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
금요일.
이현우의 아침을 일찍부터 시작된다.
새벽같이 일어난 그가 침대 위에서 기지개를 켰다.
웬일로 그의 옆에는 여자가 없었다.
“으으으읏…!”
어젯밤, 욕구를 풀어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현우는 충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신체적 욕구보다 더욱 강렬한 정서적 교류를 하고 왔으니까.
어젯밤만큼은 이유나가 아닌 다른 여자를 품고 싶지 않았다.
————————
[이유나]
-나 이제 일어났어.
-바로 운동가려고.
-아직 안일어났나보네.
————————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선톡이다.
어젯밤에도 자기 전에 통화를 했는데.
어째서 계속 이렇게 연락하고 싶은 걸까?
“으음….”
이현우는 메시지를 하나 더 보낼까 말까 고민했다.
그러다 그냥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
“으으….”
자신이 하고도 손발이 오글거린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나중에 보면 뭐라고 반응할까?
분명 부끄러워하겠지?
아, 일단 미리보기를 못 하게 가려둬야겠다.
-일어나면 톡해.
다시 메시지를 남겨둔 후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그다음으로 하는 것은 스케쥴러 확인.
-금 // 낮: 빵잇, 저녁: 여우찡, 밤: 지혁 만남
-토 // 여우찡 생리 끝
오늘은 빵잇, 여우찡 순으로 방송을 시청하기로 되어있다.
이현우는 수첩에 적힌 여우찡의 이름을 지우려다 멈칫한다.
심정적으로는 이유나의 방송을 보러 가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 칸.
토요일 스케쥴에 여우찡의 생리 끝나는 날이 적혀있었다.
그날, 김하나와 질내사정 섹스를 질펀하게 즐기기로 한 것이 떠오른다.
‘멀티로 돌려야 하나?’
그래.
그러는 것이 좋겠다.
이유나와 여우찡 방송을 동시에 보지 뭐.
유나의 방송을 매일 참석하기 위해 멀티를 하도 뛰다 보니, 이젠 익숙해진 일이었다.
“오빠! 일어났어?”
헬스장으로 향하던 도중.
여우찡, 김하나의 전화가 걸려 왔다.
매일 있는 모닝콜이었다.
“오늘은 목소리가 좀 밝다?”
“응. 생리 첫날이 젤 빡세고. 끝나갈수록 생리통이 줄어들거든. 이제 다 끝난 것 같아. 내일 알지?”
여우찡의 애교에 이현우가 피식 웃었다.
까먹을 리가 있나.
수첩에 별표까지 쳐뒀는데.
“물론. 내일 걸어 다닐 생각하지 마.”
“꺄아아아. 너무 기대돼. 하아암. 오빠. 미안한데. 통화 오래 못할 것 같아. 생리 때문에 너무 피곤해. 컨디션 난조라. 난 이만 다시 잘게. 사랑해.”
“그래 얼른 자라. 내일 보자.”
“응!”
김하나가 졸린 목소리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여전히 제멋대로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제멋대로 행동하면서도 타인에게 웃음이 나오게 할 수 있다니.
“어서 오세요. 회원님.”
헬스장에 도착하자, 악마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천사가 맞이해준다.
전민지.
얼마 전부터 새벽-아침 시간대로 파트 타임을 옮긴 트레이너였다.
탄탄한 몸매가 일품인 여자다.
외모는 평범하게 예쁜 정도?
“안녕하세요. 민지 씨. 오늘도 천사 같으시네요.”
“아이, 또 그러신다. 그렇게 작업 멘트 치지 마세요. 저 남친 있어요.”
이현우의 아부성 발언에도 하하 웃으며 자연스럽게 흘릴 정도로 성격도 좋다.
“진심입니다. 어떤 악마랑 달리 너무 천사 같으세요.”
“회원님? 그 악마가 절 말하는 건가요?”
“흐익! 악마다!”
때맞춰 이현우의 트레이너가 등장했다.
그는 이현우의 장난에 맞춰 일부러 가슴을 튕기며 근육 악마의 모습을 재현했다.
