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나태한 악마
24화 나태한 악마
‘조금 곤란하군.’
그 날 첫키스를 경험한 후부터 레실리아는 자지 청소를 하면서도 흘끔 눈치를 본다.
키스하고 싶다는 강렬한 눈빛에 이카루트의 얼굴이 따끔따끔해질 지경이었다.
보상을 원하는 개는 주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교섞인 잔재주를 부린다.
한층 더 깊어진 딥쓰롯, 그리고 자지 청소를 위한 혀놀림은 전보다 과감해졌다.
“이제 그만. 네 얼굴에 싸겠다.”
말은 잘듣는 성녀는 즉시 입안에 문 자지를 빼냈다. 뽀옥, 하고 빼낸 귀두 끝에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부르윽! 일자로 뻗은 정액 줄기는 레실리아의 눈꺼풀과 콧망울, 그리고 윗입술에 묻었다.
한쪽 눈을 감은채 성녀는 천천히 혀로 윗입술을 핥는다. 진득한 수컷냄새가 느껴지자 흥분한듯 콧김을 뿜는다.
“흐음, 하앙, 후우우….주인니임…. 맛, 있어요오….”
깨끗한 손가락으로 눈꺼풀에 묻은 정액을 묻게 하고는 그대로 혀로 스윽 핥는다.
고양이가 세수하는 것처럼 레실리아는 구석구석 개끗하게 정액을 핥아댔다.
맛있게 핥아대고는 은은한 미소를 짓는 얼굴은 제법 요망했다.
“좆물도 맛있게 빨아먹는군.”
“주인님 거니까…….맛있게 먹는 거에요.”
아직도 혀를 내밀고 있는 레실리아가 천천히 일어섰다.
키스해달라고 보채기 시작한다.
이카루트는 모른 척 무시하며 옷새무새를 정리한다. 레실리아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시선을 이리저리 배회한다.
옷소매 단추를 깔끔하게 잠군 이카루트는 문앞에 다가온 인기척에 대답을 했다.
“지금 나가겠다.”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보좌관 마몬은 노크하려던 손등을 바로하며 엉거주춤하게 섰다.
이카루트가 밖으로 나서려고 하자, 레실리아도 당연하듯 졸졸 따라갔다.
집무실, 야외 정원, 침실. 별도의 일정이 없다면 물레바퀴처럼 돌아가는 지루한 일상이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최애캐와 함께 따분한 일정을 보냈다.
“여기에 있어라.”
“아…! 네에….”
이카루트의 고압적인 음성에 등 뒤로 바싹 붙었던 성녀는 꼬리를 내린다.
하지만 오늘은 중대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고위급 7대 마족이 얼굴을 마주하며 회의를 하는 시간.
애초에 노예를 데려갈 수 없고, 성녀 레실리아라면 더욱더 안된다.
이카루트가 문을 열자, 마몬이 깍듯히 예를 갖춘다.
“주인님 잘 다녀오세요.”
레실리아는 여느 날처럼 배웅했다. 이카루트는 응답하지 않은채 자리를 떠났다.
끼이익.
문이 닫히기 전, 틈새로 보이는 성녀는 왠지 애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고위급 마족이 둘러앉은 회의실.
둥근 책상에 앉아있는 그들은 고위급 지위에 무색할 정도로 행동했다.
양손에 음식을 가득 쥔채 게걸스레 먹고 있는 바알제붑. 그 옆에 앉아, 바알제붑을 놀려먹는 서큐버스 릴리트.
그림자 형태의 리바이어던은 조용히 제자리에 앉아있었고. 아가레스는 주름진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포도주를 마신다.
그리고 이들을 주시하던 루시퍼는 검은 날개를 퍼덕이며 불만을 표시한다.
“그 신경질적인 게티아를 쓰러뜨리고 공작위를 차지한 녀석은 대체 어떤 놈이냐?”
“어머♡ 우리 루시퍼님 타락한 천족답게 질투하는 거야?♡ 진짜 하찮다~♡”
“씨발, 발랑까진 입 좀 그만 놀리지 그래? 네 면상만 보면, 존나 호떡처럼 치고 싶으니까.”
“헛헛, 두 분 참으로 청춘이십니다. 저도 나이가 젊었을 땐 같은 고위급 마족만 보면 죽이고 싶어 살기가 매일같이 끓어올랐습니다만, 이젠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그때만큼 살기가 올라오질 않는군요.”
투닥거리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아가레스는 은은한 미소를 짓는다.
청년 시절의 자신을 상기하며 새로 탄생한 고위급 마족을 속으로 축하했다.
