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뒤틀린 튜토리얼(1) (36/98)



〈 36화 〉뒤틀린 튜토리얼(1)

36화 뒤틀린 튜토리얼(1)

‘튜토리얼에서 봤던 모습과 똑같군.’

이카루트는 게임에서 본 기억과 동일한 마을 표지판을 발견하고는 쓸데없는 감상에 빠졌다.
낡아빠진 표지판엔 ‘평화의 마을, 실론드’라는 글자가 있었다.
문구와 달리 마을 내부는 마물 습격을 당해, 복구가 한창이었다.

“여기가 용사님께서 태어나신 곳…이군요.”

남루한 망토를 뒤집어쓴 레실리아는 신기한듯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찬란한 백금발은 흑마법으로 덮어, 새카만 검은색이었다.
성녀를 데려올 생각이 없었다. 용사를 추격하는데 마왕 혼자로도 충분했다.

‘저도 데려가주세요.’

용사를 찾았다는 마몬의 전언에 레실리아가 입을 뗐다.
그러자 마몬은 극심하게 반대했다. 성녀는 인간의 편이었고, 용사를 발견한 즉시 편을 먹을 수 있었다.

‘가축 주제에 말이 많아. 네 년이 어떻게 할 줄 알고, 믿지?’
‘……용사님의 기운을 찾을 수 있는 가축은 저 밖에 없습니다. 용사님을 찾는 즉시, 제 목을 베어버리셔도 상관없어요. 그러니 저를 부디 데려가주세요.’

의심이 많은 마몬은 살기를 내비쳤다. 이에 굴하지 않고 성녀는 맞섰다.
가슴팍에 손을 얹으며 실론드 마을에 적극 데려가달라고 피력한다.
둘 사이에 오가는 기류는 스파크처럼 타닥, 타닥 튄다.

조용히 듣고 있던 이카루트는 성녀의 편에 섰고. 마몬은 말없이 복종하였다.
마몬의 어금니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지만.

“전 대의 용사님도, 이번 대의 용사님도 이곳에서 태어나셨다니…….신기하네요.”

레실리아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거야 당연하다.
렉스 에티아는 실론드 마을 출신 용사였으니까.
걸음의 속도를 높인 이카루트는 마을 입구로 향했다.

“모험가 님이십니까?”

경비병을 클릭하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대사였다. 다시 게임 플레이하는 것 같군.
이카루트는 모험가를 증명하는 패를 보였다. 확인한 경비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켜섰다.
레실리아 또한 패를 확인받고는 곁으로 쪼르르 붙었다. 혹시나 들킬까봐 눌러쓴 망토끝을 만지작거린다. 다행히 경비병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휴우…. 들킬까봐 무서웠어요….”
“성녀 얼굴도 보기 힘든 자들이다. 네 얼굴을 기억하는 인간이 있다면 살려둘 수 없지.”
“…!! 아예 감출까요?”
“됐다. 널 알아볼 인간들은 아무도 없을 거다.”

제국 변방에 위치한 마을. 서쪽 해안가까지 끼고 있어, 성녀의 얼굴을 알만한 황족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레실리아와 나란히 걸어가며 마을 내부를 휘휘 둘러본다.

게임을 리셋한 후, 다시 용사로 플레이하면 주구장창 봤던 마을이었다.
대사 스크립트까지 다 외웠다. 시나리오는 빠르게 스킵하며, 몇 분만에 튜토리얼을 깼던 그는 지도따위 보지 않았다.

‘마을 내부 게시판을 찾아야 해.’

마을 정보와 소식을 한곳에 모아둔 게시판. 거기서 용사에 대한 빌미를 찾을 수 있었다.
또각또각. 큰 길로 걸어가던 중, 누군가가 그들 앞에 섰다.
망토를 휘두른 한 여성이 길을 방해한다. 이카루트의 미간은 살짝 일그러졌고. 레실리아는 그의 옷깃을 잡으며 그녀를 경계한다. 그러자 망토 끝으로 드러난 입가에 개구진 미소가 그려졌다.

“어머 너무해라♡ 오빠 나 잊었어?♡”
“……릴리트, 시끄럽다.”
“흐응~ 나 버려두고, 딴 여자랑 같이 있기야? 나 삐졌어♡”

지나가던 마을 주민들은 흘긋 쳐다보았고. 몇몇 주민들은 서로 귓속말로 속닥거린다.
이카루트는 그녀를 공기취급하며, 걸음을 옮겼지만 곧 막혔다.

“치이, 장난 좀 친 거에요♡ 나 계속 무시할 거에요?♡”
“당신…여기서 뭐, 하시는 거죠?”
“나~? 우리 주인님 명 때문에 있는 건데?♡ 우리 성녀님이야말로 여기서 뭐해?♡”
“!! 쉬잇, 목소리 커요…!”

