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이현우는 마우스 휠을 굴리며 생각했다.
어떤 BJ에게 접근해야 할까?
라디 방송에 다시 들어갈까?
아니, 잘나가는 BJ는 안 된다.
그들 또한 돈 욕심이 없진 않겠지.
매일 혹은 매달 돈이 생기면 협상에 나서긴 할 거다.
하지만 하꼬 BJ들보다는 간절하지 않으니, 협상이 어려워질 것은 당연했다.
묻고 하꼬로 가.
이현우는 과감하게 스크롤을 내렸다.
조금만 내려도 시청자 수가 세 자리에서 두 자리가 된다.
[신입 여캠) 귀인님 모셔요 건빵환영♥ DSLR 고민상담 식데뽑기1+1]
빵잇♥ª · 시청자 수 27명
[신입 여캠) 오늘은 귀인은 뉴규?!]
쏭다은♥ · 시청자 수 16명
[신입 여캠 연장맛집 채팅귀인없나용?! 청주 카리나]
♡포유♡ · 시청자 수 14명
화면에 뜨는 많은 방송들 중, 이현우의 눈길을 사로잡는 단어가 있었다.
귀인.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을 일컫는 말.
하지만 꼬레아TV에선 좀 다르게 쓰인다.
여캠에게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코인을 많이 쏴줄 열혈 팬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리고 여캠들이 귀인을 찾는다는 말은, 내 방송에 열혈이 없으니 코인을 크게 쏴줄 큰손을 구한다는 뜻이었다.
큰손을 원하는 여캠과 캐시백을 원하는 이현우.
딱 좋은 상생 관계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이현우는 귀인 단어를 제목에 써둔 여캠들 중 가장 예쁜 사람을 골랐다.
[신입 여캠) 귀인님 모셔요 건빵환영♥ DSLR 고민상담 식데뽑기1+1]
빵잇♥ª · 시청자 수 27명
빵잇은 귀여운 스타일의 여캠이었다.
굳이 얼굴을 비유하자면 강아지상.
캠 보정이 들어가 있는 것을 감안해도 무척이나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지고 있다.
-백수되고싶다님 오도오떼욥♥
방송에 입장하자 매크로 채팅이 채팅창에 적힌다.
메이저 BJ 방에선 절대 켜지 않는 입장 매크로.
하꼬 방의 특징이었다.
“백수되고싶다 님. 어서 와요.”
늘어난 시청자가 반가운 것인지 빵잇이 밝게 웃으며 캠을 향해 손을 흔든다.
‘이거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지.’
입장하자마자 통 큰 팬 가입.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기에 상상으로만 끝났던 일이다.
일단 가볍게 만 개.
[백수되고싶다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백수되고싶다 님이 891번째로 팬클럽이 되셨습니다.
-백수되고싶다 님께서 열혈 팬이 되셨습니다.
“에? 아…? 꺄아아아아아!”
예고도 없이 날린 100만 원 펀치에 빵잇이 기쁨의 비명을 지른다.
놀란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그럴 수밖에.
여캠들은 선물 받은 코인을 송출 화면에 띄워놓는다.
코인 선물한 사람의 닉네임이 표시되는 랭킹 창, 닉네임과 선물한 개수가 들어간 코인 스티커, 오늘 방송에서 받았던 코인의 총량을 표시하는 진행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받은 코인을 자랑한다.
그 이유는 선물한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함도 있고, 다른 큰손의 경쟁심리를 유발하기 위함도 있었다.
어쨌든 한눈에 들어오는 화면에 빵잇이가 받은 코인을 알 수 있었다.
이현우가 입장하기 전까지.
오늘 받은 총 코인 수 4,503개.
오늘의 후원 순위 1등 1,852개.
오늘의 가장 큰 후원은 그녀의 시그니쳐 코인 후원 천사빵잇(1,402)개
나머지는 100~300개의 자잘한 후원들이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앞자리가 바뀌는 큰 후원이 들어 온 것이다.
이틀 치 수입이 한 번에 들어왔으니, 빵잇이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잔잔하던 채팅창도 불타올랐다.
-와 미친
-큰손 형님 오셨다
-빵잇이 드디어 큰손 붙었네
-ㅋㅋㅋㅋㅋㅋㅋ
-만개 팬갑? ㄹㅈㄷ
27명의 시청자가 이현우에 관해서만 채팅을 쳤다.
짜릿하다.
이래서 큰손들이 꼬레아TV에 돈을 쓰는 거구나.