두 사람이 노는 것을 보고 전민지가 호호하고 웃었다.
“좋아요. 이야. 역시 회원님은 선수 하셔야 한다니까? 2주 만에 컷팅을 이만큼 하는 게 쉬운 게 아닌데. 식단도 안 하시고 이렇게 되는 게 진짜 쉬운 게 아니라니까요? 여기서 근육만 좀 더 붙으면 트레이너라고 해도 믿겠어요.”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스읍. 진짜 아쉽네. 키워볼 만한 몸인데.”
헬스를 등록하기 전, 이현우의 몸무게는 74킬로그램.
그리 많이 찐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형적인 아저씨 몸이라고 할까?
팔다리는 얇고, 뱃살만 툭 튀어나온 몸매 말이다.
그런데 지금 2주 만에 5킬로그램이 빠져서 69킬로그램이었다.
적정 체중에서 얼마 차이 안 나는 몸무게.
식단도 안 하고, 근력운동을 병행하고 있음에도 몸무게가 쭉쭉 빠졌다.
이현우가 매일매일 과도한 섹스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걸 모르는 트레이너는 감탄할 수밖에 없는 수치였다.
“그럼,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마무리 운동 꼭 하고 가세요.”
“예….”
“하핫. 회원님이 괴로워하는 걸 보니 오늘도 참 운동시켜드렸다 생각되네요.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악마 같은 놈.
이현우는 속으로 욕을 짓거리며 매트 위에 누웠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역시나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이유나의 까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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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나]
-♥
-일어나면 톡해.
-앗.
-아앗….
-(부끄러워하는 이모티콘)
-조, 좋은 아침이요….
-운동 열심히 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식 동물이야?
-왜 글에서 도망치는 모습이 보이는 거야?
-갑자기 하트 같은 걸 날리시니까….
-부끄럽잖아요.
-(우는 이모티콘)
-난 마음을 표현한 것뿐인데….
-아! 몰라요!
-오늘 방송은 와주시는 거죠?
-당연하지.
-알겠어요.
-이따 봬요!
-유나야?
-유나야?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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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에 너무 당황한 건지 이유나가 답장을 안 한다.
하트를 보고 귀까지 빨개졌을 얼굴을 상상하니 심장이 콩닥거린다.
아, 귀여워도 너무 귀여운 거 아니냐고.
연애하길 너무 잘했다.
그때 고백하길 너무 잘했다.
이현우는 자신을 마음 껏 칭찬했다.
그리고 다른 자잘한 까톡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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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지][3]
-이거 보면 연락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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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림][2]
-남친한테 스마트폰 찾았다고 말했어요. 다행히 남친은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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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현][5]
-그럼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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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린][1]
-현우야.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사랑해사랑해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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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늘][2]
-오늘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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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해줄 건 답해주고.
아닌 건 읽씹을 하거나 안읽씹을 하고.
이현우는 마무리 운동 시간을 이용해 쌓인 연락을 처리해 나갔다.
-빵잇♥ª 님이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신입 여캠) 힘 나는 오후! 노래 열차 출바알! DSLR 신청곡100개]
빵잇♥ª · 시청자 수 16명
-열혈 팬 백수킹 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입장료.
-ㅂㅅㅇ
-ㅂㅅㅇ
-백수형 오셨따
“앗, 회장님. 오셨습니까아. 오늘도 입장료! 앙 감사띠! 일단 노래부터 하겠습니다!”
빵잇의 방송 알림이 뜨고.
이현우가 입장했다.
그리고 연일 행사처럼 벌어지는 입장만개와 이현우가 좋아하는 18번 곡 선창.
이현우는 빵잇의 시원시원하게 뻗어가는 노래를 들으며, 채팅창과 소통했다.
방송 초반부터 죽치고 있는 시청자들은 대개 코어 팬들이다.
몇 번 닉을 마주했더니, 이현우에게도 친근감이라는 게 생겼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좆목질일 수도 있지만.
새로 들어오는 유입들에게 벽만 치지 않으면 상관없었다.
-모두 ㅎㅇ요.
-형님 그거 아세요?
