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동행 (69/98)



〈 69화 〉동행

69화 동행

오전 햇볕이 따갑게 비추는 다크 우드.

“흥, 흐읏! 흐으응, 하아앗…!”
“좀 더 보지 대!”
“하앙, 하아, 후, 후우웃, 하앙!”
“크으…몇 번이나 싸질러도 쫄깃한 년이라니까.”

중앙 나무 밑둥을 짚고 서있는 다크 엘프.
보지 노예 98호라는 간판을 목에 걸고는 보지를 들이민다.
매일 8시, 12시, 18시. 의무적으로 3 번. 다크 엘프들은 돌아가면서 자지 청소를 도와준다.

“하앗, 흐으…흐으응…!”
“흐읏, 후우, 하아앙♡ 인간 자지로 또 가버려엇♡”

여느 때처럼 암컷 교성으로 북적이는 대난교장.
몇 번이나 봐도 익숙치 않는 현장에 얼굴을 숙인 성녀는 이카루트의 뒷꿈치만 보고 따라걷는다.

“이카루트 님. 추가적으로 지시할 사항은 없으신지요.”
“…….혹여나 용사의 흔적을 발견했다면 즉시 내게 보고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인근 마을 쪽에도 잘 둘러보겠습니다.”

마을 입구까지 마중나온 아가레스는 허리굽혀, 깍듯이 인사했다.

‘곧 마을 주민들까지 합세하겠군.’

환각 마법의 영역이 더욱 넓어질 거라고 확신했다.
고고한 정신을 이어나가던 다크 엘프 종족은 결국 아가레스의 장난감으로 전락해버렸다.

‘마물 둥지가 되어, 멸족되는 것 보다는 낫겠지.’

이카루트는 대난교장을 무심하게 흘겨보며 이공간을 열었다.

우우웅.

허공을 휘젓자 균열이 일어났다.
검은 홀처럼 생긴 이공간. 레실리아는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숨을 길게 내쉰다.
남녀의 음탕한 교합 장면을 실시간으로 관람하는 게 창피했고. 저도 모르게 흥분이 일어나는 탓에 자리에서 더욱 벗어나고 싶었다.

“나도 같이 가겠어.”

이공간을 타고 가려는 그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영광의 보지 노예 1호로 전락해버린 엘프 왕 타르샤.
이카루트가 고개를 돌아보자, 분한 표정을 짓더니 팔짱을 낀다.

“또 박히고 싶은 건가.”
“하! 쓸데없는 걸로 찾아온 게 아니다. 어젯밤에 네 놈이 말해줬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함께 동행하겠다는 뜻이야.”

타르샤는 턱을 내려 뾰족하게 눈을 뜬다.

전날 밤. 이카루트의 폭탄발언에 분위기는 삽시간에 싸늘해졌다.
차가운 정적을 깬 인물은 아가레스였다.

“세계수의 뿌리. 신물을 채취할 수 있는 조건이 마왕의 죽음 뿐이라면, 이때껏 나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확히 뜻하면 성검에 의한 마혼 절멸(絶滅)이다. 마왕인 내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세계수의 뿌리가 나타나지.”

이스터 에그였다.
용사의 노멀 엔딩은 마왕을 죽이고, 전쟁을 인간계의 승리로 끝내는 것이니까.
엔딩을 깬 유저가 용사 캐릭터로 재시작한다면 성검이 나오는 장소가 변하면서 기존에 있던 성검 장소는 세계수의 뿌리를 얻게 된다.

“흐음…굉장히 흥미롭군요. 이카루트 님, 어찌 아셨습니까?”
“인간 설화에서 들었을 뿐이다.”

턱을 쓰다듬던 아가레스는 거만하게 다리를 꼰다.
레실리아 또한 다리 사이에 묻은 얼굴을 들며, 가만히 올려다본다.
마치 그 사실을 어찌 알았냐는 궁금증과 더불어,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짐은 처음 듣는 사실이다. 세계수의 뿌리는 엘프 종족에겐 유서깊은 신화이기에 더욱 잘 알고 있지.”

타르샤는 무릎 위로 올려진 양손을 맞잡았다.
세계수의 뿌리는 모든 차원의 질서를 관장하는 나무로서, 인간계의 중립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고대 엘프 종족은 세계수를 수호하기 위해 태어났지만.

억겁의 시간이 지나고 흘려, 세계수의 뿌리는 혼돈 속으로 사라졌다.
이 때문에 인간과 이종족 간의 사이는 와해되고. 대전쟁도 벌어졌으나 훗날, 화합을 맺으며 조화롭게 살고 있었다.
표면상 조화롭게 살 뿐. 소수의 엘프는 반기를 들었다.

