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차라타의 거리(1)
84화 차라타의 거리(1)
어두컴컴한 이공간을 찢고 가르자, 어둠이 더욱 짙게 깔린 거리가 드러났다.
바닥엔 더러운 먼지가 나뒹굴고 있었고. 퀘퀘한 냄새가 진동했다.
레실리아는 처음 맡아보는 쇠비린내에 코를 막았다.
이카루트는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총총 뒤따라가는 레실리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좁은 길목을 벗어나자 붉은 등이 줄지어 빛났다.
“어머, 오빠 나랑 한바탕하고 싶지 않아?”
“젊은 양반! 쭉쭉빵빵한 언니들이 여기 많은데, 한 번 들어와 싸게 해줄게!”
“거기 가슴 큰 누님. 우리랑 일해보지 않을래? 누님 정도면 돈이 제법 쏠쏠히 들어온다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마왕과 성녀.
바깥 사람인 걸 눈치챈 이들은 듞달같이 달려와 먹잇감을 흔든다.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인간들의 옷차림은 비싸보이거나, 야해빠졌다.
이곳은 불법이 성행하는 뒷골목, 차라타의 거리였다.
레실리아는 처음 보는 분위기의 길이 신기한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짐승들은 이빨을 벌린다.
“……?!”
마(魔)가 섞인 오오라는 본능적으로 거부감과 두려움을 심겼다.
늑대처럼 몰려드는 인간들은 어느새 뒷걸음을 쳤고.
레실리아는 창녀들을 곁눈질하며 은근슬쩍 마왕의 옆자리를 꿰찼다.
반경 1미터 내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몇몇 시선은 껌딱지처럼 들려붙은 채 떨어지질 않았다.
‘여기서도 성검이 나오긴 했었지.’
차라타의 거리에선 용사를 도와주는 조력자가 나타났다.
퀘스트를 통해서 자연스레 만나는지라 인위적으로 접점을 찾기엔 애매한 관계였다.
‘신탁의 기운을 감춘 성물을 준 이는 아마 다프넬 영애겠지.’
다프넬 이벨롯.
제국 변방의 남작 이베롯가의 영애이자, 뒷세계를 아우르는 귀족이었다.
뒷세계의 중심, 차라타의 거리는 매우 위험한 곳이지만
용사는 다프넬이라는 든든한 빽 덕분에 위험한 일없이 다닐 수 있었다.
‘단순한 조력역할만 해주는 npc캐릭터지만 지금이라면 말이 다르지.’
게임이 현실인 세상.
메인 퀘스트에서 잠깐 등장했다가 퇴장한 캐릭터도 눈여겨봐야한다.
용사에게 도움을 기여하는 쪽이라면 더더욱.
‘다프넬 이벨롯과 만난다면 현 용사의 위치를 알 수 있겠지.’
하지만 그녀는 뒷세계의 손인만큼 정체를 쉽사리 드러내질 않는다.
그림자처럼 비밀스럽게 움직여 찾기가 어려웠다.
“저, 주인님…어디로 가나요?”
“거리를 잘 아는 이가 있다. 너도 몇 번 스쳐가면서 본 얼굴이고.”
“저도 안다고요?”
레실리아는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고개를 기웃거린다.
이카루트는 오차 없이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걸 선호했다.
이례없는 게임 패치로 인해, 시나리오가 전부 뒤틀려졌고 빙의자의 강점이 흐려졌다. 나서는 것 또한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
“거기 멀대만한 양반, 좀 서보쇼.”
어두운 골목에 다시 들어서자 거리를 벌린 채 뒤따라오던 불량배들이 포진했다.
히죽거리는 얼굴을 보니, 꽤 우습게 보인 모양이다.
이카루트는 흘끔 보더니 다시 걸음을 옮긴다.
레실리아도 시선을 따라 돌아보자, 불량배 대장과 눈을 마주한다.
“위휴우, 뭐야 꽤 예쁜 얼굴이잖아? 망토를 쓰니 몰라봤네.”
“대장, 또 또 형수님 바가지 긁을 소리 하지마쇼.”
“쯧, 그 여편네가 뭔 형수야! 돈이나 벌어라고 돼지처럼 축 늘어진 년인데.”
“어차피 따먹고 나서 사창가에 팔 거잖어.”
“으하핫! 예쁜 여자는 돈이 된다 이 말씀이야!”
레실리아는 걸음을 바삐 놀리며 이카루트의 옆에 딱 다가섰다.
힐끔힐끔 돌아보는 눈길에서 무언가 발견한듯 잠깐 멈추더니 고개를 돌렸다.
