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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본가에 다녀올 거야. 방송도 못 볼 테니까, 알아서 잘 지내고 있어. 싸우지 말고.’
이현우는 그 말을 끝으로 저택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부모님이 계시는 지방 도시가 아닌, 서울의 한 호텔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 이유는 노트북 속의 화면이 설명해주고 있다.
[꼬레아TV 신규 아이템 출시!]
이현우가 건의했던 위장 아이템이 나왔다.
아이템의 이름은 그대로 아이디 위장 아이템이라 사용하는 꼬레아TV.
네이밍 센스 따위는 전혀 발휘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꼬레아TV의 주 시청자층을 고려하면 당연한 선택인 것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목표하던 아이템이 출시 되었으니, 곧바로 사용을 해봐야겠지.
위장 템을 꼬레아TV 측에 요구한 이유는 후원 여캠들의 충성도를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과연 그녀들은 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
“….”
이현우는 위장 아이템으로 아이디를 위장한채 누구든 방송을 켜길 기다렸다.
그러면서 아침 시간 대의 제일 눈에 띄는 여캠의 방송을 보는 중.
손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다.
무한 코인 능력을 얻은 뒤로 이렇게 조용하게 방송만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코인을 쏘지 않고 방송을 보고 있으니, 제대로 방송을 시청하는 것 같지 않았다.
계속 코인을 후원하며 대화를 주고받아야, 방송 보는 느낌이 나는데.
일반적인 채팅을 올려도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는 정도가 최대의 리액션이었다.
‘재미없네.’
아침 9시 30분.
정소림의 11시 방송까지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
“그냥 쏘면서 놀까?”
이현우가 고민했다.
그가 후원하는 여캠들에게 접근하기 전까지 시선을 끌기 싫어서 최대한 코인질을 자제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보는 건 너무 재미가 없으니….
천 코인씩만 조금씩 던지는 건 괜찮지 않을까?
그 정도 수준의 큰손은 꼬레아TV에 널렸으니까 말이다.
-달링♥ 님이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예린의 방송이 시작되었다는 알람이 떴다.
코인 후원을 하지 않고 기다린 보람이 있다.
완벽하게 위장 상태로 들어가게 될 테니까.
이현우는 곧장 바로가기 버튼을 눌렀다.
짧은 대기 시간 이후.
달링이 화면에 나타났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녀는 잔뜩 토라진 표정이었다.
“모두, 안녕. 나 오늘 기분 안 좋아. 금융치료 해줘.”
방송을 켜자마자 대놓고 수금하는 이예린.
그녀의 코어팬들은 돈에 미친 모습을 하도 많이 봤기에 별다른 소요조차 없었다.
-오늘은 왜 또
-그날임?
-왜 힘들어?
-지금 큰손 형님들 다 없는데….
-백수 형님 오실 때까지만 기다려봐
“오늘 백수 오빠 안와. 나 포함해서 백수 오빠가 후원하는 여캠들 모아둔 단톡방이 있거든? 거기서 들었는데, 당분간 시골에 가야 해서 방송 못 본대. 와이파이는 당연히 없고, 인터넷도 잘 끊기는 곳이라. 버퍼링 심해서 안 볼 거래.”
실제로는 같이 살고 있지만.
당연히 그 사실은 시청자들에겐 비밀.
그저 모든 여캠이 모여있는 단톡방이 있다고 입을 맞추기로 합의했다.
-헐….
-그래서 풀 죽었구나
-백수 형님 없으면 오늘 텐션 장난 아니게 떨어지겠네;;
후원 금액이 적어지면 달링의 텐션이 떨어지는 건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채팅창에 있는 코어팬들은 걱정을 잔뜩 쏟아냈다.
그들은 귀엽고 애교 넘치는 달링을 보러 온 것이지, 힘들어하고 풀 죽어 있는 달링을 보러 온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방송을 나가는 시청자는 없었다.
그들은 이런 모습조차 아끼고 보듬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극강의 서윗물소들이었다.
그리고 이현우가 위장 템으로 행세할 컨셉도 물소였다.
본래 이현우의 성격과 딱 정반대되는 성향.
방송에서 여캠을 패고 괴롭히는 것으로 방송 재미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끝없이 우쭈쭈하고, 여캠의 호감을 얻으려고만 노력하는 유형.
뭐, 그게 딱히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은 다 다른 법이었고.
이현우만큼 코인을 쏠 수 없는 그들로서는 한정된 코인으로 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었을 테니까.
[월클맨 님께서 코인 1,000개를 선물!]
-안녕하세요. 저 혹시 기억하세요?
시작은 가볍게 천 개.
이현우는 바뀐 위장 아이디와 닉네임으로 후원했다.
아이디가 바뀌었다고 해도 데이터는 그대로였기에, 팬 가입 표시는 뜨지 않는다.
대신 열혈이나 회장 타이틀은 확실하게 사라졌다.
“어? 천개! 월클 오빠! 꼬마워우! 근데 예전 내 팬이야? 미안, 미안. 오빠도 알다시피 내가 방송 경력이 좀 길어서. 기억이 잘 안나네. 언제쯤 활동했던 오빠야? 우리 대화 나누면서 기억을 한 번 떠올려보자.”
고작 천개에 텐션이 높아지는 달링.
하지만 이현우의 눈에는 보였다.
저건 억텐이다.
인사로 천개를 던지는 큰손의 등장.
잘만 유도하면 열혈 하위권까지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사이즈 체크를 해야하니, 가장 예쁜 모습을 보여주는 건 당연지사.
외모는 이미 준비되었고 남은 것은 성격적인 부분.
풀죽은 모습은 버린다.
그리고 남자가 제일 좋아할법한 활기차고 애교 넘치는 모습을 바로 꾸며냈다.
