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148화 (148/157)

〈 148화 〉 3 ­ 3 / 왕국의 그림자에 숨은 그 용에게 (2)

* * *

(2)

울자크 4세 알트슈타인 팔케.

현 알트슈타인의 국왕으로서 20년간 왕위를 지키고 있는 그는 루시탄의 할아버지가 되는 선왕의 7남이었다.

4명의 친형과 2명의 이복형. 그리고 3명의 누이.

그 3명의 누이는 각각 유력한 귀족 집안과 통혼하여 왕위 쟁탈전에도 발을 들였으니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으리라.

호사가들이 ‘매사냥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이 왕위 계승 과정에서 적지 않은 피가 흘렀음에도, 왕국 공식 기록에서 이 과정은 지나치게 축약되고, 윤색되고, 아버지에게 유리하게 기술되었다.

‘하지만….’

그론 선제후가 남긴 기록은 막연하게 짐작하는 내용에 살을 붙여주었다.

단순히 전투에서 패배하여 왕위 쟁탈전에서 탈락했다고 알려진 아버지의 형제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었으니.

「왕의 장남, 왕세자 겐드릭 알트슈타인 팔케.

팔탄 전투 직전 군영을 둘러보던 중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체는 숙영지 인근 야산에서 늑대 무리에게 뜯어먹히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

지휘관을 잃은 군세는 팔탄 평원 전투에서 처참히 패배하고 소멸하여,

삼남 프레드릭 알트슈타인 팔케가 잔존 세력을 접수하였다.

왕의 차남 라파한 알트슈타인 팔케.

왕의 사남 비힐라스 알트슈타인 팔케와의 동맹을 논하는 자리에서 측근에 의해 독살당했다.

살해자는 암살 직후 국외로 도주하였으나, 이후 왕의 7남 울자크 알트슈타인 팔케에 의해 신병이 접수되어, 간단한 심문 후 즉결 처형되었다.

왕의 삼남 프레드릭 알트슈타인 팔케.

팔탄 전투에서 겐드릭의 세력을 소멸시키고, 가장 먼저 왕도를 접수하였다.

겐드릭의 세력을 흡수하였고, 겐드릭을 따르던 귀족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이후 갑작스럽게 영지로 물러났고, 왕위 쟁탈전을 포기를 선언하였다.

본인은 얼마 후 지병으로 급사했다.

왕의 사남 비힐라스 알트슈타인 팔케.

차남 라파한과의 우애가 남달랐으며, 개전 초기부터 두 진영 사이에 동맹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측근의 배반으로 라파한이 독살당한 후, 비힐라스는 단독 세력으로서 안드라콘 영지를 비우고 왕도에서 농성하는 길을 택했다.

칠남 울자크 알트슈타인 팔케가 영지를 급습하였고, 삼남 프레드릭이 왕도를 공략하였다. 이후 성에서 도주하다가 유시(??)에 맞아 절명하였다.

왕의 오남 놀프리트 알트슈타인 팔케.

자기 세력이 없었던 놀프리트는 개전 후 중립을 선언하며 영지에 머무르고 있었다.

울자크의 군세가 비힐라스의 영지를 공격하기 위해 영지 인근에 주둔하자, 이에 항의하던 중 울자크의 군세에 의해 영지가 접수되고 본인은 외국으로 도망하였다.

이후 행적은 알 수 없으나, 배후를 알 수 없는 암살자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목격담이 있다.

왕의 육남 갈레우스 알트슈타인 팔케.

칠남 울자크 알트슈타인 팔케와의 연합 전선을 모색하였고, 삼남 프레드릭, 육남 갈레우스, 칠남 울자크의 연합 전선은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세력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벌어진 사냥 시합에서 갈레우스는 사슴뿔에 복부가 찔리는 중상을 입었다.

치유사에 의해 치유되었으나, 목숨만을 겨우 건졌을 뿐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 이에 낙향하여 실의 끝에 자결하였다.」

이 기록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아버지가 왕이 되기 위해 친형제 넷과 이복형제 둘의 피를 모조리 값으로 치렀다는 말.

그렇다고 쉽게 믿을 수 없다고 단언하기에는 또 아버지의 성정을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그럴듯하기도 했다. 자기 아버지라고 두둔하기에도 울자크는 뱀처럼 차가운 인간이었으니.

마치 무력한 개구리를 집어삼키는 뱀과 같이,

아버지는 왕관을 거침없이 집어삼켰지만…

그 과정은 지나치게 아버지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행운과 우연이 겹치면 더 이상 우연일 수가 없는데.’

매사냥 전쟁의 모든 정황이 아버지에게 유리하게 흘러갔으며, 결국 그 사냥의 결과물은 모두 아버지의 차지가 되었다. 모든 경쟁자는 죽고, 한 명도 살아남지 않아 지금까지 반란은커녕 모반의 조짐조차 없는 것이 울자크 왕의 치세 20년이었다.

‘그렇게 쌓아 올린 20년, 그걸 형이 아니라 내게 주려고 한 이유가 대체 뭐냐고. 대체. 내게 그 더러운 짓의 뒷처리라도 시킬 생각이었어? 빌어먹을 아버지.’

체스로 치면, 상대가 수를 둘 곳을 전부 미리 알고서 두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니까.

아버지의 형제들, 그 모든 경쟁자가 한 명도 남김없이 예상치 못한 변고를 당해 왕위 쟁탈전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결코 우연일 수가 없다고, 루시탄은 그렇게 생각했다.

기록을 한 장씩 넘기는 손끝이 가늘게 바들거렸다.

냉정을 유지하려고 해도, 원초적인 혐오감과 일말의 배신감이 꿈틀거린다.

‘대체 어디까지 진실인지.’

