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다음 날 아침.
호텔의 더블베드 위에는 이현우와 김하나가 얽혀있다.
어젯밤 체력이 다 할 때까지 섹스를 하다가 그대로 잠이 든 것이다.
그리고 오전 7시.
이현우의 스마트폰에 전화가 걸려 온다.
스마트폰 화면에 뜬 이름은 ‘마 부장님’.
아침 해가 떴는데 출근하지 않은 이현우를 쪼기 위해 전화한 것이다.
원래 출근 시간이 오전 9시지만,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면 이 시간에 전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 여보세요…?”
이불 속에서 더듬거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 이현우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들려오는 마 부장의 성난 목소리.
“야! 이 자식아! 시간이 몇 신 데 아직도 자는 거야! 빨리 튀어오지 못해!”
“죄, 죄송합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이현우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굽신거렸다.
이제까지 쌓여온 삶의 경험이 소시민의 태도를 앞세웠다.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밖으로 나오는데, 주변 풍경이 낯설다.
“아….”
이현우는 그제야 자신이 호텔에 있고, 어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로또보다 더 큰 행운을 맞이했다.
그러니 더 이상 회사에 다닐 필요도 없고, 마 부장에게 쩔쩔맬 필요도 없었다.
빠르게 옷을 입고 나가려던 이현우의 행동이 여유로워졌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이현우.
그가 침대를 본다.
침대 위엔 김하나가 아직도 잠에 빠져있다.
어젯밤, 이현우가 만족할 때까지 시달린 김하나였다.
지금까지 잠들어 있는 것이 당연할 수도.
‘그래도 간다는 인사는 해야겠지?’
비즈니스 관계지만 앞으로도 계속 만날 사이다.
그녀가 이현우를 호구라 지칭했어도 굳이 관계를 악화시킬 필요는 없다.
말실수에 대한 대가는 수수료와 몸으로 받았으니까.
이현우는 침대 위에 올라 그녀의 큰 가슴을 주물렀다.
다시 만져보아도 압도적인 부드러움을 가진 가슴이다.
“하나야. 일어나. 나 간다.”
“오빠…? 지금 몇 시인데…?”
“7시 20분. 일 있어서 먼저 나가니까, 넌 좀 자다가 내려와. 간다.”
“으응…. 알겠어…. 나중에 봐….”
김하나의 여우짓은 패시브인듯하다.
그녀는 비몽사몽인 와중에도 눈웃음을 치며 이현우의 볼에 뽀뽀한다.
그리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호구 소리를 듣기 전이라면 이런 행동에 마음이 싱숭생숭했을 거다.
지금은 조금 기쁜 마음이 들 뿐, 설레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호텔에서 나온 이현우는 가방을 챙기러 집에 가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 퇴사할 건데, 가방은 뭐 하러 챙기나.
이현우는 BJ 여우찡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입었던 캐쥬얼한 복장으로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회사 앞.
이현우가 심호흡한다.
지금부터 할 일에 부담감이 마음을 짓누른다.
하지만 해야 했다.
마 부장은 지랄맞은 성격상 분명 개지랄해댈 테고.
이현우는 고분고분 사과하며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불합리에 순응하는 것은 버텨야 할 이유가 있을 때나 하는 것이다.
무한 코인이 생기게 된 이현우에겐 더 이상 좆소기업에서 버텨야 할 이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야! 이 새끼가. 늦게 온 주제에 복장이 그게 뭐야!”
“부장님. 아니 마상범 씨. 새끼라 하지 마시죠. 듣는 새끼 기분 나쁘니까.”
“뭐, 뭐…?”
이현우가 말대꾸할 줄 몰랐던 마 부장은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현우는 말을 이어 나간다.
덜덜 떨리는 기분, 하지만 첫걸음을 내딛으니 어떻게든 되었다.
“마상범 씨. 나 오늘부로 퇴사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이제 남남이니까 욕하지도 말고 반말하지도 말고.”
“이, 이 미친놈이! 돌았어? 야! 누가 그렇게 마음대로 퇴사를 결정해!”
