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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한테 스토커가 붙을 일은 없을 거 아니야.”
이현우가 말했다.
“나한테는….”
이예린이 고민했다.
스토커가 될만한 사람이 있나?
아니, 그런 낌새도 없었다.
이예린은 스토커 마스터이자 고인물이었다.
그러니 스토커의 심리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스토커는 집착이라는 감정 때문에 시작된다.
그 대상이 돈이든 사람이든.
그걸 가지고 싶고, 남들과 나누기 싫기에 집착하게 되고.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고 싶어 한다.
만약 스토커가 될만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녀의 방송에 나타났을 것이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쓸데없는 말이나 후원했겠지.
하지만 근래에 그런 낌새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있는 코어 팬들은 그녀가 다 아는 사람이고.
남아 있는 열혈은 없었다.
“잘 모르겠는데? 진짜 현우 너한테 붙은 사람이 아닐까?”
“설마….”
이현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남자 놈이 뭐가 좋다고 그의 사진을 찍고 다닌다는 말인가.
“음….”
이대로 가만히 있자니 찝찝함이 가시질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스토커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신고할 수도 없고.
이만한 일에 경호원을 붙이자니….
그것도 좀 아닌 것 같다.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는데. 가만 놔둬도 되지 않을까?’
이현우가 이예린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 그녀는 스토커라는 말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토커가 나타나 위협하면, 그녀 쪽에서 칼찌를 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섭진 않은 거지?”
“헤헤….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이현우의 말에 이예린이 기뻐했다.
역시 미친년이다.
“안 무서우면 그냥 당분간 이대로 두자. 진짜 스토커면 그때 가서 조처를 하고.”
“응! 난 상관없어!”
본인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이현우는 스토커에 대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들어온 오피스텔.
이현우가 선언했다.
“그러면…. 넌 안에 들어가서 짐 정리하고 있어. 난 수현이랑 데이트하고 올 테니까.”
“어…?”
이현우의 선언에 이예린이 황당해하는 얼굴이 되었다.
오늘 종일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여러 가지 감정이 물밀듯 밀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현우가 결정한 일이다.
노예인 그녀는 주인의 행동에 간섭하면 안 된다.
포랑의 조교와 이현우의 예속은 그녀를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진짜 성공한 건가?’
이예린이 굳어있는 동안.
이현우도 이예린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녀의 표정이 굳고,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무언가 더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해보자.’
빵잇과 꽁냥대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어도 가만히 있다면.
그때는 확정해도 된다.
이예린은 이제 안전하다.
“싫어?”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주인님이 하시고 싶으면. 그렇게 하셔야죠. 잘 다녀오세요.”
“그래. 아, 잠깐 같이 갈까? 그러고 보니, 저번 일. 아직도 사과 안 했지?”
“사과요…?”
“네가 갑자기 찾아와서 놀라게 한 거 말이야. 왜? 사과하기 싫어?”
“아니요. 할게요.”
“그러면 가자.”
이현우가 빵잇의 집 초이종을 눌렀다.
“네! 나가요!”
안에서 빵잇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현우가 곁눈질로 이예린의 표정을 살폈다.
벌써 마음을 정리한 것인지, 그녀의 표정은 잔잔했다.
“오빠!”
문이 열리고, 빵잇이 보였다.
그런데도 이예린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표정도 편안하기 그지없다.
이건 진짜 성공한 거다.
이예린의 집착과 광기를 통제할 수 있는 거다.
이현우의 눈이 잘게 떨렸다.
그만큼 기뻤다.
코인 무한 능력을 얻은 이후, 단 하나의 위협이 바로 이예린이었다.
그 위협을 제거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아…!”
반갑게 문을 열었던 최수현이 멈칫했다.
이현우의 옆에 서 있는 이예린을 본 것이다.
이현우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놀라지 마. 수현아. 오늘 사과하려고 찾아온 거니까.”
“네, 네? 사과요…?”
“어. 뭐해? 누나. 잘못한 거 사과하고 싶다며.”
“으응…. 빵잇 님. 이전에는 제가 죄송했어요. 제가 갑자기 찾아와서 많이 놀랐죠? 지금이라도 사과드립니다. 죄송했습니다.”
뭐지? 이 상황은?
최수현은 이예린이 찾아온 것과 갑작스러운 사과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럴 게 아니라, 애초에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게 제일 나은데….
하지만 방송 성격과 달리, 실제 성격이 소심한 최수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네, 네….”
그래서 어정쩡한 반응이 나와버렸다.
이현우가 이해한다는 듯 피식 웃었다.
“누나. 수현이가 불편해하는 것 같아. 사과는 이만하면 됐고. 가서 짐 정리해.”
“알겠어. 나중에 연락해줘. 그리고 빵잇님.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요. 먼저 가볼게요. 현우랑 재미있게 놀아요.”
“아, 네….”
이예린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한 후, 문 앞을 떠났다.
최수현은 그녀가 들어간 옆집과 이현우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오, 오빠…. 이건….”
“사과하고 싶다고 해서. 앞으로는 마주쳐도 놀라게 하거나, 이상한 짓 안 할 거야. 단단히 교육했거든. 자…. 이건 해결되었으니까. 데이트하러 가볼까? 오늘 데이트 간다고 해서 힘 빡 주고 꾸몄네?”
“아, 네. 그건 그런데….”
