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뒤틀린 튜토리얼(4)
39화 뒤틀린 튜토리얼(4)
따뜻한 화롯불, 소파에 앉은 이카루트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페퍼민트향이 확 번지며 머리를 맑게 해준다.
‘썩 나쁘지 않군.’
루시는 아침부터 티타임을 내주었다. 오밤중에 엿들은 피로가 풀리는 차를 직접 끓여주었다.
옆에 있던 레실리아는 그때의 말을 기억하는지 찻잔을 받자마자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뒷구멍에 자지가 박힌 채 앙앙대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랐다.
“언니, 어디 아프세요…? 열 나는 것 같은데….”
“아, 아니에요! 조금 더워서…. 그런 거니까….”
“아차…. 장작을 너무 넣었나봐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루시는 불쏘시개를 들었다.
그리고 활활 불타는 장작을 고른다.
불씨가 타닥, 타닥 거릴 때마다 콧잔등을 찡그린다.
“곧 온도가 조금 내려갈 거에요. 지금 많이 뜨겁진 않죠?”
“적당하다.”
차를 마시던 이카루트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루시는 볼을 긁으며, 히죽 웃는다. 눈을 반쯤 내리깐 시선은 수줍음이 가득하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감정. 레실리아의 입가가 살짝 떨린다.
탁, 무릎 위로 올라간 찻잔이 조금 흘러넘쳤고. 식은 찻물은 허벅지 사이로 들어갔다.
“언니? 헉! 안 뜨거워요?”
“아…!”
뒤늦게 눈치챈 레실리아는 부랴부랴 찻잔을 들었다. 치마가 축축히 젖었다.
하필 사타구니 부분이 젖어 마치 오줌을 싼 것처럼 보였다.
성녀의 얼굴은 토마토처럼 새빨개지다못해 터질 것 같았다.
루시는 황급히 닦을 수건을 가지러 갔다.
“하아…입을 옷도 없는데….”
레실리아는 손바닥을 펼쳐, 얼굴을 묻는다.
발목까지 덮는 길이의 베이지 색 치마. 금방 돌아갈 줄 알고, 여분의 옷을 챙기지 않았다.
젖은 흔적은 허벅지와 사타구니 부분으로 이어져, 삼각형 모양이 되었다.
이카루트는 부끄러워하는 성녀를 위해 행거치프를 올려주었다.
고인 찻물이 스며들어, 스르르 젖어갔다. 그는 젖은 부분을 조금 문대주었다.
“…!!”
갑작스런 스킨십에 놀란 레실리아는 허벅지를 꽈악 모았다.
손끝은 보지 윗부분에 눌러졌다. 치마와 손수건이 겹쳐져 있지만 촉촉히 젖어, 살결이 느껴졌다.
원을 그리며 둔덕을 쓰다듬어주니 맞부딪친 허벅지가 부비적거린다.
‘이런 용도로 사용할 생각은 없었는데.’
레실리아는 벌써 손을 뗐다. 물기가 젖은 눈동자는 탁한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미간이 조금 찌그러졌다.
그리고 몸은 저항하지 않았다. 더욱 더 원하는듯 허벅지를 비비적이며 보지골을 만든다.
얼결에 끼워진 손가락은 딱히 움직이지 않아도,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 님….”
빼내려고 했으나, 레실리아는 제게 집중하길 원했다.
도톰한 입술을 오물오물 느릿하게 움직인다.
“여기가….뜨거워요….”
“확실하게 말해.”
“하읏…제 보지가….”
뜨거워죽겠어요. 소리없는 음성이 열락에 먹혀들였다.
스스로 주인의 손가락을 보지골에 끼운채 상체를 들이민다.
매우 음탕했다.
“크, 흠! 저…기… 실례합니다…?”
“…?! 꺄악!”
헛기침을 한 루시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조금 붉어진 얼굴을 보니, 야시시한 기류를 눈치챈 것 같았다.
곧 다가올 쾌락에 취해 있었던 레실리아는 외마디의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원래대로 돌려놓았고.
이카루트는 자연스레 찻잔을 집어들었다. 분위기가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큼큼…언니 제 바지라도 빌려드릴까요?”
“부, 부탁드릴게요…….”
급기야 머릿결을 붙잡고 얼굴을 가린다.
루시는 둘은 번갈아보았다. 검지로 볼을 살살 긁으며 바지를 가지러 자리를 떠났다.
후다닥 뛰어가는 걸음 소리가 도망치듯 다급하게 느껴졌다.
“결국 들켜버리고 말았어….”