“배, 백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빵잇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신 허리를 숙였다.
이현우는 큰 만족감을 느꼈다.
절대적인 갑이 된 느낌.
건빵일 때엔 느껴보지 못했던 BJ의 모습.
너무 좋고 짜릿하다.
“혹시 채팅 한 번 쳐주실 수 있을까요? 매니저 드리고 싶은데. 아니, 불편하시면 안 드리고요. 아, 그리고 원하시는 리액션 같은 거 있으신가요? 제 방송 처음이시죠? 저 노래 잘하고, 춤은 좀 못 춰요. 그래도 원하시는 거 있으시면 다 해드리겠습니다.”
빵잇의 관심이 오로지 이현우에게 집중되었다.
다른 채팅이 연신 올라오지만, 빵잇은 그들의 채팅을 읽지도 않았다.
오로지 이현우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제 슬슬 채팅을 쳐볼까.
-안녕하세요. 매니저 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리액션은 잘하시는 걸로 해주세요.
코인 후원을 한 뒤에 처음 치는 채팅이었기에 전자녀가 채팅을 읽어주었다.
“아! 네! 매니저 드릴게요. 잠시만요.”
화면 속 빵잇이 마우스를 몇 번 움직이자, 이현우의 채팅창이 약간 변했다.
매니저 채팅란이 새로 생겨났다.
매니저 채팅은 모두가 볼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는 채팅과 달리, BJ와 매니저만 사용할 수 있는 채팅창이었다.
“그럼 일단 리액션부터 할게요. 노래 불러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노래 있으신가요?”
[백수되고싶다 님께서 코인 1,402개를 선물!]
-제일 잘 부르시는 걸로 불러주세요.
“아, 또 후원을. 감사합니다! 그럼 세아의 너만 바라봄, 불러드릴게요.”
빵잇의 노래가 시작된다.
그녀는 스스로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할 만큼, 시원시원한 가창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현우는 기분 좋게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그만을 위한 세레나데는 인생 첫 경험이다.
[백수되고싶다 님께서 코인 999개를 선물!]
-잘 들었습니다. 잘 부르시네요.
“아하하, 또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채팅을 한 번 칠 때마다, 코인 후원을 하니 빵잇의 입가가 귀까지 올라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녀는 이현우에게 계속해서 말을 붙였다.
“더 듣고 싶은 노래는 없으세요? 아, 방셀이나 역팬 해드릴까요?”
방셀은 방송국 셀카의 줄임말로 BJ가 열혈 팬의 방송국에 셀카 게시글을 올리는 걸 말했다.
그리고 역팬은 BJ가 열혈 팬에게 팬가입을 하는 걸 말한다.
방셀이나 역팬도 받아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다.
[백수되고싶다 님께서 코인 2,000개를 선물!]
-좋네요. 이건 역팬값. 근데 뽑기는 100개씩 쏴야하는 거죠?
“2천 개 감사합니다. 역팬은 제 돈으로 해드려야하는 건데. 네, 뽑기는 100개씩 하셔야 하는데. 뭐 뽑고 싶으셔서 그러세요?”
빵잇은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이현우가 채팅을 칠 때마다 코인 후원을 하니, 스티커를 복사해서 화면에 띄우랴, 이현우와 소통을 하랴 정신이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입가에 지어진 미소는 떨어질 줄 몰랐다.
[백수되고싶다 님께서 코인 100개를 선물!]
-전데 뽑고 싶네요.
전데는 전화 데이트의 줄임말이었다.
꼬레아TV에서 볼 수 있는 매니저 채팅에 사업적 이야기를 할 순 없다.
그러니 BJ의 개인적인 연락처를 알아내야 한다.
정확하게 100개를 쏘자, 화면에 뽑기 룰렛이 나타난다.
빙그르르 돌아가던 룰렛은 꽝에서 멈췄다.
이전이었다면 100개나 쏘고 꽝에 걸렸다며 아쉬워했을 거다.
하지만 무한에 가까운 코인을 얻게 된 지금은 아쉬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 백수 님은 뽑기 안 하셔도 괜찮아요. 열혈 들면 소원권 있거든요. 소원권을 전데로 쓰시는 게 어떠세요? 아니, 소원권을 전데로 쓰기엔 좀 그런가….”
-ㅋㅋㅋㅋㅋ
-이걸 날먹하려하네
-나도 전데하고 싶다
-열혈 소원권으로 전데는 오바지
-큰손 형님은 전데 그냥 해드리고, 소원권은 다른데 쓰시라 하는 게 좋을 듯?
