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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안 되겠네.”
방송을 지켜보던 이현우가 중얼거렸다.
200명이 넘는 시청자 중, 10명에 불과한 급식은 소수지만.
그들에게 방송 분위기가 넘어가 버렸다는 게 문제였다.
방송 주도권을 가져와야 할 이유나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 그녀는 방 분위기 형성을 매우 잘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현실 친구들이어서인지, 얼굴을 모르는 인터넷 시청자들에게 하는 것만큼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별수 있나.
이현우가 나서는 수밖에.
-급식비 후원 랭킹ㅋㅋㅋㅋ
-와 1등이 13만 개? 13만 개면….
-1,300만 원ㄷㄷㄷㄷㄷ
-언니 미친 갑부였네 ㄷㄷㄷ
“그건 맞긴한데. 환전 수수료하고 세금하고 이것저것 다 따지면 별로 안 돼.”
-매니저가 채팅창을 얼렸습니다.
“앗…. 회장님이 얼리신 거예요?”
-그래.
-여름이 학교 친구들.
-놀러 와 준 것은 고마운데, 여긴 학교가 아니라 봄여름이 일하는 곳이에요.
-여러분만 있는 곳도 아니고 다른 시청자분들도 있으니까, 방송 규칙에 어긋나는 개인플레이 자제해주세요.
-고등학생이니 규칙에 따를 수 있죠?
채팅창을 얼렸어도, BJ와 매니저는 채팅을 칠 수 있었다.
이현우는 아주 정중한 태도로 채팅창에서 마구잡이로 난동 피우지 말 것을 부탁했다.
여긴 그들의 단톡방이 아니라, 방송 참여자가 다 같이 쓰는 채팅창이었으니까.
이현우의 말에 이유나도 뭔가 깨달은 표정이었다.
“얘들아. 미안. 놀러 와준 것은 고마운데. 주의를 조금만 해줘. 회장님이 말했듯이 여긴 내일 터니까.”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고 채팅창 다시 녹이겠습니다.
이현우는 이 정도면 잘 알아들었을 거라 믿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유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방송에 놀러 왔던 학생들은 대부분 규칙을 숙지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단 한 명.
이유나의 외모에 급격한 끌림을 느꼈던 남학생.
지영호는 이현우의 행태에 불만을 가졌다.
자기가 뭔데 이유나와의 소통을 방해하는 건지.
이유나도 인터넷 방송을 보는 찐따보다는 학교 친구들이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근데 고작 매니저라는 완장 하나 달았다고 이렇게 방송을 쥐고 흔들어도 되는 건가?
철없는 생각이었다.
애초에 지영호는 또라이라고 불릴 만큼 생각이 짧기도 했고, 행동이 먼저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갑질 같은 강압을 저지르는 매니저를 엿먹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영호는 고민했고 금방 머릿속에서 엿먹일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유사 연애 감정이나 느끼는 육수 찐따들이 가장 괴로워할 만한 사실.
남친을 폭로하는 거였다.
-꼴에 매니저라고ㅋㅋㅋ 저기요. 유나 누나 남친 있는 건 알아요?
채팅이 풀리고.
대부분의 시청자가 이현우 보고 잘했다, 좋은 관리였다 칭찬하던 도중 올라온 하나의 채팅.
“이 미친 새끼가?”
이현우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사 연애 서비스를 하는 여캠에게 남친이란 매출과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만한 사안이었으니까.
이유나의 큰손은 찐 남친인 이현우이기에 매출은 큰 상관없지만.
이미지 부분이 문제다.
남친있는 여캠이라고 하면, 앞으로 누가 이유나 방송에 들어오고 싶어 하겠는가.
“어떻게 해야 하지?”
짧은 순간.
이현우의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이미 발언은 던져졌다.
이걸 수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친놈으로 몰고 가야 하나?
아니, 이미 이유나가 학교 친구들이라고 말을 해버렸다.
정치질을 해도 먹히지 않고 의문만 확산 될 것이다.
