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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 아….”
목요일 아침.
이현우는 어김없이 헬스장을 방문했다.
카운터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전민지가 인기척을 느끼고 일어나 밝게 인사를 한다.
하지만 이현우의 얼굴을 보고 흠칫 굳었다.
“뭐예요. 우리 어색하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그래.
분명히 그랬었지.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장면이 생생히 떠오르는데 말이다.
남친 자지보다 훨씬 더 크고 우람한 자지….
혈관이 툭 불거져 나온 것을 보면 단단한 정도도 엄청….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전민지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애써 지웠다.
그리고 가짜 미소를 만들어내며 응대했다.
“아하하…. 그랬었죠. 오늘도 운동 파이팅 하세요.”
“흐음, 그러고는 싶은데 말이죠. 아무래도 어색해서 안 되겠어요. 민지 씨. 번호 좀 알려줄래요?”
“네? 네? 죄송….”
“아니, 그런 뜻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말고요. 지난번 일도 있고, 앞으로도 어색해지기 싫으니까 뇌물 좀 드리려는 거예요. 제가 맛있는 식당 알거든요. 거기 예약권 선물로 보내드릴 테니까, 남자친구랑 다녀오세요.”
“아니,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요. 이걸 받아주셔야 제 마음도 편해지고 우 리가 앞으로 어색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요.”
선물을 건네려는 이현우와 극구 거절하려는 전민지 사이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소란에 악마가 다가왔다.
“뭐야. 무슨 일이에요? 회원님하고 싸웠어?”
“그럴리가요. 선배. 그게….”
“제가 민지 씨한테 못 볼 꼴을 보인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거 잊어달라고 뇌물 공세를 벌이는 중이었어요. 근데 민지 씨가 부담스럽다며 안 받으려고 하네요.”
“에이, 뭐야. 난 또 회원님이 민지한테 작업이라도 거는 줄 알았네. 받아도 돼. 민지야. 회원님 여자친구 있으셔. 빨간 외제 차 타는 그 분, 여자친구 맞죠?”
악마까지 합세해 이현우의 편을 들었다.
전민지는 하는 수 없이 이현우에게 번호를 알려주며 선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까톡으로 전해진 레스토랑 예약권.
이현우가 운동하러 들어가고, 전민지는 레스토랑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미치…!”
‘무슨 1인 밥값이 32만 원이나 해?’
둘이서 먹으면 무려 64만 원이다.
그녀가 받는 월급의 30퍼센트나 되는 액수.
이런 비싼 예약권을 아무 부담 없이 주다니.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전민지가 가지고 있던 어색함과 거리감이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여보세요….”
운동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샷빨 형님의 전화다.
이현우는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나야. 어디서 만날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목소리에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방금 운동 끝내고 나왔거든요…. 이게 좀 힘드네요….”
“젊은 놈이 운동까지 해? 이야, 착실하게 사네. 나도 운동 좀 해야 하는데. 그건 그렇고. 어디서 볼까?”
“행사장 근처에서 볼까요? 아무래도 그게 편할 것 같은데….”
“그런가? 알겠어. 대충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있는 걸로.”
“네. 형님. 이따 뵙겠습니다.”
오늘은 꼬레아TV 공방에 참석하는 날이었다.
공방 컨텐츠의 제목은 팬덤 대격돌.
토크/캠방, 먹방/쿡방, 음악, 스포츠, 게임 등 여러 분야에서 32명의 BJ를 뽑은 뒤, 그들의 팬들을 한 팀으로 묶어 다른 팬덤과 대결을 펼치는 컨텐츠였다.
방송의 메인이 되는 준메이저 BJ 몇과 중, 하꼬 BJ 다수로 채운 구성.
여기에 빵잇이 토크/캠방 부문에 출전하게 되었다.
대결 종목은 아직 모른다.
대충 퀴즈 같은 거나하지 않을까 싶었다.
