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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다크 엘프 왕의 사정(1) (62/98)



〈 62화 〉다크 엘프 왕의 사정(1)

62화 다크 엘프 왕의 사정(1)


“감히…음습하고 더러운 마족 놈이 신성한 다크 우드를 건드려? 네 놈을 여기서 척결내주겠다!”

스릉, 타르샤는 쌍검을 꺼냈다.
다크 우드의 다크 엘프 종족은 활보다는 검을 들고 싸운다.
그 중에서 타르샤는 유일한 쌍검사였다.

“……번지수를 잘못 고른 것 같은데.”
“거대한 마기를 숨기지 않고도 뻔뻔하게 말을 하는군! 나, 엘프 왕 타르샤를 무시하지 마라!”

유려한 물결이 춤추는 칼날이 번뜩인다.
타르샤는 우렁찬 기백을 보였다.

‘이번 대 용사의 말이 맞았군. 성녀가 마계의 편으로 돌아설 줄이야.’

날카로운 기세를 지닌 눈빛이 이카루트를 넘어서, 뒤에 있는 성녀까지 머무른다.
환각 마법으로 존재감을 가렸어도 엘프 왕의 권능 혜안을 속일 순 없었다.
백금색 긴 머리칼, 바다를 녹여만든 것 같은 아름다운 청안.
빽빽한 눈꺼풀이 깜박이고 간절하게 맞잡은 두 손은 지극히 성스러웠다.

“하아, 흐으응…하앙…!”
“조금만 더, 발기 자지로 자궁에 팍팍 쑤셔줘요옷…!”
“흣, 흐읏, 읏, 으앗 음란한 보지로 가, 간다앙!”

음탕하게 변한 다크 엘프 종족.
마왕이 환각을 걸었는데도 불구하고 성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네 놈도 인간을 배신한 성녀 모두,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겠다!”

타르샤는 이를 부득 갈았다.
검끝은 곧장 그들에게 향했고. 몸을 숙인 채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파앗! 공격을 예측한 이카루트는 중지와 엄지를 튕겼다.

콰앙ㅡ!

오오라와 격렬하게 맞부딪친 칼날.
까드득, 금속 소리가 연달아 마찰한다. 반력으로 튀어오른 타르샤는 다시 검을 휘두른다.
날카로운 돌풍과 함께 진격하는 타르샤. 공격 방향은 레실리아에게 향한다.

콰앙! 파바밧!

검격은 거대한 그림자 장막에 막혔다.
전부 무효화된 공격.
타르샤는 어금니를 부서질듯 짓씹었다. 뒤구르기하며 조용히 착지한 타르샤는 손목을 천천히 돌리며 공격 대상을 주시하였다.

‘빠르군.’

엘프 종족은 몸이 날쎄고 기척 감추기에 능하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레실리아의 목이 떨어질 뻔했다. 이카루트는 오오라를 진득히 흘러보냈다.

“크허억…!”
“수, 숨이…숨이 안쉬어져….!”
“하아아….으으윽!”

하나 둘 씩 쓰러지는 용병과 다크 엘프.
공기를 휘어잡는 거대한 마(魔)에 숨을 쉬지 못했다.
휘이이, 가을바람이 거칠게 타르샤의 몸을 둘렀다. 상쾌한 공기를 끊임없이 공급해주는 바람 덕분에 숨쉬기가 용이했다.

“네 놈… 설마 마왕이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이 무례하고 천박한 마족 놈… 추잡스러운 성욕을 고귀한 엘프 종족에 풀지 마라!”

내가 한 게 아닌데.
이카루트는 한숨이 나왔다. 변명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
고지식한 다크 엘프 왕은 짙은 살기를 일으켰다.
바람의 세기가 점차 강해졌고. 쌍검을 잡은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타르샤는 검을 교차하여, 사이로 쏘아보고 있었다.

“척결시켜주마.”

냉랭하고 차가운 음성.
순식간에 이카루트의 눈앞에 다가섰다.
차가운 칼날이 얼굴을 스쳤고. 그 전에 이카루트는 한 발자국 뒤로 물렸다.

파앗ㅡ

횡을 긋는 검. 검의 궤적을 따라 서늘한 돌풍이 일어났다.
이카루트는 가볍게 고개를 비켜,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했다.
몇 번의 합이 일어났으나 이카루트는 전부 파악하고 피하기만 한다.

‘젠장, 이 마족 놈이! 어째서 공격이 맞질 않는 거야!’

타르샤의 뛰어난 양손검 실력은 내놓으라 하는 인간 기사들보다도 뛰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전투 실력을 자부하였다. 다크 우드에 튀어나오는 마물들을 무찌르며, 실력을 다졌다.
실제로 타르샤는 강했고. 바람과 연계한 공격패턴도 다양하였다.

