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잠깐의 위기는 있었으나, 데이트 자체는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
두 사람 다 첫 연애에 기간도 짧았고.
이제 막 콩깍지가 눈에 쓰이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그야말로 무적의 기간.
서로의 잘못쯤은 눈에 씐 콩깍지를 뚫지 못했다.
이현우가 다른 여캠들과 식데를 하는 장면을 이유나가 직접 목격한다면 모르겠지만.
매사에 신중한 이현우가 그런 잘못을 저지를 확률도 낮았다.
어쨌든 당분간은 이유나가 여캠 후원에 대해 딴지를 거는 일은 없을 터.
“그럼 갈게요….”
“응.”
이유나가 방송하는 시간에 맞춰 검은색 스포츠카가 고급 빌라 앞에 멈춰 섰다.
이유나가 아쉬운 듯한 눈으로 이현우를 바라본다.
이현우도 그녀를 보내주기 싫었다.
순간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시간이 무척이나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이다.
이현우의 시선이 이유나의 입술에 꽂힌다.
무척 붉고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
그 시선을 느끼고 있는 이유나도.
가만히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침을 꼴깍 삼킨다.
심장 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여캠들에겐 상남자인 이현우는 이유나 앞에선 얌전한 강아지가 되었다.
이유나가 너무 소중한 탓에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 탓이다.
“가봐. 방송 늦겠다.”
“아…. 네…. 그럼 가볼게요. 조금 이따 방송에서 봬요!”
“응….”
이유나가 손을 흔들며 후다닥 빌라 계단을 올랐다.
이현우도 멍하니 그녀의 뒤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후우…. 쉽지 않네.”
사춘기 시절에 미친 듯이 폭발하는 성욕과 싸우던 느낌이었다.
당장이라도 이유나를 덮치고 싶은데.
그러면 이유나가 싫어할 것 같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
이현우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차를 출발했다.
호텔로 돌아온 이현우는 스마트폰부터 꺼냈다.
이유나와의 데이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무음으로 돌려둔 스마트폰.
이제는 당연하게도 여캠들의 연락이 무척이나 많이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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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지혁][2]
-후원 감사합니다. 형님. 그리고 언제든지 놀고 싶으시면 연락하십시오. 기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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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림][5]
-이거 보시면 연락 부탁드려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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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린][2]
-(눈물 흘리는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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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라][1]
-안녕하세요. 현우 씨. 말씀드렸던 대로 빠르면 다음 주부터 BJ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BJ닉은 연예인 활동했을 때와 같은 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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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늘][1]
-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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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현][2]
-오빠, 저 내일부터 3일간 휴방이에요. 이유를 말하기가 좀 부끄러운데…. 그날이라서요. 그래서 오빠가 부르셔도 그걸 하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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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3]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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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나][2]
-저 이제 씻어요. 잠시 연락 안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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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읽을 건 읽고, 답장할 건 답장하고, 씹을 건 씹었다.
그중에서 집중한 것은 정소림과의 까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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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림]
-현우 씨 상담드리고 싶은게 있어서 연락드려요.
-다름이 아니라, 남자친구가 제 폰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폰을 봤으면 현우 씨랑 나눴던 대화도 다 봤을 텐데. 이상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네요.
-그리고 평소랑 행동이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이거 보시면 연락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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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진짜 들켰나?
정소림의 까톡을 본 이현우가 인상을 썼다.
이현우가 그녀에게 애인 모드의 식데 서비스와 몸 접대를 받고 있긴 하지만, 그녀의 행복을 깨트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진짜예요?
까톡을 보내고 몇 분 뒤.
다른 여캠들과 까톡을 주고받고 있으니, 정소림에게서 답장이 왔다.
-확실하진 않은데, 거의 맞는 것 같아요.
-남자친구가 표정 숨기는데 능숙하지 않거든요.
-자기 나름대로 내색하진 않고는 있는데, 제가 볼 땐 확실해요.
-저 이제 어떻게 하죠?
흐음.
들켰는데 내색은 하지 않는다라.
왜지?
더 확실한 증거를 모으기 위해서 기다리는 것인가?
뭐 때문에?
