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성검 찾아 삼만리(2)
57화 성검 찾아 삼만리(2)
“쯧쯧 저거저거 또 헛소문을 퍼트리는구만.”
주인장은 혀를 끌끌 찼다.
의자에 앉은 타오는 유려하게 이야기를 뽑아냈고.
식당 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벌써 타오의 만담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제가 숲속을 샅샅이 찾아보았죠! 숲속 한가운데에 둥그런 나무 밑둥이 있는데, 아니 글쎄 빛나는 검이 꽂혀있지 뭐에요?
저는 딱 확신했어요. 이건 백 중의 백, 성검이라는 사실을요!”
“타오 이 녀석, 거짓말을 작작히 좀 해라.”
“주인장, 그만 하게. 한적한 마을에서 재밌는 거짓말이라도 듣는 게 어딘가. 그래서 타오 너는 성검을 뽑았느냐?”
“아저씨! 전 용사가 아닌걸요. 아참, 그때 엘프를 봤어요! 눈처럼 하얗고 뾰족한 귀를 가진 아름다운 엘프 왕을 말이죠.”
“헛헛헛, 애버글로우 숲 출신 엘프가 다크 우드에 왜 있을까. 이야기라도 개연성이 있어야, 재밌지 않니 타오?”
“그…이야기 내용이 너무 산으로 갔나요?”
“산으로 가다못해, 하늘로 올라가버렸구먼!”
착한 인상의 배불뚝이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구석진 자리였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또렷히 들렸다.
‘혹시나 했는데, 그냥 돈 받는 만담꾼의 헛소리였군.’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이카루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성검에 너무 예민해졌던 탓일까.
이카루트는 눈을 돌려, 잔뜩 우려나온 커피를 마셨고.
레실리아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만담꾼에게 귀를 기울였다.
“다크 우드에 있던 엘프 종족이 모조리 얼굴을 보이지 않아……걱정이 살짝 드는구나.”
“엥? 엘프 잘 살고 있잖아요?”
“한달 전부터 교류가 끊겼잖니. 혹시 본 적이라도 있는 게냐?”
“네, 당연히 보긴 봤죠! 보…기야…봤는데…”
자신만만하게 외치던 타오의 어깨가 점차 말려들어갔다.
눈치를 슬슬 보더니 뒤통수를 긁적인다.
“허허, 이녀석 거짓말도 많이 늘었구만! 여기 즐거운 만담을 해준 사례비다!”
“헤헤, 감사합니다. 아저씨!”
“타오! 오늘도 재밌는 이야기 고맙구나!”
“별 말씀을요!”
타오의 뒷덜미는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식당 내의 주민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레실리아는 근처에 있던 주인장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기, 주인장님. 저 아이는 무슨 일을 하나요?”
“여행객 님들은 모르시겠군요. 타오는 마을에서 알아주는 만담꾼입니다. 설화나 전설을 이야기해주면서 귀를 즐겁게 해주는 거지만… 최근 헛소문을 퍼트리더군요.”
“헛소문이요?”
“방금 듣지 않으셨습니까. 성검이니, 엘프니, 시시콜콜한 썰말입니다. 여기 계신 주민들은 전부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속아주는 거죠. 어떡하겠습니까. 저 아이도 먹고 살아야하는데 말이죠.”
주인장은 도리질치면서 커피를 리필해주었고.
만담꾼을 지켜보는 레실리아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서렸다.
타오는 식당 한 바퀴를 돌면서 돈을 받아냈다.
식사를 하는 주민들은 은전 한 닢을 건넸고. 홀쭉한 돈 주머니는 크게 부풀었다.
타오는 구석진 자리까지 와서 돈 주머니를 내밀었다.
“어? 못 보던 얼굴이네요? 혹시 여행하러 오신 건가요? 깊은 숲속까지 올 일은 잘 없거든요.”
태어날 때부터 작은 마을에 살아온 타오는 한눈에 타지민인 걸 눈치챘다.
둘 다 망토를 썼지만 고상한 귀품이 엿보였고.
앉은 자세와 목소리 톤에서 윗사람 느낌이 들었다.
‘귀족인가?’
타오는 레실리아의 반듯한 손톱을 흘겨보았다.
조그만한 머릿통을 굴려, 이들의 정체를 추리했다.
무뚝뚝한 남자와 상냥한 여자.
평민복을 입어도 고압적이면서 존귀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보는 시선이 애틋하기 짝이 없었다.
남자는 모른 척 무시하면서 커피를 마신다. 보나마나 부끄러운 거겠지.
풋풋한 사랑이 막 튀어오르는 장면.
커플이라면, 단 둘이서 여행하지 못한다.
귀족 문화는 보수적이고 엄격하다.
