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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칫.
전민지의 눈이 떠졌다.
“…!”
낯선 주변 환경.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보는 이불과 가구.
옆에 누워있는 낯선 남자.
그리고 밀려 들어오는 어젯밤의 기억.
술집에서부터 시작된 광란의 섹스.
결국 모텔까지 옮겨와 물고빨고넣고빼고.
‘미쳤지 내가 진짜!’
미친 게 분명했다.
홧김에 일탈하려 했지만.
이런 류의 일탈은 아니었다.
그저, 남친이 했던 것처럼 다른 설렘을 잠깐 느끼기 위한 강남행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현우를 만나게 되고.
그와 잠자리까지 하게 되었다.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갔다.
아무리 술김이라곤 하지만, 남자친구를 앞으로 어떻게….
‘아니지.’
남자친구가 했던 일을 똑같이 따라 한 것뿐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헤어지려 했던 마당이니.
그녀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전민지는 빠르게 사고 전환을 했다.
“으음…. 빨리 일어났네요?”
그때, 그녀의 인기척을 느낀 이현우가 옆에서 일어났다.
기지개를 켜는 그의 몸은 트레이너의 눈으로 볼 땐 매우 빈약해 보였다.
이제 막 멸치에서 탈출한 수준이라고 할까?
그래도, 아래에 달린 자지만큼은 훌륭하고 우람했다.
저 자지에 어젯밤 셀 수도 없이 많이 느껴야만 했다.
“현우 씨…. 우리 이번 일은….”
“서로 잊고 지내자고요?”
“네? 현우 씨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아니요. 어떻게 잊어요. 어젯밤 난 무척 좋았는데. 민지 씨는 아니었어요?”
“….”
전민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남자친구와 섹스할 때보다 몇 배는 더 좋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헬스장 회원이랑 섹파로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걱정하지 말아요. 이 건으로 치근덕거릴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서로 외로울 때, 만나서 이렇게 즐기기만 하는 사이는 어때요? 헬스장에서는 지금까지처럼 가볍게 인사만 하고 지내고.”
전민지의 사고가 빠르게 돌았다.
직장을 생각한다면, 이대로 모든 일을 묻는 게 맞는 판단이다.
하지만 저 자지.
남자친구보다 훨씬 큰 자지가 주던 쾌락이 너무 아쉽다.
그의 말대로 외로울 때만 만나는 사이가 되면 좋지 않을까?
“아…. 여자친구 있으시죠. 참. 그런데 괜찮아요? 여자친구가 있는데 저랑 계속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 제 여친은 배려심이 넓거든요. 제가 다른 여자랑 뒹굴어도 마음만 안 주면 괜찮을 거예요.”
“헐. 그걸 허락하는 여자가 있다고요?”
“어…. 정확히 말하면 아직 허락받은 건 아니지만요.”
“와, 뭐야. 현우 씨, 나쁜 남자였네요.”
“하핫. 좀 그렇죠? 그래도 침대 위에선 좋은 남자지 않아요? 행복하게 만들어주니까.”
이현우가 전민지를 등 뒤에서 껴안았다.
그녀의 가슴이 이현우의 손에 들어갔다.
“읏…. 그건 맞는데…. 아! 출근! 지금 몇 시에요!”
“다섯 시? 그렇게 안 늦은 거 같은데.”
“느, 늦었어요! 이미 출근 시간 지났네! 저 일단 먼저 갈게요!”
전민지가 허둥지둥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 덕에 운동으로 다져진 완벽한 몸매가 드러난다.
알몸이 이현우에게 보이게 되었지만, 전민지는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민지 씨. 이왕 늦은 거 씻고 가지 그래요?”
“그럴 시간 없어요!”
그녀가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운동복이 아닌 사복이지만, 괜찮다.
락커에 예비용으로 챙겨둔 레깅스가 있으니까.
“먼저 갈게요!”
“그래도 냄새날 텐데.”
이현우가 중얼거렸지만, 전민지는 듣지 못한 채 호텔 방을 빠져나갔다.
이현우는 피식 웃으며 여유롭게 욕실로 향했다.
“오빠…. 좋은 아침….”
샤워 후 헬스장으로 가려 하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매일 아침마다 걸려 오는 여우찡의 모닝콜이었다.