인간과 화합하며 살아야 한다라는 온건파.
인간과 교류를 맺지않고도 살 수 있다라는 강경파.
세계수의 뿌리가 사라진 이유를 인간 종족에 찾았다.

극심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둘은 갈라졌고.
각자 다른 방향의 숲에 자리잡은 엘프 왕들은 형식상 서신으로 교류 할 뿐이지.
약 몇 백년 간,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었다.

“세계수의 뿌리가 있다면…….엘프 종족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겠지.”

그날 타르샤의 눈빛이 생기로 돌았다.
조그만한 머릿통에 어떤 생각으로 가득 찼을 지 눈에 뻔히 보였다.

‘용사와 몰래 수신망을 주고 받았을 거야.’

신탁을 받지 못한 자는 성검에게 선택받을 순 없었다.
용사에게 엘프의 맹세를 한 다크 엘프 왕.
마왕과 같이 가겠다고 하는 목적성이 다분하다.

제게 붙어, 정보를 캐낸 다음 발톱을 세울 것이다.
처녀를 바쳤는데도 꽤나 야비했다.

“짐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마왕.”

전날밤에 스쳐지나가듯 봤던 표정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레실리아는 타르샤를 경계하며 팔을 잡았지만. 이카루트는 허락의 의미로 고갯짓하였다.
처녀막을 꿰뚫음과 동시에 육체를 다시 세뇌하였다.

정신 교란까지 간다면, 눈치빠른 용사가 알아차리고 냅다 관계를 끊을 것이다.
타르샤는 용사의 행방을 가까이서 알 수 있는 끈이었다.

‘이용할 수 있는 데까지 이용해야지.’

이카루트는 수를 두었다.

“주인님…. 같이 가도 괜찮을까요?”

성녀는 걱정되는듯 작게 속삭인다.
처연한 눈매 아래. 조금씩 일그러지는 눈동자는 경계심이 깃들었다.

“애버글로우 숲으로 가려면, 같은 종족인 엘프 왕과 대동하는 편이 좋겠지.”
“……다른 엘프 숲에서도 성검이 나타나기도 하나요?”
“확률을 따져보면 나올 수 있다고 마몬이 이야기하더군.”

레실리아는 동그란 눈을 깜박이며 올려다본다.
어떻게 아냐는듯 생각을 꿰뚫어보는 것 같아, 시선을 피했다.
다행히 보좌관의 핑계가 통했는지 성녀는 수긍했다.

“인간 교류가 드문 숲속인만큼, 네 녀석들을 보자마자 활로 냅다 죽이려 들 거야.
짐이 함께 있다면 경계는 해도, 죽이려고는 하지 않을테니 이 몸이 함께 있는 게 좋을걸?”

튼실한 허벅지를 약간 벌린 채 골반을 손에 짚는다.
양옆에 트인 치마. 색이 짙은 피부가 엿보이자, 아가레스가 지팡이로 치마 앞자락을 들춘다.

“그 고귀하고 똑바른 정신력은 감탄스럽습니다만,육체 세뇌에는 단단히 걸리셨군요.”
“ㅡ크흑!! 이 파렴치한 마족 놈이 감히 짐의 치마를!”
“주군께서 여자의 행복을 진정 느끼려 떠나시는 것 같아, 부럽습니다.”
“ㄱ, 그런 거 아냐!”

지팡이 끝에 걸린 치마자락. 털 하나 없는 매끈한 보지가 드러났다.
벌려진 허벅지 사이로 지팡이가 살짝 닿자, 끝에 점도 높은 액체가 묻었다.
타르샤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졌고. 몸 주위로 김이 픽픽 새는 것 같았다.

“크흑, 나를 무례한 눈빛으로 보지 마!”
“어차피 너를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흥! 짐은 절대로 네 놈한테 복종할 생각없으니, 잘 알아둬.”

타르샤는 콧방귀를 끼면서 은근슬쩍 다가갔다.
안짱다리로 걷는 걸 보니, 빽보지가 보여지는 바람에 순간 흥분한 것 같았다.

우웅ㅡ
타르샤가 이공간으로 온전히 들어서자, 검은 틈새가 완벽히 메워졌다.
조용히 바라보던 아가레스는 지팡이를 잡은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린다.

“참 재밌는 조합이야.”

속을 좀처럼 알 수 없는 마왕과 수상한 발언을 한 성녀.
오랜 세월, 흥미를 돋우게 만드는 그들의 기묘한 행보에 아가레스는 주름진 입가를 쓰다듬는다.

***

조용하고 나른한 공기가 노나드는 숲속.

우웅, 검은 균열이 일어났고.
균열을 찢고나온 세 명은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 우웨엑!”

