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
“감사합니다.”
이현우는 약속대로 지갑의 돈을 털어 택시 기사에게 건넸다.
운전 고인물인 기사는 20분 걸릴 거리를 8분 40초 만에 주파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는 충분히 돈을 받아 마땅했다.
“현우야!”
급하게 택시에서 내린 이현우.
그 앞에는 이예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밝은 얼굴로 달려와 이현우를 반긴다.
그 모습에 이현우가 인상을 썼다.
“너, 너….”
“화났어…? 왜 그래애. 나 진짜 하나도 잘못한 거 없다니까?”
분노한 이현우의 모습에 이예린이 불쌍한 척을 한다.
그가 화난 이유를 이해할 순 없었다.
그녀는 정말로 이현우가 명령한 사안들을 전부 지켰으니까.
마음대로 찾아오지 말라고 해서 꾹 참고 있다.
다른 사람을 해치지 말라고 해서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저 문 앞에 서 있다가, 마주쳐서 인사를 한 것뿐이다.
뭔 일을 하기 전에 보고 하라고 해서 셀카도 보냈다.
이예린은 정말 억울했다.
그러나 이현우의 분노 앞에서 억울함을 드러내기보다는 기분을 풀어주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다.
“일단 따라 와. 가면서 얘기해.”
“에? 어디 가려고…?”
“잘못했잖아? 그러면 교육받아야지.”
쿠웅.
교육이라는 말에 돌덩어리가 묵직하게 내려앉은 것 같다.
이예린이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정말 싫다는 얼굴로 고개를 마구 도리질 쳤다.
“시, 싫어! 나 진짜 잘못한 거 없어! 진짜야!”
“시끄럽게 굴지 말고 따라 와.”
“싫어!”
도로 위에서 잠시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예린이 절박하게 외친다.
교육은 진짜 싫었다.
억울하다.
“현우 네가 다른 사람 해치지 말라고 해서 건드리지도 않았잖아! 마음대로 연락하지 말라고해서 그것도 지키고 있고! 찾아가지도 않았어! 뭔가 헷갈리는 게 있으면 보고 하라고 해서 까톡도 보냈잖아! 근데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빵잇의 집에 찾아간 거. 그것만으로도 잘못이지.”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현우야, 난 그냥 인사하러 간 거야. 걔 옆집에 사니까. 뭐 다른 이상한 짓하려고 간 거 아니었다구….”
그 시간에?
말도 안 된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말을 물어야 했다.
“내가 분명 뒷조사나 감시 같은 건 전부 때려치우라고 했을 텐데?”
“그건 다 그만뒀어. 뒷조사도 이젠 안 하고. CCTV도 다 철거했어. 그런데 이미 구매한 집은 빠르게 팔 수가 없잖아. 이건 한참 전에 산 집이란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뒷조사하기 위해서 집을 샀다고.
그땐 집보단 CCTV와 뒷조사에 꽂혀있어서 흘려버린 말이었다.
“안내해.”
“아, 으, 응….”
일단 집부터 봐야겠다.
길거리에서 계속 얘기하고 있을 순 없으니.
“여기야?”
“응….”
605호 앞.
이현우가 명패를 노려본다.
무슨 던전에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열어.”
“알았어.”
이현우가 턱짓으로 문을 열라 지시했다.
이예린이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어떻게 알았는지, 비밀번호가 이현우의 생일이다.
‘내가 알려줬었나?’
모르겠다.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것 같기도….
그리고 문이 열린다.
부엌과 방이 구분되지 않는 작은 원룸 오피스텔.
방안엔 온통 이현우의 사진이 붙어있다.
크기가 제각각인 사진들에서 광기가 느껴졌다.
“….”
이현우의 가슴이 떨렸다.
공포라는 감정이 가슴을 짓누른다.
하지만 티 내지 않는다.
그랬다간 갑의 위치에 서지 못할 테니까.
이예린을 제어하려고 한 것이 잘못인 걸까?
금수에게 말과 학습을 못시키는 것처럼, 이예린에게도 불가능한 걸까?
그렇다면….
이현우의 눈이 번뜩였다.
“어때…?”
이예린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지 년도 이상하다는 걸 아는 걸까?
아니, 눈동자를 보니 기대가 가득하다.