치마 닦으라고 받은 수건에 성녀는 얼굴을 파묻었다.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이카루트는 차를 호록, 마신다.
타닥, 타닥…. 조용한 정적 가운데, 장작이 꺼져갔다.
***
용사의 기척을 찾으려면 예상한 것보다 더 걸릴 것 같았다.
이카루트는 전(前) 대 용사 렉스 에티아의 집에 하루 더 머무르기로 했다.
본래 용사의 여동생인 루시도 있었으니, 다양한 방면으로 정보를 얻기에 괜찮았다.
그래서 양해를 구했다.
‘저희 집에 며칠 더 머무르셔도 되는데… . 그, 어…. 잘 다녀오세요!’
루시는 거실에서 본 기억을 떨쳐내려는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고.
이어 방긋 웃으며 손인사를 하였다.
“하아….너무 부끄러웠어요….”
레실리아는 조금 전의 일을 회상하며, 고개를 숙였다.
새카맣게 물든 머릿결 끝을 만지작거리다가 걸음을 우뚝 멈춘다.
손을 뒤로 하여, 엉덩이살에 낀 바지끝을 슥슥 내린다.
루시는 짧은 반바지를 즐겨 입었다. 하지만 레실리아는 항상 발목을 덮는 치마를 입었다.
마왕성 이후로, 처음 다리를 내보였다.
“흐우…. 이런 바지를 입는 것도 처음이고요….”
속옷 바지를 제외한 반바지는 처음이었다. 가죽으로 만든 반바지는 재질도 질기고 튼튼했다.
하지만 길이가 매우 짧고 딱 달라붙었다.
엉덩이와 골반도 커서 보지 둔덕이 적나라하게 선을 드러낸다. 몸선이 예뻐 잘 어울렸지만.
정작 입은 본인은 부끄러운듯 고개를 푹 숙인다. 성녀가 봤을땐 정숙치못한 옷차림이었다.
망토로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데, 자꾸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봤고. 미어캣 마냥 획획 돌아본다.
‘누가 따라오고 있군.’
둘은 따라오던 인기척이 있었다.
성녀가 부끄러워 주위를 두리번 거릴 때마다 주마등처럼 깜박거리며 사라진다.
눈치챈 이카루트는 조금 더 여유있게 걸었다. 처음 마을에 온 모험가처럼 행세하며 레실리아의 손목을 잡았다.
“앗! 주인님…?”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다.”
“…!!”
레실리아는 신성력을 재빨리 퍼트렸다.
아쉽게도 용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랫입술을 살짝 짓누른 레실리아는 성력을 거두었다. 백금색으로 번쩍 빛났던 머릿결 끝은 다시 검게 복구되었다.
“……누가 따라오는 걸까요.”
“글쎄. 확인해야겠지.”
‘그때 골목을 지켜보던 놈은 아닌 것 같고.’
마을 게시판으로 가던 길목에서 불량배를 죽였던 전날.
서릿발같은 살기가 느껴졌으나 잽싸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느껴지는 기척이 달랐다. 전혀 다른 존재였다.
‘정체를 들킨 것 같군.’
그렇지 않고서야 추격당할 이유는 없었다.
이카루트는 오오라를 흘려, 소리와 사각지대를 차단하였다.
ㅡ 스스슷….
한 걸음 떼자 쩌억, 하고 그림자가 늦게 떨어진다.
다리를 붙든 그림자가 천천히 타고 올라가 용의 형태로 변한다.
이윽고 리바이어던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해꾼이 있다. 조금 전 느꼈던 기척을 따라가라.”
“존명.”
파스슷, 그림자는 한순간에 흩어졌다.
“주인님… 지금 상황 괜찮은 거죠?”
“상관없다. 나쁘다한들, 전세역전은 금방 될테니까.”
리바이어던은 추적이 능했다.
그리고 지나가던 마을 주민들 몇 명은 감시하는 벨페고르의 실험체들이 섞여 있었다. 릴리트는 마을 남자들의 음몽을 통해, 용사의 기억을 전부 모았을 터.
이제 용사를 잡기만 하면, 지긋지긋한 술래잡기도 끝난다.
방해물은 모조리 죽여버리면 그만이고. 현재 마왕 쪽이 우위를 잡고 있었다.
“주인님….”
레실리아가 그의 옷깃을 붙들었다.
올려다보는 시선 끝은 불안한 기색이 서렸다.
성녀는 걱정하고 있었다.
‘진정 용사가 죽을까봐 두려운 거겠지.’
용사의 죽음은 인간계의 몰락을 의미했다.
그리고 성녀는 한때 용사를 짝사랑했다.