남녀칠세부동석이 아직까지 잔존하고 있었다.
‘이제 막 혼인한 부부겠구만.’
성혼을 갓 맺은 귀족 부부는 신혼 여행을 다닌다고 들었다.
타오는 그들의 정체를 확신한 후에 말을 이었다.
“흐음…보아하니 부부끼리 신혼 여행 하러 오신 것 같은데 제가 여기 길 좀 안내해도 괜찮을까요? 작은 마을이지만 여행하기 좋은 스팟장소를 몇 군데 알고 있거든요.”
“신혼 여행….부부라고요…?”
“네, 두 분 신혼 여행하러 오신 거 아닙니까?”
타오는 말투를 정중하게 바꿨다.
깍듯하고, 친절히 접대한다면 귀족 부부가 많은 웃돈을 얹어줄 것이다.
귀족은 인심이 후하다. 간혹 이 마을에 놀러온 귀족들을 손수 접대했다.
하나같이 좋아하며, 평소보다 돈을 많이 주었다.
“ㅈ, 정말 그렇게 보여요…? 그 부부…말이에요오…”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시는 걸요! 마치 가이아 여신님께서 점지해둔 운명이 서로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딱 듭니다요!”
“어머…진짜요…?”
레실리아는 양볼을 붉히며 손바닥을 대었다.
영악한 만담꾼은 자연스레 립서비스를 하면서 여심을 공략하였다.
가지가지하는군. 이카루트는 무료하게 바라보며 남은 커피를 마셨다.
‘애버글로우 숲속에도 성검이 나타난 적이 있긴 했어. 다크 우드에서 찾았던 횟수보다 매우 적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성검 뿐이었다.
다크 우드에 성검이 없다면, 애버글로우 숲으로 찾아가야 했다.
전력을 쏟고 싶지 않아 성검이 주로 나타난 공간에만 고위급 마족을 주둔시켰다.
‘지금쯤 아가레스에게 보고가 와야 할텐데.’
며칠 전, 마계 공작 아가레스를 다크 우드로 보냈다.
연락은 아직 되지 않았다. 느긋한 성격을 가진 마족이라 평상시에 하던 보고도 늦게 올라오는 편이었다.
생각할수록 조급해졌다.
탁상 위에 남은 음식. 레실리아는 먹지도 않고 타오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옅은 미소를 띄며 사탕발린 말을 들어주기까지 한다.
“산책하는 걸 좋아하신다면, 숲속 변두리에 지어진 둘레길 어떠십니까? 종종 엘프 분들도 산책하는 길입니다. 아, 꽃구경하는 것도 좋아하신다면 유채꽃 공원도 있습니다.”
“와아, 좋은 정보 고마워요. 즐거운 ‘신혼 여행’하는데에 도움 되겠어요.”
성녀는 즐기고 있었다.
손바닥을 마주하며 순진한 얼굴로 맞장구를 쳤고.
아무것도 모르는 타오는 등허리를 꼿꼿히 피면서, 절로 올라가는 어깨를 감출 생각도 없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성녀의 칭찬이 어린 만담꾼의 자신감을 산처럼 높였다.
“근데 성검을 발견했다는 말…진짠가요?”
“아아, 들어주셨군요! 물론ㅡ”
타오는 주위를 스윽 훑어보다가, 입가에 손바닥을 세운다.
“진짭니다.”
달그락, 이카루트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레실리아와 타오의 시선은 한곳으로 쏠렸고.
이카루트는 무릎 위로 두 손을 얹어, 눈을 올렸다.
망토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 사이로 선홍빛 술식이 번뜩인다.
“우리를 귀족으로 생각하고 있더군. 거짓말을 했다간 네 놈의 목이 어떻게 될지는 잘 알고 있을텐데.”
새카만 오오라가 주변을 감싼다. 곁눈질하던 주민들의 이목은 다시 돌아간다.
떠들썩한 대화와 웃음 소리가 가득한 식당. 이곳은 고요한 정적만이 남았다.
스산한 공기가 피부 곁을 스쳤다. 타오는 저절로 몸을 떨며, 팔을 쓰다듬었다.
“…주인님. 타오는 아직 어린 아이에요. 협박으로 몰아붙이면 겁만 먹고, 도망갈 수 있어요.”
레실리아는 타오의 어깨를 잡아 가까이 이끌었다.
본능적으로 아이를 보호하였다.
“ㅂ, 부인! 잠시만요, 커흑!”
얼결에 풍만한 젖가슴에 파묻혔다. 얼굴이 새빨개진 타오는 숨을 들이마시고는 슬쩍 눈을 돌렸다.
이카루트의 번뜩이는 눈빛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뒤에 나타난 검고 음산한 오오라가 한입에 집어삼킬 것 같았다.
