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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엔딩 그 후의 스토리 (18/98)



〈 18화 〉엔딩 그 후의 스토리

18화 엔딩 그 후의 스토리

“이카루트 님. 급히 보고드리러 왔습니다…만.”

추웁, 추우웁.
무언가 빨리는 외설적인 소리에 그만 마몬의 얼굴이 굳어졌다.
끼긱 돌아가는 시선은 아래로 향했다가, 짧게 혀를 찬다.
이카루트는 자세를 고치며 자지를 빠는 성녀의 턱을 잡아올렸다.

‘완전히 즐기는군.’

자지 기둥에서 귀두까지 쭈욱 핥아올린 레실리아는 생긋 눈웃음을 짓는다.
서큐버스에게 곁눈질로 배웠던 것인지 제법 요망하다.
턱을 잡던 손을 위로 올려, 칭찬의 의미로 머릿결을 쓰다듬어주며 턱짓을 했다.
마몬은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알비아그 제국에서 비공식 대면을 요청했습니다.”
“패배를 승복한 건가.”
“예, 이제야 전쟁의 종지부를 맺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듣고 있던 성녀의 어깨가 흠칫 떨린다.
진정 인간계는 패배하였다. 마계와 달리 다양한 국가가 현존했기에 중심인 교단을 무너뜨린다한들 얽혀있는 황권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는다. 다만 와해되며 천천히 망가진다.
분란을 노린 이카루트는 제일 먼저 국가간의 화합 중심인 교단을 친 것이다.

‘진짜 끝났다.’

교단의 대표인 성녀가 항복하자, 계획대로 국가들이 하나 둘씩 패배를 인정하였다.
특히 국력이 강한 알비아그 제국이 백기를 들었다면 마계의 완전한 승리였다.
용사라는 변수때문에 신경쓰였던 이카루트는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상보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군.”
“슬슬 바빠지실 겁니다.”

마몬은 흘끔 책상 아래를 보고는 예를 갖춘다.
보좌관의 시선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아는 이카루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 성녀를 흘겨보았다. 무릎을 조아린 채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머릿결이 양옆을 가려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성녀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

이틀 후.
이카루트는 알비아그 제국에서 요청한 비공식 대면에 응했다.

“비천한 것의 요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카루트 님.”

붉은 융단 위로 한걸음 달려온 황제는 낮게 엎드렸다. 양옆에 기사들이 일열로 서있으며 나팔을 불었고
마왕 무리의 앞과 뒤에는 무녀들이 춤을 추며 꽃가루를 뿌렸다.
패전국의 삭막한 분위기는 커녕, 축제였다. 오히려 기뻐하고 그들을 환대하기까지 한다.

“푸헬헬, 가축들의 앙앙대는 모습이 제법 기분 좋구만!”
“어머♡ 바알제붑 너 입냄새 나♡ 그 입 제발 닥쳐주면 안될까?♡♡”
“씹질이나 하는 년이 감히 바알제붑 님께 언성을 높여?! 그 젖소만한 젖탱이를 잡아떼던지 해야지 원!”
“우웅♡ 지방만 가득찬 좆 가진 주제에 말이 많앙♡”
“?!! 이, 이 씨발년이!”
“두 분 다 닥치십시오.”

고위급 마족이란 것들이 체통을 지켜야하는 자리에서 유치한 말싸움을 주고받는다.
뒤에서 아웅다웅 싸우는 바알제붑과 릴리트를 보다못한 마몬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몬보다 서열이 낮은 바알제붑은 쳇, 거리며 궁시렁댔고. 릴리트는 싱글싱글 웃으며 인간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먼 인간계로 오시느라 피곤하진 않으십니까? 휴식공간과 만찬식 또한 마련했으니 부디 부족함없이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됐고, 안에 들어가서 용건만 듣지.”
“아, 예옙! 알겠습니다!”

이카루트의 무리는 말이 많은 황제를 앞장 세워 따라갔다.
살기가 엄청나군. 이곳에 모인 인간은 기뻐하는 척하지만 분노를 품고 있었다.
지나가는 걸음마다 무섭게 좇아오는 옅은 살기를 벌써 눈치챈 마족들은 속으로 비웃어주었다.

“마왕 이카루트 님을 뵙습니다.”

쿵, 성문이 열리자 대기하고 있던 대신관이 인사를 올린다.

‘성녀를 방패삼아, 전쟁터에서 도망쳤던 놈이군.’