“신경 쓰지 말라니까. 얼른 가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이현우가 빵잇의 팔을 끌고 오피스텔을 나섰다.
“….”
현관문에 기대어 서 있는 이예린에겐 그런 이현우의 목소리가 다 들린다.
“하아….”
기분이 착잡하다.
노예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습득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분노와 질투가 들었다.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조교 덕분이 분명했다.
이전의 그녀였다면, 뭔가 했을 테니까.
‘현우에게 특별한 한 사람이 되어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단 괜찮지 않았다.
그래도 참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나중에 이현우에게 잔뜩 어리광 부려야지.
이예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사고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아까 그 남자는….’
전봇대 뒤에서 사진을 찍어대던 남자.
아무리 봐도 그녀를 스토킹한 게 아니었다.
스토킹 만렙의 시선에서 보면 그렇다.
애초에 이예린을 스토킹할 것이었다면, 그녀의 집 앞에 있어야지.
왜 이런 곳에 있다는 말인가.
그녀가 여기에 나타날지 어떻게 알고.
이예린도 오늘 여기에 올지 몰랐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이현우를 스토킹했다기엔….
“아! 빵잇이구나.”
이예린은 미친년이지만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
몇 번의 사고 끝에, 그녀는 스토킹하던 남자가 노리는 게 그녀도 이현우도 아닌 최수현이라는걸 추론해냈다.
“흐음….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걸?”
이예린이 미소 지었다.
예전이라면 이 상황을 이용해서 빵잇이 이현우의 곁에서 떨어지도록 하겠지.
하지만 이제 그런 마음은 먹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이현우가 슬퍼할 테니까.
“초짜네.”
이예린이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스토킹하기 좋은 위치들을 물색했다.
그리고 오피스텔 입구를 주시하기 좋은 장소.
그곳엔 누가 봐도 ‘나 수상한 사람이에요.’ 하는 듯한 남자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아까 그 남자다.
“어떻게 하지….”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상관없다.
그녀나 이현우가 스토킹을 당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이걸 해결하면 현우가 기뻐하겠지?’
잘했다면서 상으로 데이트를 해줄지도 몰랐다.
그동안 점수 까먹은 게 많으니, 이번 기회에 점수를 따는 것도 좋겠지.
이예린이 오피스텔을 나섰다.
찰칵, 찰칵.
담벼락 뒤에 숨어있는 남자.
그는 버려진 상자 위에 올라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고 있었다.
그의 카메라가 찍는 것은 오피스텔에서 막 빠져나오고 있는 검은색 스포츠카.
이윽고, 스포츠카가 사라지고.
남자가 상자 더미에서 내려왔다.
“안녕?”
“흐에엑?”
이예린이 한 손을 들고 상큼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에 남자….
아니, 차우식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랐다.
“아하하핫.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나 알지?”
“시, 시발…!”
차우식이 카메라를 품에 안고 또 도망가려고 했다.
이예린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잠깐만. 나랑 거래하자! 네가 노리는 건 빵잇이지? 난 현우만 있으면 돼! 그러니까 나랑 동맹 맺어!”
“도, 동맹…?”
이예린의 외침에 차우식이 뛰려던 걸음을 멈췄다.
“그래. 동맹. 넌 빵잇을 가지고 싶고. 난 현우를 가지고 싶으니까….”
이예린이 차우식에게로 걸어갔다.
차우식이 그녀의 걸음에 맞춰 한걸음 물러난다.
분명 도망치려고 한다면 도망칠 수 있고.
제압하려 한다면 제압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예쁘다.
“서로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차우식에게 다가간 이예린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꼴깍, 차우식의 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파, 파트너…?”
“그래. 파트너. 서로의 목표는 다르지만, 목적은 같잖아? 저 두 사람이 떨어지게 되면 각자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지 않겠어?”
이예린이 말했다.
그녀는 스스로 말을 하면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인지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걸 모를 것이다.
만렙 스토킹범인 이예린은 스토킹범의 심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스토킹을 하는데 논리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내가 대상을 사랑하고, 대상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심각할 정도의 착각.
그러니, 방해물만 사라진다면 사랑이 이뤄질 거라는 헛된 망상도 서슴지 않는다.
“정말…. 나를 도와줄 거라고…?”
차우식이 미끼를 물었다.
이예린의 미소가 깊어진다.
“물론이지. 하지만 너도 날 도와줘야 해. 그래야만 파트너가 되는 의미가 있을 테니까.”
“조, 좋아. 뭘 어떻게 할 거야?”
“그 전에…. 일단 자리를 옮길까? 여긴 대화를 하기 좋은 장소는 아니니까. 카페 같은 곳에 가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그리고 이제까지 뭘 해왔는지 서로 이야기해보자. 그래야 현우와 빵잇을 떨어트려 놓을 수 있을 테니까.”
차우식을 꾀어낸 이예린.
그녀는 카페에서 차우식의 스토킹 행위를 전부 다 녹음할 수 있었다.
어떻게 빵잇을 접하게 되어, 스토킹까지 이르렀는지.
구구절절한 사연에 반짝이는 리액션을 넣는 게 힘들었지만.
결과가 나왔으니 이젠 괜찮다.
이걸 어떻게 활용할지는 이현우에게 맡겨야지.
이예린은 즐거운 마음으로 차우식과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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