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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 두근.
심장이 고동쳤다.
이유나는 혹시라도 심장 소리가 들릴까,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걷고 있었다.
이현우의 방으로 향하는 길.
긴장과 설렘.
흥분과 초조.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그녀의 가슴을 어지럽혔다.
이제부터 방에서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도망치고 싶다가도.
학교 친구들이 말했던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면 호기심이 일었다.
방에 들어가면 하게 되겠지?
정말 그게 기분이 그렇게 좋을까?
키스만 해도 엄청나게 짜릿했는데….
그래도 몸을 보이는 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
“여기가 내 방.”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방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이제는 말하는 것조차 어지러울 정도.
“들어와. 그리 좋은 방은 아니긴 해도 야경은 좋거든. 창밖 바라보면서 한잔하자.”
“네, 네, 넷.”
귀엽네.
이현우는 잔뜩 긴장한 이유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역시 이유나와 같았다.
이성과 함께 호텔에 들어오면 잔뜩 굳어서 아무것도 못 했는데.
지금은 행동에 여유가 넘쳤다.
“아! 유나야 잠깐 눈 좀 감아볼래?”
“지, 지, 지금요?”
두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이현우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 박력에 이유나가 깜짝 놀란다.
와인을 마시고 하는 거 아니었나?
이렇게 갑자기…?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응. 지금. 잠깐만 감아줄 수 있어?”
“네, 네….”
이유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두 눈을 꼬옥 감았다.
어찌나 세게 감았는지, 입술도 잔뜩 오므렸다.
귀엽다.
당장 입술을 훔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참았다.
“꺄앗…?”
이현우가 걸음을 옮겨 이유나의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눈을 가렸다.
깜짝 선물이라고 할까?
어차피 좁은 방이라 선물은 바로 앞에 있었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이유나를 설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오, 오빠…?”
“조금씩 앞으로 가 봐.”
“아, 네….”
이현우가 현관에서부터 키스하는 줄 알았던 이유나.
그녀는 그런 게 아니라, 생일 서프라이즈 같은 걸 해주려는 걸 알게 되었다.
뭔가 좀 안심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아쉽기도 했다.
“이제 눈 떠도 돼.”
정확하게 세 걸음.
이현우가 이유나의 눈에서 손을 뗐다.
이유나가 천천히 눈을 떴다.
무슨 선물이 있을까?
……?
이건 너무 큰데?
“오빠…. 이, 이게 선물이요?”
“널 위해 준비했어. 열어 봐.”
사람 몸통만 한 커다란 선물 상자.
큰 곰 인형이라도 들었으려나?
그런 건 취향이 아닌데….
그래도 오빠가 준 거니까 받으면 기쁘긴 하겠지만….
이유나가 조심스레 선물의 리본을 풀었다.
그리고 상자를 벗겨낸다.
그 속에는 명품 가방, 명품 옷, 명품 구두 등이 들어있었다.
명품 가방이나 옷은 20살 여자애가 소화하기 힘든 이미지가 있었다.
좀 나이들어 보이게 된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상자에 담겨있는 옷들은 전부 그런 종류의 옷들이 아니었다.
20대 초반을 겨냥한 젊은 감성의 디자인.
여우찡이 고른 옷들은 정확하게 이유나의 마음을 꿰뚫었다.
“헐…. 오빠….”
그 선물들을 본 이유나가 감동한 듯 입을 가리며 이현우를 쳐다보았다.
“뭘 좋아할 줄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선물은 마음에 들어?”
“네…. 완전요. 너무너무 고마워요. 오빠. 잘 입을게요. 정말…. 아, 그런데 좀 아쉽다.”
“뭐가?”
“선물 미리 받았으면 오늘 데이트할 때 이 옷 입고 하는 건데….”
이유나가 정말 아쉽다는 듯 입술을 삐쭉였다.