“그렇게 졸리면 안 해도 된다니까?”
“우응. 아니야아…. 이거라도 해야 오빠가 나 예뻐하지…. 하암, 졸려….”
“아, 하나야. 오늘 쇼핑이나 갈까?”
순간, 잠기운이 잔뜩 끼어있던 김하나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그녀에게 있어 쇼핑이란 마법의 단어와 동의어였다.
“쇼핑! 진짜? 갈래! 언제?”
“나 운동 끝나면? 옷도 좀 사고, 슬슬 집도 알아보려고.”
“아항. 그런 거면 또 내 전문이지. 이 몸은 무려 스무살때부터 자취를 했답니다. 이사 경력만 네 번이라는 소리지. 이제 집 보는 것도 완전 베테랑이야.”
글쎄.
이현우가 보러 가는 건 원룸이 아닌데.
그래도 혼자 가는 것보다는 둘이 나으니, 이현우는 별다른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래. 그럼, 시간 맞춰서 와. 대충 알지?”
“응! 응! 오빠 그런데 나 사고 싶었던 가방이 있는데….”
“그거 찜해두고, 내 여자친구 알지? 여자친구 선물 줄 것도 골라놔. 너 꺼보다 비싼 거로.”
“아앗! 여자친구 생겼다고 다른 여자는 바로 홀대하는 거야?”
“그럼 가방도 안 사줬겠지? 싫으면 말고. 내가 알아서 제일 비싼걸로 사면 되니까.”
“헤헷, 장난이지. 오빠. 여자 물품은 여자가 봐야 제일 잘 사는 거 아니겠어? 내가 20살 여자애가 좋아할 명품으로 딱 골라둘 테니까. 나만 믿어용.”
“그래. 믿고 있는다.”
“응, 응. 오빠! 사랑해!”
“끊어.”
그리고 헬스장.
오늘도 카운터엔 전민지가 서 있었다.
그러나 평소와는 상태가 좀 달랐다.
언제나 파이팅 넘치는 운동녀 포지션인 그녀였는데.
오늘은 머리를 대충 묶어서 올리고, 향수도 무척이나 짙게 뿌렸다.
“안녕하세요. 민지 씨.”
“네. 현우 씨.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운동 파이팅 하세요.”
그녀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딱 선을 그었다.
이현우가 즐겁다는 듯 웃는다.
하지만 그 이상 질척거리진 않았다.
그녀와 연애할 것도 아니고, 결혼할 것도 아닌데.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질 필요는 없지.
“예. 갈게요. 수고하세요.”
이어진 악마와 초절정 스미스 머신 데이트.
이현우는 시발시발 거리면서도 악마가 부여하는 퀘스트를 클리어했다.
거의 한 달간 빠짐없이 운동해서 그런가.
이제는 어느 정도 근육통도 즐기게 되었다.
몸이 바뀌는 게 눈에 보이는 시기이기도 했고.
이 정도면 상타치지.
거울을 보며 그런 감상을 남긴 이현우가 헬스장을 나섰다.
헬스장 앞에는 익숙한 빨간색 외제 차가 서 있다.
“오빠!”
“빨리 왔네? 그런데 차 가지고 왔어?”
“응. 데리러 오라는 뜻 아니었어?”
“아니었는데. 일단 내 차로…. 아니다, 네 차 타고 가자.”
“그럴까? 타시죠. 왕자님.”
김하나가 옆으로 달려와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에스코트했다.
게다가 호칭은 뭐야? 하는 시선으로 쳐다보자 여우찡이 여우 같은 눈웃음을 쳤다.
“싫었어? 왜, 데이트할 때 남자들이 에스코트하면 이렇게 하잖아. 그거 따라 한 건데.”
“가자.”
“옙!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출발! 백화점으로 갈 거지?”
“어. 일단 그리로. 생각해둔 가방 있어?”
“응. 있긴 있는데. 근데 내가 오빠 여자친구 취향을 잘 몰라서. 오기 전에 검색 조금 해봤는데. 오빠 여자친구는 보세만 입던데? 아직 어려서 그런가?”
“글쎄? 그래도 명품 싫어하는 여자는 없지 않아?”