“근데 신기하다♡ 그 오만하고 비열한 게티아를 죽이기를 꺼려했을 텐데~ 차라리 공작위를 노릴 거면, 제일 약해보이는 나를 노리는 게 맞지 않을까?♡”
“푸헬헬헬! 괜히 건드렸다가 네 년의 애완동물 되는 것 보다는 아예 목숨을 끓어버리는 게티아가 훨씬 괜찮을 테야!”
“치잇, 그런가?♡ 즐겁게 놀아줄 자신 있는데에…♡”
릴리트는 턱을 괴며 눈을 데록데록 굴렸다.
마계는 철저한 양육강식의 세계였다. 고위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타고난 능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강해야 한다.
7대 고위급 마족이 되면, 마왕의 직속하에 막강한 마력을 부여받는다. 호전적인 마족은 강자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죽기살기로 싸운다.
이긴 자는 더욱 큰 자리로 손을 뻗었고, 진 자는 죽음을 맞이한다. 강함을 추구하는 마족의 최종 목표는 마왕이었고. 그 다음이 고위급 7대 공작이었다.
본래 고위급 공작에 있었던 게티아가 한 마족의 손에 의해 어이없이 죽었다. 한순간에 일어난 세대교체였다.
마왕은 용사에 관련된 회의와 함께 새로 탄생한 고위급 마족을 맞이할 생각으로 모두를 모인 것이다.
“근데 언제 올까아~♡ 궁금하다♡”
“귀하신 몸을 기다리게 하다니, 그 좆같은 면상 한 번 보고 싶네 거.”
“쿠핫핫핫! 짜증내지 마라! 루시퍼, 우리도 처음 네 면상을 봤을때 한대 치고 싶었거든!”
“그냥 입 싸물고 있어. 탈모와서 이마가 뒤로 벗겨지는 주제에.”
“무, 무엄하다!! 네 녀석! 죽인다!”
약점을 건드린 루시퍼의 건방진 발언에 바알제붑은 분노하였다.
격렬한 살기가 몸주변에 으슬으슬 일어나자, 전투광인 루시퍼 또한 살기를 뿜어 격동을 일으킨다.
릴리트는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둘을 응원한다. 그 순간, 엄청난 오오라가 느껴졌다.
달아오르던 전투 분위기는 급격히 식었고. 바알제붑과 루시퍼는 식은땀을 흘리며 문 너머의 인물을 바라보았다.
“……이카루트 님. 죄송합니다.”
“쓸데없이 소란을 일으키는군.”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마몬은 90도 직각으로 허리를 굽혔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살기를 일으킨 장본인 두명을 속으로 욕 한바가지를 퍼붓었다.
덕분에 바알제붑은 속이 뒤틀려, 고기덩어리를 내려놓았고. 루시퍼는 헛기침을 하였다.
마족들이 숭배하는 통치자 마왕 이카루트가 등장했다.
이카루트가 선상에 앉자, 일어났던 마족들도 동시에 앉는다. 그가 반절 눈을 내리깔고 한심스럽게 보자 다들 모른 척 하기 일쑤다.
“주인님~♡ 근데 새로 탄생한 고위급 마족은 언제 와요?♡”
“곧 올 거다.”
이카루트가 인간계로 떠난 사이, 단 하루만에 고위급 마족이 나타났다.
본래 7대 고위급 공작위에 있어야할 npc캐릭터가 죽었다. 그리고….
‘시크릿 루트에 등장한 캐릭터가 나타났어.’
플레이어블 캐릭터마다 개발진에서 이스터에그와 시크릿 루트를 넣었다.
고인물을 위한 특별 이벤트이었기에 타임이 길었던 유저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카루트의 시크릿 루트는 용사와 마지막 재회에서 그를 살려준다. 마왕과 용사는 필연적으로 서로 죽여야 하지만 중간에 뜨는 대화 스크립트에 따라 엔딩 방향이 바뀔 수 있었다.
게임 시나리오는 파를 갈라, 어떻게든 서로 싸우게끔 만든다. 허나 잘만 선택하면 둘은 싸우지 않는다.
‘완전히 열린 결말이었지.’
마족은 물러나고, 인간계는 평화를 찾지만. 끝에는 천족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지켜봤고.
이후로 이카루트의 뒤로 나태한 악마가 찾아온다.
철그럭, 스륵, 스륵…….
“어머나♡ 찾기 무섭게 왔네에♡”
모든 이목이 뒤를 주시한다.
