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153화 (153/157)

〈 153화 〉 3 ­ 3 / 왕국의 그림자에 숨은 그 용에게 (7)

* * *

(7)

단서가 나오길 바라고 있었을까, 나오지 않기를 바랐을까.

자신조차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의문은 천천히 수면 아래로 사라져갔다.

루시탄은 초조한 듯이, 율령교회에서 작성한 매장기록을 눈으로 훑어 내려가고 있었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분명 관련 기록이 남아있을 거야.’

진실을 거짓으로 덮는다면, 아무리 치밀하게 조작한다고 하더라도 어딘가에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루시탄은 점점 윤곽이 드러나는 진실을 따라가는 데에 온몸의 피가 바짝바짝 말라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진실 안에는 또 다른 진실이 있고, 그것을 다른 거짓이 또한 덮고 있었어.’

먼저 바츠 가문의 족보를 살폈었다.

결론적으로 ‘칼 프레드릭 바츠’는 실존했다. 아니, 정정하자면…

칼 프레드릭 바츠라고 판단되는 인물은 족보에 분명히 존재했다.

선왕 치세에, 스무 살의 나이에 궁정 서기관으로 임관한 인물이었다.

‘궁정 서기관… 이라.’

스물이라는 한창나이에 궁정 서기관으로 임관한 인물이

나이가 들어서 무인으로 갑작스레 진로를 바꿀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알트슈타인 최강의 검이라고 칭송받는 ‘매의 기사’가 될 정도로?

어지간한 천재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것이다.

‘거기다가 프레드릭 알트슈타인 팔케가 바츠 가문의 영지에 요양차 들른 시점과

칼 프레드릭 바츠가 무인으로 전향한 시점이 거의 일치한단 말이지.’

가설이다.

프레드릭 알트슈타인 팔케는 왕위 쟁탈 과정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페랄 주에 존재하는 바츠 가문의 영지에 요양차 들어왔다.

이는 그론 선제후와 울자크 왕자의 구상대로 일어난 일이다.

프레드릭 알트슈타인 팔케의 용도는 거기에서 끝이 났다.

울자크 왕자, 즉 아버지는 귀족들의 지지를 받는 프레드릭의 존재가 그 자체만으로도 몹시도 거북해졌다.

따라서 어떤 방법을 써서… 로젤라이의 치유를 받는 동시에

선왕의 삼남 ‘프레드릭 알트슈타인 팔케’의 기억에 손을 대 ‘칼 프레드릭 바츠’라는 인물로 바꿔치기했다.

그렇다면… 급사했다고 알려진 프레드릭 알트슈타인 팔케의 매장기록에 뭔가 단서가 남아있을 것이다.

매장기록은 온전히 율령교회에서 주관하며, 왕가는 이에 직접 개입할 수 없으니까.

급하게 그 시기의 매장기록을 살피던 루시탄의 눈이 찌푸려졌다.

추측이 사실이 되었다는 것은 몹시도… 쓴맛이 났다.

[칼 프레드릭 바츠. 귀향 중 도적에 의해 살해되었다.

장례 후 시신을 인도하는 이가 없어, 안칼론의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덮은 눈동자가 부르르 떨렸다.

결국 왕가의 더러운 비밀을 영원히 감추기 위해, 애먼 사람이 노상에서 도적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왕가에 속했던 사람…

자신과도 가족일 사람은 그 사람의 이름을 써서 지금까지… 새장에 갇힌 매로 이용당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탐이 나는 건가? 왕좌라는 거… 대체 뭘 위해서? 누굴 위해서?’

환멸, 회한, 토악질이 쏟아질 것 같은 모멸이 느껴졌다.

왕좌에 대한 아버지의 갈망은… 이미 탐욕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었다.

그리고 왕좌를 차지한 후 아버지는 행복했던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단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늘 무엇인가에 쫓기듯 전전긍긍하고, 위엄을 세우기 위해 고심하고,

반역이라는 말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노인으로 늙어버렸을 뿐이다.

열쇠는 여전히 그가 쥐고 있다.

‘칼 프레드릭 바츠’의 기억을 조작한 자.

아버지에게 협조하여 그를 왕으로 밀어 올리는데 협력한 자.

자신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행동한 발스턴의 배후에서 은밀하게 암약한 자.

‘하지만 왜 굳이 나를?’

의문은 남는다. 그에게는 자신을 굳이 다음 왕으로 앉힐 이유가 없다.

그에게는 미하도르가 앉든, 루시탄이 앉든 아무 상관이 없을 터이다.

누가 왕좌에 앉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다면 새 왕에게 접근하는 것도,

그 기억에 손을 대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

하지만 그는 미하도르를 왕좌에서 떨어뜨리는 데에도 공작을 펼쳤다.

그 동기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대체 왜?

그리고 그론 선제후가 남긴 개인적인 기록 그 어디에도, 그 실마리만은 나오지 않았다.

‘또다시 추측의 영역이란 말이지. 하….’

막연하게나마 추측을 이어갔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으려고 해도,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 있었다.

