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이현우가 정소림을 데리고 번개에 참여한 날 오전.
빵잇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방송 준비를 했다.
평일엔 오후 2시부터 방송하지만, 주말에는 오전 10시에 방송을 켜기 때문이다.
“좋아, 머리 완벽하고. 의상도 좋아. 찢어진 곳 없고. 속바지 입었고. 혹시 모를 의첸용 옷도 준비됐어.”
내향적인 만큼 꼼꼼함 성격을 가진 빵잇은 방송 시작 전에 항상 모든 것을 확인했다.
그러지 않으면 불안했다.
이런 성격이지만 방송을 진행하는 건 또 괜찮다.
사람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채팅으로만 소통하니까.
“아! 스타킹!”
역시 확인해보길 잘했다.
오늘 의상에는 낮은 데니아의 스타킹이 필요했다.
그런데 잘 비치지 않는 스타킹밖에 없었다.
체크 리스트 확인을 2시간 전에 해서 다행이었다.
지금이라면 사러 나갈 시간이 충분하다.
사야 할 물건에 스타킹을 기록한 빵잇은 나머지 체크 리스트도 점검했다.
그리고 어느새, 마지막 목록에 도착했다.
-백수 오빠한테 연락하기
그녀의 방송에 방문하는 유일한 큰손.
백수킹에게 연락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살면서 전 남자친구 이외의 남자에게 선 연락을 해본 적은 없었다.
전 남친과 사귀기 전에도 항상 전 남친이 먼저 연락했다.
하지만 백수킹에겐 그럴 수가 없었다.
그에겐 빵잇 말고도 다른 여자들이 많았고.
그녀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잊히거나 뒷순위로 밀릴 수도 있다.
게다가….
섹스도 무척이나 잘하지 않는가.
빵잇은 이현우의 자지만 생각하면 아랫도리가 젖어올 지경이었다.
-오빠, 정말요? 래빗맨3 안 보셨어요?
-어. 살면서 본 영화가 몇 개 안 돼.
-헐. 그럼 저랑 보실래요? 다음 달까지 상영이니까 시간적으로도 꽤 널널한데.
-저 매주 목요일 휴방이니까, 그날이면 언제든지 가능해요.
-그래? 그럼 시간 날 때 데이트나 할까?
-데이트…(부끄러워하는 이모티콘)
-좋아요.
-ㅇㅋ 그때 다시 연락하자
-넵.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어젯밤에 연락한 까톡을 다시 확인한다.
대화를 끊는 듯한 이현우의 말투에 더 연락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소심한 성격을 지닌 그녀는 이럴 때 가슴이 참 답답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수십 번도 더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아니야. 이건 너무 처음 보는 사람 같잖아. 오빠, 뭐해요? 이것도 좀. 이른 시간인데 당연히 자거나 막 일어났겠지.’
빵잇은 까톡창을 보면서 고민했다.
그녀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바깥으로 나온다.
스타킹과 음료 등을 사러 가기 위함이었다.
“응…?”
그런데 문득.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은 시선을 느꼈다.
여자의 촉이랄까?
예쁜 여자는 남의 시선에 항상 노출되는 만큼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은 시선에 민감하지 않나.
어쨌든 그런 시선을 느꼈다.
그런데 무척이나 이상하다.
지금 복도에는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착각인가?
착각이겠지?
착각이 맞다.
그러나 왜인지 등골이 으스스해지는 느낌에 빵잇은 스마트폰을 집어넣고 걸음을 빨리했다.
그녀가 떠난 복도, 천장에는 감시용 카메라가 빨간 불을 내뿜고 있었다.
-오빠, 일어나셨어요?
스타킹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 빵잇은 그제야 이현우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지, 읽음 표시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현우는 어제 새벽까지 박하늘의 집에서 섹스했던 탓에 아직까지 뻗어있는 중이었다.
“으음…. 주무시나?”
오늘 와주신다고 했는데.
이러다 방송에 오지 않으시는 거 아닌가?
빵잇은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해서 그녀가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리고 방송 시작 시간이 되었다.
[신입 여캠) 잔잔한 주말 아침에 노래 들을 사람? 건빵환영♥ DSLR 고민상담 식데뽑기1+1]
빵잇♥ª · 시청자 수 1명
방송 시작 1분.