두 사람은 결혼 약속을 하긴 했지만, 진짜 결혼을 한 것은 아니라서 이혼 절차 같은 걸 밟을 필요도 없다.
당연히 재산 분할을 위한 외도 증거를 모을 필요도 없고.
모르겠다.
한 번도 장기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이현우는.
정소림의 남자친구가 왜 추궁하지 않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지금 통화 괜찮아요?
이현우가 까톡을 보내자마자 바로 연락이 온다.
“현우 씨.”
걱정 가득한 정소림의 목소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당황이 가득했다.
이현우는 일단 그녀를 진정시켰다.
“소림 씨. 일단 진정해봐요. 아직 정말 들켰는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들켰다고 해도 남자친구가 가만히 있는 이유를 알아내면 큰 문제 없이 해결할 수도 있을 거예요.”
“정말요? 정말 그럴까요…?”
“네. 10년이나 연애했잖아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믿어보도록 하죠.”
웃긴 상황이었다.
외도 상대가 커플에게 이런 조언을 건네다니.
하지만 정소림에게는 당장 필요한 위로였다.
“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저 정말 우리 오빠 아니면 안 돼요.”
“일단 더 자세하게 이야기 듣고 싶은데. 지금 만날까요?”
“아뇨. 지금은 좀…. 오빠가 집에 있어요. 전 잠깐 편의점 다녀온다고 나온 거고요. 내일은 시간 낼 수 있어요. 오빠가 학교에 방과 후 수업을 가는 시간…. 그때가 가장 안전한 시간대에요.”
“음, 그런가요. 그럼, 내일 만나도록 하죠. 그 전에, 남자친구가 정말 스마트폰을 보는지 아닌지 알아보도록 할까요?”
“그런 방법이 있나요?”
“네. 제가 알기로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전면 카메라를 작동시키는 앱이 있는 것으로 알아요. 잠시만요, 금방 검색해볼게요.”
이현우는 노트북을 가져왔다.
인터넷 검색창에 ‘핸드폰 몰래 여는 사람 촬영 어플’이라고 치는 것만으로도 관련 정보가 주르륵 나왔다.
“많네요. 무료 중에도 쓸만한 것들이 많아 보여요. 일단 설치해보시죠. 촬영음도 안 난다고 하니, 몰래 찍기엔 괜찮을 거예요.”
“…. 네….”
정소림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남자친구와의 애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오늘 까톡은 지워두세요. 아, 완벽히 다 지우면 폰을 몰래 본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의심할 수도 있으니 새롭게 까톡을 해야겠네요. 앱 설치되면 다시 까톡주세요. 그때 적당한 화제로 대화를 나누죠.”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저도 소림 씨가 행복하길 바라고 있는걸요.”
* * *
“하아….”
이현우와 전화를 끊은 정소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이현우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의 말대로 남자친구가 정말 폰을 들여다보는지, 아닌지 알아야 대책을 세우든 말든 할 테니까.
이현우가 알려준 앱을 다운받았다.
한 번 시험을 해보니, 정말로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사진이 찍힌다.
비밀번호를 풀었을 때, 사진이 찍히는지 아닌지 모를 정도였다.
계산기 앱으로 위장하고 있는 도난 증거 앱에 정소림의 얼굴이 찍힌 사진이 나왔다.
성능은 확실했다.
-다 지웠어요.
까톡과 통화기록까지 다 지운 정소림은 다시 이현우에게 연락했다.
이현우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답장했다.
-좋아요.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도 지우고, 이다음 대화부터는 남겨두도록 해요. 대화 내용은 별거 없는 걸로 가죠. 후원 감사하다. 목요일에 돈 보내겠다. 이런 식으로만 대답해요. 나도 대충 맞춰 줄 테니까. 그리고 밤에는 진짜 평범하게 행동하세요. 아마 휴대폰을 본다면 깊이 잠든 새벽 시간이 될 테니까요. 대답은 하지 마시고, 바로 다음 답장부터 후원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식으로 보내줘 봐요.
정소림은 이현우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맥주 여섯 캔과 안줏거리를 산 뒤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서 잠깐 심호흡을 한 뒤.
평소 그녀의 표정을 꾸며낸다.