누군가가 잘라낸 것 같은 기억에는 분명…

‘로젤라이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의 기억이 없어.’

로젤라이를 알게 되었을 시기의 기억이 없다.

너무 어렸을 때라 그랬거니, 하기에는 지금은 모든 것을 의심하기로 했다.

형과 로젤라이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만약 이 기억이 조작된 것이라면, 여기에서부터 추측을 이어갈 수 있다. 다소 억지스럽긴 하지만.

‘형에게 로젤라이를 붙인 것부터 만약 의도된 것이라면?’

그자의 의도대로 로젤라이와 형은 성장하면서 점점 가까워졌다.

아니, 점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빠르게 가까워져,

그자는 로젤라이가 형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매사냥 전쟁에 대한 더러운 면이었든 칼 프레드릭 바츠에 대한 진실이었든, 로젤라이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한창 어렸던 형과 자신에게 로젤라이의 말실수 하나도 꽤 치명적이었을 테지.

로젤라이도 형도 어렸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점점 형이 성장할수록 로젤라이의 입을 제어하기 힘들어졌을 것이다.

그럼 그 진실은 무엇일까.

루시탄은 일단 추측을 거기에서 접었다. 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 이상은 억측이라고 이름붙여야 할 테니까.

‘어차피 내 뜻은 정해졌어. 내게 필요한 진실은 딱 여기까지야.’

생애 최악의 반항을 하기로 결심했다. 아들로서는 반항이고, 신하로서는 반역이다.

아버지가 형에게, 제 친자식이 아닌 이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게

아버지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이라면 그렇게 해주겠노라 생각했다.

‘내 원망은 마시라고, 아버지. 충분히 자업자득이니까.

아니, 자업자득이라기에는 너무 값싼 대가지. 안 그래?’

여기에서 모은 진실이라면 충분히… 제 구상을 엮어낼 수 있다.

증거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갈무리한 뒤 루시탄은 눈을 감고 숨을 몇 번 들이쉬었다.

이제 이 방에서 모든 볼일을 다 보았다.

여기 더 있을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너무 기록을 읽는 데 빠져있었던 탓일까, 문 너머에서 코에 훅 끼쳐오는 냄새에 손이 멈췄다.

“…설마!”

긴장에 바들거리는 손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융단을 더욱 붉게 물들이는 질척이는 물기가 구두 끝을 더럽혔다.

내려다보았다. 쓰러진 병사 둘은… 제대로 된 방항조차 못하고 일순간 목을 베여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 앞의 병사만이 아니었다.

거리를 두고 복도를 지키는 병사들도 단숨에 목을 베여 죽은 것처럼 곳곳에 시체가 즐비했다.

융단은 피를 흠뻑 머금은 채 이상한 감촉으로 밟혔다.

“입막음인가…!”

그자가 이 모든 사실을 눈치챘다.

그론 선제후가 내게 접촉하여 그 당시의 기록을 읽게 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왜 정작 자신에게는 위해를 가하려 하지 않았지?

방문 앞의 병사를 베어 죽였으면서 정작 방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무장한 병사들을 단숨에 베어죽을 정도의 솜씨를 가졌다.

만약 이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 자가 향할 곳은 어디일까.

‘그론 선제후가 위험해!’

뻔하다.

그론 선제후의 입을 막으러 갔을 것이다.

루시탄은 쓰러진 병사의 검을 쥐고는 초조한 마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론 선제후가 살해당한다면… 페랄 주는 말 그대로 혼란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매사냥 전쟁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더 이상 그자의 손에 이 나라가 놀아나게 둘 수는 없다고!

초조하게, 선제후의 집무실로 통하는 윗층으로 통하는 모퉁이를 돌았다.

이제 중앙 계단으로 통하는 복도인데…

“…!”

“너?!”

이어졌다. 반대편 복도에서 달려오는 얼굴을 알아본 순간

꽉 죄여들었던 루시탄의 심장에 피가 새롭게 도는 것이 느껴졌다.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더 살아가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이유가 거기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목소리가 겹쳤다.

“무사했어…!”

서로가 서로의 무사함에 안도한 것도 잠시,

머릿속을 묵직하게 짓누르던 온갖 의혹과 억측에서 벗어나 아주 잠시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웃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중앙 계단을 통해 뛰면서,

루시탄은 따라붙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일단 서두르자. 그론 선제후가 위험해.”

“그 뚱뚱한 사람? 아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데, 여기에?”

“설명할 시간이 없어. 미안해.”

로제이아는 오만상을 찌푸리곤 투덜거렸다.

왼눈을 가린 안대는 다소 헐거워, 한번 풀었다가 다시 매듭을 지은 것으로 보였다.

그녀 쪽에서도 무슨 일이 있긴 있었을 거라고 막연하게 추측하면서도 쉴 수 없었다.

"서두르자."

지금은 그저 달릴 때. 재회의 기쁨은 나중에 풀어도 된다.

이 왕국을 둘러싼, 음모의 종착점을 향해 단숨에 뛰어들어야만 때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