아직까지 입장하는 시청자는 없다.
익숙한 일이었다.
꼬레아TV의 농간인지 뭔지.
파비, 베비, 일비 등의 계급에 따라 방송 알림 도착 시간이 좀 차이 나기도 했으니까.
특히 일비의 방송 알림은 5분이나 늦게 뜨는 경우도 있었다.
-새벽감성 님이 방송에 입장하셨습니다.
-298298 님이 방송에 입장하셨습니다.
-닮은살걀 님이 방송에 입장하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애청자들이 방송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빵잇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반겼다.
셋 다 방송이 시작하면 항상 찾아와주는 시청자들이지 않은가.
이현우처럼 코인을 팍팍 쏴주진 못해도, 최소 하루 10개의 코인은 선물해주는 시청자들이었다.
“감성 오빠! 좋은 아침. 298도 어서 와. 달걀 오빠도 하이요.”
빵잇은 평소와 별 다를 바 없는 방송을 이어갔다.
소통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리액션을 하는 방송.
그러면서 눈은 간간히 채팅창을 확인한다.
‘오늘 안 오시려는 건가?’
방송 시작 2시간이 지났는데도 백수킹 닉네임이 뜨지 않았다.
월 100만 개, 주 25만 개가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걱정이 들 수밖에.
이현우의 기분에 따라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는 구두계약 아니던가.
그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매크로가 떴다.
-열혈 팬 백수킹 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오셨다! 백수 오빠! 좋은 아침입니다!”
너무 기다렸던 탓인지 오늘 방송 중에서 가장 텐션 높은 목소리가 나왔다.
얼굴도 싱글벙글이다.
-백수 형님 오니까 톤이 달라지네 ㄷㄷ
-왘ㅋㅋㅋㅋㅋ
-어느새 돈미새가 된 빵잇.avi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입장료. 아우, 오늘 늦잠 잤네. 운동 다녀온다고 좀 늦었어.
기다렸던 만큼 과실은 달콤했다.
이현우는 전매특허인 입장 만개를 쏘며 빵잇을 기쁘게 했다.
“아하핫, 오늘도 입장하자마자 만 개! 너무 감사합니다. 회장님 18번 곡부터 바로 가겠습니다!”
텐션이 높아진 빵잇은 곧바로 노래 반주를 틀었다.
이현우가 좋아하는 여자 가수의 곡이었다.
감미롭고 잔잔한 보이스가 스피커를 타고 흘렀다.
그러다 클라이막스에서 확 높아지며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어떤가요? 저 잘 불렀죠?”
빵잇은 햇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애교를 부렸다.
평상시 그녀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방송에선 다르다.
일부러 과하게 밝은 행동을 유지하려고 애쓰기도 하고, 채팅창은 그다지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으니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과한 텐션이 꼭 좋은 건 아니었다.
평소 얌전하고 소심한 그녀가 높은 텐션을 내면 급발진 사고가 난다고 해야 할까?
[백수킹 님께서 코인 2820개를 선물!]
-그러네 ㅋㅋ 맨날 들어도 새로워
“아이구, 회장님. 왕이쁜이 개 감사합니다! ”
-역시 믿고 듣는 빵잇이
-귀 정화 ㅅㅅㅅㅅ
-근데 10년 전 일진들이 부르던 노래 아님? 특히 여자 일진들이 존나 부르던건데 hoxy…?
-눈나나죽어
이현우에 이어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하지만 100개의 선플이 있어도 1개의 악플이 유독 눈에 띈다고 하던가.
빵잇의 눈에도 그랬다.
악성 채팅도 아니었고, 억까 채팅도 아닌.
시청자는 그냥 농담삼아 던진 말.
그 채팅에 빵잇이 급발진했다.
“무슨 일진이야앙. 나는 이진, 삼진, 아니 구십진 정도 됐지.”
-이건 좀….
-노잼.
얼굴이 보이지 않는 만큼, 시청자들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채팅으로 풀어낸다.
급발진 드립에 시청자들이 노잼 혹은 ㄴㅈ이라는 채팅을 마구 올린다.
그녀가 나쁜 건 없었다.