다들 새로운 얼굴에 본능적으로 경계하였다. 옅은 살기가 흘러나왔어도 장본인은 아랑곳 않고 하품까지 한다.
“피곤해에….”
“쿨럭, 크윽….”
“……있잖아 빨리 가줄래?”
“커흐윽….큭.”
피를 울컥 토해내는 남성 위로 여인이 말처럼 올라타고 있었다.
키가 작고 조그만한 체구의 여인은 꼬깔 모자를 쓰고 있었다. 머리색과 똑같은 은색 눈동자는 염소처럼 생겼다.
나태한 악마. 벨페고르였다.
눈에 안대를 씌우고 재갈을 물고 있는 남자는 피를 계속 뚝뚝 흐르고 있었다. 피에 물들은 잇몸을 보니 혀와 이빨을 뽑은 것 같았다.
“마왕 님. 안녕하세요오….”
“야, 인사할 시간에 빨리 앉지? 이카루트 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거 안 보이냐?”
“……알았어.”
하암, 벨페고르는 여유롭게 하품을 하고는 인간의자를 탄채로 빈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앉자마자 책상 위로 얼굴을 파묻는다. 꼬깔 모자가 비스듬히 벗겨지며,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산양뿔이 엿보인다.
체통과 예를 중시하는 마몬의 미간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시크릿 루트에 잠깐 나왔지만, 귀여운 외양과 목소리 덕분에 인기가 많았지.’
벨페고르는 일회용 캐릭터로 나타났으나 게임 내에서 따로 캐릭터 설정 시트에 추가될 정도로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하루 반나절 이상을 잤고. 나태한 악마 답게 종족 가리지 않고 자신의 노예로 만들어 불편해하고 귀찮은 일들을 전부 다 시킨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참지 못한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불편한지 엉덩이를 들썩이며 고개를 빼꼼 내민다.
마몬이 헛기침하며 눈치를 주지만. 모른 척 하는 건지, 진짜 모르는 건지 뚱한 표정은 알 수 없었다.
“새로 탄생한 마계 공작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이라는 건 아닐테고, 회의의 본 목적이 꽤나 중요한 모양입니다.”
아가레스는 엎드린 악마를 흘끔 쳐다보니 운을 뗀다. 이카루트는 말없이 턱짓하였고. 마몬은 수정구를 꺼내, 중간에 놓았다.
홈이 파여진 곳에 작은 수정구를 놓으니 홀로그램처럼 영상이 나타났다.
“침략은 완벽했다. 하지만 용사가 살아있는 한, 어리석은 패배자들이 희망을 걸고, 반항을 일으키겠지.”
“그 씨ㅂ, 아니 용사가 다시 살아날 줄은 상상도 못했네.”
“푸헬헬!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이번 대의 용사는 조금 다릅니다. 인간계의 수호는 물론, 자취를 완전히 감췄습니다.”
“호오, 그거 참으로 흥미롭군요.”
걱정은커녕, 흥미로워하거나 신기해하는 반응에 마몬은 이마를 짚었다.
그때 턱을 지켜든 벨페고르는 기지개를 쭉 켜더니 의자에 몸을 기댄다.
“……마왕 님. 용사를 죽이면 그 밖의 인간을 차례차례 죽일 생각인가요오.”
벨페고르는 인간 멸족을 논했다.
고위급 마족의 반응은 각각 달랐으나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인정한다.
약자는 죽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어차피 죽을 목숨. 태생부터 약한 인간은 냅둬도 죽기 때문에 오망방자하게 굴어도 마족은 관대를 베풀었다.
“마(魔)가 게이트를 넘어 들어오게 된다면, 필히 분란이 일어날 것이다. 구태여 손을 쓰지 않아도 자멸하겠지.”
“……흐으음…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인간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 이건가요오…. 만일 인간계를 정복한 저라면…….”
벨페고르는 눈을 나근나근하게 끔벅거린다.
느리게 회전하는 두뇌. 한참 음음, 거리더니 결론을 맺은듯 눈을 번쩍 뜬다.
“……곁에 있는 성녀부터 죽일 거에요. 왜냐하면 성녀는 인간계의 질서 그 자체니까요.”
하지만 마왕은 패배를 승복한 성녀의 목을 뽑아 죽이지 않고 노예라는 신분으로 수하로 들였다.
벨페고르를 제외한 모든 마족은 이카루트를 주시하고 있었다.
“제가 마왕님이라면 보는 즉시 성녀의 목을 뽑았을 텐데, 신기한 선택을 하셨네요…….”
벨페고르는 고개를 천천히 기웃거린다. 무심한 표정 위로 알 수 없는 기색이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