“오빠! 맥주 사왔어.”
“갑자기 무슨 맥주? 맥주사러 간 거였어?”
“그냥. 마시고 싶어서. 나도 방송 끝났고. 오빠도 오늘 일 없고. 술 마시고 초저녁부터 늘어지게 잠이나 자려고.”
일이 없다는 말했을 때, 남자친구의 표정이 약간 찡그려졌다.
다른 때였다면 몰랐겠으나.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지금이라면 알 수 있는 변화였다.
“확실히 우리가 여유로워지긴 했나 보다. 무슨 날도 아닌데 이렇게 낮술 할 수 있는 거 보면.”
“그, 그렇지? 다행히도 방송이 잘 되고 있으니까.”
“그러게. 나도 방송이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네.”
숨기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날 선 반응이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정소림의 마음속에 확신이 쌓였다.
“잘된 일이지. 덕분에 1년 정도만 돈 모으면 우리도 결혼할 수 있을 거니까.”
“거참 미안하네. 내가 돈만 잘 벌었어도 결혼 일찍 했을 텐데.”
“오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돈이 중요한 건 맞는데. 우리 둘 사이는 돈 못 벌 때도 좋았는데. 하아, 아니야. 더 이상 이 주제는 말하지 말자. 나 또 괜한 일로 싸우기 싫어.”
“….”
두 사람은 말없이 술잔만 축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정소림은 자신이 먼저 다가가기로 했다.
남자친구의 저 태도가 정말 스마트폰을 봐서 저러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관계가 무너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뭐 때문에 방송을 하는 건데.
그녀가 뭐 때문에 이현우에게 몸을 허락한 것인데!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오빠. 나랑 평생 말 안 할 거야?”
“왜 또. 말 잘하고 있잖아.”
“그런 게 아니라. 삐진 거처럼 나랑 시선도 안 마주치잖아. 여기 봐. 얼른.”
정소림이 남자친구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자기 가슴골 사이에 넣는다.
남자친구가 환장하는 가슴이었다.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남자친구의 뚱한 표정이 조금씩 풀린다.
“넌 꼭 뭐 잘못했을 때만 이러더라.”
그 말에 그녀도, 남자친구도 철렁했다.
이 주제가 지금 나오면 안 되는 건데.
그래도 조금이나마 대비하고 있던 정소림은 표정을 유지한 채 말을 이을 수 있었다.
“잘못? 내가 무슨 잘못 했는데? 내가 뭐 오빠한테 잘못한 거 있어?”
“아니, 아니야. 말이 헛나온 거야.”
“뭔데. 말해 봐. 뭐 서운한 거 있으면 대화로 해결해야지. 쌓아두면 관계에 좋을 거 없어. 말해.”
“아니라니까.”
“빨리 말하라고. 계속 이렇게 쌀쌀맞게 구는 데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정소림은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대화에 임했다.
남자친구의 입에서 스마트폰을 봤다는 것과 이현우의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
이대로 헤어지는 건가?
그건 정말 싫었다.
그랬기에 이런 식으로 남자친구를 몰아붙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의 입에서 그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면 모르는 것일 테니까.
정소림이 계속 가슴을 남자친구 쪽으로 밀어붙였다.
평소엔 어깨와 허리를 아프게 하는 무거운 짐 덩이지만.
이럴 때엔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된다.
결국 남자친구가 항복하듯 입을 열었다.
“치킨!”
“치킨?”
“그래. 요즘 네가 좋아하는 한식만 먹었잖아. 난 초딩 입맛이라서 치킨이 더 좋다고. 안주도 노가리 같은 거 말고. 치킨으로 먹고 싶어. 그래서 그랬던 거야.”
말도 안 되는 이유.
하지만 그녀와 단둘이 있을 땐 정말 초딩이 되는 남친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유였다.
정소림이 안도의 웃음을 내비쳤다.
정말 이 이유였다면 좋겠다 싶어서 말이다.
“아하핫. 그게 뭐야. 먹고 싶었다면 먹고 싶었다고 말을 하지. 그럼, 진작 시켰을 텐데. 지금이라도 시킬까? 후라이드? 아니면 반반?”
“반반으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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