헛소리 한 걸로 치부하면?
그것도 안 된다.
그럴 경우 남친이 없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데.
그걸 실제로 증명해내긴 쉽지 않은 일이었다.
-???
-쟤가 뭔 소리 한 거임?
-야! 지영호! 이 미친 새끼야!
-저 새끼 또 사고 치네.
-아오 저 또라이 ㅡㅡ
처음 채팅창은 가벼운 반응이었다.
분탕을 치는 시청자는 언제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유나의 친구들 반응에 분위기가 점점 심각해진다.
마치 밝혀지면 안 될 것을 밝혀서 타박하는 분위기이지 않은가.
그때, 입을 연 것은 이유나였다.
“하아…. 지영호. 넌 앞으로 나랑 친해질 생각 하지 마. 이번 일은 내일 학교에 가서 제대로 따질 테니까. 마음의 준비 해두고 있어. 일단 나가 있어.”
이유나가 지영호를 방에서 강퇴시켰다.
그리고 채팅창을 다시 얼린 후에 발언을 이어 나갔다.
“시청자분들. 속일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밝혀지게 됐네요. 남자 친구 있는 거 맞아요. 제 인생 첫 연애고, 이제 6일 차라서. 말하기 조심스러웠을 뿐. 끝까지 속일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이유나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아니, 애초에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조차 없었다.
그녀가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돈이었다.
생활비 500만 원을 흥청망청 다 써버려 알바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개인 방송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그녀에겐 실질적으로 이현우만 있으면 되었다.
그녀가 선택한 사람이 이현우가 아닌 다른 남자였다면 숨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남자친구는 이현우였고.
이현우만 있으면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기에,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반대의 상황에서도 이현우가 그렇게 해주길 바랬으니까.
“저는 지금 남자친구 덕분에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이유나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녀의 시선이 어쩐지 카메라를 뚫고 이현우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명문대를 가기 위해서 매일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것밖에 모르는 삶이었는데. 그 사람 덕분에 설렘을 알고,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숨기고 싶지 않았어요. 이 감정을, 우리 둘의 관계를 부끄럽다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사, 사…. 으음…. 아직 6일 차라 애정표현이 많이 쑥스럽네요.”
이유나가 볼을 살짝 붉히며 이야기 한다.
강한 조명 아래서도 저렇게 티가 날 정도면, 실제로는 엄청나게 얼굴이 달아올랐을 거다.
이현우는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도 잊고서 이유나가 하는 말에 집중했다.
그는 지금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지영호고 느그영호고 이젠 중요하지 않았다.
앞으로 방송이 어떻게 될지.
시청자가 붙을지, 떨어질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유나가 하는 말이었다.
아쉽게도 이유나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오빠.”
하지만 그보다….
아니, 사랑한다는 말만큼이나 파괴력이 강한 단어가 이현우의 심장을 저격했다.
오빠!
오빠라니!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회장님이라고 부르던 그녀였다.
넌지시 그 호칭을 언제 바꿀 거냐 물어봐도.
부끄러우니 때가 되면 바꾸겠다는 말로 흘려 넘기던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
이유나가 그를 오빠라고 칭했다!
“….”
기분이 너무 좋으면 목소리도 안 나오는구나!
이현우는 헤벌쭉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숨을 꺽꺽 쉬며 마구 웃었다.
방송을 시청해야 하지 않았으면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을지도 몰랐다.
“갑작스럽지만. 우리 연애하는 거, 내 방 시청자들에게 공개해도 될까요? 이건 진짜 계속 생각해왔던 일이었어요. 기간이 좀 더 지나고, 우리 관계가 좀 더 단단해지면 밝힐 생각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떻게 생각해요?”
이유나가 묻는다.
그 물음에 이현우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유나와의 연애 사실을 공개?
그에게 나쁠 것은 없다.
다른 여캠들도 어차피 돈과 스폰 서비스를 교환하는 관계이니 거리낄 것도 없다.
다만, 걸리는 것은 단 한 명.