본보기로 심장을 꿰뚫어 죽여야 할 대신관은 황제 뒤로 숨어 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가늘게 찢어진 삼백안을 보니 전생에서 그를 괴롭혔던 상병놈이 떠올라 그 자리에서 찢어죽이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관상은 과학이라고, 대신관은 아티스 게임 내에서 주인공 뒤통수치기로 유명한 배신자였다. 겉으로는 결과를 승복하나 속에선 반란을 일으킬 꿍꿍이를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

달칵.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넓은 접견실.
황제는 황금으로 장식한 의자로 직접 인도한다.
폭이 작은 계단을 걸어올라가, 의자에 앉은 마왕을 따라 다른 마족들도 각자 자리에 앉았다.
황제와 대신관은 맞은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굴욕적인 자세였지만 그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그래서 패배한 너희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

원하지 않는 환대식, 비공식적으로 알현을 요청한 속셈이 뻔히 보였다.
턱을 괸 이카루트는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만하고 권위적인 승리자의 모습에 대신관은 분한듯 주먹을 움켜쥔다.
황제는 대신관의 눈치를 보고는 옆에 대기하던 신하와 시선교환한다.

“일단 선물부터 받아주십시오.”
“흐음?♡ 뭐야, 벌써부터 아부떠는 거야?♡”
“푸핫핫! 역시 가축다운 생각이야! 우리가 이런 걸로 좋아할 줄 알았나?! 그것 참 오산이야!”

릴리트와 바알제붑은 깔깔 웃으며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맘껏 비웃었다.
황제의 입가는 파르르 떨렸지만 인위적인 미소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얼른 눈짓하니 포장상자를 들고 있던 신하가 쭈볏쭈볏 다가왔다. 이카루트의 옆에 무릎을 조아리고는 공손하게 상자를 건넸다.
상자치고는 크기가 컸고 무거워보였다.

“이카루트 님. 쓸모없는 물품은 받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보좌관 마몬은 그의 귓가에 손바닥을 대어 속삭였다.
그리고 무엇이 들어있을 지 모를 상자를 경계하였다.

“그저 저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일 뿐입니다.”

계속 지켜보던 대신관의 입술이 비틀렸다.
마몬의 눈매가 날카롭게 가늘어지자 대신관은 모른 척 얼굴을 숙였다.
결국 포장 상자를 받아들였다. 묵직한 무게에 이카루트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 자리에서 상자를 풀고는 즉시 물건을 꺼냈다.

“…….”
“크하하하! 오랜만에 배꼽 떨어지겠어! 직접 용사의 목을 갖다바치다니, 이런 버러지같은 가축들을 지켰던 용사가 처음으로 불쌍해지는구먼!”

바알제붑은 인간의 잔혹성에 배꼽까지 잡으며, 박장대소를 하였다.
신탁을 받은 용사의 목이었다. 특유의 이질적인 기운까지 느껴졌지만.

‘가짜다.’

성별은 남자였다. 이 자리에 있는 바알제붑을 뺀 나머지 두 명의 마족만 눈길을 주고 받았다.
이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명백한 기만이었다. 신탁을 받은 용사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쥐죽은듯이 가만히 있었다.
그 장난꾸러기 릴리트도 웃고만 있는 바알제붑에게 눈치주었다. 차가운 분위기를 늦게 읽은 바알제붑은 마왕의 표정을 보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다시 묻겠다. 가짜를 내놓을 만큼 네 놈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냐.”

이카루트는 손가락을 튕겼다. 펑! 거대한 오오라가 방출하며 가짜 용사의 목과 선물을 전달한 신하의 목이 동시에 터졌다. 깨끗한 접견실 내부는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고.
이를 실시간으로 본 대신관과 황제의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그나마 용기있는 황제는 벌벌 떨며 말을 더듬었다.

“만일 이카루트 님께서 알비아그 제국을 통치하신다면 저, 데오트란 로하르트에게 대리청정을 아무쪼록 부탁드려도 괜찮습니까…?”

순간 정적이 일어났다. 마족들은 서로 알 수 없는 시선을 주고받더니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푸흡!”
“꺄하하하! 바알제붑 들었어?♡ 역시 응큼한 혓바닥을 뽑아야지, 정신을 차릴려나?♡”
“대머리 벗겨진 가축치고는 나름 머리를 썼구먼! 푸핫핫핫!”

이카루트를 제외한 마족들은 비웃음을 터트렸다.
힘이 강한 자만이 통솔하고 지배하는 피라미드 계층에서 인간의 위치는 하급 마물보다 훨씬 아래였다. 주군과 동급으로 생각하며 대리청정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가축들의 행세에 마족들은 역겨워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신관과 황제는 덜컥 겁에 질렸다.
그래서 이카루트는 그들이 모를 진실을 특별히 알려주기로 했다.