32명의 BJ와 각 팀당 15명의 팬들을 합치면 500명이 넘어가는 인원이었으니까.
활동적인 행사를 하기엔, 선정된 행사장이 너무 작았다.
“아, 오셨습니까?”
이현우가 차를 몰고 향한 곳은 단체복 제작 업체였다.
빵잇의 기를 살려주려 가는 건데, 그냥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겠나.
그래서 단체 티를 맞췄다.
앞면엔 빵잇, 뒷면엔 하트가 그려진 디자인.
제법 돈을 쓴 덕분인지 빵잇의 이름과 로고가 촌스럽게 보이진 않았다.
64벌의 옷이 든 상자가 한 박스.
팀은 16명인데, 옷은 64벌인 이유는 스몰 사이즈부터 엑스라지 사이즈까지 16벌씩 맞췄기 때문이었다.
남으면?
그냥 남는 거지.
몇 푼 안하는데 돈을 아낄 필요는 없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도시락 업체.
도시락 하나당 2만 원씩 하는 고급 도시락이 30개.
도시락은 혹시나 해서 많이 시켰다.
참가 신청을 하지 않은 팬이 찾아올 수도 있는 법이니.
게다가 남으면 겸사겸사 인심도 발휘하고 말이다.
-오늘 못 태워줄 것 같아. 택시 타고 와.
-아 진짜요? ㅠㅠ
-짐 많은데. 어쩔 수 없죠.
-그래도 공방 참여는 하는 거죠?
-어. 단체 티랑 도시락은 챙겼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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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티 엄청 예쁘게 나왔네요?
-이거면 공방에서 주목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현우 오빠!
-이 정도 가지고 뭘.
빵잇과 까톡을 하는 이현우 뒤로 누군가 접근했다.
그가 가볍게 이현우의 어깨를 톡 쳤다.
“백수 맞지?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네. 누구랑 그렇게 까톡 하는 거야? 여친?”
샷빨 형님은 예상보다는 젊은 인상이었다.
40대 중반이라고 했는데, 30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을 인상이었다.
“안녕하세요. 형님. 처음 뵙겠습니다. 여친은 아니고, 오늘 공방 참가 하는 여캠이요.”
“하핫, 바쁘게도 산다. 여친이랑 여캠이랑 동시에 돌보려면 힘들지 않아?”
“좋아서하는 건데요. 뭘. 아, 음료 드셔야죠. 뭐 드시겠어요? 제가 주문하고 올게요.”
“그럼…. 초코 쉐이크? 흐, 이 나이 되니까 단 게 땡기더라고. 부탁할게.”
“예. 형님.”
음료를 주문하고.
이현우는 샷빨 형님에게 주식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외계어를 듣는 기분이었다.
분명 한국어에 영어를 조금 섞어서 말하고 있는 것뿐인데, 왜 이해가 안 되는지.
그래도 하나는 분명히 이해했다.
정확한 정보를 쥐고.
정확한 투자 대상을 찾아서.
정확한 시기에 투자를 치고 빠지면 돈이 벌린다는 것.
이것이 주식의 진리.
“어려워?”
“네…. 조금. 공부를 전혀 안 한 상태로는 역시 어렵네요.”
“뭐, 그렇게 하나하나 천천히 배워나가는 거니까. 그래도 넌 다른 사람보다는 훨씬 나아. 일단 밑천이 든든 하잖아? 몇 억쯤 까먹어도 공부했구나 하고 다시 도전할 수도 있고. 주식이 괜히 돈놀음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야.”
“그렇군요.”
“그래도 공부는 게을리하면 안 된다. 이 바닥이 이론보다는 감각과 정보가 훨씬 중요하다곤 하지만. 이론적인 걸 모르면 결국 오래 못 가거든.”
“네. 추천해주신 책은 열심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젊어서 머리가 팽팽 돌아가니까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그럼, 통장 개설은 내일 하도록 하고. 우린 이만 일어날까?”