달링이 문제인데.
포랑에게 보고 받기로, 조교는 잘 진행 중이라고 하니….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현우는 마우스를 선물하기 버튼에 가져간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은지.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흠흠. 여러분. 미안합니다. 저 여름이랑 사귀어요.
이현우의 후원이 터지고.
이유나가 배시시 웃는다.
그리고 얼려두었던 채팅창을 풀었다.
-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
-이게 뭔 ㅋㅋㅋㅋㅋㅋ
-아니, 형님이랑 여름이랑요?
-역대급 통수ㅠㅠㅠㅠ
-아니 ㅋㅋㅋ 아니 ㅋㅋㅋ 뭐라고 말해야 할지 ㅋㅋㅋㅋ
채팅창 분위기는 생각보단 나쁘지 않았다.
이유나의 이미지가 여캠보다는 보라BJ에 가까운 덕이었다.
여캠은 유사 연애 서비스를 팔아먹는 BJ였고.
보이는 라디오 BJ는 컨텐츠를 통해 재미를 주는 BJ였다.
그만큼 물소 비율이 적기에 생각보다 큰 폭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외모와 몸매를 보고 온 물소들이 떠나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이후 청문회를 하다시피 시청자들이 질문을 쏟아부었고.
이현우는 이마저도 컨텐츠로 써먹을 생각을 했다.
그가 채팅창에서 직접 질문을 뽑아, 전자녀로 질문 폭격을 해버린 것.
쏟아지는 질문에 이유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빵빵 터지는 헛소리에 시청자들은 즐거워했다.
덕분에 시청자 수는 조금 줄었지만, 민심은 다시 회복할 수 있었고.
오히려 이번 사건 덕에 이유나의 인지도는 더욱 올라가게 되었다.
[남친 있다고 쿨하게 인정하는 여캠.JPG]
-(사진)
-(사진)
-(동영상)
존예
봐라 육수들아
어차피 니네가 빠는 여캠들도 다 남친 있다니까?
주변에서 가만히 놔두질 않는데 남친 없는지 2년ㅋㅋㅋ
국룰을 어케 믿누?
-노빠꾸라서 오히려 호감이네 ㅋㅋㅋㅋ
-노빠꾸 ㅆ상여자 ㅇㅈ합니다
-저걸 그냥 인정한다고? 수입 안주나?
└그 남친이 회장임. 백수킹좌.
└헐. 한 달에 10억씩 쓴다는 그분? 그럼 킹정이지
└애초에 물소나 좀 빠지지 더 줄 것도 없음. 쟤는 여캠이아니라 보라비제이임.
[허류ㅠㅠㅠ 우리 백수형님 여친 생겨버렸네 ㅜㅜ]
형님 이리 가시면 우리는 어쩌란말입니까아아아
다시 솔로부대로 돌아오십시오 ㅠㅠㅠㅠ
-이 새낀 미친 새낀가 ㅋㅋㅋㅋㅋㅋ? 왜 큰손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짐?
└백수형님이 쏘는 거 보면 너도 붙잡게 되있음
└되X 돼O
-ㄷㄷ 백수형님 이제 여친 생겼으니 다른 방은 안 들어오시려는가?
└ㅋㅋㅋㅋㅋ 그럼 다른 여캠 쵸비상이네.
-헐 백수 형 후원 리스트에 달링도 있지 않음?
└ㅋㅋㅋ 와 사건사고 하나 또 터지겠다
└팝콘 각
└이번엔 뉴스 안뜨길 ㄷㄷ
꼬레아TV 여캠의 남친은 언제나 인터넷 방송 시청자들의 관심거리였다.
그런데 거기 엮인 사람이 슬슬 인지도를 구축해나가는 큰손계 TOP 3안에 드는 백수킹이었으니.
사람들의 관심은 몰리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백수킹과 봄여름의 열애설은 인터넷 방송 관련 커뮤니티를 점령했고.
이현우에게 집착하는 누군가도 그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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