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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진짭니다! 정부에서 압류한 물건에서도 없었어요! 거짓말 아닙니다! 살려주십…! 끄아아아악!”
LA의 어딘가.
슬럼이라 부르는 것이 적당한 골목.
한 남자가 의자에 묶여 있었다.
그는 절박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옆에서 나이프와 총을 들고 있는 갱들은 그걸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의 앞에 있는 보스의 손짓에 갱 중 한 명이 나이프를 팔뚝에 찔렀다.
“그럼, 물건이 대체 어딨다는 거야? 응? 무려 300킬로그램이야. 그만한 물건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춰? 네가 아니면…. 누가 그럴 수 있다는 거지?”
“끄으윽! 사, 살려 주세요. 저는 진짜 모릅니다! 그 동양인 사업가 놈! 그놈이 빼돌린 겁니다!”
“이미 알아봤어. 죽을 때까지 팼는데도 전혀 모른다고 하더라. 그놈이 아니면 자연스레 네가 범인 아니겠어? 지금이라도 얌전히 실토해. 그러면 가족은 안 건드릴 테니까.”
“안 돼!”
가족만큼은 절대 안 된다!
남자가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리 크게 소리를 친다고 한들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일단 이 상황을 물리쳐야 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지?
그가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그, 그놈 가족! 그놈이 독종이라 입을 다물었다고 하더라도 가족은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놈이 마약을 빼돌렸으면 가족에게는 찾을 방법을 일러뒀을 겁니다!”
“흐음….”
이번 외침은 꽤 효과가 있었다.
나이프가 몸에 꽂히지 않았으니까.
운반조 총책이자 로비스트인 남자는 살기 위해서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사업가 놈을 죽였다고 하셨죠? 그러면 놈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가족이 찾아올 겁니다. 미국 시민이 아니니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찾아오는 그놈이 바로 키를 쥐고 있을 겁니다!”
톡, 톡.
데스 스콜피온의 보스가 나이프 끝으로 의자를 두드리며 고민했다.
저 말이 사실일까?
아니면 살기 위해서 거짓을 말하는 걸까?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두목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이프를 던졌다.
날카로운 칼날은 정확하게 남자의 발등을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악!”
“저놈, 가족들 다 데려와. 저놈이 보는 앞에서 손가락 하나씩 잘라. 그러고도 진실을 말하는지 두고 보자고. 아, 그리고 사업가 놈의 가족이 찾아오는 지도 지켜보고 있어.”
“오케이, 보스.”
* * *
누나와 통화를 마친 이지훈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현우가 잘 케어를 했는지 누나의 목소리는 떠날 때보다 많이 나아져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도 전화할 땐 다 괜찮다고, 다 잘되었다고 말을 했다.
이 상황에 누나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개새끼들….”
이지훈은 나즈막이 욕설을 읊조렸다.
근 두 달 만에 보게 된 부모님.
두 분은 죽음마저 평안하지 않았다.
시신에 흔적이 너무 적나라하게 남아있었다.
이지훈은 이현우의 말을 따라 그가 미국에 오길 잘했다고 여겼다.
누나가 부모님의 시신을 봤다면 또 혼절했을 테니까.
‘반드시 죽여버린다.’
17세 소년은 부모님의 시신 앞에서 복수를 다짐했다.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복수를 이뤄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그는 미성년자 딱지도 떼지 못한 17세 소년이었다.
미성년자가 할 수 있는 그리 많지 않았다.
복수를 하려면 뭐가 가장 필요할까.
그건 힘.
신체적인 강함이 아니라 재력과 권력이 필요했다.
그가 혼자서 단련하고 사격술을 연습한다고 한들, 갱단을 모두 처리할 수는 없을 테니까.
권력을 가지려면 재력부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있는 놈이 힘 있는 놈이라는 건 17살 소년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 돈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7세. 남자. 고등학생.
여자애들처럼 몸을 팔아서 돈을 벌 수도 없다.
아니, 어차피 그런 식으로 돈을 모은다고 한들 갱단에게 복수할 정도로 큰돈을 모을 수도 없었다.
사업을 해야 한다.
‘현우 형….’
그에게 밑천은 없지만 사업을 도와줄 사람은 있었다.
누나의 남자친구인 이현우.
진짜 부자라고 할 수 있는 그라면….
사업 밑천을 빌릴 수 있지 않을까?
“가죠.”
미국에서 필요한 것은 이미 다 했다.
이제 부모님보다 먼저 한국으로 가서 필요 서류를 관련 부서에 제출하기만 하면 되었다.
장례식은 그다음 이야기다.
“리.”
공항으로 향하는 길.
이지훈이 말을 걸기 전까지 아무런 말도 걸어오지 않던 프로 경호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지훈이 그를 쳐다보았다.
“미행이 붙었다. 그리고 앞선 도로에 길을 막고 있는 거수자들이 있다고 하는군.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졌다.”
경호원은 아주 덤덤하게 갱단의 습격이 있을 것이라 이야기했다.
그들은 1인당 하루 500달러씩 받아 가는 프로 중의 프로였다.
고작 갱단을 상대로 PMC 경호원들은 쫄지 않는다.
적의 수가 수십이고 이쪽은 겨우 한둘이라면 무조건적인 도망을 택했겠으나.
이번 의뢰인은 아주 통 크게 열 명이나 되는 프로 경호원을 고용했다.
적의 무장 상태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쪽은 권총 하나만 들고 있어도 일당십은 할 수 있는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높은 확률로 총격전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걱정 마라. 우리는 프로 중의 프로니까. 리, 너는 이 차 안에만 있는다면 무조건 안전하다.”