“그럼 퇴사도 내 마음대로 못 해? 그것도 결제받으라고? 왜? 반려하게? 시발! 내가 욕하지 말라고 했지? 내가 욕 못해서 네가 하는 욕을 그냥 듣고만 있는 줄 알아? 이 병신같은 회사에 제일 문제가 뭔지 알아? 바로 너야! 너! 이 개새끼야!”
이현우가 시원하게 욕을 내뱉었다.
그러자 안 그래도 두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던 회사 동료들이 놀란 얼굴로 쳐다본다.
“이 새끼가!”
마 부장이 열받은 얼굴로 이현우에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며칠 전 같았으면 신과 악마보다 더 무서웠을 인간이다.
그러나 하나도 무섭지 않다.
무한 코인 능력은 이현우에게 극도의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네가 좆같이 구니까 사람들이 기회만 생기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거 아니야. 월급 적게 주는 거? 이해해, 회사가 좆만 하니까. 근데 그 작은 회사에서 서로 으쌰으쌰해서 회사를 성장시켜도 모자랄 시점에. 네가 쓸데없는 걸로 군기 잡고, 트집 잡고, 받는 돈 이상의 노력을 원하니까 이직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튀는 거야.”
마 부장이 이현우의 멱살을 잡는다.
마 부장은 나이가 많지만, 덩치도 크다.
그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한 대 칠 것 같은 분위기.
이현우는 심장이 더 떨리는 것 같았지만, 기세를 죽이지 않았다.
그는 바뀌기로 결심했다.
아직 시작도 못 했는데, 고작 마 부장 같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는 없었다.
“왜? 치게? 쳐 봐. 합의는 절대 안 해줄 거니까. 그렇게 알고.”
“너…. 후우…. 시발.”
한숨을 쉰 마 부장이 멱살을 놓았다.
그도 결국 회사의 부품일 뿐인 사람이고, 책임질 것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사람을 칠 용기, 그로 인해 벌어질 모든 일들을 감당할 용기는 없었다.
그런 주제에 남들에게 자기 일을 떠넘기고, 쓸데없이 야근 조장과 시간 외 근무를 강요하는 시발놈이었다.
“로또라도 된 거냐?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니까 무서울 지경이네.”
“그건 알아서 생각하고. 퇴직금은 안 받을 테니까, 알아서 퇴사 처리해놔. 간다.”
“기다려. 퇴사할 땐 하더라도 인수인계는 하고 가야지. 그리고 반말은 하지 마라.”
“내 말을 안 들은 건가? 귀가 먹은 건가? 그럼 너부터 존대하세요. 이제 우리 남남인데, 너가 반말하니까 나도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인수인계 안 하는 조건으로 퇴직금 안 받겠다니까? 아니면 인수인계할 테니까 퇴직금 줄래?”
올해로 4년 차인 이현우의 퇴직금은 약 750만 원.
인수인계를 핑계로 한 달을 더 월급을 줘야하기에 줄 돈이 천만 원이 된다.
마 부장의 계산은 빨랐다.
“좋아. 대신 이번 달 월급도 없는 거야. 그 조건으로 퇴사를 승인하지.”
“흥, 그러든가.”
그는 죽어도 존댓말은 못 하겠다는 듯 반말을 내뱉으며 퇴사를 인정했다.
그 모습에 이현우가 코웃음을 쳤다.
“하아….”
회사 바깥으로 나온 이현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감정이 섞인 한숨이었다.
손끝이 아직도 달달 떨린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해냈다는 성취감과 매일 좆같이 굴던 마 부장에게 한 방 먹였다는 승리감이 가득 차올랐다.
지긋지긋한 좆소와는 이제 안녕이다.
그리고 얼마 후, 이현우의 까톡에 전 직장 동료들의 연락이 날아들었다.
어떻게 된 거냐? 로또라도 당첨된 거냐? 좋은 데로 이직하는 거냐? 등등.
많은 질문이 날아들었다.
이현우는 대충 좋은 일이 생겼다고만 대답해준 뒤, 스마트폰을 내려두었다.
그리고 앞을 본다.
1, 2층을 전부 사용하는 거대 헬스장.
이현우는 바뀐 삶을 살기 위해 몸매부터 교정하고자 했다.
그간 사는 것이 힘들다고 운동을 너무 등한시 했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갈수록 몸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제 김하나의 시선에서도 느꼈다.