허나 타르샤는 몰랐다.
눈앞에 있는 마족은 본 육체보다 게임을 통해 수백번의 전투를 해왔고.
타르샤와의 대항전 퀘스트 했을 때 수도없이 공격하던 타르샤의 패턴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바람의 정령을 써서 공격이 난해해보이지만. 연격 패턴은 단조로워.’

이카루트는 오오라로 바람을 튕겨내며 쉽게 검을 피했다.
술식이 그려진 동체 시력은 엘프 보다 몇 십배나 좋았으며. 공격의 속도를 먼저 잡아냈다.
쉽게 공격을 피하자 타르샤는 짧은 욕을 뱉었다.

“제기랄!”

타르샤는 숨을 가다듬으며, 조급한 마음을 달랬다.
어지럽게 얽히는 눈빛.

‘보통이 아니야.’

장기전으로 가면 위험하다.
마왕이 틈을 보이는 즉시 단칼에 죽여야 한다.
타르샤는 손잡이를 콰악 잡으며 검날에 바람을 실었다.
이내 두 눈을 감았다.

요동치는 심장 소리는 고요해졌다.
두근…두근…
조용히 내려앉은 정적. 대치하고 있는 사이에 기묘한 적막감이 흐른다.
이카루트는 오오라를 견고하게 다지며 주위 경계를 높였다.

휘이잉, 한차례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실려온 잎사귀가 빙글빙글 돌아가, 바닥에 내리앉는다.
그 순간 타르샤의 눈이 번뜩 떠진다.

타앗!

발돋움과 함께 사라진 인영.
눈을 한 번 깜박이자, 단 몇 센티미터 안에 칼끝이 드리웠다.

“……!”

공격 패턴이 급히 변했다.
바람을 쓸 줄 알고 장막을 시전하였으나, 타르샤는 소리소문없이 돌진하였다.
발 스탭을 엇갈리게 쓰며 기척을 죽인다음 몸을 공중에 띄었다.
타르샤의 입가에 뾰족한 미소가 그려졌다.

……팟!

아주 잠깐이지만.
허연 빛이 터졌다.

“이, 게… 무슨….!”

타르샤는 당혹스러웠다.

“분명 검으로 내리찍었는데!”

허공에 붕 뜨는 감각. 내려그어진 검끝도 몸은 기억했다.
하지만 타르샤는 덩그러니 서 있었다.
바닥을 내려다보니 축축한 흙 부분이 있는 걸로 보아, 발돋움하기 직전의 자리였다.
마치 몇 초 전의 시간을 돌린 것 같았다.

‘내가 느꼈던 성력 중에서 압도적으로 컸다.’

엄청난 성력에 주춤한 이카루트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기도 자세를 취한 성녀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이어 이카루트와 마주하자 싱긋 눈웃음을 짓는다.

“이 배신자가!”

성녀의 방해공작만 없었다면. 붉은 눈알을 후벼파여, 시야를 차단할 수 있었다.
용사의 말이 맞았다.
성녀는 진정 인간계를 버렸다.

마계가 침략한 이후부터 질서와 중립은 무너졌으며 세상은 혼돈으로 가득찼다.
게이트를 통해 마물들이 곳곳마다 득실거렸고. 썩은 내가 진동하는 마기 때문에 동식물이 서서히 죽어간다.
혼돈의 원인은 전부 패배를 승복한 성녀 때문이다.

‘감히 신성한 성검을 가져가려고 하다니.’

성녀는 뻔뻔하게도 배신한 인간계에 돌아왔을 뿐 아니라 마왕과 함께 성검을 마계에 가져가려고 한다.
용사는 이를 저지하려고, 성검이 미리 나타날 위치에 찾아갔다.
적의 교란을 위해 성검이 나타난 척, 모습을 꾸며냈다.

나무 밑둥에 눈길을 주던 타르샤는 그제야 용사의 말을 믿었다.

“타락한 존재에겐 오직 죽음 뿐!”

대노한 타르샤는 검의 방향을 돌렸다.
바람이 깃든 칼날은 레실리아의 정수리로 냅다꽂았다.
꽂으려고 했다.

차악! 튕!

맑은 금속음이 마찰하며 데굴데굴 굴러간다.
검 하나를 놓친 타르샤는 냅다 고갤 들었다.
흠칫 동공이 떨리더니 이내 경악하였다.

“나리엘…? 네가 왜 막는 거지?”
“전하, 또 다른 주인님께 해를 가하지 마십시오.”
“잠깐, 지금 뭐, 뭐라고 한 거냐. 방금 주인님이라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검을 든 나리엘은 이카루트의 옆에 붙어섰다.
풍만한 엉덩이를 들이미는 꼴이 암고양이가 칭찬해달라고 아양떠는 것 같았다.
엉덩이 골 사이로 코르크 마개가 반절 삐져나왔고. 와인이 줄줄 새고 있었다.

