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대현자 함락(2)
52화 대현자 함락(2)
파앗! 레실리아의 가슴팍에 성력이 빛났다.
엄청난 성력에 마주한 촉괴가 흐물흐물해지며 다급히 물러섰다.
마물이라서, 신성력에 대한 데미지가 컸다.
“이 무슨!”
“한눈 팔지 마라.”
갑작스레 시야에 들어온 마왕. 손날에는 방대한 오오라가 칼처럼 들려 있었다.
델피네는 깜짝 놀라 지팡이를 휘둘렀다.
캉! 맑은 소리가 울리며, 뒤로 물러섰다. 잠깐 부딪쳤지만 엄청난 힘의 차이에 손이 덜덜 떨렸다.
델피네는 입술을 콱 깨물어 마법진을 연달아 펼쳤다.
쿵! 쿠쿵!
다발의 불기둥이 나타나자 이카루트는 가볍게 피하며 오오라를 날렸다.
반원 모양의 그림자가 입을 쩌억 벌렸고. 델피네는 마법술식을 바꿔, 불기둥을 얼음창으로 바꿨다.
여러 발이 꽂힌 그림자.
얼음 결정체가 생기면서 팟! 산산조각난다. 하지만 이카루트의 손끝을 통해 음습한 오오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정말 끈질기구먼!”
델피네는 허공에 여러 개의 마법진을 생성하였다.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치면서 불덩이가 우루루 내리친다. 구석까지 몰아치는 틈없는 공격에 이카루트는 공략을 생각하며 막았다.
델피네는 네 가지 원소 마법을 자유로이 번갈아 쓰면서 공격했다. 가끔 두 개의 원소 마법을 합치기도 한다.
‘공격패턴의 전환이 매번 달라져서, 리플레이도 많이 했지.’
게임 플레이하면서 델피네와 처음 대결했을적, 공략이 풀리지 않았던 시기에 도전했다.
대현자와의 대결만 붙잡고 꼬박 사흘을 밤샜다. 한 번 오기로 깼지만. 2회차 게임 플레이 할때는 또 무참하게 패배하였다.
페이즈가 넘어갈 때마다 마법이 다채로웠고, 마지막 페이즈에는 텔레포트를 써가며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콰콰쾅!
델피네는 텔레포트와 함께 써가며 빠르게 공격하였다. 앞에서 불덩어리를 막아내면, 뒤에서 얼음창이 솟구친다.
요리조리 작은 쥐마냥 피해다니는 델피네를 주시하며 이카루트는 모든 공격을 막았다.
“자네! 왜 공격하지 않는 겐가! 자네가 소중히 여기던 마검은 어디가고 말야!”
선제공격은 하지 않았다. 이카루트의 방어적인 태도에 델피네는 기세등등하게 마법을 퍼부었다.
다채로운 마법 공격에 연달아 펼쳐졌다. 마법진 뒤에 서서 델피네는 중얼중얼 영창을 하였다.
그 순간, 이카루트는 이공간을 찢었다.
“오호, 드디어 마검을 꺼내는구먼! 내 이때만을 바랬ㅡ”
“하찮은 가축을 베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검이다.”
“…!!”
영창을 외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공격할 틈이 생긴다.
마왕은 공략대로 델피네의 등 뒤에 서 있었다.
화들짝 놀란 대현자는 속으로 외우던 영창을 놓쳤고. 이를 기회삼은 이카루트는 방대한 오오라를 끌어올렸다.
“잡았다.”
“이, 이런! 꺄앗!”
검은 그림자가 가지처럼 올라오며, 델피네를 붙잡았다. 손목과 발목이 꽁꽁 묶이면서 포박되었다.
수많은 마법진은 삭제되었다. 구속된 델피네는 몸부림쳤지만. 마기는 흡입하듯 마력을 쭈욱, 쭈욱 빨아들였다.
온몸의 힘이 빠지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아, 안 돼!”
“쿠에엑!”
주인이 몸서리치자, 레실리아와 대치하던 촉괴가 태세전환을 했다.
주인을 지키기 위한 본능이었다.
금세 튀어오른 촉괴가 이카루트를 향해 커다란 입을 쩌억 벌렸다.
“여신님의 가호가 함께 하길.”
파아앗ㅡ 하얗고 아름다운 빛이 퍼져나가며, 등진 촉괴를 감싼다. 엄마가 아이를 품어주듯 촉괴를 완전히 삼켰다.
“쿠웩, 쿠에에엑!”
촉괴는 괴로워하며 크게 울부짖었다. 점차 흩어지는 부산물. 다발의 촉수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타다만 잿더미로 변했다.
