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
***주의***
이번 편에는 NTL(네토리, 타인의 연인을 빼앗는 것)이 서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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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림은 딱 한 번이라 스스로 다독이며 식데에 나왔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 데이트이며, 잠자리는 절대 가지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큰손인 이현우는 잠자리를 원할 테지만.
진심으로 설득하면 캐시백 관계는 유지하면서 육체적 관계는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식사 자리에서 실수를 해버렸다.
처음 마셔보는 비싼 와인에 만취해버린 것이다.
아침에 일어난 정소림은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놀랐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에 놀람은 곧 진정되었다.
속옷도 입혀져 있었고, 성기에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래서 샤워를 마친 뒤 나가려는데.
다음 약속을 잡자는 이현우의 압박에 갈등이 생겼다.
그녀의 실수로 식사 자리를 망친 것은 사실.
다시 식데를 하는 게 맞는 일이지만.
남자친구를 또 속이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도 죄책감이 상당하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현우가 명품을 선물했다.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트레이닝 복과 가방.
그녀 인생 첫 명품을 이런 자리에서 얻을 줄은 몰랐다.
정소림은 검소하게 산다.
하지만 사치를 부리고 싶지 않아서 부리지 않는 게 아니었다.
국악인의 벌이로는 명품 같은 곳에 소비할 돈이 없어서였다.
명품 같은 것, 비싸기만 하고 실속은 없는 것이라 애써 생각하며 살았는데.
막상 그것이 손에 들어오니 무척이나 예쁘고 아름다워 보인다.
치열한 고민이 끝났다.
정소림이 입을 열었다.
“내일…. 아니 모레 볼까요?”
정소림은 다시 약속을 잡았다.
다음번에 만나면 남자친구를 배신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정소림은 스스로조차 속였다.
이건 필요한 일이야.
월 2천만 원을 어디서 벌 것인가.
큰손인 이현우와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선 식사 데이트쯤은 하는 게 맞았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있다고 이미 밝혔으니, 진심이 담긴 설득을 한다면 잠자리를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현우는 신사적인 사람인 것 같으니까.
어제, 오늘도 아무 일도 없었지 않은가.
그녀의 옷이 벗겨진 것은 음식물 때문에 더러워져서 그런 것이고.
“흐음, 그럼 모레는 제가 약속이 있어서요. 내일 늦은 밤 어때요?”
내일.
그러니까 일요일 밤에는 화순의 방송에 들어가야 한다.
인사차 가는 것이기에 그리 오래 있을 필요는 없었다.
화순이 늦은 저녁부터 밤까지 방송하니까, 인사하고 나오면 10시쯤 될 것 같았다.
“늦은 밤이요…?”
“네. 저녁에 할 게 있어서 끝나면 10시쯤 될 것 같은데. 만나서 술 한잔하죠? 이번엔 익숙하지 않은 와인 말고 가볍게 맥주로.”
노골적인 유혹이었다.
정소림의 남자 경험이 이제까지 남자친구뿐이라지만, 이런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늦은 밤에 성인 남녀 둘이서만 술을 마신다.
그 뒤의 일은 자연스레 침대로 가게 될 것이다.
어쩌지?
거절해야 하나?
또 한 번 고민이 들었다.
그때, 그녀의 손에 잡힌 매끄러운 가죽 감촉이 느껴진다.
정소림은 또 한 번 자신을 속였다.
‘괜찮을 거야. 아직 모르는 일이니까.’
지레짐작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현우는 신사적인 남자이니, 제대로 거절한다면 손을 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식데를 한다고 했으니 물릴 수도 없다.
결국 정소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내일 열 시에 봐요.”
“그래요.”
“앗!”
정소림은 갑자기 일어나 자신을 껴안는 이현우의 행동에 당황했다.
서로 가운 한 장만 입고 있었기에 육체의 형태와 온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정소림을 껴안은 이현우는 그녀의 볼에 뽀뽀했다.
“혀, 현우 씨!”
“식데 하는 도중에는 소림 씨가 제 여자친구인 거잖아요. 난 여자친구가 집에 가면 꼭 뽀뽀 하는데.”