“흐읏…!”

이카루트가 엉덩이 살을 살짝 벌려, 엄지로 꾸욱 마개를 눌러주었다.
뽀옥, 마개가 밀려들어가면서 둔부에 힘을 콱 준다.
엉덩이 한짝을 움켜쥐어주자, 나리엘의 얼굴이 단숨에 암컷으로 변했다.

“나리엘! 너, 너어…!”
“전하, 죄송합니다. 저는 벌써 주인님의 처녀 노예로 승하받았는 몸이라…하앙♡”
“나리엘ㅡ!”

뒷구멍 주변을 엄지로 꾹꾹 누르며 배회하니 나리엘의 발끝이 꼿꼿히 섰다.
이를 본 타르샤의 얼굴은 분노가 서리다못해, 살기가 가득하였다.
챙! 나머지 검을 세워, 주체없이 이카루트에게 향했다.

“비켜서지 않으면 나리엘, 너부터 처단하겠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으득, 타르샤는 이를 갈며 검을 미친듯이 휘둘렀다.

콰앙! 쾅!

나리엘 또한 검을 맞대며 거센 전투를 하였다.
주위에 돌풍이 불었고. 둘의 기세가 부딪칠 때 마다 잔바람이 흔들렸다.
난데없는 동족간의 싸움에 레실리아는 불안한듯 맞잡은 양손을 놓지 못했다.

“나리엘, 장로의 본분을 잊은 게냐?! 제발 정신 차려!”
“제 본분은 또 다른 주인님께 처녀를 바치는 것, 그 뿐입니다.”
“나리엘! 이런 제기랄!”

나리엘의 검이 어깨 위로 비집고 들어갔다.
재빨리 아래로 피한 타르샤는 칼날을 옆구리 쪽으로 스쳤고.
나리엘은 바람으로 막아내며, 명치쪽에 발을 찼다.

“크허억!”
“…….으읏…”

땅에 검을 꽂은 타르샤는 무너지는 몸을 억지로 들어올렸고.
툭, 투둑 나리엘은 피가 얇게 흐르는 상처를 감싼다. 바람에 두른 덕분에 상처 규모와 크기가 작았다.
회복력을 빠른 엘프 종족은 금세 기력을 차렸고. 격발하듯 각자 검을 잡고 휘두른다.

타르샤의 검은 맹렬한 속도로 향했다.
얇고 가느다란 목덜미로 검끝이 닿는 순간.

“이런, 웬 소동이 일어났나했더니 거물이 있었군.”
“ㅡ!!”

쿵! 쓰러진 타르샤의 등허리 위로 나리엘이 올라탔다.
한순간에 양손을 제압당했다. 타르샤는 믿을 수 없다는듯이 눈을 깜박인다.
나리엘의 옆구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작게나마 상처를 냈건만 흔적마저 없었다.

“성녀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 틈을 타서, 환영 마법을 걸 시간을 만들어주었으니까요.”
“질낮은 장난은 여전하군. 아가레스.”
“허허, 노인의 여흥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아가레스가 눈짓하자 나리엘은 재빨리 제압한 타르샤의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타르샤는 뒤통수로 박치기를 시도하려고 했으나, 눈치빠른 나리엘은 살짝 피했다.
콰악, 나리엘의 악력에 타르샤는 고통스럽게 눈을 일그러뜨렸다.

“크윽……네 녀석들을 몽땅 베어리겠다…! 나리엘, 당장 놓아라!”
“야생적인 암캐를 길들어지는 모습을 보면 여느 때보다 쾌감이 들더군요.”
“이 변태같은 마족 놈!”

아가레스는 구둣발로 허벅지 안쪽을 툭툭 쳤다. 흘겨보는 눈빛에 진득한 음욕이 묻어나왔다.
등꼴이 오싹해진 타르샤는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이거 놔아! 놓으라고! 놔!”
“전하, 가만히 계시지 않으면 목을 베어버리겠습니다.”
“나리엘!”

겨우 제압하던 나리엘은 단검을 들었다.
사악, 단검 끝을 목젖에 겨냥한다. 스산한 칼날이 느껴지자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진짜 죽는다.’

나리엘은 손힘을 조절하고 있었다. 아가레스의 눈빛에 따라 나리엘은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움직였다.
먹구름같은 은색 눈을 마주하자 타르샤는 저항하기를 멈췄다.
그제야 아가레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는다.

“만찬이 준비되었군요. 이카루트 님.”

아가레스는 두 팔을 높이 올려, 이카루트를 향했다.
경배하듯 허리를 숙인다.

‘절대 복종하지 않을 테야.’

타르샤의 눈에 불꽃을 일으킨다.

‘저항할 기색이 남아있군.’

이카루트는 지극히 무심한 표정으로 하찮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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