두려웠다.
타오는 점차 성녀의 품속으로 파고들었고. 푹신한 젖가슴살에 뺨을 문대며, 안색이 시퍼렇게 질린다.
레실리아는 타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조곤조곤 말했다.
“타오, 오늘 재밌는 이야기 식당에서 잘 들었어요.”
“히, 히익…! ㅅ, 살려주세요! 거짓말 같은 거 한 적 없어요…!”
“알고 있어요. 다크 우드에서 일어났던 일을 생생하게 전했잖아요. 마치 그곳에 있었던 용사님처럼 말이에요.”
타오는 그저 한달 전, 처음 보는 여성에게 들은 재미난 만담을 들은 것 뿐이었다.
다크 우드에서 발견한 성검. 엘프 왕을 우연찮게 봤다는 말과 함께 맛깔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타오에게 금전 한 닢을 주었다.
‘이 재밌는 썰을 너 혼자만 알기엔 좀 그렇지 않아? 내가 이 이야기를 네게 줄게.’
‘헉, 이, 이렇게 많은 돈은 필요 없어요!’
‘너 일찍 부모님 여의고, 혼자 남은 여동생있다며.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잖아. 잘해줘야지.’
부드러운 금안이 타오를 마주한다.
해가 지는 노을. 여인은 서글프게 웃었다.
타오는 그 얼굴을 기억했다.
‘이왕 만담꾼으로 이야기 할 거, 제대로 쓰자.’
호의와 친절을 이유없이 베푼 사람은 없었다.
그날 만난 여인은 달랐다. 제 사정을 이해했고, 재밌는 썰을 풀어줬으며 돈까지 내어주며 자신과 여동생을 걱정하였다.
왠지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타오는 여인이 준 썰을 재밌게 만들어, 곳곳 마다 이야기했다.
소년의 입술을 통해 동화같은 썰이 널리 퍼졌다.
“저, 전…그저 부인과 나, 나으리같은 여행객에게 주워들은 이야기를 각색한 것 뿐입니다요…! 거짓말이 아니라…!”
“그 여행객. 연갈색 머리를 묶고, 금색 눈을 가진 여자였나.”
“…..!”
“높은 지성과 판단력이 있다면 지금 이상황에서 거짓말따윈 하지 않겠지.”
타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말하면 그 여인이 위험할 것 같았다. 하지만 거짓말을 했다가는 저 무서운 남자한테 죽는다.
사시나무처럼 떠는 타오를 레실리아가 꾸욱 안았다.
“말하기가 곤란하다면 괜찮아요 타오.”
아뇨, 곤란하다못해 제가 죽게 생겼는데요.
타오는 소름돋는 피부를 긁으며, 남자를 바라본다.
‘마왕이 강림한다면 저런 모습일까?’
책에서 읽었던 마왕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져 더욱 무서웠다.
“그때 만난 여행객님과 소중한 추억을 쌓으셨나봐요.”
레실리아는 타오를 다정하게 끌어안았다.
두려움에 질린 아이는 빠져나오기는커녕, 꼬옥 껴안았다.
아기 새가 안전한 둥지에서 벗어나기 싫은 것처럼 레실리아에게 의존했다.
슬그머니 올려다보는 타오를 향해 성녀는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처럼 포근하고 자애가 깊은 웃음이었다.
“그 분은 유일하게 절 이유없이 도와준 사람이거든요…”
“그랬군요. 타오, 많이 힘들었나봐요. 힘들고 지칠때 아무런 대가 없는 도움이 매우 고맙거든요.”
“그, 그런 건…아니…네…너무 힘들었어요. 부모님께선 일찍 돌아가시고…어린 아이를 써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고…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지 몰라서, 흐윽…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재밌는 만담을 풀어 돈을 받는 건데….”
“고생했어요 타오.”
레실리아는 깡마른 등을 토닥였다.
엄마 이후로 누군가가 자신을 안아주고, 따뜻한 격려를 해준 적은 없었다.
타오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어린 아이였다. 저보다 더 어린 여동생을 먹여살리겠다고, 만담꾼을 자처하고 뛰어들었다.
성녀의 위로에 타오는 저절로 마음이 풀렸다.
‘용사가 여기까지 왔었군.’
기정사실이 현실이 되었다. 다크 우드에서 성검을 가져갔다는 썰은 사실이겠지.
금전 한닢을 줬던 레티나를 만났던 썰과 함께 속마음을 주절주절 내뱉었고.
레실리아는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저 등을 토닥여주거나, 공감의 말을 해주었다.
이카루트 또한 오오라를 거두지 않았다.
주변 이목을 흐리게 하며, 타오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