“여캠은 여캠이야.”
1초만에 태도가 변하는 이예린의 모습에 이현우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10년차 프로 여캠은 다르다.
“언제 내 팬이었어? 기억이 흐릿한 거 보니…. 3년 전? 아니면 5년 전?”
[월클맨 님께서 코인 1,000개를 선물!]
-4년 전이요. 그런데 그땐 학생이라 돈도 없고 해서 코인을 많이 쏘진 못했어요 ㅎㅎ.
“아…. 그렇구나. 그때 학생이었으면…. 나보다 오빠는 아닌가? 그래도 오빠라고 부를게. 괜찮지?”
이예린의 눈이 반짝였다.
인사에 천 개.
대답에 또 천 개.
이 순간 그녀는 월클맨이 그저 그런 잔챙이가 아니라는 걸 파악했다.
억텐이 찐텐으로 변하며 그녀의 태도가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월클맨 님께서 코인 100개를 선물!]
-괜찮고말고. 그런데 왜 이렇게 예뻐요? 실물로 보면 더 예쁜가?
슬슬.
작업을 시작한다.
이현우가 노골적으로 이예린을 띄워줬다.
이예린이 평생 들어왔을 예쁘다는 말.
30년이나 들어왔으면 질릴 때도 됐는데.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말이었다.
게다가 지금 이 상황은 돈을 주는 사람이 예쁘다고 말해주는 순간 아닌가.
돈과 칭찬.
이예린이 제일 좋아하는 것들의 조합이었다.
“아하핫, 고마워. 나 예쁘다고 해주는 사람 너무 오랜만이라 기분 좋다.”
[월클맨 님께서 코인 100개를 선물!]
-??? 꼬레아TV 물소들 다 죽었어요? 어케 님보고 예쁘다는 사람들이 없지?
-우리도 맨날 예쁘다고 해주는데 ㅠㅠ
-달링의 말은…. 그게….
“돈 주면서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드물었다는 거지. 알면서. 으이구.”
달링의 말투에 애교가 잔뜩 묻어나왔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현우가 최대 큰손으로 자리잡으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
그 중 하나가 우쭈쭈 해주는 후원보다는 그녀를 샌드백으로 사용하는 후원이 늘었다는 거였다.
물론, 그 중 최대 후원자는 이현우였다.
[월클맨 님께서 코인 1,000개를 선물!]
-돈 좋아하시는구나! ㅋㅋㅋ
“꺄, 또 천개. 꼬마워요! 쾅쾅쾅! 쪽!”
달링이 아낌없이 리액션을 풀어냈다.
어느 정도 그녀의 텐션이 높아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이현우가 두 번째 작전을 펼쳤다.
[월클맨 님께서 코인 12,820개를 선물!]
-나 전화번호 줄 수 있어? 이건 전번 값.
코인을 후원하며 적당히 친해진 두 사람.
그동안 이현우는 매니저 자리도 받았고, 말도 놓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허용 범위.
여캠이란 물소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돈을 버는 직업이었다.
그런 만큼 인터넷상에서의 교류는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한다.
하지만 전화번호는?
절대 안돼지.
이현우는 독점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럴 때를 대비해, 본폰과 큰손용 폰을 따로 준비해두게 시켰다.
과연 이예린은 번호를 줄 것인가?
번호를 준다면 어느 폰의 번호를 줄 것인가?
“꺄아앗! 월클 오빠가! 하나뿐인 왕이쁜이개! 당연하지! 오빠가 원하면 당연히 줘야지. 그런데 연락은 많이 안 될 수도 있다? 나 핸드폰 자주 보는 타입은 아니라서.”
1단계 쉽게 통과.
하지만 연락이 자주 안된다고 밑밥을 까는 것에서 플러스 점수.
여기에 연락용 폰 번호를 준다면 합격점이었다.
“오빠들 잠깐만. 나 월클 오빠랑 대화 좀 잠깐 할게.”
-내 번호. 010-XXXX-XXXX.
-모닝콜, 방셀, 셀동은 따로 해야 하는 거 알지? 원래 단가는 천개 사다리인데. 오빠는 천개 사다리에 두 번씩 타게 해줄게.
빠른 속도로 영업하는 달링.
이현우는 세 번째 미끼를 던졌다.
-좋아.
-다 좋은데, 우리 만나서 이야기할까?
-만나기만 해도 내가 5만개 쏴준다.
-그리고 애인모드 해주면 20만개.
-선입도 가능해. 어때?
일단 처음은 가볍게, 떠보는 듯한 느낌으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금액을 높여나갈 생각이었다.
100만개쯤 제시했는데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충성심을 인정해도 될 것이다.
“어떻게 할래? 예린아.”
노트북 화면 속의 이예린이 3초 늦게 반응했다.
그녀가 입을 살짝 벌리고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그녀를 찍고 있는 DSLR을 노려보았다.
이현우의 입장에선 그녀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꺼져! 이 미친놈아!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미친 소리를 하고 있어! 너 블랙이야.”
-???
-갑자기 왜 급발진?
-뭐야 무슨 일 이야?
-월클맨이 뭐라고 했길래?
갑자기 채팅이 끊기고, 송출 화면도 새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뜨는 팝업창.
[안내]
-해당 방송국의 블랙리스트에 등록되어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하핫….”
이현우가 실소를 흘렸다.
합격.
합격이다.
솔직히 말해, 그가 거느리는 여자 중에서 돈 욕심은 이예린이 1등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넘어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단호한 대처라니.
이현우는 이예린에게 합격점을 준 뒤, 다음 BJ의 방송을 찾았다.
마침 아까 전부터 알람이 울리는 중이었다.
-정소림 님이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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