미친년은 진심으로 이런 광경에 이현우가 기뻐할 거라 믿고 있었다.
“네가 미친년이라는 건 알겠어. 그런데 하필이면 나한테 미쳤네.”
“에헤헤헷.”
“칭찬 아니야. 일단 들어와.”
이현우는 집주인도 아닌데, 집주인처럼 행동했다.
그의 무거운 말투에 이예린이 흠칫한다.
“나, 나 잘못 안 했어. 다 설명했잖아! 현우야. 응?”
“교육하려는 거 아니야. 옷 벗고 이리 와.”
“아…! 응! 알았어! 그런 거면 진작 말하지!”
이현우의 말에 이예린의 얼굴이 환해진다.
역시 예쁘긴 예쁘다.
이젠 그 외모에 혹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정말로 더 이상 교육은 할 생각이 없었다.
이젠 끝을 내려고 한다.
이현우는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다리 벌려.”
“네엣!”
침대 위.
알몸의 두 남녀가 뒤엉킨다.
하지만 그 광경에 간질거리는 느낌은 없었다.
소유하려는 여자와 결단을 내려는 남자.
두 사람의 섹스는 차분한 긴장감 속에서 이뤄졌다.
“으읏! 애, 애무도 안 하고…. 윽! 그래도, 좋다아아…. 현우 네꺼가 들어왔어. 하아, 아파. 아아앗. 이상해애. 나 아픈 거 정말정말정말 싫어하는데. 흐으으으. 현우 네가 아프게 하는 건 좀 좋을지도….”
“그래? 그럼 이건 어때?”
미친년에게 옮은 걸까?
이현우의 두 눈에도 광기가 살짝 엿보였다.
이현우가 이예린의 목을 붙잡았다.
기도는 생각보다 쉽게 막을 수 있다.
턱 안쪽, 목과 턱의 경계선을 손가락 몇 개로 꾹 누르는 것만으로도 질식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끄으으윽…!”
이예린이 숨 막히는 소리를 낸다.
그 와중에도 이현우의 좆질은 계속되었다.
“꺼어…어….”
이예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다 점점 파래졌다가.
허여멀건한 색으로 바뀐다.
정말로 위험한 상황.
하지만 이현우는 이예린의 목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체중을 더하며 더 강하게 목을 조였다.
푸슈우우우우우우웃!
부르르르릇!
부르르!
죽음에 임박한 이예린의 보지에서 상당량의 체액이 뿜어져 나왔다.
소변인가? 애액인가?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이현우의 눈에는 광기가 돈다.
죽인다.
지금 죽여야 후환이 없다.
“커…………!”
부들부들 떨리던 이예린의 움직임이 멎었다.
얼굴에도 핏기가 하나도 없다.
이대로 조금만 더 하면 죽는다.
“씨발!”
“커허어어억! 케헤에엑! 헤엑! 콜록! 콜록! 콜록, 하아. 하아…. 하아….”
“개 씨발! 진짜 시발!”
마지막 순간.
10여 초만 더 목을 졸랐어도 이예린이 죽거나, 뇌에 큰 데미지를 입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됐을지도 몰랐을 때.
이현우는 그녀의 목에서 손을 뗐다.
살인자가 되기까지 마지막 한 걸음.
이현우에겐 너무 큰 한 걸음이었다.
손이 벌벌 떨린다.
이현우에겐 사람을 죽일 용기가 없었다.
겁쟁이라 욕할 순 없었다.
이예린 같은 미친년이 아니고서야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
너무 목을 오래 졸랐던 것일까.
이예린은 입을 벌린 채로 기절해버렸다.
혹시 몰라 코에 손을 가져다 대니 숨은 붙어있다.
하얗게 질려있던 그녀의 얼굴에 혈색이 점점 돌아왔다.
“하…. 시발….”
이현우는 이예린의 몸 위에서 나와 침대에 걸터 앉았다.
죽일 수도 없고.
통제하는 것도 힘들다.
좆같은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그때, 큰손 형님들이 떠올랐다.
여자 경험이 많은 형님들은 타개책을 알고 있지 않을까?
이현우가 곧바로 까톡을 열었다.
그리고 현 상황을 조금 각색해 설명했다.
-아 백수 달링한테 물렸지.
-헐ㅋㅋ 달링이면 고민되긴 하겠다.