이현우와 섹스를 하기 전까지, 그녀는 그에게 매력을 하나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돈만 많은 호구 취급.
그런 취급은 더 이상 사양이다.
키는 어쩔 수 없더라도 몸매는 노력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
그러니 노력한다.
“어서 오세요. 처음 방문 하신 건가요?”
대형 헬스장이라 그런 건지, 헬스장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안내 직원이 따로 있다.
안내 직원이 안으로 들어온 이현우를 반갑게 맞이해준다.
“네. 피티 좀 알아보려고 왔는데요.”
“아, 정말이세요? 우리 헬스장 트레이너 쌤들이 다들 유명하신 분이거든요. 잘 오셨어요. 일단 상담실로 가실까요?”
안내실에서 기다리고 있자, 들어온 것은 레깅스를 입고 있는 미인이었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이현우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한다.
그리고 약간의 무시가 담긴 시선으로 이현우를 쳐다본다.
지금까지 저런 시선에 무감각해져 있었던 이현우였다.
하지만 김하나와 만나고 나서 저 시선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의 급이 얼마나 되나, 옷차림과 분위기 등을 보고 짐작하고.
급이 낮다고 판단 되면 무시한다.
그 여자가 말을 하기 전에 이현우가 먼저 말을 내뱉었다.
“혹시 그쪽이 제 트레이너 선생님이신 건가요?”
“네? 아뇨.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일단 회원님의 습관과 운동 성향 같은 걸 상담한 후에 가장 잘 맞는 선생님을 배정해 드릴 거예요.”
쉽게 말해 돈이 되는 사람인지를 보겠다는 건가?
이현우는 피식 웃었다.
생각 하나 바꿨을 뿐인데, 이전에 보고 들었던 것 이외의 것들이 파악된다.
아니, 예전에는 알면서도 애써 무시했던 것일지도.
알아도 기분만 나쁠 뿐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참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다행이네요. 전 상전을 제 트레이너로 두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요.”
"네…?”
여자가 조금 불쾌하다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이현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잘 관리 된 몸매가 먹음직스럽긴 하지만 그 뿐이다.
외모를 따진다면 빵잇보다 못하고, 가슴을 따지자면 김하나보다 못하다.
장점은 오로지 레깅스를 입고 있는 몸의 곡선뿐.
그런 여자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다.
“일단 제 조건을 말해주겠습니다. 무조건 열심히 하고 제 스케줄에 맞추는 건 기본입니다. 피티는 일주일 모두 끊을 거예요. 기한은 제가 살이 다 빠질 때…. 아니, 제가 만족할 때까지. 우선 3개월 치를 끊죠.”
이현우의 돈질에 기분 나쁘다는 얼굴이던 여자의 표정이 바뀐다.
그녀가 갑자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한다.
“회원님. 주 7일 피티를 3개월간 하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예. 그리고 만약 제가 만족한다면 성공 보수도 줄 생각입니다. 3개월 피티가 얼마죠?”
“저희 센터는 회당 7만 원이고, 6개월 이상 장기 피티를 끊으시면 회당 6만 원입니다.”
“그럼 3개월에 630만 원 정도네요? 성공 보수는 그 절반인 300만 원으로 잡을게요.”
여자의 눈빛이 변한다.
눈동자 안에 돈 욕심이 가득하다.
“그럼 이제 피티 트레이너에 대해 들어보죠. 제가 피티는 처음이라 그런데, 보통 피티 트레이너 목록과 경력 같은 걸 보여주면서 이야기한다던데요?”
“네에, 그건 맞는데. 회원님. 저한테 받으실 의향은 없으신가요? 제가 운동부터 식단 관리까지 디테일하게 관리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스케줄도 회원님만을 위해 유동적으로 조절하구요.”
“글쎄요. 제가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첫 순간, 이현우를 무시했던 여자는 자신을 열렬히 어필해야 했다.
하지만 이현우는 그녀를 트레이너로 고르지 않았다.
밤새도록 섹스해서 여자에 굶주리지 않은 덕도 있었고.
여자는 BJ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김하나의 경우를 보았을 때, 이제부터 그에게 꼬이게 될 여자는 수도 없이 많아질 테니까.
이현우는 이 헬스장에서 제일 경력이 많은 트레이너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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