-뭐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ㅋㅋㅋㅋ.
-아니, 딴 게 아니라. 빵잇이 공방 나간대요.
-어제 방송에서 말했는데.
-형님은 어제 방송에 없으셔서. 혹시 모르실까 봐 말씀해드려요.
공방이란 공식 방송의 줄임말이었다.
꼬레아TV에서 직접 촬영하고 방영하는 방송이다.
일종의 유사 케이블TV라고나 할까?
빵잇이 공방에 나가는 건 알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까톡에서 봤으니까.
공방에서도 힘 좀 실어달라고 부탁했었지.
물론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랬어요?
-방송 나가면 힘 좀 써줘야겠네.
-오오오 ㅋㅋㅋㅋ
-사스가 백수갓
-백수 형님이 힘 실어주면 빵잇이 어깨 좀 올라가겠네 ㅋㅋㅋㅋ
-외화 유출이라고 배 아파할 수도?
-ㅋㅋㅋㅋ
“뭐야뭐야. 나 노래 부르는데. 왜 다들 집중 안 하고 자기들끼리 놀아?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아. 나 공방 나가는 거 이야기했구나. 회장님은 모를 수도 있겠다. 저 며칠 뒤에 공방 나가요! 도와주실거죵?”
빵잇도 이현우도.
공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걸 비밀로 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여캠은 유사 연애를 서비스로 판매하는 직종이니까.
[백수킹 님께서 코인 5,000개를 선물!]
-당연히 도와줘야지. 어떻게 도와줄까?
“와! 5천 개! 기모링기모링! 헤헤…. 공방에서 제 이름 언급하면서 조금만 쏴주세요.”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개를 선물!]
-그 정도야 쉽지. 한 3만 개 정도만 쏘면 되나?
-왘ㅋㅋㅋㅋㅋ
-3만 개 정도 ㄷㄷㄷ
-킹갓제너럴백수형님 ㄷㄷ
-부럽다 금수저
“넵! 고마워요. 회장님. 아! 공지에도 올렸었는데. 이번 공방에 팬 참여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올 사람 있어요?”
-나 무조건 감!
-나도 가고 싶은데 지방이라 ㅠㅠ
-빵잇이 실물 보고 싶다 ㄹㅇ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개를 선물!]
-나도 시간 되면 갈까?
-헐ㅋㅋㅋㅋㅋ
-백수형님이 ㄷㄷㄷ
-이번에 무조건 가야겠네!
-백수형님 존잘이라는 소문 있던데
“헐! 회장님도 오신다고요? 그럼 저야 너무 좋죠!”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개를 선물!]
-ㅇㅇ. 일단 그건 그거고. 8천 개 넘게 쌓였는데. 리액션 안 함? 어딜 날로 먹으려고 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ㅋ
-맞지 이건 해장님이 맞짘ㅋㅋㅋㅋㅋㅋ
-칵씨! 어딜 날로먹으려고 ㅋㅋㅋㅋ
“아아앗! 제가 언제 안 한다고 했어요! 소통 중이라 못한 거잖아요. 지금 합니다! 지금!”
빵잇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펼쳐지는 채.신.유.행 댄스.
죽어도 댄스는 못한다고 우기던 것이 며칠 전인데.
그녀의 마인드는 금융치료에 의해 개정되었다.
물론, 잘 춘다고는 안 했다.
율동 같은 아기자기한 움직임.
분명 섹시 댄스인데도.
빵잇이 하면 귀여워 보이는 효과가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보) 빵잇 흑역사 +1
-앜ㅋㅋㅋㅋ 이 맛에 방송 보러 옵니다.
“아 씨! 놀리지 마라! 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ㅋㅋㅋㅋㅋㅋㅋㅋ
-놀리지므아라~
빵잇은 열심히 춤을 추면서도 채팅창을 확인했다.
역시 패는 맛 하나는 꼬레아TV 1등인 빵잇이었다.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개를 선물!]
-흐음? 하기 싫다고? 그럼 코인이 필요 없다는 말인가?
“아아아악! 잘못했습니다! 그런 거 아니에요! 회장님! 더 열심히 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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