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3 2 / 골렘에 진심인 마법사 벤 가브롤에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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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실로 불쾌한 한때의 경험 후.
‘인간 말미잘’들의 사육장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려고 애썼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그렇게 몇 번이고 생각했으면서도 그게 잘되지 않더라.
마치 신전의 입구와도 같았던 회랑을 지나치고 나자 지하로 뻗어내려간 자연굴로 이어졌다. 종유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대한 굴을 내려가면서 어슴푸레하게 띄운 빛덩어리만이 시야를 확보해주는 유일한 광원으로서 기능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하네.”
그 흔한 박쥐 한 마리도 없을 정도로 사방은 조용하고, 생물체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인가, 유난히 크게 반향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로 번져 울려나갔다.
즈왈트를 데려와서 다행이었지.
이런 곳에 즈왈트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원.
아마 정신 쪽이 버티지 못하고 그냥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
“…대체 뭐 하는 곳이지?”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마력의 농도가 짙다. 손수건으로 코를 막지 않으면 머릿속까지 어질어질해질 정도로 마나 짙은 공기를 들여마셨다. 치아노제처럼 손끝이 파랗게 변색된 것이 어슴푸레한 빛에 비쳐 보였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위험하겠어.’
마나 농도가 무턱대고 짙다고 좋은 게 아니다.
물론 내 경우에는… 마나맥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발정해버리는 골치아픈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 외에도 얼마든지 부작용이 있는 법.
예를 들면, 진혈병이라고 하는 증상이 있을 수 있다.
피에 포함된 마나의 양이 지나친 나머지 이를 중화하기 위해 자신의 것이 아닌 피를 갈구하게 되는 병. 이 증상이 지나치게 오래 계속되면 진짜 흡혈귀가 되고 만다.
‘이런 마나 짙은 곳에 너무 오래 있으면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
일단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앞으로 나아갔다.
정말 위험해질 것 같으면 대응은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그나저나 난 진짜 막 나가네.’
뭐,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런 걸 봐버린 이상… 대체 어떤 정신나간 놈이 그런 짓을 벌였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으면 수지가 맞질 않는다.
정의감도 아니고, 복수심도 아니고, 사명감은 더더욱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의무감에 제일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주인. 잠시.”
즈왈트가 한 걸음 앞서서 미늘창을 쥐고 조심스럽게 섰다.
그가 걸음을 멈춘 것과 거의 동시에, 나도 어떤 불온한 기척을 느꼈다. 지팡이의 마력핵에 고인 빛을 조금 들어서, 멀리까지 앞을 비추었다.
“…뭐…”
야, 저건!
뒷말은 마음속으로만 쟁쟁 울리게 내버려두었다.
어처구니없게도 겁을 먹었던 탓이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그 무엇인가에.
“…살아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겁먹지 마라.”
“아니, 누, 누가 겁을 먹었다고.”
거대한, 터무니없이 거대한 머리가 있었다. 파충류의 머리다. 뿔이 달렸고, 턱이 벌어졌고, 눈구멍은 비어있다.
터무니없이 거대한 머리 뒤로, 거대한 교각과도 같은 목이 이어졌다. 목에 이어진 몸통과 날개, 꼬리. 그리고 앞발과 뒷발. 단단한 암석으로 굳어진 그것에 잠시 압도되었지만… 즈왈트의 말마따나 죽어있다는 것을 확인했어도 여전히 다소간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이거…. 시체인가?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용의 정수리에서부터 꼬리 끝까지, 한 줄기로 이어진 균열이 커다랗게 벌어진 채 방치된 잔해. 굳이 말하자면 이건…
“…허물인 것 같은데?”
굼벵이가 벗어던진 매미 허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사이즈는 비교할 수 없다. 무슈마헤트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크기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데.”
“조심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어차피 내용물은 텅 비었잖아.”
영차, 하고 머리 부분을 밟고 올라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역시 내부는 텅 빈, 말 그대로 허물이었다. 탈피하고 남은 허물이 이렇게 거대하고 압도적이라면 대체 그 내용물은 어디에 있는 걸까. 즈왈트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그냥 고개만 가로젓고 말았다… 그것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다.
“그런데 이 용머리, 어째 낯설지가 않은 것 같단 말이지….”
“무슈마헤트 말인가?”
“아니, 아냐. 무슈마헤트와는 달라. 다른 용인 것 같아.”
정체는 모르겠다. 애당초 이 어두운 곳에서는 윤곽만 겨우겨우 언뜻언뜻 보이는 정도고 그나마도 내용물도 없이 텅 비어있어서야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나저나 아무래도 이 일대 마나의 근원은 이 용의 허물인 것 같은데… 허물만으로 이럴 지경이라니,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거야. 용이라는 거.’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이 용이 된 상상을 해 보았다.
용이 되면 이런 허물만으로도 무시 못 할 존재감을 느끼게 되니, 세상에 무서울 게 없겠지. 하지만 결국 그 끝은 어디일까. 무슈마헤트처럼 광기에 빠져들게 될까.
게다가… 이 허물의 주인은 정황상 바로 앞의 인간 말미잘들을 만들어낸 원흉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생물은… 되고 싶지 않다. 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오래 있을 수가 없으니까… 조금 조각을 떼어서 가져가는 게 좋겠어.”