“그, 그런…. 하아, 알겠어요. 그래도 다음번엔 말이라도 해주세요. 너무 놀랐잖아요.”
“네. 다음번에는 말하고 할게요.”
“아니, 그 소리가 아닌데…. 일단 옷 좀 입고 올게요. 선물은 너무 고마워요. 잘 쓸게요.”
정소림이 집으로 돌아갔다.
이현우도 나갈 준비를 했다.
토요일이지만 헬스장은 영업한다.
악마 같은 트레이너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이현우가 방을 나서는데, 스마트폰에 전화가 온다.
여우찡의 모닝콜이다.
“으음…. 오빠…. 일어났어…?”
잠에 잔뜩 취해있는 김하나의 목소리.
이현우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모닝콜이 일어나는 시간보다 매번 늦으면 모닝콜이 아닌 거 아냐?”
“아앙, 오빠가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인 걸 어떻게 해…. 그리고 난 밤까지 방송하는데.”
“됐고. 나 이제 운동 가니까 얼른 일어나서 준비해. 헬스장 어딘지는 알지?”
“웅…. 알겠어. 시간 맞춰서 갈게. 하암….”
김하나는 졸린지 연신 하품했다.
이거 전화 끝내고 다시 자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불안한 마음에 이현우가 한 마디를 더 내뱉는다.
“늦으면 구두 안 사줄 거니까, 시간 잘 지켜.”
“걱정 마. 걱정 마. 오빠 운동 끝나는 시간에 딱 맞춰서 갈 테니까. 좀 이따봐용. 사랑행. 쪽.”
교태와 애교가 척수 반사급으로 튀어나온다.
졸린데도 이런 모습이니, 여우라 부르는 거지.
“하나만 더. 좋아요. 마지막 하나.”
“끄으으으…!”
방금 전도 마지막 하나라면서!
이현우는 그리 외치고 싶었지만, 입을 열 힘조차 허벅지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았으니까.
이현우가 트레이너 하나는 잘 골랐다.
어찌나 이현우의 몸 상태를 잘 파악하는지, 매번 죽을 것 같지만 할 수는 있을 것 같은 운동량을 정해서 시킨다.
덕분에 이현우는 매일매일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
“할 수 있어요! 포기하지 마세요. 조금만 더! 힘 꽉 주고!”
“끄아아앗!”
“나이스!”
결국 이현우가 마지막 풀 스쿼트를 성공시켰다.
트레이너가 나이스를 외치며 이현우가 어깨 뒤에 견착한 바를 같이 들어준다.
“흐아아.”
이현우는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악마 같은 트레이너라도 세트가 끝난 뒤에는 잠깐의 휴식 시간을 보장해준다.
“마시세요.”
“후우….”
이현우는 그가 내미는 단백질 음료를 받았다.
그리고 꿀꺽꿀꺽 삼킨다.
요즘엔 이러한 제품도 맛있게 잘 나온다.
덕분에 이현우는 인상 찌푸릴 일 없이 프로틴 쉐이크를 단번에 삼킬 수 있었다.
“그런데 회원님.”
“네….”
“류인영 회원님하고 무슨 일 있으셨어요?”
“류인영이요? 그게 누군데요?”
이현우가 묻자, 트레이너가 한 거울을 가리켰다.
거울 속에는 운동은 하지 않고 체어 근처에 모여 수다를 떠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이현우가 아는 사람이었다.
얼굴도 몸매도 생기다 만 쿵쾅이년.
저번에 이현우가 제 치마 속을 훔쳐본다고 착각했던 년의 이름이 류인영인가 보다.
“아…. 좀 오해가 있었는데, 별 건 아니에요. 저쪽이 일방적으로 오해하고 있긴 하지만요.”
“역시…. 저 회원님 소문이 별로 좋진 않거든요. 하도 없는 말을 많이 지어내서. 회원님이 자기를 엿봤다느니, 몰카범이니 하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더라고요.”
“뭐라고요?”