“네 놈들이 찬송하던 성녀는 지금 노예로 살고 있다.”
“…?! 무, 무슨…! 정녕 살아계셨습니까?! 성녀님께서 순교하신 게 아닙니까?!”
“무슨 말하는 거냐. 성녀는 자의적으로 항복하여 나의 노예가 되었다”

고개를 번쩍 들은 황제는 당황스러워한다. 옆에 있던 대신관의 얼굴은 굳다 못해 동상처럼 얼었다.
보아하니 성녀의 생사 여부를 알지 못한 것 같았다.

“하찮은 것들. 너희는 노예가 된 성녀보다 못한 가축에 불과하다. 제 주제를 알고 입을 놀려라.”
“성녀님께서 패배를 인정하셨다니….이 말도 안되는….”

그들의 허망한 표정을 마주한 이카루트는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어떻게든 달콤한 권력 속에 있으려고 빌빌거리는 개돼지들을 보자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깍지를 낀 손으로 입가를 가린 후, 눈을 내리깔며 멸시하였다.

“진짜 신탁을 받은 용사를 잡아온다면 네 놈들의 원하는 자리를 하사하지.”

용사로 게임 플레이했을 적, 눈앞에 있는 npc 놈들에게 엄청 굴려졌다.
귀찮은 퀘스트만 줬던 대신관이 특히 마음에 안들었다.
그래서 이카루트는 인간계 정복이라는 엔딩을 제대로 내기 위해 그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권력을 위해 무엇이든 할 작자들이었고 신탁을 받은 용사를 대놓고 호구 취급하였다.

“……목숨만 붙어있으면 됩니까.”

대신관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역시 예상을 져버리지 않는군. 교단은 권력을 위해 용사를 배신하였다.
이또한 전생에서의 그가 용사 플레이하면서 많이 겪었던 시나리오였다.

***

간단한 조약을 맺고는 만찬식에 참여하였다.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이 즐비되었고 악단의 음악에 맞춰 무녀들이 춤추고 있었다.
인간계의 패배를 축하하는 모습은 꽤나 모순적이었다.

“푸헬헬! 더, 더 음식을 가져와!”
“하앙♡ 이 탱탱한 귀두 좀 봐♡ 너무 귀엽잖아아♡”

식탐이 많은 바알제붑은 수많은 음식을 위장에 들여붓었어도 양이 차지 않는지 음식 나르는 시녀들에게 떵떵거렸고.
릴리트는 인간 남성체들과 교합을 맺으며 양기를 맘껏 섭취한다.
음탕하고 제멋대로인 만찬식이었다.
함께 있던 마몬도 잔소리를 포기한듯 술만 홀짝 마신다.

“즐거워해주셔서 마음이 놓입니다.”
“그래. 자칫하면 저들의 손에 피가 묻을 수 있었다.”
“그, 그렇습니까….”

보기엔 저래도 마족들은 깐깐했다. 만찬식이 제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면 여기 있는 인간들 전부 목이 뽑혀 굴러다녔을 것이다.
인간들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이었다. 그때 이카루트의 시야에 한 여성이 와인병을 들고 왔다.

어두운 금발머리가 잘록한 허리에 닿여 찰랑거렸고 상체라인이 파여 보기좋은 젖가슴이 자리잡혔다. 늘씬한 다리가 각선미를 자아내어 남녀불문 그녀의 뒷태에 절로 시선을 준다. 전형적인 슬랜더형 미인이었다.
그리고 이카루트는 그녀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메인 히로인 등장이로군.’

엘리제 로하르트.
알비아그 제국의 하나 뿐인 공주님이었다.
주인공을 플레이하면, 자주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이자 썸타고 결혼까지 가능한 캐릭터였다.
히로인 인기 순위가 성녀와 1,2위를 다툴 정도로 인기가 어마무시했다.

“마왕 이카루트 님을 뵙겠습니다. 저는 알비아그 제국의 마지막 공주 엘리제 로하르트입니다.”

엘리제는 가슴팍에 손을 대며, 인사를 올린다.
가까이서 보니 성녀못지 않게 외모가 뛰어났다. 눈매가 조금 쳐져있지만 아치형 눈썹은 도도한 인상을 그려냈다.

”이카루트 님을 뵈러 바삐 준비를 한 탓에 인사를 늦게 올립니다. 부디 자비로운 마음을 베풀어주십시오.”
“신경쓰지 마라.”
“감사합니다. 비천한 인간들이 만들어 부족한 만찬식이지만, 귀하신 분들께서 기쁘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빈잔을 건네자 포도주가 쪼르르 담긴다.
둥글게 휘어지는 눈매. 그 웃음 속에는 서슬퍼런 분노가 담겨 있어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리따운 엘리제의 얼굴을 응시하며 조용히 와인잔을 마신다.
이윽고 혀끝에 톡 쏘는 맛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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