레실리아는 거침없이 성녀라고 말하는 릴리트의 입을 틀어막는다.
장난꾸러기 서큐버스는 손을 떼고는 소리없이 성녀라는 단어를 늘렸고.
레실리아는 안절부절 못하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스스슷, 오오라가 에워싸자 마을 주민들의 이목이 단숨에 흩어졌다.

“장난도 정도 껏 쳐라.”
“흥흥♡ 네 알겠습니다아~♡”
“용사에 대한 기억은 읽었나?”
“흐음…♡ 읽긴 했는데, 매~우 흐릿했어요.”

릴리트는 마왕의 명에 따라 실론드 마을 주민들 전부 음몽을 걸었다.
음몽에 취한 마을 주민의 기억을 한 명씩 더듬어보았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용사에 대한 기억은 안개처럼 뿌옇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요♡”
“……단축할 수 없나?”
“할 수는 있죠~ 그러려면…♡”

릴리트는 망토를 걷었다.
그러자 레실리아는 꺄악! 짧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싼다.
이 발칙하고 응큼한 서큐버스는 나체로 다녔다. 아무것도 입지 않는 여체를 내보이며, 두 다리를 벌렸다. 쑤셔달라는 음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보는 성녀가 부끄러워하며 그의 등 뒤로 숨었다.

‘귀찮게 구는 년.’

시야를 흐트리는 오오라 덕분에 주목받지 않았다.
이카루트는 이마를 쓸어올리며, 한심한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인간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 한복판. 알몸으로 매도당하는 눈빛에 릴리트는 흥분한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음탕한 액이 종아리를 타고 흘려내리자, 레실리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가축 앞에서도 천박하게 굴다니. 정녕 고위급 마족이 맞나 의심되는군.”
“오옷♡”

이카루트는 거칠게 음부를 헤집었다. 녹진녹진한 보짓살은 손가락을 반기듯 쪼옥쪼옥 달라붙는다. 릴리트는 망토자락을 든채로 다리를 넓게 벌렸다. 무릎에 점점 굽혀지면서 스쿼트 자세가 되었다.

“옷, 오옷…♡”
“한심한 추태를 보여주기나 하니…. 마물을 군림하는 서큐버스여 추하다. 내 힘을 거두는 즉시, 인간 가축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널 범해주길 바라는가?”
“핫, 오끄읏! 아, 아니여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내 명을 따라 움직여라.”
“ㄴ, 네엡! 주인님!♡”

푸와악! …푸슛…푸슛.
손가락을 거침없이 빼냈다. 보지를 휘젓는 손끝을 따라, 끈적한 애액을 뿜는다. 가볍게 절정한 릴리트는 후우, 후우 숨을 고르며 망토를 내린다.
툭, 투둑…. 발목까지 내려온 애액. 바닥에도 방울진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

“그래서어…♡ 주인님….어디로 가시는 거죠?”
“네가 알 필요는 없다.”
“아잉♡ 주인님♡ 낮잠자는 인간들이 생각보다 없단 말이에요♡”

릴리트는 상체를 바싹 붙은채 팔에 매달린다.
그가 놓으라고, 흔들어도 껌딱지처럼 달라붙는다.

“……주인님.”

바스락, 옷깃을 잡고 있던 레실리아가 조심스레 팔에 손을 건다.
부끄러운듯 고개를 푹 숙이기까지 한다. 릴리트의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린다. 이윽고  발개진 홍조를 보고는 짖궂은 웃음을 터트린다.

“푸하핫! 뭐야뭐야? 성녀님 방금 애.교. 부린 거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으읏, 조, 조용하세요…!”
“싫은데~ 싫은데~ 나 성녀님 놀리고 싶은데♡”

릴리트는 혀를 쏙 내밀며, 장난을 마구 건다. 순진한 성녀는 부들부들 떨며 꼬옥 붙는다. 이카루트는 저를 사이로 두고, 캣파이트 하는 둘을 여전히 무시한다. 그의 신경은 마을 게시판이었고. 빨리 찾기 위해 지름길을 이용했다.

“……주인님…?”
“흐응♡ 거머리들이 붙었네~?”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자, 아까부터 졸졸 따라다니는 인기척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마을 입구에 진입하자마자 몇몇 인간들이 들러붙었다.
이미 눈치챘던 릴리트는 흥미로워하였고. 아무것도 몰랐던 레실리아는 눈을 데록데록 굴리며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쳇, 벌써 눈치챘나? 이번 모험가 님은 실력이 좀 있는 모양인데?”
“……귀찮게.”
“뭐? 네 놈, 방금 뭐라 했냐? 귀찮다고~?”

모험가들만 노리는 불량배 집단이었다.
여기도 불량배가 있었군.
메인 시나리오에 맞는 레벨이 안될 때. 경험치를 주는 서브 퀘스트를 깼다. 그 중에서도 불량배를 처리하는 것도 있었다.

‘튜토리얼 장소라서 이런 놈들은 없을 줄 알았건만….’