“당연히 없지! 그래도 취향이라는 게 있으니까. 물어보는 거였어. 오빠도 취향을 모르면…. 음…. 선물하는 목적이 뭐야?”
“다음 주에 걔 생일이거든. 그래서 깜짝 선물 하나 준비하려고.”
* * *
“흐음, 음. 흠.”
이른 아침, 정소림이 콧노래를 부르며 피부 관리를 하는 중이었다.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지만, 오늘만큼은 기분이 좋았다.
어제 정산금이 들어왔으니까.
이현우가 월 100만 개보다 더 후원해주기로 한 만큼 지난주보다 정산금이 훨씬 늘었다.
45만 개, 수수료 60퍼센트를 떼고 나면 2,700만 원.
여기서 이현우에게 675만 원을 주고도 2,025만 원이 남았다.
세금을 고려하면 더 줄어들겠지만.
지금 당장 내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남자친구와 그녀, 두 사람의 생활비를 제하고도 1,800만 원 가까이 저금을 할 수 있는 큰돈이었다.
덕분에 어제는 남자친구와 돈 생기면 하고 싶었던 데이트를 실컷 했다.
남자친구의 표정이 왔다 갔다 했지만 어제만큼은 틱틱대지도 않았었고.
“뭐해?”
“아, 오빠. 일어났어? 잠깐만. 이것만 다 바르고 아침 해 줄게.”
“무슨 좋은 일 있어?”
“응? 좋은 일? 그냥. 어제 오빠랑 데이트한 게 좋아서 그러지.”
“그렇구나.”
그녀의 남자친구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
그 말이 뭔지 그녀도 알기에, 제발 그 말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깨질 테니까.
“좀 누워 있어. 식탁 차려지면 부를 테니까.”
“…. 그래.”
하아, 이번에도 무사히 지나갔나?
처음엔 남자친구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긴장돼서 미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현우가 진짜 신기한 사람이긴 하다.
어떻게 그 방법이 제대로 먹혔는지.
정소림은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정신 나간 생각이라 여겼는데.
지금도 매일 밤 까톡을 훔쳐보는 남자친구는 정소림의 그렇고 그런 사진과 영상 그리고 대화 내용을 보고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 자극적인 영상이 나온 날이면 얼굴이 꺼무죽죽하게 죽어가긴 하지만 말이다.
‘미안. 오빠. 하지만 견뎌주길 바래. 조금 힘들어도 돈은 잘 들어오잖아. 그리고 내가 오빠 힘든 만큼 잘해줄 테니까.’
2억.
딱 두 사람의 보금자리만 마련할 돈을 마련하면 이 짓도 그만둘 것이다.
이현우가 후원금을 더 늘렸으니, 그 기간은 짧아질 터.
그리고 평생 남자친구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 거였다.
“짠. 오늘은 오빠 좋아하는 돼지갈비.”
생활비가 풍족해진 만큼,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 가짓수도 풍성해졌다.
원래 아침에 고기는 꿈꿀 수도 없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이현우를 만난 뒤로 밥상은 점점 풍성해졌고, 이제 밥상에 올라오는 고기는 2, 3가지는 되었다.
“하아…. 고마워.”
이것도 놈이 준 돈으로 산 거겠지.
그 생각에 남자친구의 입에선 한숨이 푹 나왔다.
밥상은 풍족해졌고, 나날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계속 가난해지고 있다.
정소림이 돈을 많이 벌기 전보다 더 말이다.
“아니, 맛있는 밥 보고 왜 한숨을 쉬어.”
“그냥. 좀 밥맛이 없어서. 그런데 너는 기분 좋아 보이네.”
빠직.
남자친구의 한마디에 정소림의 미간이 좁혀졌다.
“하…. 오빠. 오늘은 또 왜 그래? 어제 우리 좋았잖아. 오랜만에 캠퍼스도 가고. 공연도 보고. 후배들도 만나고. 오빠도 좋아했잖아?”
“아냐. 밥 먹자.”
“하아…. 그래 먹자. 자, 이거 먹어요. 오빠가 좋아하는 돼지갈비.”
정소림이 젓가락으로 돼지갈비를 집어 남자친구의 숟가락 위에 올려주었다.
그 순간에도 그는 정소림이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실에서 무엇을 했을지가 너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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