봉긋한 잿더미 속에는 마법 유물이 있었다. 레실리아가 마법 유물을 줍자 파삭거리며 깨졌다. 이걸 통해 소환수로 삼았을 것이다.
움켜잡은 손등에 옅은 핏줄이 돋았다.
“으, 윽…! 안 돼! 내 소환수가…!”
델피네는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돌연변이종 마물이라, 겨우 소환수로 길들였건만. 공들여서 소환수로 삼았던 촉괴가 몇 분도 되지 않은 채 죽었다.
거칠게 몸부림치던 여체는 잠잠해졌고. 눈동자에는 허망한 그림자가 들여섰다.
“성검은 어디있지.”
“……”
“대현자 델피네. 대답해라.”
“…푸훕, 푸하하하! 아하하하!”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떨구며 마구 웃는 대현자의 모습이 미치광이처럼 느껴졌다.
“성검이, 큭, 어디 있냐고? 푸하핫! 마탑에 있을 리가 없잖아!”
“일부러 여기 있었던 건가.”
“크흡, 하아, 레티나의 말이 맞았어. 후후후…일부러 마탑을 지키라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구먼!”
“설마… 레티나가 성검의 위치를 미리 알고 있다는 뜻인가요?”
“글쎄~ 나도 모르겠다네. 이번 대의 용사는 우리에게도 신비주의라서 말일세.”
레실리아는 굳은 표정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흔들리는 시선을 마주본 델피네는 피식 비웃었고.
이카루트도 생각이 깊어졌다. 함께 성검을 찾으러 갔다고 생각한 원정대가 곧 나타날 장소에 주둔해 있었다.
대현자의 말로는 미리 지시했다고 하지.
‘회귀했을 가능성이 높다.’
판타지 소설에서 봤던 회귀. 회귀가 이곳에서도 적용될 줄은 몰랐다.
게임 플레이를 한다면 캐릭터가 죽는 건 당연했고. 자체 부활시켜서 세이브 저장된 곳에서 게임을 시작한다.
이카루트는 게임에 빙의되었고. 게임은 현실이 되었다. 플레이 요소가 현실로 적용되면서 다양한 변수를 일으켰다.
죽었던 용사가 부활하였고. 죽기 직전의 기억을 갖고 있었다.
‘당시 성검이 마탑 지하실에 있었나보군.’
전 대의 용사 렉스는 성검의 부름을 받고 마탑을 향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신탁을 받으면 성검을 찾으라는 메인 퀘스트가 주어진다. 이를 게임 세계관 내에서는 성검의 부름이라고 말한다.
회귀했다면, 예전 성검의 위치를 샅샅이 찾았을 것이다.
‘이번 대의 성검은 이곳이 아니었어.’
허탕을 친 셈이다.
“나도 처음엔 의심했다네. 하지만 레티나는 자네가 마탑에도 올 거라는 사실을 확신하더군.”
“…..역시 다 알고 있었군.”
“걱정말게나. 레티나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딱 하나, 자네가 성녀와 함께 올 줄은 몰랐네.”
델피네는 미간을 좁히며, 레실리아를 쏘아보았다. 험악한 시선에 레실리아는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두 손을 꾸욱 맞잡은 채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후우, 이로써 난 완벽한 패배를 하였구먼. 이제 날 어떻게 할 셈인가.”
“꼼수는 그만 부리는 게 좋을 것이다.”
“크윽!”
포박한 그림자에 힘이 들어갔다. 델피네는 숨을 헐떡이며 조여지는 힘에 반항하였다.
그가 눈짓하자, 레실리아는 기도를 하였다. 가슴팍에 빛나는 성력은 서서히 바닥으로 뻗어나가며, 공간을 그물처럼 엮는다.
파삭, 깨지는 공간의 균열. 우수수 쏟아지는 공간 사이로 텅 빈 지하실이 보인다.
덜렁 하나 있는 제단. 본래 성검이 꽂혀있어야할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공간 환영 마법까지 이중으로 걸었군.”
“이래서 눈치빠른 마족 놈이 싫다니까…커흑!”
밧줄같은 그림자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부드러운 살결에 붉은 생채기가 났다.
어깨선을 콱 붙들자 저절로 가슴이 들렸다. 가슴 크기가 작긴 해도, 예쁜 물방울 모양이었다.
“뭐, 뭘 보는 게냐! 어허! 그 더러운 눈을 똑바로 하지 못하겠느냐! 크윽!”
이카루트는 팔짱을 꼈다. 이 재수없는 대현자를 어떻게 할까. 죽여버리기엔 조금 아쉬운 인재였다.
다양한 마법을 쓰는 활용성과 전투 센스, 현 용사에 대한 정보까지 가지고 있었다.