심지어 아버지와 같은 깃발에 선 삼남… 프레드릭마저도 ‘지병이 악화되어 영지에 낙향 후 급사’라니. 최악의 경우에는 같은 편에 선 친형까지 모살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담담한 척하고 있지만, 또 그 담담한 태도를 견지하며 로제이아를 맞이했었지만,

사실 지금 루시탄의 속은 제 속이 아니었다. 왕실의 치부를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으니.

‘아니, 일단 감정은 잠깐 내려놓고. 냉정해져야지.’

자신에게 타이르고는, 일단 이 기록을 냉정한 시각에서 들여다보기로 했다.

최초의 의문은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 모든 정황이 아버지가 왕이 되도록 유리하게 짜여졌다는 사실만큼은, 주관을 최대한 배제해도 움직이지 않는 사실이었다.

장남은 전투 직전 실종. 차남은 측근에 의해 독살.

삼남은 쓸모가 다한 후 토사구팽당했고, 사남은 어리석은 결정 후 세력이 각개격파.

오남은 무기력하게 나라에서 쫓겨났고, 육남은 사냥 중 ‘우연한 사고’로 사망했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이 오로지 단 한 명의 인간에게 유리하도록 작용했다고?

마치 이 모든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물론 아버지에겐 가능했지.’

지난번 엿본 발스턴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의 이야기를 똑똑히 기억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떻게 자신을 도운 이를 버렸는지도 똑똑히 보았다.

‘캐슬린.’

미래를 읽는 마녀, 캐슬린을 보았다.

그녀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았고, 아버지의 칼에 죽은 그 여자의 말로를 보았다.

그 여자의 고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지금의 캐슬린도 스치듯이 보았었다.

네 명의 친형, 두 명의 이복형.

거기에 더하여 캐슬린, 로젤라이처럼 소리 없이 핏값 치른 사람들의 수는 셀 수도 없겠지.

자신이 그렇게나 왕위를 본능적으로 피하려 했던 이유 또한, 어쩌면… 아버지의 그런 면을 어렴풋이 알아채서가 아니었을까.

‘뭔가… 뭔가 떠오르려고 하는데… 젠장, 뭘 잊은 거지…?’

그러고 보면 분명 계기가 있었다.

왕자로 태어났으면서도 왕관을 쓰는 것을 거부하게 된 계기가 분명히 있었다.

로제이아에게는 호기롭게 ‘돈 버는 게 좋아서’라고 답했었고 그 이유도 분명히 이유 중 하나는 맞지만… 애초에 왕자인 자신이, 뭐 하나 부족하지 않게 성장했던 자신이 왜 돈벌이에 집착하게 되었던 건가.

이마를 짚은 채 생각해봐도 그 계기가 떠오르질 않는다.

마치 기억의 그 한 부분만을 누군가가 잘라낸 것처럼.

‘젠장….’

결국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 잠시 포기하고.

기억보다도 더 확실한 기록을 찾아보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혹시 기록을 들여다보면 자연히 기억도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후….”

오랫동안 기록을 들여다보던 터라 허리가 삐걱거렸다.

바츠 경에게 검술 훈련을 받은 덕에 근골이 튼실해졌는데 대체 얼마나 이 서재 안에 있었으면 온몸이 뻐근해지기라도 한 것인지.

‘잠깐…. 바츠 경이라고?’

엉뚱한 가능성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기록에 의하면, 왕좌에 대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도 돌연 사퇴를 택한 후보가 있었다.

왕세자의 세력을 흡수하고, 왕세자에 대한 지지를 자신에게로 돌리는 데 성공하고도…

갑작스레 영지로 돌아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후보. 프레드릭 알트슈타인 팔케.

‘생각해, 생각해내, 루시탄. 그때 뭘 봤었지…? 잊으면 안 된다고, 그걸….’

필사적으로 기억을 짜냈다.

그때 아버지, 울자크 왕자는… 프레드릭이라는 인물을 형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왕궁에서 읽었던 기록에는 프레드릭이라는 인물은 통째로 빠져있었다. 다른 왕자들은 전부 빠짐없이 기록에 존재했고 그들에 대항한 아버지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기술이 있었는데… 프레드릭 알브레히트 팔케의 존재는 말 그대로 말소되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프레드릭이라는 인물은 라파한 왕자가 암살당한 후 비슷한 시기에 전장에서 크게 다치었다고 했었다. 이후 기록의 뉘앙스로는 이 부상을 계기로 영지로 낙향하게 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치면 이 모순은 뭐지?’

하지만 이 기록에는 라파한 왕자의 암살 후, 사남 비힐라스 왕자가 점거한 왕도 공략전에… 프레드릭이 참전했다고 되어 있지 않나.

미간을 꾹 누르면서 생각에 골몰했다. 이 모순을 이어줄 만한 사실이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에 도달했다.

‘로젤라이, 아버지에게는 그녀가 있었어.’

노래하는 성녀 로젤라이.

노래로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로젤라이라면 중상을 입은 프레드릭을 치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프레드릭을 어떻게 했을까, 죽였을까?

그럴 리가 없다. 프레드릭은 아버지의 네 명의 친형제 중에서도 지금까지 멀쩡히 살아있다.

물론 그 프레드릭을 살아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하, 하하, 하…. 젠장, 단순한 망상이잖아. 이런 거…. 빌어먹을, 이게 진짜면,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지 않아? 상상 이상으로 더럽다고.”

결론은 빠르게 매듭지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증거를 모으는 것 뿐이다.

칼 프레드릭 바츠.

그의 정체는 바로 의문의 왕자, 프레드릭 알트슈타인 팔케이자…

“그래서 형에게 왕위를 주지 않으려고 그 야단을 부린 거야? 미친 늙은이 같으니….”

형, 미하도르 라이산더 알트슈타인 팔케.

그의 친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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