“아, 회장님 말이 맞는 거 같아. 그럼 민심에 따라 백수 님은 그냥 전데권 드리고 소원권은 남겨두는 걸로 할까요?”
-ㅇㅇ
-그게 좋을 듯
-회장자리 이제 얼마 안남았을 듯 ㅠㅠ 백수 형님이 조금만 진심내면 나 바로 부회장행 ㅋㅋㅋ
빵잇과 채팅창이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더니, 이현우에게 전데권이 주어졌다.
전데권을 얻게 된 이현우는 그 뒤로도 코인 후원으로 재력을 과시하며 방송을 즐겼다.
BJ의 열렬한 관심과 건빵들의 부러움 섞인 채팅은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었다.
그리고 방송이 종료된 뒤, 곧바로 스마트폰에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지만 누가 걸었는 지는 알 수 있었다.
빵잇이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백수 님.”
빵잇은 긴장을 하고 있었다.
표정과 목소리에서 티가 난다.
그런데도 그녀는 열심히 대화를 시도했다.
“생각보다 엄청 젊으시네요. 깜짝 놀랐어요.”
“그래요? 오늘 방송 잘 봤어요.”
“감사해요. 백수 님 덕분에 평소보다 텐션이 더 나와서, 재밌는 방송할 수 있었어요.”
영통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이현우는 얼마간 스몰 토크를 하며 긴장감을 풀고 거리감을 좁혔다.
그리고 적당한 때가 되었다 싶었을 때쯤 캐시백 이야기를 꺼냈다.
“수현아.”
빵잇의 본명은 최수현이었다.
이현우보다 몇 살 정도 어렸고, 둘은 편하게 말을 놓기로 했다.
“어, 듣고 있어. 말해요.”
최수현은 처음보다 긴장이 많이 풀어졌다.
큰손들 중에는 처음부터 이상한 요구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현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좀 더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코인 더 받고 싶지 않아?”
“네? 물론 그렇지요?”
“얼마나 더 받고 싶어?”
“아하하핫, 원하는 만큼 줄 거예요?”
“응. 하지만 대가가 있어.”
잠시 최수현은 말을 하지 않았다.
역시 똑같은 사람인 걸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걸 다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전부 다 해주면 빨리 질리는 게 남자라는 생물이었다.
“대가라면…. 어떤 거요?”
“15퍼센트. 내가 후원하는 금액의 15퍼센트를 다시 나한테 돌려줘야 해. 예를 들어 10만 개를 원한다면, 나한테 150만 원을 줘야 한다는 거지. 어때?”
최수현이 다시 말을 잇지 못한다.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제안이라 그렇다.
“생각해 봐. 10만 개 받으면 세금 다 떼고 320만 원에서 500만 원쯤 남지? 사업자 등록하고 세무사 통해서 절세하면 그거보다 훨씬 더 많이 남게 될 수도 있지. 거기서 150만 원만 주면 되는 거야. 남는 170은 네 거고. 20만 개, 30만 개 씩 받으면 최소 월 500은 얻는 거야.”
“이거 불법 아니에요?”
“불법은 무슨. 자금 세탁 같은 거 걱정하는 거야? 수현아, 그런 목적이었으면 환전율이 더 큰 방법을 이용하지 않겠어? 내가 불법적인 일하는 사람이면 겨우 15퍼센트만 건질 수 있는 방법을 이용할까?”
“아…. 네. 근데 후원을 받고 돈으로 돌려줘도 아무 문제 없는 거예요?”
“그럼. 캐시백이라 생각하면 편해. 마트 같은 데서 물건 사고 캐시백으로 돈 받잖아. 그거랑 같은 거야. 전혀 문제없어.”
최수현은 고민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현우가 어째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엄청나게 코인을 쏠 정도의 재력이 있으면서 캐시백은 왜 원하는지.
하지만 묻지 못했다.
괜한 것을 물었다가 찾아온 기회를 날려버리고 싶진 않았다.
욕심이 든다.
BJ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유명 BJ들만 그런 것이고, 최수현 같은 하꼬 BJ들은 월 500만 원을 벌기도 힘들다.
평범한 직장인보다는 훨씬 많이 버는 것은 맞다.
하지만 최수현은 지금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싶었다.
“좋아요. 할게요.”
최수현은 이현우의 제안을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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