그냥 방송을 재밌게 하기 위해 과한 텐션을 뿜어내는 것이고.
시청자들과 재밌게 소통하기 위해 되지도 않는 드립을 친 것이었다.
사람이 언제나 재밌는 말만 할 수는 없다.
게다가 빵잇은 말주변이 있는 편도 아니었다.
방송이 재밌으려면 방송 주인인 그녀가 샌드백처럼 후두려 맞아야 했다.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개를 선물!]
-90찐? 빵잇이 90년생이었어 ㄷㄷ?
이현우가 실력 발휘를 했다.
지금 상황과 관련 있으면서도 적절하게 빵잇을 후드려 팰 수 있는 전자녀다.
빵잇 방의 지주이자, 리더인 이현우가 방향을 정해주자 시청자들이 사납게 빵잇을 물어뜯는다.
-헐ㅋㅋㅋㅋㅋㅋ
-나이 감았어 ㄷㄷ?
-22살이라더니 30대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 드디어 사건사고란에 이름 하나 올리나?
“아니, 아니. 잠깐! 회장님!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거야! 나 그냥 드립으로 큰 숫자 부르려고 90진이라고 한 거지! 왜 어릴 때 일진 이진 삼진 이렇게 불렀잖아아아.”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개를 선물!]
-네. 누나.
-억 누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이 집은 회장님이 젤 잘팸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
-누낰ㅋㅋㅋㅋ
-이제부터 빵잇 누나다. 메모.
“아니. 누나라뇨! 백수 오빠! 오빠가 오빠잖아요! 아잇 진짜, 그렇게 몰아가지 말고!”
-네 누나
-네 누나
-네. 누나
“아씨! 너희도 그렇게 하지 말고! 누나 소리 그만! 그마아아안!”
채팅창이 단결해서 네 누나를 주르륵 올렸다.
빵잇은 이 상황이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듯 소리를 쳤다.
역시나 그녀는 후원과 채팅으로 쳐맞을 때가 제일 재밌었다.
“하아…. 끝났다.”
매일 규칙적으로 다섯 시간씩 하는 방송.
고작 다섯시간만 일하는 거냐 할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이건 진이 빠지는 행위였다.
다섯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계속 말하고 노래하고 말하는 일이지 않나.
그것도 재밌는 말을 계속해야 하는 거다.
물론, 빵잇이 재밌는 말을 계속 내뱉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쉬지 않고 조리돌림을 당한 빵잇은 거의 녹초가 되다시피 의자에 눌러붙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다잡고 몸을 일으켰다.
힘들어도 할 건 해야 했다.
오늘도 이현우가 10만 개나 후원을 해주었다.
돈으로 치면 1,000만 원 상당이다.
계약된 일이지만 감사 인사는 전해야지.
-오빠. 오늘 찾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혹시 통화 가능하세요?
까톡을 보내자마자 전화가 걸려 왔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모양이다.
“흠흠.”
빵잇은 목소리 톤을 조절한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 나야.”
“네. 오빠. 오늘도 너무 감사해서요.”
“아냐, 아냐. 나도 오늘 재밌었어.”
빵잇은 이현우와 가벼운 잡담을 이어 나갔다.
그러다 이현우가 먹는 밥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호텔에서 지내시니까 집밥은 거의 못 먹겠네요. 아! 그러면 제가 도시락 싸드릴까요?”
“도시락?”
“네. 저 요리하는 거 좋아해요. 한식이나 양식뿐이지만요. 원하시는 요리 있으시면 제가 도시락 만들어서 갈게요!”
원래 그녀의 성격을 아는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정도의 적극성이었다.
그만큼 빵잇은 이현우를 간절히 원했다.
돈도 쾌락도 둘 다 얻을 수 있었으니까.
영화는 다음에라는 말로 무기한 딜레이되었는데, 도시락이라는 말은 통했는지 내일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음식은 집 반찬 몇 가지와 된짱찌개.
모두 쉬운 것들이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면 될 것 같고, 지금 중요한 것은….
“속옷!”
이현우가 머무는 호텔에 가는데 아무 일도 없을 리 없었다.
그녀는 이현우에게 보여줄 속옷을 신중하게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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