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145화 (145/157)

〈 145화 〉 3 ­ 2 / 골렘에 진심인 마법사 벤 가브롤에게 (7)

* * *

(6)

회랑의 끄트머리까지 조심스럽게 전진.

누가 봐도 움직일 것 같은 가고일을 경계했지만, 일단 당장 움직일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언젠간 움직일 거라고 염두에 두고, 일단은 지나쳐서, 회랑 끄트머리 너머를 엿보았다.

“뭔가 있긴 한데… 잘 안 보이네.”

조금 더 들어가 볼까.

이 이상 들어가려고 하면 분명히 양쪽의 저 가고일 두 마리가 움직이겠지. 호기심을 우선할지, 안전을 우선할지의 갈림길에서 늘 꽤 손해를 감수하는 선택을 해 왔었고.

“…돌아갈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군.”

…웃지도 않고 주인님 얼굴에 먹칠을 쏟아붓는 이 골렘을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몇 번째인지 모르는 인내심을 발휘하고는 긴장감 가득하게 불어넣으며 발을 들였지만…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이게 맞는 것이긴 한데.’

아무도 없는데 빛을 휘황찬란하게 밝혀놓는 게 이상한 일이긴 하지. 그런데 가까이에 있는 즈왈트의 표정이 이상했다.

“…주인. 저 안으로 들어가는 건 그만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왜, 뭐가 보여?”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모를 것 같은 목석 같은 얼굴의 골렘은, 그 평소보다 더더욱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도록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몹시도 저 안을 꺼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러는데?”

“주인에게는 좀 벅차지 않을까 싶다만.”

“…왜 이러셔. 나도 꽤 단맛쓴맛 다 본 년이야. 무시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면 무서워서 움츠러들 거라고 생각했다면 사람 잘못 본 건데.

한쪽 눈에 암시(??)의 술을 걸자, 서서히 어둠 속의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욱….”

즈왈트의 말을 들을걸 그랬다고, 보자마자 생각했다. 눅눅하고 짙은 어둠 속을 꿈틀거리면서 바닥을 기고 있는 어떤 것들을 보는 순간, 생리적인 혐오감이 불쑥 치솟았다.

“뭐야, 뭐야… 저거… 욱….”

“…그러게 내가 보지 말라고 했잖은가.”

서둘러 토악질을 참아내기 위해 입을 막았다.

몇 개의 팔이 얽히고 엉겨붙은 채 허우적거리면서 어둠을 매만지듯, 더듬듯 꿈틀거렸다.

납작하게 찌그러뜨린 몇 명의 인간 형상이 마치 녹아내린 것처럼 서로 엉겨붙었다.

빛 한 점 없는 하늘을 향해 손을 힘없이 휘젓고 서로 들러붙은 다리들로 바닥을 부자연스럽게 기어가는 모습은… 꼭 인간 몇 명을 이용해 말미잘을 만든 것 같았다.

“누가, 대체 누가 저런 미친 짓을 한 거냐고…!”

그런 것들이 열 마리 이상. 어쩌면 그보다 더. 저 회랑 안쪽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들의 몸뚱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썩어들어가 문드러지는 동시에 다시 새살이 차올라 그 썩은 살을 밀어내는 것처럼 보여서, 더더욱 끔찍하다.

인간 말미잘 중 한 마리가… 그 자리에서, 고름인지 핏물인지 모를 점액질을 흘리면서 몸뚱이를 돌렸다. 숨을 삼켰다. 놈에게는 앞뒤라는 게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아마 저, 사람의 흐물흐물한 두상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게 앞쪽… 이겠지?

“이쪽… 으로 오고 있어…?”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은 보기만 해도 속이 뒤집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갑자기,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기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으아악!”

수많은 다리로 구역질나는 몸뚱이를 들어올리고, 늑대거미처럼 달려오기 시작한 순간 말 그대로 혼이 나가는 줄 알았다. 즈왈트가 내 앞을 막아섰고, 뭔가 화염 마법이라도 준비하려고 지팡이를 꽉 움켜쥐었는데,

“갸으아가악!”

흉물의 몸뚱이에 뭔가가 깊게 박혔다.

등 뒤의 가고일이 돌로 만든 창을 휘둘러 흉물을 반토막낼듯이 내려쳤다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깨달았다. 저 가고일은 침입자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저 구역질나는 생물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고 있었던 것이라고.

거의 껍질 한 장만을 남기고 반으로 갈라진 흉물의 절단면에서 수많은 작은 손들이 꿈틀거렸다. 그것들이 서로를 맞잡아, 천천히 붙으면서, 다시 원래의 말미잘 같은 모습을 되찾았다. 가고일을 두려워하는 모양인지, 꿈틀거리면서 물러섰다.

“…안색이 안 좋다.”

“저런 걸 보고도 안색이 좋은 놈이야말로 진짜 정신이 나간 놈이겠지….”