서브 퀘를 승낙하지 않았는데도 모습을 드러낸 불량배를 보니 막상 현실로 느껴졌다.

“킬킬킬, 네 녀석이 차고 있는 돈주머니만 준다면 기꺼이 살려주지.”
“돈이 아니어도, 여자들만 줘도 상관없다고?”
“크으…외모가 뛰어난 년들은 어디서 주워온 거야…. 여자 꼬시는 능력이 대단한 모험가로군!”

골목길을 두고, 불량배들이 가까이 다가온다. 성녀와 서큐버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군침을 삼킨다.
심히 불쾌한 눈길.
릴리트는 흥, 콧방귀를 끼고는 곁눈질했다.

“흐음…♡ 빨리 도망치는 게 좋을텐데♡”

스물스물, 몸에서 드러나는 오오라.
방대한 힘의 차이에 저도 모르게 움찔 떨었다.
슬그머니 뒷걸음치는 릴리트에게 마왕은 눈짓으로 명을 내린다.

“…에휴우, 네에♡ 알겠습니다♡”

고개를 조아린 릴리트는 빙그르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두려우면서도 고고한 척 해대는 레실리아의 뒤로 슬쩍 다가섰다.
와락! 갑자기 안는다. 푹신한 젖가슴살이 쿠션처럼 등을 누르자 레실리아는 깜짝 놀랐다.

“우리 애기 성녀님♡ 잠깐만 눈 좀 감고 있을까~?”
“…!! 뭐, 뭐하시는…! 꺄악!”
“흥흥♡ 조금만 감고 있어봐~.”

릴리트는 장난치듯 두 눈에 손을 갖다댄다.
눈꺼풀 위로 부비적거린다. 위험한 상황에서 짖궂게 구는 서큐버스에 레실리아는 파닥파닥 움직인다. 그녀의 키가 조금 작은 탓에 늘씬한 서큐버스의 젖가슴살에 폭 파묻힌다.
골 사이로 뒤통수를 문대자 젖라인이 드러났다. 얇은 망토 천 위로 젖꼭지가 볼록 튀어오르자, 불량배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서걱-
불량배의 시야는 한순간에 거꾸로 돌아갔다.
이어 목과 분리된 육체들은 무너진다.

“이, 이거 놓으세요! 빨리요!”
“응, 아직까진 안 돼~♡”

데구르르…. 이카루트의 발끝에 잘린 목이 차인다.
발밑에 있던 그림자가 올라와, 덥썩 목과 육체를 삼킨다.
ㅡ 스으윽. 시체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던 릴리트는 짠! 하며 눈을 뗐다.

“당신, 이거 놓으세…! 어?”

마구 문대던 손길이 빠르게 없어졌다. 시큰거리는 눈가를 비비자, 불량배가 없었다. 저를 희롱하며, 낄낄거리던 그 사람들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레실리아는 물음표를 띄며, 이곳저곳 훑어본다. 빛이 새는 골목길 정중앙에 이카루트가 우뚝 서 있었다.

“주인님…?”

그 순간 레실리아가 움찔 떨었다.
역광을 받아, 고압적인 분위기가 더해졌다. 아무것도 없던 동공에 술식이 어그러졌다. 그는 마왕이었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무력감이 들었을까.
아니면 생명에 자비를 베풀지 않는 마족에 대한 실망감 일까.
레실리아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지.”
“…! 네.”

이카루트의 명에 따라, 부리나케 걸음을 옮긴다.
그때 릴리트가 레실리아의 뒤를 바싹 붙이고는 귓속말을 한다.

“우릴 노리던 가축들 말야~ 목과 몸이 분리된 채로 죽었다?♡”
“…….”
“너와 같은 동족인데 안 슬퍼?♡”
“…….”
“성녀님이 패배를 인정한 후부터, 이런 일 많이 일어날 거야♡”

쓸데없는 가축 따위에게 자비를 베푸는 성녀님.
질서와 평화를 사랑하고, 선과 악을 품는 유일한 인간.

웃기고 있네♡
릴리트는 킬킬 비웃으며, 맘껏 비꼬았다.
자신을 모른 척 해도 속에선 벌써 피눈물을 쏟는 중일 것이다.
기대감이 찬 서큐버스의 시선은 옆얼굴을 뚫어지듯 바라본다.

“알고 있어요.”
“……응?♡”
“그들의 불쌍한 운명이 거기까지인가 보죠.”

하지만 성녀의 반응은 무감정에 가까웠다.
흥, 재미없게. 예상과 다른 모습에 릴리트는 흥미가 팍 식었다.

그래도…….
마족은 모든 감각이 뛰어났다. 짧은 거리에서도 둘의 대화를 들은 마왕의 표정은 무심했으나, 눈의 방향은 이쪽으로 자주 향한다.

역시 우리 마왕님이 제일 재밌어♡
릴리트의 기분은 풍선처럼 붕 뜨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