그러자 이현우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핫, 그럼, 다음 데이트에 입으면 되지. 아, 말 나온 김에 내일도 데이트할까? 학교랑 방송 때문에 밤에 해야겠지만.”
“정말요? 전 좋아요!”
“그런데 방송 끝나면 12시인데, 데이트하고 나면 다음 날 안 피곤하겠어?”
“에이, 학교에서 자면 되죠. 이제 전 공부할 필요도 없는데요.”
학생으로서 그런 말을 해도 되나 싶다.
하지만 다른 고3이랑 같은 위치인 것도 아니고.
대학합격증을 가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상관 없나 싶었다.
“선물 더 있으니까 계속 꺼내 봐.”
“네? 옷 말고 또 있다고요?”
“응.”
이현우의 말에 이유나가 조심스레 옷과 가방을 꺼냈다.
그걸 살포시 옆에 놔두곤 상자 밑에 있던 다른 선물들을 살폈다.
그녀가 당황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향수.
그리고 속옷.
아니, 속옷들.
같은 디자인의 속옷이 다섯 개나 상자 속에 있었다.
“오, 오빠 이건…? 대, 대체…?”
“스무 살 생일이잖아? 진짜 성인이 된 날. 이런 날에는 보통 향수랑 장미꽃을 선물한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연인이면 속옷을 주는 것도 좋다고 해서. 개수가 많은 건 사이즈를 몰라서 그냥 비슷해 보이는 사이즈별로 다 사버렸어. 그리고…. 여기.”
이현우는 침대 옆에 숨겨두었던 장미꽃을 꺼냈다.
그가 이유나에게 장미꽃을 내밀었다.
“유나야.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아….”
장미꽃을 받은 이유나의 볼에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안 그래도 이현우에겐 감사할 일만 가득했는데.
이렇게 또 선물을 받다니.
게다가 장미꽃….
그녀 인생에서 처음 받아보는 꽃이었다.
드라마나 만화 같은 데서 꽃 선물은 대체 왜 하는 건가 싶었는데.
막상 직접 꽃 선물을 받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왜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냥 기분이 좋다.
“우, 울어?”
눈물은 한 방울로 끝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현우를 당황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여자 경험은 많지만, 연애는 처음이었으니까.
여유만만하던 태도가 깨어지고 그가 어찌할 바를 몰라 이유나의 주변에서 맴돌았다.
그 모습에 이유나가 살포시 실소를 흘렸다.
“아니에요. 너무 좋아서. 너무 기뻐서 그랬어요. 와…. 진짜 좋으면 눈물이 나오는구나. 저도 처음 알았어요.”
“다행이다…. 싫어서 그러는 줄 알았잖아.”
“꽃 선물 받고 싫어할 여자가 어디 있어요. 좋아요.”
진심이었다.
사귀자는 고백받았을 때도 이렇게 기쁘진 않았다.
아니, 그때는 혼란스러웠지.
이현우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솔직하게 기뻤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녀를 위해 이런 이벤트를 준비해줬다는 게.
그가 그녀의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녀가 기뻐해 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마음속에 기쁨을 가득 채워주었다.
‘아…. 그럼 오빠는 이거 하려고 방에 오자고…! 나, 나…. 쓰레기인가…?’
이유나의 머릿속에서 생각의 연쇄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자기가 쓰레기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현우는 이벤트를 하려고 그런 것이었는데….
그녀는 야한 생각만 잔뜩 했다.
갑자기 부끄럽다.
이현우가 그녀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 와인 마실까? 아, 오늘 같은 날에 취하면 좀 그러니까. 딱 한 잔씩만 마시자. 알겠지?”
이현우가 와인잔에 와인을 따랐다.
붉은색 와인과 서울의 야경이 보이는 경치.
이거 꽤 근사했다.
‘아니…. 착각이 아닌가…?’
스스로 야한 생각만 하는 쓰레기라고 자책하던 이유나.