그나저나… 어떻게 하지?

저 인간 말미잘들의 군집을 돌파하지 않으면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없다. 물론 저 너머에 나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둘 수도 없겠고….”

저것들을 그냥 둘 수 있을 리도 없다.

한때 사람이었다면 저런 모습으로 죽지도 못한 채 고통받게 둘 수는 없다.

인간의 말로가 아니라 악의만 가득한 괴물이라면, 많은 사람이 사는 지상으로 혹시라도 올라가게 둘 순 없다.

최소한,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숨을 가득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독이라도 섞인 것처럼 가슴이 따끔따끔하게 찌르는 것 같다. 손이 달달 떨렸다.

그냥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시시각각 강해지는 것을 억누르면서, 머릿속으로 어떻게하면 저들의 고통을 끝내줄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저런 모습의… 인간으로 만들어진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죽일 수 있을 방법을 떠올린다. 제 인간성을 깎아낸 것 같은 쓴맛을 느끼면서.

‘정말… 얼마동안이나, 저런 몸뚱이로 살아있었던 거냐고.’

끊임없이 재생하고, 썩어가고, 또 재생하는 몸을 언제까지고 이고 살아가는 것은… 그 자아가 희미하게 썩어문드러져 제 육신을 버티지 못하고 망가질 정도로 고통스러웠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게 어떤 고통인지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방법이 있긴 한데.’

한 움큼의 씨앗을 꺼내들었다.

지난번 싸웠던 무슈마헤트의 독을 품게 하여 만든 독꽃의 씨앗이다.

마력을 빨아들여 독의 꽃을 피우는 이 씨앗이라면… 아마도 저들의 고통을 끝내줄 수 있겠지.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이 순간 나는 이기적인 선택을 내릴지를 잠시 고민했다.

이 씨앗들은 다시 구하기 어려운, 말하자면 비장의 카드이다.

여기서 써버리면 정말 필요할 때 정말로 곤란한 상황에 닥칠지도 모르지.

까끌까끌하게 마른 씨앗을 꽉 움켜쥐었다가, 결정을 내렸다.

만약 여기에서 저들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친다면, 난 아마 오늘을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손에 쥔 씨앗을 바닥에 흩뿌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지팡이를 꽉 쥐어 체내의 마나를 돌렸다.

희끄무레한 나비의 모습을 띤 마력이 씨앗을 품은 채로 날아올랐다.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나비들을 거느린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살이 썩어들어가는 비릿하고 노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좀 더 가까이에서 바라본 육괴는… 형태가 분명해질수록, 혐오감보다는 동정심이 강하게 들었다.

‘이제보니… 저렇게 손을 하늘로 뻗어대던 건 혹시…?’

여신의 눈조차 닿지 않을 것 같은 이 지하에서, 그들은 누군가 고통을 끝내주길 갈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천천히 나비 한 마리가 육괴에 내려앉았다. 다시 나비가 날아올라, 마력의 티끌로 흩어져간다. 뿌리를 내린 씨앗에서 금세 싹이 움텄다.

움튼 싹에서부터 흰 꽃잎이 천천히 열린다.

뿌리에서 빨아들이는 마력과 번져나가는 독은, 육괴가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는 재생력 이상의 붕괴를 가속화했다. 파르르 떨리는 자그마한, 아기 같은 손끝이 부스러지는 것이 보였다. 입술을 깨물고 지켜보았다.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결국 난 이걸 절대 못 잊을 거야.’

어리석은 선택이다. 바보같은 선택이다.

값싼 동정심 때문에 비장의 수를 소모해버린 나는 마법사로서는 별로 적성이 맞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로 좋다고 생각하자.

육괴가 스러진 자리에 흰 꽃잎이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거렸다.

그 행동을 반복한다. 즈왈트는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등을 지키다가… 마지막 꽃을 피우고 난 뒤에 한 마디를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주인. 이건 내 생각이지만… 이것들은 혹시 우르 늪지에서 만났던 그것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겠나?”

우르 늪지.

미성숙한 드래곤을 이용해 만든 합성 괴물.

지나치게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떠올리지 못했을 뿐, 확실히 즈왈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동정심이 흩어진 자리에 분노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 장소의 주인은 우르 늪지에서 있었던 일의 배후에 있었던 바로 그자였단 말인가?

우르 늪지에서 키메라에게 먹이를 던져주고,

그 해골의 산을 만들어낸, 결국 아무런 실마리도 잡지 못했던 그 자라고?

결국, 나는 여기에서 나아가야만 할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좀 더 들어가 보자, 즈왈트. 난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졌어. 이딴 짓을 하는 자식을.”

이 너머에 그 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절대 여기서 그저 물러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되겠지.

“누군지 몰라도 처죽여 버릴거야.”

지금 당장은 그 어떤 이성적인 판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잿더미 위에 피어난 열 몇 송이의 흰 꽃을 등지고 나아가는 것을 택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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