슬슬 마나맥이 위험할 정도로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이 이상 여기에 머물렀다간 뭔가 부작용이 일어나도 단단히 생길 것 같다. 섹스 몇 번 하는 것으로 어떻게 해결이 안 될 정도로.
하지만 모처럼 얻게 된 단서를 그냥 버려두고 갈 수도 없지. 즈왈트에게 고개를 끄덕여, 석화된 뿔 조각을 떼게 했다. 팔 안에 한움큼 들어갈 정도의 뿔 조각을 잘라낸 뒤, 무한의 주머니에 그 조각을 넣고 돌아섰다.
“이 정도면 됐어. 그만 돌아가…”
돌연 입을 막았다.
콜록거리는 기침이 갑자기 새어 나왔다. 마치 뱃속이 뒤집히는 듯한, 그 뒤집힌 뱃속이 녹아내리듯한 복통이 울렁거렸다.
“주인!”
“괜찮… 큭, 읍….”
입을 열면 내장을 쏟아낼 것 같은 복통이, 천천히 뱃속을 타고올라와 흉통으로 번졌다. 목 뒤의 마나맥이 빳빳하게 굳어, 탭댄스를 추는 댄서의 발놀림처럼 경련했다. 갑작스러운 부정맥에 눈앞이 핑 도는 것 같았다.
“즈왈트, 나 좀…”
내쉬는 숨이 괴롭다.
무슈마헤트의 바로 위에서 숨을 쉬었을 때는 독 섞인 공기가 폐를 녹이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마치… 내장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 같다. 돌조각이 기도에 섞이는 것 같아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대체 뭐냐고, 이거… 또, 진짜… 이런 거 작작해야 하는데….’
괜히 오지랖과 호기심에 혹해서 끼어들었다가 몸으로 고생하는 짓.
이런 것도 조금 자제할 때도 되었다 싶다가도, 그럴 만한 상황이 되면 다시 되풀이한다. 난 의외로 참, 배우는 게 느릴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참아라, 주인. 바로 지상으로 데려가겠다.”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뼈마저 굳은 것처럼 뻣뻣하게만 느껴졌다.
즈왈트의 팔이 안아드는 감각조차 다소 둔해져만 간다.
피가 느리게 도는 것처럼 생각마저 더디었지만… 그 때문일까, 오히려 쓸데없는 생각은 저 너머로 흩어지고 어떤 의혹이 거품처럼 떠올랐다.
‘혹시….’
내가 여기에 오기를 바란 누군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누군가는 내가 용의 허물을 보길 바란 것이고. 하지만 누가?
즈왈트의 얼굴을 문득 올려다보았다.
즈왈트가 내 얼굴을 내려다보곤, 조금 흠칫 놀라는 것처럼 보였다.
왜 저런 얼굴인 거지…? 입술을 열어 뭔가 말을 하려고 해도, 혀가 빳빳하고 목구멍이 말라붙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아니, 그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으… 생각이 잘 되지가 않아….’
피가 느리게 돌아서인지, 아니면 숨이 답답해서져인지, 그 이상 생각이 나아가질 않았다.
가까스로 즈왈트의 팔을 붙잡고 있는 손끝도 차갑고 딱딱해져만 가는 것 같다. 이건 정말 위험한데, 하고 멍하게 되뇌면서 천천히 의식의 끈을 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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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혔던 숨이 돌연 트였다.
콜록, 콜록, 콜록… 기침을 내뱉을 때마다 폐가 찢기는 것 같아서, 울컥 눈물이 고였다. 실제로도 죽은 핏덩어리를 몇 번 뱉어냈을 정도였으니까.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느낀 것이 이런 아픔이라니, 참.
고생을 사서 한다는 말도 있지만, 난 그 정도가 좀 심하지 않냔 말이다.
“…하아…. 이번에도 어떻게든 살았네. 진짜 사서 고생하는 것도 작작해야 하는데.”
이마가 땀으로 젖었다. 안대로 가려둔 눈도 욱신거리는 게, 어지간히 위험했던 모양이다. 일단 한 시름 덜은 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이 따로 부탁한 작은 방이었다.
“주인, 기침 소리가…”
“괜찮아. 가라앉았어… 몸도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
“그런 것 같더군.”
…무슨 일이 있었나? 유난히 지상으로 올라오던 중 보았던 즈왈트의 놀란 얼굴이 뇌리에 남았다.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별 건 아니다. 잘못 봤을 수도 있고. 그보다 조금 쉬는 게 어떤가?”
“아니, 이젠 괜찮은 것 같아. 속이 좀 개운해졌어… 그러고 보니 루시탄은? 지금 어쩌고 있는지 알아?”
“알아는 보았다만….”
감정 표현이 옅은 즈왈트의 얼굴이 조금 주저하는 듯한 기색을 비쳤다.
무뚝뚝한 것치고는 참… 뭔가를 감추는 데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어보인다. 말없이 대답을 채근하자, 즈왈트는 마지못해 입을 떼었다.
“그론 선제후라는 자와 만난 이후로… 객실에 연금되어있다는 것 같다.”
…엥?
뭐? 연금돼? 루시탄 걔가?
“아니, 이번에는 대체 뭔 사고를 친 거야… 한 시라도 얌전히 있을 수 없는 거야, 도대체…?”
피장파장, 사돈 남말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도 걔도 참, 사고치고 다니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다.
골치가 또다시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꺼끌거리는 감촉이 남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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