한 척 예의 떠느라, 말도 안 거네요~ 역시 귀족들이란~”

발텐은 뼈있는 말을 뱉으며 보고만 있는 귀족들을 무시한다.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게 차라리 편했다. 쓸데없이 말을 걸어, 시간만 허비할 바에는 얌전히 있다가 다프넬을 찾아가면 된다.
그날 이카루트는 일부러 다프넬을 응시하면서 교미를 하였고. 흥분한 암컷 반응을 누구보다 빠르게 발견했다.

‘굳이 내가 찾아갈 필요는 없지.’

다프넬이 먼저 찾아올 것이다.
이카루트는 그저 광장에서 조교플을 했을 뿐이고, 이에 흥미를 보인 건 그녀였으니까.
그는 조용히 바텐더가 주는 와인을 마시며, 파티를 관전하고 있었다.

뒷세계의 거물들이 한데 모인 파티 답게, 음탕하고 폐쇄적이었다.
노예를 데려온 귀족들은 조교사를 시켜, SM플을 구경하거나 또는 직접 조교플을 선보이며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어떤 이는 노예를 알몸으로 만들고는 그 위에 음식을 시켜 하나씩 집어먹었다.
가끔 소수 문화권에서 배운다는 젓가락질을 젖꼭지 희롱하는데에 쓴다.

“파티의 주인공이신 밤의 여왕님은 언제 오시려나~”

발텐은 시시하고 따분한듯 빈 와인잔을 살살 돌린다.
타이밍좋게 때 마침 한쪽에서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드디어 등장했군.’

또각또각.
높은 힐을 신고,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한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가 모습을 보이자, 웅성거리던 분위기가 저절로 사라졌다.
주황색 머리칼이 한쪽 어깨 위로 늘어뜨리며 야릇한 목선이 드러나자, 한때 그녀에게 간택받았던 남자 노예들은 침을 질질 흘린다.

검은 반가면에 가려진 보라색 눈은 누군가를 찾는듯 이리저리 훑는다.
저 멀리 구석진 곳에서 발텐과 술을 마시는 이카루트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뜬다.

‘저 남자도…초대 받은 거야?’

광장에서 처음 만났던 이 후부터 며칠동안 그의 정체를 알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다프넬은 쿵쿵거리는 가슴을 조용히 부여잡고 천천히 발을 뻗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의도치 않게 이카루트에게 향했다.

“뭐야~ 손님 알고 있었어요? 여왕님께서 먼저 흥미를 보이실 줄은 몰랐네~”

이쪽에 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발텐은 턱을 쓰다듬고는 음흉한 눈빛을 보낸다.
몇몇 귀족들이 인사를 올리지만 다프넬은 무시하며 오로지 이카루트만 보며 다가왔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실례를 무릅쓰고, 먼저 인사드릴께요. 저는 차라타의 거리에서 밤의 여왕이라 불리는 자예요.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다프넬은 손을 가슴팍에 얹혀 살짝 고갯짓을 하였다.

‘밤의 여왕이 먼저 인사를 하였다. 그것도 처음 보는 신입 조교사에게!’

다프넬의 차갑고 깐깐한 성격을 아는 귀족들은 예를 갖추는 모습에 놀랐고.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는 신입 조교사에게 경악을 내비쳤다.

차라타의 거리 소속이라면 지배하는 통치자의 위상을 잘 알 것이다.
간 큰 신입 조교사의 목소리에는 떨림도 없었다.
조교 실력도 괴물이라더니, 성격도 범상치 않았다.
담담한 그의 반응에 다프넬 또한 내심 놀랐지만 표정 관리를 했다.

“하항~ 오랜만이네요. 여왕님~”
“발텐. 잘 지내고 계셨나요? 꽤 오랜만에 뵙는 것 같군요.”
“요새 거리가 시끌시끌하던데~ 바쁜 여왕님은 아실려나 몰라아~”

괴물급 신입 조교사의 소문, 그리고 거리를 들쑤시고 다니는 용사로 인해 퍼진 세계수의 뿌리에 관련된 소문도 있었다.
모른 척 흘러말하는 발텐의 건방진 태도에 다프넬은 부채를 들어, 입을 가렸다.
쓸모없는 감정이 드러날까봐 부채로 가렸지만. 눈치빠른 정보상에겐 다 들통났다.

“신입 조교사가 여기 있을지 몰랐어요.”
“그거야 제가 초대했으니까 왔죠~ 우리 여왕님은 신입 조교사에게 관심이 많은 모앙이네요?”

툭툭 뱉는 말이 묵직했다.
다프넬은 품위를 지키며 익숙하게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사실 광장에서 지켜봤어요. 실력이 굉장하던데 첫 조교였나요?”
“……사적으로는 했으나, 조교사로서 야외조교한 것 처음이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 여자 노예도 사적으로 가르친 노예였나요?”
“예.”
“이건 정말…소문대로 괴물 조교사가 광장에 등장했네요.”

다프넬의 눈빛이 묘하게 달라졌다.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펼쳐진 부채를 접는다. 한손으로 부채를 동그랗게 말고는 대기하던 하인에게 고갯짓한다.
하인이 편지봉투를 꺼내자, 다프넬이 직접 받아 그의 앞에 내민다.

“저희 저택으로 초대할게요. 같이 조교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어요.”

한 번 놓친 먹이감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다프넬은 그를 확실하게 잡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먹이감은 먹이감인 척 하는 똑똑한 포식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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