다크 엘프왕 타르샤는 헛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허연 위액을 바닥에 쏟아냈다.

“나약하군.”
“흐우, 닥쳐…우웩!”
“많이 어지러워서 그런 거니까, 조금만 앉아 있다가 가요.”

인간보다 몇 백배 민감한 엘프는 멀미를 거하게 하였다.
레실리아는 이공간에 익숙해진 건지 안색만 조금 질릴 뿐. 몸상태는 양호했다.
그에 반해 타르샤는 쓰러질듯이 상체를 숙인 채 연신 구토를 하였다.

“우웨엑…우웩!”

성녀는 타르샤의 등을 토닥여주며, 물통을 주었다.
쓰라린 속을 부여잡은 타르샤는 차가운 물을 연거푸 마신다.
빙빙 도는 머릿속과 느글거리는 속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타르샤는 큰 반석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같은 엘프 종족인데, 숲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네요….”

따사로운 햇빛이 비추는 숲속과 그 사이로 오가며 초록 잎사귀를 타고 다니는 바람.
다크 우드가 겨울밤을 생각나게 한다면 이곳은 초여름이 떠올랐다.
반대로 느껴지는 따스한 분위기에 레실리아는 신기한듯 두리번거린다.

“동족이긴 해도, 얼굴을 서로 보지 못한 지 어연 몇 백년이 지났다. 엘프의 특성상 자연과 동화되기 마련이라 특징도 매우 다를 거야.”

다크 엘프는 큰 특징점은 갈색 피부였으며 귀모양이 위로 뾰족하지만, 그다지 길진 않았고.
평균 체구는 작으나, 가슴과 엉덩이가 발달된 육감적인 몸매였다.
올리비아가 다스리는 엘프 종족은 전형적인 엘프였으며, 하얀 피부색에 귀모양은 길쭉했다.
체구는 크고, 늘씬하며 전체적인 바디 라인이 얇고 가냘팠다.

“애버글로우의 엘프 왕과 서신만 주고 받았지만 실제로 대면하는 건 처음이야.”
“접점이 많이 없었네요.”
“고대 엘프 종족은 본디 하나 였으나, 세계수의 뿌리가 사라지자마자 의견이 엇갈리면서 부딪치게 되었어. 동족, 또는 마음을 나눈 이 아니면 배타적인 성향이 큰 쪽이 애버글로우 출신이야. 인간들이 봤을땐 굉장히 이기적인 행동을 보이겠지.”
“아…그래서 올리비아가….”

실론드 마을에 촉괴가 습격했던 날. 올리비아는 루시만을 구할 뿐, 다른 인간이 죽든말든 괘념치 않았다.
용사와 함께 다니니까 필요로 인간을 많이 도와준 것이다. 전 대 용사의 원정대를 알고 있는 레실리아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타르샤는 빈 물통을 성녀에게 건네주고는 말을 이었다.

“원정대에 엘프 궁수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땐 솔직히 믿기 어려웠어. 거기다 엘프 왕이라는 말에 헛소문이라고 생각했지. 이번 대의 엘프 왕은 역대로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거든.”
“단 한 번이라도 엘프 종족의 화합을 이루고 싶지 않았나요.”
“흥! 난 매일같이 염원했어. 하지만 내 의견을 외면한 건 애버글로우 인거야. 참 답답도 하지.”

후우우, 타르샤는 한숨을 가냘프게 내쉬었다.
인간을 배신했다던 성녀. 레실리아는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행동과 표정이 모순된 모습. 용사가 말한 것과 달리 성녀는 예전 그대로 였다.

“나야말로 묻고 싶어. 너는 왜 인간계를 배신한 거냐.”
“……저는 아무도 배신하지 않았어요. 용사님이 멋대로 저를 판단한 것 뿐이죠.”
“하, 마왕의 편에 서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워.”

타르샤는 조롱하는 투로 톡 쏘아붙였다.
레실리아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띄었다.
나무에 기대어 선 채 말없이 바라보는 이카루트.

타르샤는 성녀와 마왕을 번갈아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다크 우드에 있던 그 음험한 마족이 그들에게 수상한 흥미를 가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하여튼 변태 자식.’

와인잔을 들고, 나리엘의 뒷보지를 쑤시던 꼴이 생각나자 타르샤의 이가 부득 갈렸다.

‘돌아가면 재빨리 환각 마법을 풀어야겠어.’

다짐하는 타르샤의 머릿속을 훤히 내려다보던 이카루트는 슬쩍 곁눈질을 하였다.
사락, 풀 사이사이로 스치는 바람.
완전히 기척을 죽인 발걸음에 이카루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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