“깍쟁이 아가씨! 어, 디 가ㅡ”
좇아가는 음성이 뚝 멎었다.
차악! 스걱.
휘두르는 소리와 동시에 피가 솟구쳤다.
분수처럼 올라간 머리통은 데굴데굴 바닥에 구른다.
“벨페고르 님께서 여기 계실 줄은 몰랐어요.”
“약물 제조가 취미라고 하더군. 종종 마약과 희귀한 재료 매매를 위해 찾아간다고 들었다.”
“주인님 앞에서 처음 뵌 날 빼고는 제대로 뵌 적이 없어서…조금 어색하네요.”
레실리아는 새빨갛게 적신 거리를 뒤돌아보지 않고 속닥인다.
벨페고르를 처음 대면한 날에 대놓고 음부를 보여준 터라, 창피한듯 짙은 홍조를 띄고 있었다.
인간이 죽었어도 성녀는 이젠 아무렇지 않았다.
철퍽…철퍽…
맨 끝에서 피 웅덩이를 지나치는 발도장이 뒤따라 찍혔다.
“쿠륵…쿠르륵…”
귀가 밝은 이카루트만이 들리는 괴이한 소리.
인간인 척하는 벨페고르의 실험체가 친절히 마중을 나왔다.
차라타의 거리에 등장한 이방객을 경계하는 무리를 몰살하고, 더 나아가 뒤를 지켜주기까지 했다.
‘귀찮은 일이 벌어지겠어.’
골목에 따라 들어오는 수많은 무리의 기척.
짧은 거리일수록 공간의 뒤틀림이 심해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상황이 제법 귀찮게 흘러갔다.
골목의 앞과 뒤를 빼곡히 채우는 기척에 이카루트는 이공간을 찢었다.
“주인님? 앗!”
성녀의 팔을 붙잡고 냉큼 들어갔다.
이공간은 두 존재를 꿀꺽 삼키자마자 스르륵 사라졌다.
“쿠륵…쿠르륵…?”
“젠장, 놓쳤나?”
또 다른 불량배들이 겨우 이방인의 흔적을 찾았다.
피 웅덩이 위로 웬 인간 멍청하게 서 있었다.
앞서 대장이 알려줬던 행색과 사뭇 달랐다.
“역시 네 , 네 놈이냐? 우리 대장님…대장님은 어디 갔어?!”
“쿠륵…쿠르륵…”
험악한 인상을 가진 불량배는 무기를 지켜들었다.
복면을 쓴 평범한 행색의 인간이었지만 묘하게 분위기가 기분나빴다.
행동도 기척도 인간인듯 인간이 아니었다.
불량배가 길쭉한 칼을 들이밀자 복면에 가려진 콧구멍이 벌렁이더니, 얼굴 사이로 화악 찢어졌다.
“으, 으아악! 괴, 괴물이다!!”
“쿠웨에엑!”
얼굴에 다량의 촉수가 나왔다.
조용한 골목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
“으…으읏…”
“괜찮나.”
“아…네…괜찮아요…우욱…”
갑작스레 이공간을 타고 공간을 이동했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두 번 연속으로 탔다.
일그러지는 시야와 격렬한 두통에 레실리아는 결국 몸을 비틀거렸다.
비틀대는 손목을 잡아, 중심을 세워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레실리아의 뺨이 발그스름해진다.
일부러 다리를 꼬며, 비틀거렸지만. 이카루트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손목을 더 이상 잡아주지 않아서 그런지 레실리아는 애교를 그만두었다.
다만 볼이 해바라기 씨를 넣은 햄스터처럼 부풀려졌다.
“근데…여기는 어딘가요?”
인구가 적은 큰 길가.
허름한 간판이 일렬로 줄지어 있었다.
거의 쓰러져가기 직전의 건물도 있었고. 문짝자체가 없는 가게도 있었다.
걸어가는 사람은 마왕과 성녀 밖에 없었다.
대부분 부랑자와 거지들이 자리마다 죽치고 앉았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성녀는 이를 불쌍하고 애처로운 인간을 두고 볼 수 가 없었다.
특히 그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한쪽 다리가 없는 거지 앞에 서며, 고운 손을 내민다.
동태썩은 눈알은 한순간에 날카롭게 빛을 냈다.
이내 눈물을 머금고는 두 손을 모았다.
돈을 달라는 의미였다.
“어쩌죠…돈이 없는데…”
“뭐? 그럼 썩 꺼져! 퉤!”