그러한 프로가 일부러 총격전을 언급하며 이지훈을 안심시켰다.
이렇게 말을 해두어야만, 교전 상황 시 의뢰인이 침착하게 경호원의 말을 따를 수 있었다.
끼이이익!
타앙! 타앙!
두두두두두!
차가 급정거했다.
그리고 총을 쏘는 소리가 마구 울렸다.
“시발! 시발! 개새끼들!”
이지훈은 경호원의 말에 따라 방탄 처리된 차량 안에서 팔로 머리를 보호하고, 몸을 숙인 채로 가만히 있었다.
총격전을 하는 소리가 시끄럽다.
이길 수 있겠지?
프로 중의 프로라고 큰소리를 빵빵 쳐댔으니, 지진 않을 것이다.
무섭다.
부모님을 죽인 놈들이 그도 노리고 있었으니까.
죽는 것은 무서웠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이대로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는 거였다.
소년은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복수심을 불태웠다.
딸깍.
차 문이 열렸다.
이지훈이 놀란 눈으로 문이 열린 곳을 쳐다보았다.
갱단이면 그는 이제 끝난 목숨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문을 연 것은 아까의 경호원이었다.
“리. 서둘러 움직여야한다. 놀란 것은 알겠지만 시간이 얼마 없어.”
갱단과의 전투에선 승리했다.
놈들과 경호원의 화력 차이는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기관권총과 권총의 차이.
그 정도라면 전쟁에서 구르고 굴렀던 프로 용병들은 극복이 가능 했다.
막강한 저항에 갱들은 도망쳤고, 이제는 그들이 도망칠 차례였다.
총격전이 일어났으니 곧 경찰이 올 터.
그 전에 의뢰인을 공항으로 보내서 한국으로 보내야했다.
이번 의뢰의 목표는 의뢰인을 무사히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으니까.
체류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의뢰인이 대금을 치르지 못할 수도 있고.
그러면 경호 임무는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다 갱들이 의뢰인을 습격해 의뢰인이 죽기라도 하면, 임무 실패라는 오명을 쓰게 되는 것이었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얼른 공항으로 가야 한다. 우리는 출국 제한이 걸리겠지만, 너에 대해선 정부에서 파악하지 못했을 테니.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경호원이 빨리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했다.
이지훈은 그가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걸 첫날 이후로 처음 들었다.
“네, 네…. 출발해주세요.”
“그래.”
탄알의 흔적이 남은 차량이 출발했다.
그 뒤로 갱단의 시체 몇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하아….”
이지훈은 비행기에 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공항은 무기 반출반입에 엄격한 곳이었다.
특히 미국 공항은 더욱 그렇다.
그러니 여기라면 갱단도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할 것이다.
덜덜.
극도로 긴장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손이 벌벌 떨리는 중이었다.
총격전이라니.
살면서 그런 이벤트를 겪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미국에 쭉 살아온 그도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평생 한 번도 겪을 일이 없겠지.
‘돌아가서 괜찮은 척해야지….’
누나에게 총격전에 대해 말할 생각은 없었다.
괜한 걱정일 테니까.
그래도 이현우에겐 말해야겠지.
복수를 하기 위해 도움을 받으려면 이현우에겐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했다.
‘그나저나 이 상태로 잠이나 잘 수 있으려나.’
손도 마음도 계속 떨렸다.
죽음의 공포는 그만큼 강렬했다.
아무리 불을 꺼주고 수면 담요와 안대를 제공한다 해도.
그렇게 쉽게 잘 수….
“드르렁….”
비행 14시간 후.
한국 인천 공항 상공.
“으읏….”
본의 아니게 꿀잠을 자버린 이지훈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눈을 뜨고 나서야 여기가 비행기 안이라는 걸 깨닫는다.
아, 그랬지.
부모님의 일 때문에 미국에 다녀오던 참이었지.
10대의 육체는 이런 점이 좋다.
어디서든 잘 자고, 어떻게 자도 피로를 다 회복하니까.
푹 잔 덕분인지 총격전에 의한 스트레스도 거의 다 사라졌다.
그가 직접적으로 전투를 겪지 않았고, 총격에 당한 상처나 시체를 보지 않은 덕분이었다.
“누나! 형님!”
캐리어를 찾고 입국 게이트를 지났다.
그러자 마중을 나와 있는 이유나와 이현우가 보였다.
이지훈이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한달음에 달려갔다.
“잘 다녀왔어…?”
“응. 부모님 뵙고 왔어.”
누나의 질문.
이지훈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그의 대답에 이유나가 눈물을 글썽였다.
하지만 첫날처럼 마구 울지 않았다.
“배고프지? 아무래도 기내식은 배가 덜 찰 테니까. 밥 먹으러 가자. 오늘은 내 차 말고, 평범한 SUV 렌트 해왔어.”
“아! 형님. 이거 잘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랑 누나 때문에 그런 큰돈을 쓰시고….”
이지훈이 미안한 표정으로 이현우에게 카드를 건넸다.
3박 4일간 경호원을 고용한 총비용이 총 2,000만 원.
숙식비가 300만 원.
시신 운구비용이 500만 원.
거기에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을 다 합치면 총 3천만 원에 달하는 돈이 사용되었다.
듣기로는 렌트 차량 업체에서 청구서가 또 날아올 거라던가?
“네가 잘 다녀왔으면 된 거지.”
“네! 형님!”
분명 카드 사용 내역이 문자로 날아갔을 텐데.
이현우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지훈의 마음속에 충성도가 무한대로 수직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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