그렇게 젊은 머리는 아닌데요.
이현우는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굳이 말을 하진 않았다.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행사장으로 향할 시간이었다.
꼬레아TV 팬덤 대격돌은 서울의 한 빌딩 내에서 진행되었다.
시상식이나 학회, 대규모 회의 등의 행사에 자주 이용되는 곳으로.
강당이나 컨벤션 홀은 물론 무대 시설까지 마련된 곳이다.
500여 명의 사람을 수용하기에 무리가 전혀 없었다.
“뭘 그리 들고 가냐?”
차에서부터 큰 박스를 들고 가는 이현우에게 샷빨이 한마디를 했다.
“아, 이거 이번에 단체 티 맞췄거든요.”
“허. 그런 것까지 했어? 지극 정성이다. 아끼는 여캠인가 봐?”
“그런 것도 있고.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서 가오도 좀 잡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하하핫, 그래. 네 나이 때엔 그런 것도 중요하지.”
이현우와 샷빨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사장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행사 시작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이미 도착한 팬들이 제법 많았다.
행사장 입구에는 들어가려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그 맨 앞에, 꼬레아TV 직원들이 참가자의 신원 확인을 하고 있었다.
“팬덤대격돌 참가하시는 분들이신가요?”
“네.”
이현우와 샷빨도 줄을 서서 대기했다.
입장 절차는 간단한지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빨라 금방 직원 앞에 서게 되었다.
형식적으로 질문을 하는 직원에게 신분증과 휴대폰 번호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현우의 인적 사항을 본 직원의 표정이 변했다.
“아, 자,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니, 제가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잠깐 따라와 주실 수 있습니까?”
“응? 저를요?”
이현우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나쁜 일은 절대 아니니 함께 가주시면 안 되냐고 거듭 부탁하는 직원.
이 모습에 이현우는 느낌이 팍 왔다.
코인 때문이구나.
천사 덕에 무한 코인을 가지게 된 이현우였다.
이번 달 코인 후원 1위는 그였고.
2위와 차이는 점점 벌어지는 중이었다.
당연히 꼬레아TV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마침 공방에 참가한다고 하니, 얼굴 좀 보고 싶어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괜찮겠지?’
그래도 걱정은 좀 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1억 개만 보인다는 걸 알지만.
전산상에는 다르게 표시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으니까.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무한대의 코인이 밝혀졌다면 훨씬 전부터 무언가 조치를 취했을 테니까.
“형님도 같이 가실래요?”
“응? 나도? 난 됐어. 꼬레아는 여캠 얼굴이나 보려고 하는 거지. 깊게 관여될 생각은 없거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샷빨에게 넌지시 동행 의사를 물었다.
하지만 그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거절했다.
“아, 여기 따라가면 깊게 관여하게 되는 건가요?”
“아닙니다! 아, 말 끊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꼭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따로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하려고 모시려는 건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말하기는 좀 곤란하지만, 감사의 의미를 전달하려고 모시려는 것입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가보죠. 행사엔 안 늦겠죠? 오늘 그거 보러 온 건데.”
“예, 예. 물론입니다. 본 행사 시작 시간 전까지 다시 오실 수 있을 겁니다.”
“형님.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고.”
샷빨과 헤어진 이현우는 직원의 뒤를 따라 어디론가 이동했다.
행사장과 그리 멀지 않은 회의실.
그 안에는 꼬레아TV 직원들이 컴퓨터를 깔아두고 이것저것 열심히 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때, 안에서 누군가가 일어났다.
이현우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BJ 버니라는 예명을 가지고 있고.
현 꼬레아TV 대표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가로수.
별명이 아니라 이름이 진짜 가로수인 남자였다.
“반갑습니다. 이현우 씨. 그리고 갑작스러우셨을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꼬레아TV 대표 가로수입니다.”
그가 이현우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현우는 그의 손을 맞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저도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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