금세 태세전환을 하며 거지는 가래침을 뱉었다.
턱 맽은 가래침은 구두 끝에 묻었다.
레실리아는 당혹스러운듯 눈을 끔벅거렸다.
이를 무시하던 거지는 고개를 돌려, 이카루트를 바라본다.
돈이 많이 보이는 기품이었다.
거리를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동냥하던 거지는 눈치껏 슬픈 표정을 지었다.
두 손을 모으고, 몸방향을 일부러 그에게 향한다.
“마법사 나으리…하루 종일 쫄쫄 굶었습니다요…제발…은전 한닢만 주십시오…”
거지의 태도가 싹 바뀌자, 뒤통수 맞은듯 레실리아는 마왕과 거지를 번갈아본다.
“시끄럽다.”
안타깝게도 눈앞에 있는 이는 마왕이었다.
붉은 눈동자에 지루함이 가득찼고.
이런 썩어빠진 인간들에 대한 동정심은 일말도 없었다.
그의 신경을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하면 죽일 것 같다.
본능적으로 두려웠다.
합죽이가 된 거지는 깨갱거리며 고개를 급히 쳐박았다.
먼지가 콧구멍에 들어가도, 쥐죽은듯 가만히 있었다.
“……가엾게 보이려 다리 한쪽 없는 척을 해대는군.
같잖은 꼴로 우위를 점하려 들지 마라. ”
동정을 빌미로 보상을 바라는 주제에 욕심만 컸다.
이카루트는 꼴보기 싫다는듯 발을 돌린다.
옹졸한 거지는 퍽 분한듯 눈알을 이리저리 굴린다.
거리가 멀어지자 몰래 눈을 빼꼼 들었다.
“쳇, 공 쳤네.”
망토자락을 휘날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에 가래침을 끌어모아 탁 뱉었다.
무릎을 접은 다리를 펴자 축 늘어진 바지가 형태를 만든다.
“마법사 양반 잡았다고 좋아했는데…씁…”
공중에 생긴 그림자 틈새로 갑자기 사람이 등장했다.
처음엔 마법사인 줄 알았다.
마법사들은 대부분 돈이 많아 부유했으며 차라타의 거리에서 오는 마법사는 금지된 흑마법에 관심을 가진다.
혹시 몰라 유심히 지켜보던 거지에게 같은 일행 여자가 다가왔다.
여자는 대체적으로 친절하고 착하다.
여자를 통해 돈을 받으려고 했건만, 남자의 기세에 밀려 말짱도루묵이 되었다.
“정보상에게 정보를 넘겨, 팔아야 겠어.”
차라타의 거리에 일어나는 일은 정보가 되고 돈이 된다.
흉악한 범죄자, 이름있는 귀족, 유명한 예술가들도 찾아오는 곳이기에 지금 봤던 마법사의 정보라면 꽤 금액이 쏠쏠할 것이다.
떼돈을 뜯을 생각에 부랑자는 더러운 턱을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
“…? 왜 이렇게 바람이 불어대?”
그 순간 흙먼지가 일어났고. 검은 안개도 함께 들이닥친다.
선명한 시야는 그림자가 덮여, 단숨에 두 눈을 멀게 만들었다.
“내, 내 눈이…내 눈이…!!안 보여…안 보여!”
닦아도 닦아도 그림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눈이 먼 거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오열을 하였지만.
검은 오오라는 새어나오는 비명을 차단했다.
상황을 몰래 지켜본 부랑자와 거지들은 마왕이 떠날 때까지 장소를 벗어났다.
사실을 모르는 성녀는 아무도 없는 거리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마왕을 따라갔다.
“여기…가 맞나요?”
“마몬이 알려준대로라면 맞다.”
거리의 맨 끝자락.
거의 쓰러질 것 같은 지붕을 보던 레실리아는 침음을 삼켰다.
똑똑, 파사삭!
노크를 했을 뿐인데 문짝이 나가떨어졌다.
청소를 제때 안한듯 먼지가 일어났고. 레실리아는 몇 차례 재채기를 하며 손부챗질을 했다.
“……정확히 찾아왔네…”
내부는 더욱 엉망진창이었다.
실험 도구가 떨어져 어지럽게 난자되어 있었고. 중간중간 떨어진 물병도 제자리에 옮겨놓지 않았다.
마법 재료는 한 책상에 빼곡히 쌓여 산처럼 이루어졌다.
“오랜만이군.”
“……마왕님을 뵙습니다아…”
어지러운 바닥 한 가운데, 마녀 모자를 쓴 벨페고르가 대자로 누워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