그녀는 그럴싸한 분위기에 생각을 점점 고쳐먹게 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본능적으로 오늘 할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꽂혔다.
그리고 이현우도 첫키스를 했을 때, 키스 다음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하자고 말을 했었다.
그 분위기 좋은 곳이 바로 여기였다.
실제로 지금 분위기도 무척 좋았고.
가슴도 설렘으로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와인은 마실만해?”
“네? 아! 네! 네! 뭔가 달면서도 이상한 맛이에요. 그런데 못 먹을 정도는 아닌?”
“그게 알콜 맛이지. 그럼, 우리의 연애를 위해.”
이현우와 이유나의 잔이 부딪쳤다.
이현우가 남아있던 와인을 전부 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그의 목젖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왜 자꾸 목젖이나 팔뚝의 힘줄 같은 게 눈에 보이는 걸까.
탁.
이현우가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두었다.
그가 이유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서 느껴졌다.
여자를 가지려고 마음먹은 남자의 눈빛이었다.
이, 이제….
하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나?
두근, 두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잠깐의 정적 속.
이유나는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와 설렘도 있었다.
상대가 이현우라면….
섹스해보고 싶다.
“유나야.”
“네!”
이현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유나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하하…. 많이 긴장했나 보네.”
“그게…. 조, 좀…. 긴장되네요….”
또다시 대화가 줄었다.
어색한 긴장감.
이다음에 무엇을 할지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지금 고민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먼저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뭐, 뭘요?”
“사랑해. 유나야. 진심으로.”
“아…!”
진심이 가득 담긴 이현우의 애정 표현.
이유나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렇기에 그녀도 용기를 냈다.
“저, 저도…. 사, 사…. 좋아해요!”
첫 스물.
첫 연애.
첫 꽃다발.
그리고 첫 고백.
이현우는 먼저 사랑한다고 표현했지만.
이유나에게서 답을 들을 줄은 몰랐다.
애정 표현에 있어서 언제나 한발 물러서던 그녀였으니까.
사랑해가 아닌 좋아해지만 그래도 기분 좋다.
“유나야!”
“아…! 흐읍!”
이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유나를 껴안았다.
그녀의 고개를 붙잡고 격렬하게 키스를 퍼부었다.
생애 두 번째 키스.
이유나는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 좋고 짜릿했다.
혀와 혀가 만나, 타액이 그녀의 입속으로 넘어온다.
꿀보다 더 달달한 액체가 이현우의 입속에 있었다.
“하아….”
얼마 뒤,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이유나가 살짝 풀린 눈으로 이현우를 쳐다본다.
“유나야.”
“네….”
“먼저 씻고 올래? 지금 당장 침대 위로 가고 싶은데…. 그래도 네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 샤워…. 하고 올게요.”
키스하느라 상기되었던 이유나의 볼이 더욱 빨개진다.
진짜 한다.
이 시간 이후로 그녀도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게 된다.
진짜 여자가 될 시간.
이유나는 거부하지 않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성 들여 몸의 이곳저곳을 씻었다.
‘옷… 입고 나가야 하나? 아니면….’
샤워를 마친 이유나가 고민했다.
섹스를 할 거라는 것도 알고.
마음의 준비도 끝냈다.
하지만 알몸을 보여주는 건 부끄러웠다.
어차피 하게 되면 다 보여줄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부끄럽다.
어떻게 해야 하지?
입던 옷을 다시 입고 나가면, 샤워한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다고 가운을 입자니….
호텔 같은 곳에 많이 와본 애처럼 보일 것 아닌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전에 어떤 인터넷 글을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이 상황이 되니 글 내용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입자.’
너무 시간이 지체되면 이현우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유나는 가운을 입기로 결정 내렸다.
다행히 호텔 가운은 밑 기장이 길어 허벅지까지 완전히 가려준다.
야한 느낌이라기보다는 정말 편하게 입기 위해 만들어진 느낌.
이유나는 걱정 없이 욕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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