-한때 유명했지.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
상황을 조금 꼬아서 말하긴 했는데.
큰손 형님들은 곧바로 이현우가 처한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래, 이미 다 들켰는데 숨길 필요가 있나.
이현우는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혹시 해결책이 있을까요?
-뭘 그런 걸 고민해 ㅋㅋㅋㅋ.
-그냥 방생하면 되지. 찾아오면 경찰에 연락하던가. 고소 때리면 됨.
-ㅇㅇ. 걔 돈 좋아하니까 고소당해서 벌금 받는 건 존나 싫어할 걸? 그럼 떨어질 거야.
아니, 그건 안 된다.
지금 경찰로 해결될 일이었다면 진작 해결 했다.
그러다간 진짜 칼부림이 날 수 있었다.
-그러다 달링이 누군가 해치기라도 하면요?
-에이 설마.
-얼굴도 다 알려진 년인데 그러겠어?
-그래 ㅋㅋㅋ 그건 너무 걱정이다.
항상 도움이 되던 큰손 형님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도움이 되는 조언을 얻을 수가 없었다.
큰손 형님들은 사건의 심각성과 달링의 미친 정도를 체감하지 못해서 그렇다.
그때, 큰손 중 한 명이 1:1 채팅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백수야. 혹시 지금 달링을 방생하긴 싫은 거야? 근데 말은 듣게 만들고 싶고?
채팅을 많이 치지 않는 밤바라기 형님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 아니지만, 1:1 채팅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네. 형님. 혹시 방법이 있을까요?
-내가 생각하기엔 있긴 한데…. 이게 정상적인 방법도 아니고, 거부감이 들 수 있는 거라서. 그래도 좋다면 말은 해줄게.
-뭐든 다 좋습니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요.
-SM이라고 알아?
-SM이요…? 조금은 알죠. 묶고 때리고 하는 거잖아요.
-새디스트나 마조 같은 사람들.
-대충 그렇긴 한대. 원래 SM의 기본은 지배와 복종이거든.
-달링을 제대로 조교 한다면 정신병이 걸린 년이라도 충분히 복종하게 만들 수 있어.
-네 말에 따르도록 만들 수 있다는 거지.
-SM의 문외한인 네가 하기엔 힘들겠지만, 원한다면 전문가를 소개시켜줄 수는 있긴 해. 내가 그쪽으로 인맥이 좀 있거든.
-조교사라고….
-남자 조교사도 있고, 레즈플이 가능한 여자 조교사도 있으니까. 고민하고 해보고 싶으면 말해 봐.
-그리고 진짜들은 가격이 꽤 있으니까 신중히 생각하고.
본의 아니게 밤바라기 형님의 취향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나저나 SM이라….
진짜 그런 것으로 이예린을 통제할 수 있을까?
울고불고 빌 때까지 쥐어패야 겨우 말을 듣게 할 수 있었던 정신병자를?
‘지금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현우의 고민은 짧았다.
할 수 있는 건 다 동원해야지.
그리고 밤바라기 형님의 말을 들어보면, 이 방면의 전문가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되지 않을까?
-얼마인데요? SM 최고 전문가도 연락 가능합니까? 형님? 가격은 상관없어요. 정말 잘 되면 형님께도 크게 사례하겠습니다.
-ㅋㅋ.
-나한테 사례할 필요는 없고.
-잘 되면 나중에 플하는 거 관전만 시켜주면 돼.
-내가 알기론 1 짱 먹는 사람은 없고…. 넷 정도가 그나마 레전드로 불리는데. 1명 조교 하는 데 대충 1, 2억 정도.
조교가 뭐길래 1억이나 한단 말인가?
그건 이현우의 수중에도 없는 돈이었다.
하지만 마련할 수 있다.
코인 무한이 있으니까.
밤바라기와 대화를 하며 네 명의 조교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현우는 그중에서 여자 조교사를 택해 연락을 부탁했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 조교사에게 조교를 받는다면 좀 그러니까….
“….”
밤바라기 형님에게 부탁하고 나서야 심신에 안정이 찾아온다.
그리고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아!”
빵잇, 최수현.
아직도 그녀에게 괜찮다는 말을 전해주지 않았다.
이현우는 기절한 이예린을 버려두고 당장 옆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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