“내겐 여러 개의 눈이 필요하다. 인간계를 정복했다하지만 용사가 있는 한, 완전한 엔딩을 이룰 순 없지.”
“하! 그래서 이 몸께서 자네에게 고개를 숙이라는 뜻인게냐?”
“뜻은 비슷하군.”
“절대, 그럴 일은 없다! 죽일 거면 날 확실하게 죽여라!”
델피네는 표독스럽게 눈을 지켜떴다.
거칠게 몸부림치며 분노를 쏟아냈다. 이카루트는 델피네의 머리끄댕이를 잡고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퍽! 배를 가격했다.
“크흐윽!”
“죽이기엔 아까워서 말이야.”
“후우…후우… 절대 꺽이지 않겠…크흑!”
한 번 더 주먹으로 배를 후려쳤다.
델피네의 입가에 타액이 질질 흘렸고. 헐떡거리며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그림자가 위로 들리며, 결박된 여체 또한 둥실 떠오른다.
“마기의 성질은 기운을 변질시키지. 네 녀석이 소환물로 삼았던 촉괴도 다량의 마를 받아들이는 바람에 이변이 일어난 거다.”
“나를 바보로 아는구먼! 그 정도도 내가 모를 줄 알고!”
“순수한 마력에 마(魔)가 섞이면 어떻게 될까…궁금하군.”
“…! 이거 놔! 놓으란 말이다! 으윽!”
이카루트는 송곳니로 엄지를 찢었다. 새어나오는 검은 핏방울. 마기가 조금씩 흘러나오자 델피네의 동공이 마구 흔들린다.
거칠게 도리질하며, 고개를 뒤로 내뺀다. 이카루트는 델피네의 목덜미를 붙잡고는 억지로 입술을 벌렸다.
엄청난 손아귀의 힘에 턱이 부서질 것 같았다. 델피네의 도톰한 입술이 벌려지자 엄지를 잽싸게 집어넣었다.
“시, 싫…! 으읍! 으으읍!”
물어뜯지못하도록 턱에 힘을 주었다. 엄지를 피하려, 혀가 도망다니지만. 주륵주륵 새어나가는 핏방울이 계속 닿인다.
비릿한 혈향. 마기를 조금씩 흡수하자 델피네의 몸이 정처없이 떨렸다.
“흐으읍…!”
낼름거리는 혓바닥 위로 엄지로 꾸욱 찧는다. 문질문질거리자 델피네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혀끝을 잡았다뺐다하며, 구석구석 마기가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약간의 저항이 보이면 그림자가 더욱 구속한다. 젖가슴골과 둔덕 사이를 파고드는 그림자에 델피네는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시, 싫…하아…흐으…”
“죽고 싶은가.”
“그, 흐으…걸 말이라고…읍!”
마기 한 덩어리가 울컥하며 목구멍 속으로 쏙 들어갔다. 식도와 위장을 통해 흡수한 마기는 발빠르게 혈액을 타고 간다.
요동치는 심장 고동 소리. 마나 써클이 바삐 돌아가며, 마기를 밀어낸다.
“흐으…하아…으읍…”
뜨거운 혓바닥은 녹진녹진해졌고. 델피네의 눈이 조금씩 뒤집어지면서 의식이 흐려진다.
처음 맛을 본 마기는 굉장히 매혹적이고 달콤했다.
질척거리는 손끝을 사탕처럼 훑어내리며 마기를 탐닉한다.
“달콤해…흐아아…이러면…안, 돼는…데..하으읍…”
찔끔찔끔 흐르는 마기. 극소량의 마기에 델피네는 목이 말랐다.
마나 써클 위로 마기가 안개처럼 스며들었고. 심장이 점점 요동치며, 몸에 열이 났다.
“더….더…아, 안돼…하, 흐으..지만 굉댱해에…”
요리조리 피하던 혓바닥은 엄지를 핥아올렸고. 사이에 베어나온 마기를 맛본 순간, 머릿속이 절정에 다다랐다.
하반신이 조금씩 젖어가는 게 느껴졌으며 아랫배가 움찔 떨린다.
“하아…더…더…줘어…하앗!”
뜨거운 콧김이 뿜어지면서 피가 나오지 않는 손끝을 쪽쪽 빨아먹는다. 쭈욱 빨아당기는 흡입력에 손끝이 쪼글쪼글해질 것 같았다.
델피네는 게걸스럽게 빨아먹으며 마기가 나와주길 기대한다.
마나 써클이 정화하고 있었지만 마기의 침투력이 빨라졌고. 침식당한 물빛 눈동자에 선홍색이 살짝 비쳤다.
변질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