“너무 걱정은 마세요. 류인영 회원님 질이 안 좋다는 걸 알아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으면, 고소하든 따지든 했겠죠. 자기도 켕기는 게 있으니까 저런 식으로 나오는 거고. 어쨌든 전 회원님이 그러지 않았다는 걸 알았으니 됐습니다. 자, 그럼 다시 운동할까요?”
“아니, 잠깐! 이야기를 이렇게 끝내면….”
“이야기는 운동하면서도 계속할 수 있어요. 자자 움직입시다.”
이현우는 류인영에 대한 걸 더 듣고 싶었지만, 단단하고 커다란 근육을 가진 트레이너를 이길 수는 없었다.
“끄으으….”
운동이 끝난 후, 이현우는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진짜 악마 같은 자식.
‘그나저나 류인영이라.’
상대할 가치도 없는 이상한 여자였다.
남을 헐뜯고 이상한 소문을 흘린다고 저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걸까?
이대로 무시해도 상관은 없었다.
여기 헬스장에 이현우가 지분이 있거나, 친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류인영이 퍼뜨리는 소문을 믿을 사람도 없었다.
소문이 퍼져도 이현우에게 큰 타격이 될만한 일도 없고.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
줘도 안 먹을 년이 왜 지랄하는 건지.
‘아울렛에서 일한다고 했었지?’
트레이너와 대화하며 류인영의 직장을 알 수 있었다.
정확하게 아울렛 어느 매장에서 일하는 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명품 매장에서 일한다는 것까진 파악했다.
꽤 타이밍이 좋지 않은가?
안 그래도 오늘 쇼핑을 가려고 했었는데.
“오빠! 여기! 여기!”
헬스장 건물에서 나오자, 김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손을 흔든다.
그녀의 미모와 몸매 그리고 빨간 외제 차에 시선이 모였다.
이현우는 그런 시선을 받으며 김하나의 차에 올라탔다.
“오빠, 운동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왜? 내가 운동하면 너도 좋지.”
“치, 내가 왜 좋아. 오빠만 좋은 거지. 근육질 되면 딴 년이 더 붙을 거 아니야. 그럼 내 보지가 더 외로워진다구.”
“하하핫. 그거 말 되네. 그럼 운동 좀 줄여야 하나?”
“진짜? 아, 오빠. 어느 백화점으로 갈까?”
김하나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잔뜩 애교를 부렸다.
빠꾸 없는 그녀의 애교와 교태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백화점 말고 남산 아울렛으로 가자.”
“에엑? 왜! 내가 사고 싶은 구두는 이번 년도 신상이란 말이야. 아울렛엔 없는데….”
“그건 따로 사줄 테니까. 아울렛으로 가. 해야 하는 일이 있어.”
이현우는 류인영이 하는 일을 상세히 말해주었다.
그러자 김하나가 불같이 화를 낸다.
“시발! 뭐 그딴 년이 다 있어? 안 되겠다. 오빠 걱정 마. 내가 해결해줄 테니까. 여자는 여자가 상대해야지. 그런 썅년들 엿 먹이는 거쯤이야. 나한테 맡겨!”
“어떻게 할 건데?”
“그거야 쉽지. 아울렛 직원이라며? 그럼 돈으로 때리면 돼. 내가 갑질을 많이 당해봐서, 어떻게 갑질 당하면 기분이 좆 같은지 아주 잘 알아. 근데 우리 오빠는 돈이 아주 많네? 그럼 끝난 거지.”
오 듬직해.
김하나가 이렇게 듬직해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이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간 외제 차는 남산 아울렛을 향해 달렸다.
지금쯤이면 류인영이 출근을 했을 것이다.
이현우가 하체를 열심히 조지고 있을 때, 헬스장에서 나가는 것을 봤으니까.
“그럼 이제 보물찾기를 시작해볼까?”
이현우와 김하나는 남산 아울렛을 1층부터 샅샅이 뒤졌다.
류인영을 찾는 목적도 있었지만, 오늘의 주요 목적은 이현우에게 어울리는 옷을 구매하는 거였다.
그렇게 계속 쇼핑하며 다니는데.
한 명품 매장에서 류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매장 안으로 들어온 이현우를 보고 입을 크게 벌렸다.
“하나야.”
“응, 오빠.”
“가서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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