잠깐동안 사랑했던 이가 제 눈앞에서 죽는다면 심장이 찢겨져 난도질당한 것처럼 고통스럽다.
지옥같은 남은 인생. 근근히 목숨을 이어가며 복수의 칼날을 갈 것이다.
‘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겠군.’
이카루트는 매정하게 몸을 틀었다.
펄럭, 옷깃을 붙은 손은 금방 떨어졌다. 레실리아는 제 손바닥을 보고는 배꼽 위로 두 손을 모은다. 묘하게 처연한 표정이었다.
“용사는 죽을 것이다.”
“…….”
“만일 내 앞을 가로 막는다면. 제일 먼저 목이 떨어지는 건 성녀, 너부터다.”
총명한 청안이 한차례 깜박인다.
게임 엔딩에서 봤던 성녀의 마지막 모습이 겹쳐졌다.
“네, 알고 있어요.”
레실리아는 울지 않았다.
살기어린 분노는 물론, 죽이지 말아달라며 사정하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그저 당연하게 용사의 죽음을 수긍하였다.
역시 뒤틀렸다. 세계도, 성녀도.
‘조금 더 두고 봐야겠어.’
대규모 패치 이후로 빙의된 세상은 변했다.
성녀를 살려야 할지, 죽여야 할지는 그의 선택에 따라 달렸다.
이카루트는 할 말이 많았지만 평소처럼 속으로 삼켰다.
말없이 뒤돌아 걸음을 옮긴다.
ㅡ 저벅저벅. 자박자박….
성녀 레실리아는 총총 따라가며 기쁜듯 옅은 눈웃음을 짓는다.
여느 때와 똑같은 최애캐의 모습이었다.
***
화롯불이 거의 꺼져가는 거실.
밭일을 마친 루시는 늘어져라, 소파 위로 기댔다.
다리를 꼰채로 턱을 올리고는 기지개를 쭈욱 켠다.
곧은 어깨와 다리가 일자로 뻗으며, 부르르 떤다.
“하아암….피곤하다…. 모험가 님은 언제 오시려나?”
루시는 짧게 하품을 하였다.
발끝을 까닥, 까닥거리며 장난치다가, 풀썩 소파 위로 엎드렸다.
“…… 그 모험가 언니랑 무슨 사이일까?”
짧은 머릿결을 손가락에 끼우고, 빙글빙글 돌린다.
오늘 아침부터 확 좁혀진 둘의 거리를 보면…….
“근데 언니 말로는 사귀는 관계는 아니라고 하던데….”
남녀끼리 다니면, 연인 아니면 부부였다.
루시는 전날 레실리아에게 방을 따로 소개해주며, 슬쩍 물어보았다.
‘언니, 그 모험가 님이랑 사귀는 사이인 거죠?’
‘ㄴ, 네? 네…?어, ㅇ, 아니요! 아니에요! 절대 결코 네버! 사귀고 있지 않아요!’
‘그럼 왜 같이 다니는 거에요…?’
‘어, 그게…그러니까…. 아, 어…. 그러게요…? 그래도 그런 사이는 아니에요! 저,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레실리아의 목덜미와 얼굴은 순식간에 벌개졌다.
동공이 정처없이 흔들렸고. 손부챗질을 하지만 얼굴색은 더욱 붉어졌다.
솔직히 의심했지만.
레실리아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계속 부정하였다.
“뭐, 진짜 사귀는 건 아니라고 하니까….”
왠지 안심이 되었다.
조금 부끄러워진 루시는 크응, 콧김을 뿜었다.
소파에 파묻힌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가슴 한켠이 간질간질거리고, 가끔 시선을 마주하면 시선이 턱턱 막힌다.
“첫사랑인가…?헉!”
루시는 눈을 끔벅이다가, 뒤늦게 화들짝 놀란다.
그제야 제 마음을 깨달은 여인은 빙글 몸을 돌렸다.
이마에 손등을 대며, 멍한 표정을 짓는다.
마을엔 수많은 남자들이 있었지만. 크게 관심이 없었다.
루시는 농장일이 좋았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들과 노는 게 훨씬 좋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루시는 손등으로 눈을 스윽 가렸다.
그를 좋아한다고 인지하는 순간, 심장이 자꾸 두근거린다.
“모험가 님…언제 오실까….”
그녀는 때늦은 짝사랑을 앓기 시작했다.
그런 루시를 즐겁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흥흥♡ 재밌는 거 발견♡”
기척을 숨긴 릴리트는 빙글빙글 웃는다.
꺼슬한 혀로 윗입술을 스윽 햝고는 루시에게 가까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